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정도(八正道) ⑤

여덟 가지 성스러운 수행 길’(八正道)의 세 번째에서 다섯 번째까지의 내용은 바르고 적절하고 온전한 말(), 행위(), 생계유지()이다. 이 셋은 바르고 적절하며 온전하다’()는 말을 제외하면, 세상 사람들의 일상을 구성하는 내용에 해당한다. 따라서 매우 평범하게 보이기 때문에 중요성을 놓치기 쉬운 부분이다. 대념처경의 설명에서 반복되는 구절은 생략하고 핵심 내용을 들어보자.

비구들이여, 거짓말, 이간질, 욕설을 하지 않고, 꾸며대는 말을 하지 않으면, 이를 바르고 적절하고 온전한 말이라고 한다. 비구들이여, 살생을 하지 않고, 도둑질을 하지 않고, 부적절한 성욕을 멀리하는 것을 바르고 적절하고 온전한 행위라고 한다. 비구들이여, 부적절한 생계[수단]를 버리고 적절한 생계[수단]에 따라 생활을 꾸려가는 것을 바르고 적절하고 온전한 생계유지라고 한다.”

전통적으로 불교사상가들은 이 세 가지를 도덕적 완성을 지향하는 사고체계’(戒學)의 영역으로 분류하고 있다. 따라서 불교공부라고 할 때 이 셋은 불교적 가치를 실현하는 중심축의 하나로써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 그림 나은영.

첫 번째로 지적하고 있는 것은 언어의 문제다. 일상에서 구사하는 수많은 언어들 중에서 바르고 적절하며 온전함의 지향을 위해 멀리해야 하는 말들의 면모를 살펴보면, 나와 다른 이들에게 유익함을 가져오지 않는 성격이 공통적으로 내재되어 있음이 확인된다. , ‘거짓말(妄語), 이간질(兩舌), 욕설이나 비방(惡口), 꾸며낸 말(綺語)’을 하게 되는 의도가 나의 이익을 위해 남의 이익을 훼손시키는 결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 결과는 불교적 가치에서 첫 번째 목표인 유익함을 해치게 되므로 바르고 적절하며 온전하지 않다는 부처의 진단인 것이다.

두 번째로 제시하고 있는 것은 행위의 문제다. 불교 용어로는 ()’이다. ‘()’와 동의어가 아니다. 어원적으로 볼 때 업은 한 것이니, ‘행위를 지시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도인들은 그들의 전통적 사상체계에 바탕해 행위가 일회성의 사건으로 그치지 않고, 그 다음 행위를 다시 불러일으키는 원인으로 작용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자세하게 풀면, 하나의 행위가 발생하면 그것은 다음 행위를 일으키는 원인으로써의 잠재된 힘을 내장하기 마련이라는 지적이다. 따라서 행위에 개입되는 의도가 문제되며, 그 의도가 적절한가의 여부에 따라 유익하지 않은 결과’(惡業)를 가져오거나, ‘유익한 결과’(善業)를 가져온다고 보는 것이다. 물론 이 둘에 해당하지 않는 행위도 있다. 어떤 행위가 유익한지 아닌지에 대해 그 결과를 가늠하지 못하거나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 ‘아직 그 결과를 알 수 없음’(無記業)이라고 한다. 이때 한자어 ()’는 기별(記別)의 의미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러므로 업()행위로써 그 행위가 일어난 의도와 경향성을 문제 삼은 것이며, 그 행위로 결과가 다음의 행위에까지 영향을 끼치게 된다는 점도 고려하고 있다. 살생, 도둑질, 음행(淫行)의 셋은 언어활동과 마찬가지로 나의 이익을 위해서 남의 이익을 해치는 결과를 불러오기 때문에 바르고 적절하고 온전함의 길에서 멀리 벗어나 있다는 것이 부처의 생각인 것이다.

세 번째는 생명체에게 필연이 되는 먹고 사는 일에 대한 생각이다.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 무엇이든 나 아닌 것을 먹을 수밖에 없는 한계를 안고 태어나지만 그럼에도 다른 이의 유익을 해치지 않는 길의 모색에 해당한다. 앞에서 논의한 ()’와 긴밀하게 맞물려 있는 지점이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