⑫ 안성 청룡사 대웅전 반야용선도

대웅전 서쪽편 내출목 윗벽에 조성한 반야용선도. 아미타삼존불을 비롯해서 총 37명의 인물상이 등장한다. 반야용선에 남사당패를 묘사한 파격적인 도상이다.
반야용선은 유체역학적인 선박 아닌
사성제와 연기법 진리 깨친 깨달음의 배
파주 보광사도 반야용선도서 보주 등장

아미타 본원력에 의지한 극락왕생
아미타부처님은 모든 중생을 극락정토로 인도하려 48대원을 세우고, 이미 그 대원을 이루신 부처다. 중생을 손수 영접해서 극락정토로 이끄시는 접인도사(接人導師)이시다.

그런데 극락정토는 서쪽으로 십만억 국토를 지나야한다. 작은 선근이나 공덕, 자력으로는 불가능에 가깝다. 극락정토에 왕생하는 길은 아미타불의 본원력에 의지하는 것이다. 이타적(利他的) 구원의 대원(大願)에 의존하는 것이다. 이미 대원을 이루었으므로 믿고 따르면 된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관무량수경>에서 위제희 왕비에게 이미 극락세계의 온갖 아름다운 장엄세계를 보임으로써 중생의 발보리심을 이끄셨다. 단지 중생들은 극락정토에 태어나고자 신심과 환희심을 내어 아미타불의 명호를 다만 열 번만 부르면 된다. 정토와 불보살을 일심으로 관상하며 나무아미타불의 명호를 간절히 염불하면 된다. 부처님을 생각하고 부르는 지명염불(持名念佛)의 방법이다. <아미타경>에서는 하루 내지 일주일 동안 일심으로 염불한다면 극락왕생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대단히 간단하고 쉬운 일이다. 그러면 선남선녀들이 극락정토의 한 자리에 모두 모인다. 구회일처(俱會一處)의 국토다.

그런데 어떻게 극락정토에 왕생할 수 있는가? 아미타부처님께서는 왕생자에게 직접 찾아가 맞이하신다. 홀로, 때론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과 함께 삼존불 형식으로, 혹은 팔대보살을 대동하시기도 한다. 그 장면이 아미타내영도(阿彌陀來迎圖)다. 내영의 걸음을 통해서 왕생자에게 광명을 놓거나 연화좌를 건네신다. 개개인별로 찾아가서 맞이하는 방식이다. 왕생자는 연화화생(蓮華化生)으로 극락정토에 왕생한다. 대단히 감동적이고 극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때론 보다 집합적인 구제방식도 취한다. 고통의 바다를 건너게 해서 피안으로 이끄는 방법이다. 용이 끄는 지혜의 배, 반야용선(般若龍船)에 태워 극락으로 인도한다. 그 장면을 그린 탱화나 벽화를 ‘반야용선도’, 또는 ‘용선접인도’라 한다.

반야선과 아미타내영도의 결합
몇몇 사찰에는 반야용선도 벽화가 현존한다. 양산 통도사 극락보전 외벽, 제천 신륵사 극락전 외벽, 파주 보광사 대웅전 외부판벽, 구미 수다사 명부전 외벽, 안성 청룡사 대웅전 내벽 등에 귀한 장면으로 남아있다. 제천 극락전 벽화에서는 벽화의 방제를 ‘반야용선도’라 밝히고 있어 벽화 명칭의 혼선을 가닥잡게 한다. 반야용선도의 일반적인 구성은 용이 끄는 배와 배의 앞뒤로 인로왕보살과 지장보살이 두루 배의 안전을 살피신다.

배의 중간에는 아미타여래와 관음보살, 대세지보살의 아미타삼존불께서 왕생자들을 내영하시는 구도다. 그림의 형식만을 놓고 보면 반야용선도는 고해를 건너는 반야의 배와 아미타내영도의 결합이라 할 것인데, 통도사 벽화처럼 아미타내영의 부분이 생략되기도 한다. 청룡사 대웅전 반야용선도는 내용구성의 완전성과 미술회화적 자기완결성을 갖추고 있어 국내 반야용선도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힌다. 반야용선은 그 자체가 용이면서 배로서 살아있는 생명력이다. 아미타여래의 48대원의 본원력이면서 무량수, 무량광의 자비력인 까닭이다.

안성 청룡사 대웅전 반야용선도는 천정 바로 밑 내목도리 상벽에 베풀었다. 아미타여래의 정토사상을 반영한 듯 대웅전 서쪽 벽면에 조성하고 있다. 세로 85cm, 가로 220cm 크기의 화면이다. 흙벽에 회칠로 마감한 후 벽화를 조성했다. 반야용선은 청색 물결이 굽이치는 대해를 한 마리 커다란 용이 끌고 가는 붉은 배로 묘사했다. 용이 배이고, 배가 용 자신으로 둘 사이에 구분의 경계가 없다. 화면의 맨 앞은 용과 붉은 보주(寶珠)의 강렬한 인상이다. 붉은 보주는 특히 인상적이다. 붉은 빛에 신령의 주술적 기운이 흐른다.

보주는 반야용선의 본질을 환기시킨다. 바로 반야의 조형언어로 통한다. 곧 보주는 깨달음이자 지혜의 메타포다. 그래서 용선이 아니라 반야용선이다. 반야용선은 공학적인, 유체역학적인 선박이 아니라, 고·집·멸·도의 사성제와 연기법의 진리를 깨친 깨달음의 배이다. 대승불교 이전의 부파불교에서 가장 유명한 논서가 세친의 <구사론>이다. 방대한 분량의 <구사론>의 기본 뼈대를 이루는 내용이 고·집·멸·도의 사성제다. 불교는 인간이 지닌 번뇌와 고통의 바탕에서부터 실천적 사유를 시작한다. 번뇌의 불을 끄고, 고통의 바다를 건너 열반에 이르는 것이 궁극의 길이다.

고통은 탐냄과 성냄, 어리석음, 곧 탐진치(貪瞋癡)의 마음작용에 다름 아니다. 극락정토가 현세적 기복이 강하게 반영된 것이라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마음의 경지이므로 극락의 본질 역시 마음 밖에선 찾을 수 없다. 본래의 청정한 마음, 텅 빈 마음이 상락아정(常樂我淨)이고 극락이다. 보주도 본질적으로는 생명력으로 가득한 텅 빈 우주법계, 혹은 텅 빈 마음일 터이다. 반야용선도에서 보주가 등장하는 곳은 파주 보광사 대웅전 벽화와 이 곳 청룡사 대웅전 벽화에서다. 반야용선의 본질을 분명하게 일깨우는 상징조형이다.

반야용선의 선수부분 세부. 여섯명의 남사당패와 스님 등 왕생자가 등장한다.
반야용선에 바우덕이 남사당패 승선
청룡사 반야용선도는 세 부분으로 구성했다. 왕생자가 타고 있는 뱃머리 선수(船首)부분과 아미타삼존불이 내영해 계신 중간 부분, 그리고 주악천인들의 공간인 선미(船尾)부분이다. 일반적으로 선수부분에는 인로왕보살이, 선미부분에는 지장보살을 모셔 배의 안전을 보장하지만 청룡사 벽화에는 다른 구도로 대체해뒀다.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는 점도 특징적이다. 벽화에 등장하는 인물은 아미타삼존불을 비롯해서 모두 37명의 인물상이 등장한다. 선수부분에 18명, 중간에 아미타삼존불 세 분, 선미에 16명이다.

반야용선은 길게 장막을 드리웠다. 장막의 좌우로세 명씩 동자가 번과 당을 들어서 경사스런 의례의 분위기를 고양한다. 선수부분의 핵심적인 탑승자는 왕생자들이다. 왕생자는 모두 13명이다. 삭발스님 네 분과 불자(拂子)를 든 고승대덕 세 분도 보인다. 하지만 특별히 주목되는 사람들은 염주 목걸이를 하고 망건 위에 탕건 같은 그물 모자를 쓴 남녀 여섯 명이다. 남자 셋, 여자 셋이다. 자세히 보면 소고(小鼓) 같은 악기를 들고 있다. 감로탱에 등장하곤 하는 사당패다.

청룡사는 인근의 칠장사와 함께 안성 남사당패의 중심 활동지다. 특히나 청룡사는 여성으로 남사당패의 꼭두쇠가 되었던 전설적인 기예인 바우덕이의 삶터였던 곳이다. 바우덕이는 청룡사 스님들의 손으로 키워졌다. 사당패들은 스님들이 써준 부적을 팔아 사찰불사에 재정적 지원을 뒷받침했다. 그 공덕을 기려 반야용선에 사당패를 승선시킨 놀랄만한 장면이다. 맺고 풀어나간 삶의 인연들이 감동적이다. 이렇게 보면 이 벽화는 19세기 후반 남사당패 바우덕이 활동 이후로 제작시기를 추정할 수 있다.

주악천인과 공양천인 이례적 묘사
화면의 중앙엔 아미타불과 관음보살, 대세지보살의 아미타삼존불께서 내영하신 장면을 담고 있다. 아미타불과 대세지보살은 왕생자 쪽을 보시고, 관음보살은 악기연주자 방향으로 시선을 처리했다. 관음보살은 백의관음이신데, 정병을 들었다. 백의관음은 제천 신륵사 반야용선도에도 등장한다. 백의의 색채에 조선후기의 시대적 흐름이 담지되어 있다. 대세지보살은 연꽃을 들어 보이신다.

세 분의 입가에는 자애로운 미소가 잔잔히 흐르고 있다. 삼존불께서 내영하시자 선상엔 연방 향피리, 대금 등이 주도하는 수제천의 선율이 흐르고, 천동(天童)들이 번과 당, 천개를 들어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가운데 그윽한 향의 과일공양이 이어진다. 반야용선도에 주악천인과 공양천인이 등장하는 경우는 극히 이례적인 장면이다. 극락정토의 즐거움이 우러나온다. 공양천인은 두 명에 불과한데, 주악천인은 무려 11명에 이르러 확장된 삼현육각을 능가한다. 등장 악기도 그만큼 다양하다. 횡적, 피리, 해금, 장고, 비파, 생황, 북, 나각, 아쟁 등 기악합주 편대의 진영을 갖추고 있다.

왕생자들은 일제히 ‘나무아미타불’의 육자명호(六字名號)를 받들며 극락정토 왕생을 발원한다. 육도윤회의 사슬이 끊기고 불퇴전의 극락세계 성중에 오른다. <불설아미타경> 경에서 석가모니불께서 다음과 같이 증명하신다.

남녀노소 누구라도 아미타불의 명호를 하루나 칠일 동안 일심으로 나무아미타불의 명호를 염불한다면 아미타불이 권속들과 함께 마중나가서 그 사람을 영접할 것이다. 피안으로 가는 저 배, 함께 가오.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배 중앙과 선미부분 세부. 배가 곧 용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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