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병원에 입원했던 전의경 중에는 전역 이후에도 꼬박꼬박 문안 전화를 하고, 부처님오신날마다 특별한 영가등을 올리는 인연이 있다. 바로 성우라는 이름의 젊은이다. 이름처럼 굵직한 목소리가 제법 잘 어울리는 이 친구는 청도에 살며 현재 구미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몇 년 전, 성우가 경찰병원 5층 병실에 입원해 있을 때의 이야기다. 전경으로 근무하다 시위 진압과정에서 부상을 입어 병원에 입원한 그였다.

스님! 안녕하십니꺼! 여기도 법당이 있습니꺼?”

경상도에서 나고 자란 나의 귀에 퍽 익은 사투리가 들렸다. 성우와의 첫 대면이었다. 씩씩한 목소리로 처음 보는 스님에게 법당 위치를 묻는 모습이 기특해 첫 만남부터 왠지 모르게 정이 가는 친구였다.

우리 어머님이 절에 다니십니더.”

어머니가 절에 다니는데 자신도 부처님이 좋아 불자가 됐다고 스스럼없이 밝힌 성우. 성우는 또래 친구들보다 훨씬 밝은 성격의 소유자였고, 늘 어른들을 공경하는 자세로 지냈기에 병원 식구들은 항상 그를 칭찬했다. 그래서 성우가 다녀간 자리에는 늘 훈훈함이 남아있었다.

▲ 그림 박구원.

특히 한 병실에서 환자를 돌보고 있던 간병인 보살님은 싹싹한 성우를 마치 친자식처럼 챙겨줬다. 보살님은 성우가 수술을 마치고 병실을 옮겨 누워있을 때도 찾아가 이것저것 챙겨주는 정성을 베풀었다. 심지어 수술을 받고 몸이 불편한 성우를 위해 목욕할 때 등을 밀어줄 정도로 극진하게 보살폈다. 어쩌면 보살님 슬하에 자식이 없었기에 성우에게 더욱 정이 갔으리라. 성우도 그런 보살님의 정성에 감사한 마음을 잊지 않았다.

덕분에 성우는 무사히 재활을 마치고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했다. 퇴원 후에도 나와 간병인 보살님에게 가끔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곤 했다. 보살님은 성우와 전화통화를 한 날이면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러던 어느 날, 보살님이 무리하게 간병을 하다 갑자기 쓰러졌다. 급성뇌출혈이 원인이었고, 이로 인해 보살님은 세상을 떠났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해들은 성우 역시 몹시 마음 아파했다. 얼마 뒤 법당에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성우였다.

스님! 부처님오신날 영가등 하나 달고 싶습니더. 순금 아줌마 좋은 곳에 태어나실 수 있게 등 하나 밝혀주세요.”

그렇게 시작된 성우의 등불공양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계속 이어지고 있다. 가난한 여인 난타가 부처님을 위해 머리카락을 팔아 등을 밝혔듯이 성우의 변함없는 정성에 간병인 보살님은 부처님 나라에 태어나셨으리라.

또 어느 날은 내가 머무는 선원에 성우가 찾아왔다. 마침 밭에서 밭갈이를 하고 있을 때였다.

스님, 이런 일은 남자가 해야 됩니더!”

두 팔을 걷어붙인 성우는 나를 도와 함께 밭일을 하면서도 내가 지루하지 않도록 시종일관 재미있는 이야기를 풀어냈다.

몇 달 전, 성우의 부친이 경운기를 몰다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성우는 사고 얼마 전 불길한 꿈을 꿨다며 아버지를 걱정하는 마음에 며칠간 음식을 입에 대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다행히 성우의 부친은 지극한 아들의 정성 덕분에 빠르게 회복해 지금은 건강하게 잘 지내신다고 한다.

성우는 마음 쓰는 것이 부처님을 참 많이 닮았다. 그런 성우의 마음씨에 지인들은 항상 감동을 느끼곤 했다. 요즘 들어 성우의 마음 씀씀이가 생각나는 건 팍팍한 삶에 지친 젊은이들의 모습이 가엾기 때문이다. 주위를 맑히는 성우 같은 친구들이 조금 더 늘어나길 바라며 오늘도 젊은이들에게 부처님 가르침을 전한다.

-무관 스님(서울 경찰병원 법당 지도법사)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