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의 차문화 엿보기 ②

내가 먹을 갈 때
맑은 녹차 물 몇 방울을
떨어뜨려
정성껏 가는 이유는
먹이 가지는 정신의
고매함만은 잃고 싶지
않아서이다.


나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되살려 보았다. 서당 훈장을 하던 할아버지를 모시고 산 덕에 무쇠 솥에 마른 솔가지와 관솔 향이 펄펄 나는 소나무 장작을 태우며 밥을 지었다. 밥을 다 푸고 누룽지를 긁어 낸 후 물을 부어 숭늉을 만들기도 했다. 때론 남은 숯불 위에 무쇠 주전자를 올려놓아 물을 끓이고 여기에 녹찻잎 한 움큼을 넣고 다시 푹 끓이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날은 귀한 맛으로 호사를 누리는 행복한 날이었다. 우리는 식사 후 그 뜨거운 녹차를 혀끝에서부터 혀뿌리까지 아니 목 구멍 속 깊이 음미하며 마셨다. 그 맛은 숭늉처럼 맛있었다. 차색은 황갈색이었고 향은 웃는 느낌으로 다가왔다. 이렇게 끓여 마신 녹차는 속을 따뜻하게 했다. 녹차로 인해 속이 불편했던 기억은 없다. 뜨거운 차이지만 그 맛은 텁텁했고 시원했다. 몸에 좋다하여 적당히 찻잎까지 통째로 씹어 먹었다. 나의 삶 속에서 차는 이런 풍미와 정서로 기억되어 있다. 그 시절 마셨던 녹차엔 어느 것도 덧칠된 것이 없었고 군더더기 없이 차의 본질만을 취한 원형 차 맛, 그 자체였다. 더구나 형식이나 논리 개념도 없었다. 우리는 높은 향기를 취하거나 색깔도 괘념치 않았다. 단지 차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영양소와 맛을 얻으면 그 뿐이었다. 50년 전 내가 마셨던 차의 추억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차를 마시든 마시지 않든지 녹차라는 단어를 생각하기만 하면 입에 침이 가득 고이고 이(齒) 사이에서 향기가 움직이며 목구멍 깊은 속에서부터 향내가 내뿜어져 나오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요즘 마시는 작설차는 예전의 작설과 맛과 향이 많이 달랐다. 한마디로 내용보다 형식이 진실보다 사치와 허영이 많았다. 나는 녹차의 제조 현장을 찾아 차 맛에 숨어 있는 섬세하고 복잡다단한 과정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것은 한국 차의 원형에 대한 탐구와 전승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와 과거의 전통이 시대를 만나 어떻게 새롭게 이해되며 해석되고 있는지가 궁금해서였다.

나는 남도를 방문하는데 곡우가 조금 지나고 입하가 안 된 시절을 선택했다. 우전차가 만들어진 직후여서 햇차 맛보기에 적격이고 곡우와 입하 사이에 차를 만드는 곳이 많기에 현장을 실견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생각해서이다.

나는 그동안 여러 장인들을 통해 녹차 만드는 과정을 보아 왔고 관심을 가져 왔다. 그리고 각 장인들이 만든 녹차 맛이 어떤 제다 방식 때문인지 조금은 파악된 상태였다. 그렇지만 현장을 다시 찾은 이유는 확인하며 혹여 보지 못한 숨어 있는 진실은 없는지를 세심히 살펴보고 싶어서였다. 과정에 철저해야 한다는 평소의 지론도 한 몫을 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차는 녹차이다. 녹차를 제조하는 일반적 방법은 여린 찻잎을 따는 일과 이를 뜨거운 온도로 덖는 과정, 덖은 찻잎을 비비는 행위 그리고 건조시켜 완성하는 과정으로 정리할 수 있다. 한국 차의 전형적 제다 방식이다. 덖는 방식은 중국과 일본차의 전형성과 다른 점이다. 중국차는 대부분 쩌 만들고 일본차는 숯불을 피워 대바구니에 찻잎을 담아 훈제를 하는 방식이다.

녹차 제다에서 찻잎을 따는 과정은 거의 유사하다. 그러나 채취 시기는 개인적 경험에 따라 조금은 다르다. 다인들마다 어린 찻잎을 정성을 다하여 예쁘게 따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딴 찻잎은 성장의 맥이 끊어지는 순간부터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맹렬하게 활동한다. 그래서 소쿠리에 가득 담긴 생찻잎은 싱싱한 냄새가 극에 달하지만 반대로 생명을 향한 독소도 최고조에 이른다. 절명한 찻잎은 원초적인 생명활동에 의해 모든 에너지를 집중적으로 사용하며 살고자 몸부림친다. 이때 찻잎은 스스로 열을 내게 되는데 이런 과정에서 발효와 산화가 진행된다. 따 놓은 찻잎의 운동이 가장 왕성할 때, 그 시간을 잡아 뜨거운 열로 차의 숨을 순간적으로 죽이는 것이 녹차 맛을 최고도로 올릴 수 있는 핵심이다.

덖는 방식은 찻잎의 양과 솥의 온도에 따라 다르다. 찻잎이 뜨거운 무쇠 판 위에 머무르는 시간과 손으로 뒤집으며 고르게 숨을 죽이는 것이 일반적 제다법이다. 이 순간은 각각의 사연을 간직하고 있는 찻잎이 불기운 속에 생명의 끝단을 장식하며 순한 기운으로 전환하는 시간이다. 찻잎이 열에서 어느 정도 머물러야 적정한가와 어느 온도에서 어떻게 익는 것이 합리적인 것인가는 차를 만드는 이의 마음에서 나온다.

제다법에서 장인들마다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찻잎을 덖는 방식이다. 고온에 단 한 번 덖는 것으로 마감하느냐 아니면 여러 번 덖느냐로 나뉜다. 이렇게 각기 다르게 덖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이유는 차의 고유한 성분을 유지한 채 좋지 않은 요소를 중화시키기 위한 과정에 있다. 모든 차 맛은 첫 번째 덖음 과정에서 결정된다. 그 만큼 첫 덖음은 차 맛의 기준이다. 설익거나 너무 익으면 그 뒤 몇 번이고 덖는 과정이 아무리 엄정하고 철저하게 준수된다 해도 첫 덖음에서 생성된 맛은 변하지 않는다. 덖는 솥의 온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덖어서 숨이 죽어 있는 찻잎은 비비는 과정을 거친다. 이때 찻잎의 피막은 균열된다. 이렇듯 깨트리는 이유는 과다한 것을 내 보내고 물에 우릴 때 빨리 우러나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것은 차가 가지는 기본 속성 즉 쓴 맛이나 떫은 맛은 비비는 과정을 통해 중화된다. 이 과정은 차가 뜨거운 물을 만났을 때 색과 향이 잘 우러나도록 하는데도 있지만 맛과 향을 이파리 속으로 밀어 넣어 머금게 하는 목적도 있다.

문질러 형태를 만든 찻잎은 두터운 한지 위에 각각의 형태를 유지하도록 털어 펼친 후 다시 한지로 덮는다. 이유는 건조하기까지 먼지 등 이물질이 들어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불에 지지고 손으로 문지름을 당한 서로 다른 사연을 가진 찻잎이 하나의 닫힌 공간 속에서 균일하게 서로 어울려 하나의 맛으로 통일되는 상징적인 의미도 있다.

제다과정에서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은 건조 기술이다. 비빈 후 펼쳐 놓은 찻잎은 일정 시간이 지나 차가운 성질로 환원될 때 솥의 온도가 100도 정도에서 순간 건조시킨다. 이 과정은 수분을 5%이내가 되도록 증발시켜 보관을 용이하게 하기위한 마무리 작업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차에 맛을 가미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명차의 특성은 이 과정을 통해 방점을 찍는다.

그러나 그 이상의 건조 과정을 거치는 경우도 있다. 어느 전문가는 “찻잎이 열로 인해 격정적으로 덖임을 당했고 이로 인해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그런 열기와 혼돈을 안정시키고 차 맛을 안으로 배어들어 고요하게 하기 위해 또 다른 안정기를 주는 것이다”고 말한다. 이런 방식은 불을 만나 성질에 변화가 생긴 차의 사납고 날이 선 감성을 다스리기 위한 비법에 해당한다. 화계사에서 차를 만들었던 어떤 노승은 “마지막으로 건조한 차를 최소 30일 동안 한지에 쌓은 채 항아리에 넣어 완성을 기다렸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생잎의 독소를 제거하고 건조 후 맛을 더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 알게 한다.

나는 차를 만드는 과정을 살펴보면서 수묵화를 그리기 위한 재료 제작 과정과 매우 유사하다고 생각했다. 회화에서 재료의 개발은 혁명이다. 필묵을 장악한다는 것은 화가가 되기 위한 최소한의 기본이지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여건을 갖추었다는 점에서 완성인 셈이다. 재료의 생성은 그 만큼 절박한 이유가 있기에 가능하다. 필요한 만큼 반응한다. 재료가 물질 이상의 정신적 가치와 철학적 의미를 가지는 이유이다.

수묵화를 하는 데 필요한 재료가 종이, 붓, 먹, 벼루이다.

종이는 그림의 바탕이다. 좋은 종이는 모든 표현이 가능하도록 포용력이 있어야 한다.

한지는 닥나무 껍질로 만든다. 얇고 두께가 균일한 종이는 황촉규에서 나온 점액질이 좌우하는데 이 물질은 추운 겨울철에만 사용이 가능하다. 그래서 한지는 추운 겨울에 생산할 수밖에 없는 특성을 갖는다. 한지는 질기고 보존성이 좋지만 보풀이 많아 사용하기 어려운 단점도 있다. 그래서 후처리가 필요하다, 종이가 갖는 한계 즉 섬유사이의 빈 공간을 메워주고 보풀을 잠재우게 하는 마무리 공정 없이 서화용지로 사용하기 힘들다. 지금 한국에선 조선 고유의 제지기술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부끄러운 한국 문화의 속살이다.
먹은 형상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실체이다. 좋은 먹은 짙고 옅은 다양한 단계를 폭 넓게 표현 할 수 있게 한다.

먹은 소나무나 식물성 기름 등을 태워 생긴 그을음을 긁어모아 아교 녹인 물로 반죽하여 건조시킨 고형체이다. 〈고반여사〉에서는 “먹을 잘 쓰는 법은 質은 가벼운 것을 취하고 연기는 맑은 것을 취하며 냄새에 향기가 없고 갈아도 소리가 없는 것이라야 한다”고 좋은 먹이 지니는 조건에 대해 말하고 있다. 지금 한국에서는 공업용 카본을 이용해 만든 먹만 있을 뿐 송연묵이든 유연묵이든 만들지 못한다.

붓은 일반적으로 동물의 털로 만든다. 좋은 붓은 사용자가 의도한 대로 형상을 그리도록 탄력과 유연성이 좋아야 한다. 그리고 먹물을 함유하여 균일하게 발산 할 수 있어야 한다.

붓의 원료가 되는 털은 겨울에 잡은 동물의 표피에서 얻는다. 특히 춥고 바람이 부는 지역의 털은 영양분이 많아 보존성이 우수하며 탄력도 좋아 최고로 친다. 털은 동물마다 사용할 수 있는 부위가 다르다. 문제는 털에 함유된 지방분을 제거하는 기술이다. 이 지방은 왕겨를 태운 재로 제거한다. 기름기를 빼는 과정은 손에서 손으로 전해왔기에 장인들 마다 비법이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 한국에는 한국고유의 털로 만든 붓이 거의 없다.

벼루는 입자가 곱고 강도가 강한 인니암석이 주 원료이다. 좋은 벼루는 맑은 먹색을 얻는데 있다. 먹이 곱게 잘 갈리면서 먹물도 잘 마르지 않아야 한다.

수묵화는 흰 종이 위에 검은 먹으로 그려진 형상이다. 단순한 흑과 백의 대비와 조화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검정은 색이 없다. 그러나 스스로를 소멸 시켜 색을 잃었음에도 없는 색이 세상의 모든 것을 낳는다. 수묵화 재료는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고 운용되는 폭넓은 속성이 내재되어 있다.

차나 수묵화에서 재료를 선택하고 만드는 문제는 재료 자신이 아니라 마치 물이 본질이 변하지 않으면서 형상을 바꾸는 것처럼 원하는 의도대로 다양하게 변화하며 변용된다는 사실이다. 차와 먹은 원 재료가 가지는 응용력이 무엇보다 크며 인간이 이상으로 생각하는 정신을 표현하고 높게 고양 시킨다는 점에서 상호 연관성이 깊다. 또 자기 수양의 도구가 되는 점도, 지나치게 형식화 되었을 때 정신을 좀 먹는 결과를 낳는다는 점도 유사하다. 수양의 도구가 정신을 멍들게 하는 도구로 전도되지 않도록 경계하며 자신을 되돌아 볼 일이다. 내가 먹을 갈 때 맑은 녹찻물 몇 방울을 떨어 뜨려 정성껏 가는 이유는 먹이 가지는 정신의 고매함만은 잃고 싶지 않아서이다.


사진 : 그 자리, 86×59cm, 종이에 수묵 담채, 2016, 김호석 作

덖은 찻잎은 비비는 과정을 수행한다. 찻잎물이 스민 돗자리는 뭇 생명들에게 향을 선사한다. 나비도 벌도 그 영역을 지나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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