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팔정도(八正道) ③

여덟 가지 성스러운 수행 길’(八正道)의 첫 번째는 바르고 적절하며 온전한 견해’(正見)이다. ‘적절한 길’(中道)을 걷는 이는 특정한 하나의 판단에 빠지지 않는다는 점을 앞에서 살펴보았다. 나아가 하나의 생각에 매몰되지 않고, 자신의 생각에만 빠져 집착하지 않는 유연한 사고방식과 행동방식의 지님에 대해서도 말했다. 그렇다면, ‘바르고 적절하며 온전한 견해’(正見)란 무엇을 의미하는 말일까? 어떤 시선으로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아야 바르고 적절하며 온전한 관점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해서는 천차만별의 대답이 가능하다. 앞에서는 자동차와 보행자 사이에서 벌어지는 시선의 차이만을 살펴보았지만, 어쩌면 이와 같은 차이는 세상 사람들의 숫자만큼 존재한다고 말해야 할지 모른다.

바르고 적절하며 온전한 견해’(正見)는 불교의 사상체계에서 나온 말이기 때문에 불교적 가치를 지향하고, 또 그것을 실현시켜주는 견해가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는 말은 당연한 것으로 비친다. 그러나 불교 안에서 거론되는 견해들 중의 하나를 정견(正見)’으로 제시하는 순간, 그 자체가 이미 하나의 선택이기 때문에 그에 따른 이해나 해석이 정견인가 아닌가는 그야말로 해석하기 나름이 된다. 실제로 팔정도를 언급하고 있는 책들의 내용을 살펴보면, 역사적으로 후기불교에서나 등장하는 사상이나 개념으로써 저마다 가치 있다고 여기는 하나의 견해를 정견으로 제시하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게 발견된다. 그러므로 니까야에서 바르고 적절하며 온전한 견해’(正見)를 설명하고 있는 수많은 경전 중에서 특정한 몇몇을 택하여 근거로 삼는 태도 역시 하나의 이해요, 해석이라는 한계를 짊어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는 디가-니까야의 제22마하사띠파타나라는 이름의 대념처경(大念處經)에 서술되어 있는 여덟 가지 성스러운 수행 길’(八正道)의 설명에 따라 바르고 적절하며 온전한 견해’(正見)의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자. 지금까지의 설명대로 이 또한 바르고 적절하며 온전한 견해’(正見)를 완전하게 설명했다고 보기에는 역시 한계가 있겠지만 이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부처의 의도를 비교적 그 뜻에 가깝게 설명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으리라 판단된다. 이하에서 또 다른 바르고 적절하며 온전한 길의 일곱 가지 요소를 설명할 때에도 이 경전에 의거하여 하나의 이해의 틀을 제시하고자 한다.

▲ 그림 나은영.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바르고 적절하며 온전한 견해인가? 비구들이여, 괴로움에 대한 앎, 괴로움의 발생에 대한 앎,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앎,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방법에 대한 앎, 이것을 바르고 적절하며 온전한 견해라고 한다.”

이에 따르면, ‘바르고 적절하며 온전한 견해’(正見)의 파악은 우리들이 일상에서 겪게 되는 괴로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 일상에서 겪는 괴로움의 정체를 올바로 파악하는 일로부터 바르고 적절하며 온전한 견해’(正見)를 이루는 길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 길은 다시 그와 같은 괴로움이 어떻게 발생하는지를 추적하고, 괴로움의 소멸이 가능한지를 타진하며, 마지막으로 괴로움의 소멸이 실현될 수 있는 길을 묻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르고 적절하며 온전한 견해’(正見)에서의 올바름이란 일상의 괴로움을 인지하는 데에서 시작하고, ‘적절함이란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발생 원인을 제대로 밝히는 데에서 이루어지며, ‘온전함이란 그것의 소멸을 달성하는 길에 대한 확신으로 이어지는 대답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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