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물소리 上

▲ 그림-강병호
혹시 찬이 입에 맞지 않으신가요?”

은쟁반에 옥구슬을 굴린다면 이와 같은 소리가 아닐까. 석주는 옥구슬처럼 입안에서 굴러다니는 쌀알을 씹으며 생각했다. 해당화 보살님은 목소리가 예뻤다. 목소리만 예쁜 게 아니었다. 눈도 코도 입도 예뻤고, 희고 가느다란 손가락 끝의 단정하게 깎은 손톱도 예뻤다. 외모만 예쁜 것이 아니었다. 마음씨도 곱고 예뻤다. 김치 하나를 썰어도 예쁘게 썰었고, 접시에 음식을 담을 때도 예쁘게 담았다. 상을 차려놓고 보면 색색의 음식들이 꽃으로 수를 놓은 듯이 아름다웠다. 단 하나, 예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음식의 맛이었다.

밥은 늘 되거나 질었고, 나물에서는 비린내가 났고, 조림은 시고, 국은 달았다. 맛이 없다기보다는 이상했다. 석주가 13년을 사는 동안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낯설고 해괴한 맛이었다. 해당화 보살님이 온 지 석 달이 훌쩍 지났는데도, 음식 맛은 좋아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럴 리가 있나요. 정성으로 지으신 음식인데요.”

밥을 고봉으로 먹던 진성 스님은 밥을 절반쯤 비운 후 숟가락을 내려놓았다가 해당화 보살님의 해맑은 얼굴에 그늘이 지는 것을 보고는 냉큼 숟가락을 다시 들었다. 고시 공부를 하러 왔다가 공부를 하지도 머리를 깎지도 못하고 갈팡질팡하며 반승반속의 삶을 사는 양 처사님은 남은 밥에 물을 말아 훌훌 들이켰다.

밥그릇을 흔쾌하게 비우는 사람은 석명 스님뿐이었다. 모래로 밥을 지어도 맛나게 드실 분이라고 진성 스님이 말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요 며칠 사이 석명 스님은 밥을 제대로 드시질 못했다. 수저를 들었는가 싶으면 먼 산을 바라보셨고, 국을 드시는가 싶으면 멍하니 국그릇 속을 들여다보고 계셨다.

공주님께서는 요새 좀 어떠신지 궁금하구나. 아침 공양 마치거든 진성이가 전화 좀 넣어라.”

석명 스님께서 말씀하신 공주님은 공양주 보살님이다. 공주는 보살님의 이름이다. 공주님처럼 귀한 대접 받으며 살라고 지어준 이름이라고 한다. 하지만 보살님의 삶은 이름과는 거리가 멀었다. 열다섯에 시집가서 두 해만에 남편을 여의고, 가난한 살림에 이집 저집 식모를 살다가 스물에 이 절로 들어와 공양주 보살이 되었다고 한다. 석명 스님은 보살님의 이름 뒤에 자를 붙여 공주님이라고 불렀다. 동진 출가해서 외롭고 쓸쓸했던 석명 스님에게 공주님은 때론 누이였고, 때론 엄마였으며, 때론 도반이었다고 한다.

봄꽃이 모두 지고 산빛이 초록으로 짙어갈 무렵 공주님은 50년 만에 절을 떠났다. 속이 더부룩하다며 병원에 갔다가 위암 말기 진단을 받은 것이다. 공주님은 병원 대신 요양원을 선택했다. 이 세상에 미련도 없고, 후회도 없으니 조용히 남은 생을 보내다 떠나겠다고 했다.

관절염을 오래 앓아 뼈마디가 툭 불거진 공주님의 손은 마법의 손이었다. 그 손이 닿으면 어떤 음식이든 황홀할 정도로 맛이 있었다.

공주님 음식 솜씨가 세계에서 최고예요. 나물에서 어떻게 이런 맛이 나요?”

막 무쳐낸 나물을 손가락으로 집어 먹으며 감탄을 하면 주름이 가득한 공주님의 얼굴에 웃음이 잔물결처럼 퍼졌다.

솜씨랄 게 뭐 있누. 이 절 계곡의 물맛이 좋아서 그런 거란다.”

똑같은 쌀에 똑같은 재료, 똑같은 물로 밥을 지었지만, 해당화 보살님의 음식은 정말이지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맛이었다. 거구의 진성 스님은 해당화 보살님의 음식을 일컬어 저절로 살이 빠지게 도와주는 천연 다이어트식이라고 말하며 슬프게 웃었다. 우리는 항상 밝고 예쁜 해당화 보살님을 좋아했지만, 공주님이 그리웠다. 공주님의 밥상이 진심으로 그리웠다.

 

학교에서 돌아오니 석명 스님께서는 108배를 마치고 좌선에 드셨다. 들숨은 고요한데 날숨이 훅, 하고 거친 소리를 냈다.

스님, 먹을 갈까요?”

탁자 위에 화선지를 깔고, 연적에 물을 받아와도 스님께서는 깊은숨만 쉴 뿐 말이 없었다.

스님, 어디 불편하세요?”

으응? 아니다. 먹을 갈거라. 문을 좀 열어다오. 답답하구나.”

스님은 문밖에 시선을 두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먹을 다 갈았는데도 붓을 들지 않았다. 벼루에 물을 더하고 먹을 다시 갈았다. 이제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가득한 묵향만이 방안의 정적을 고요하게 흔들었다.

석명 스님이 글씨를 쓰실 때면 공주님은 젖은 손을 앞치마에 닦고 방 한 귀퉁이에 앉아 스님이 쓴 글씨를 홀린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어쩌면 글씨가 이렇게 깨끗하고 맑을까요. 스님 쓰신 글씨에선 물소리가 납니다.”

걸림도 없고 욕심도 없었던 공주님에게는 딱 하나 바라는 것이 있었다. 평생을 사모했던 스님의 글씨로 금강경을 써달라는 것이었다. 그 글씨로 열두 폭 병풍을 만들어 둘러놓으면 세상 어떤 고통도 다 견뎌낼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공주님이 요양원으로 떠난 뒤, 석명 스님은 금강경 사경을 시작했다. 108배를 올리고 좌선에 들어 몸과 마음을 가라앉힌 후에 세필로 한 자 한 자 사경을 했다. 한 여름 무더위에도 이마에 흐르는 땀을 장삼 자락으로 닦아내며 단 하루도 쉼 없이 해오던 사경은 이제 막바지에 이르렀다. 5,173자를 사경하고, 이제 마지막 한 글자만 남았는데, 어쩐 일인지 스님께서는 며칠 째 붓을 들지 않았다.

한 칸 남은 화선지의 여백을 응시하다가 먼 하늘을 바라보고, , 하고 깊은숨을 쉬었다가 종이를 다시 말아놓았다.

아침에 스님께서 공주님께 전화를 넣어보라고 하셨지만, 사실 일부러 전화할 필요가 없었다. 금강경 사경을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공주님은 매일 전화를 걸었다. 어디까지 썼는지, 물 흐르는 듯한 필체는 변함이 없는지, 매일 올리는 108배에 무릎 관절이 상하지는 않을지 묻는 공주님의 목소리에는 걱정과 염려와 기대가 한데 어우러져 있었다.

어째서 스님은 마지막 한 글자를 쓰지 못하는 걸까. 석주는 스님의 마음을 헤아려보려 애썼지만, 그 마음 한 가닥도 잡히지 않았다. 마지막 한 글자를 쓰고 나면, 꿈에도 그리던 병풍을 두르고, 공주님이 이 세상을 훨훨 떠나갈까 두려운 것일까.

종이를 거두어라. 이만 접자꾸나.”

마지막 한 글자는 오늘도 채워지지 않았다.

석주는 열두 번째 화선지를 조심조심 말다가 문득 멈췄다. 금강경의 마지막 구절. 신수봉행(信受奉行). 비어있는 행() 칸의 앞에 쓴 글씨는 봉()자가 아니었다. 손수 변이 있는 봉()자였다. 백일에 걸쳐 사경을 하면서 단 한 글자도 잘못 쓴 글자가 없었는데, 하필 마지막 한 글자를 남겨놓고 오자(誤字)를 낸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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