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절집의 빛⑪ 안동 봉정사 지조암 칠성전벽화

칠성전 향좌측 벽화. 남극노인과 월궁천자, 28수 별자리 중 북방7수, 남방7수를 인격화해서 그렸다.
칠성각,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전각
봉정사 칠성전벽화, 국내유일 칠성 벽화
6칸 벽면에 45체의 도교적 일월성신
동양의 천문세계관 고스란히 담아

한민족 별자리신앙의 모태는 칠성신앙

별자리를 성수(星宿)라 한다. 별이 밤하늘에 유숙하는 곳으로 본 것이다. 별들이 밤하늘에 잠을 잔다. 매력적인 생각이다. 한자 ‘宿’자는 ‘잘 숙’으로도 읽기도 하고, ‘별 수’로도 읽는다. 성수신앙, 곧 별자리신앙은 태고로부터 전승해온 전통 민간신앙이자 토착신앙이다. 일월성신과 천지신명에 세상 만유의 정령이 깃들어 있다고 보았다.

남도민요 중에서 〈성주풀이〉가 있다. 성주풀이에서 묻고 답하는 대목이 있다. “성주님 본향이 어디메뇨? 경상도 안동 땅의 제비원이 본이라.” 성주는 집을 짓고, 또 집을 지켜주는 수호신이다. 집을 짓는 재목으로서 소나무를 상징하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민간신앙에서 수복강녕을 가져다주는 무속신이다. 민요에서 성주의 근본을 안동 땅 제비원에 있다고 천명하고 있어 흥미를 끈다. 안동 땅에 제비원 석불이 있다.

그런데 동양적 세계관에서 하늘과 땅은 서로 감응한다. ‘천지감응(天地感應)’이라 부른다. 하늘의 별은 인간의 탄생과 죽음, 수명, 길흉을 관장한다고 보았다. 해와 달과 별이 일월성신이다. 하늘의 별들이 인간의 삶 속에 깊숙이 매개한다. 해와 달, 목화토금수의 별들은 음양 오행의 패러다임으로 작동하고, 심지어 오늘날에도 일월화수목금토의 일주일 주기로 삶의 일상을 담당한다. 특히 남두육성과 삼태성, 북두칠성은 인간의 탄생과 수명, 길흉화복을 주관한다고 보았다. 전통 별자리신앙의 모태는 일월성신, 특히 북두칠성에 강력히 닿아 있다. 중국의 도교가 북극성 중심이라면, 한민족은 북두칠성에 대한 칠성신앙이다.

고구려 벽화고분 덕화리 고분 1, 2호에는 팔각벽면 한 면 전체에 가득 차도록 북두칠성을 그려 둬서 칠성신앙의 뿌리 깊은 내력과 비중을 짐작케 한다. 전통민속의 칠성신은 그 북두칠성을 인격화 한 민간신앙이다. 고구려 고분벽화에는 칠성신앙에다 중국으로부터 영향 받은 도교적 요소가 결합해서 다양한 신들의 향연과 천문 우주를 펼쳐 두었다. 고구려의 도교적 문화요소들은 고려의 불교국가에 이르러 치성광여래(熾盛光如來)로 변신 한다. 도교와 불교의 습합(習合)이 이뤄진 것이다.

칠성전 향우측 벽화. 자미대제와 일궁천자, 삼태육성, 그리고 28수중 동방7수, 서방7수 등을 그렸다.
치성광여래는 북극성의 여래화

치성광여래는 북극성의 불교적 여래화의 산물이다. 북극성의 도교적 의인화는 자미대제(紫微大帝)다. 동양의 별자리는 3원 28수의 체계에 따른다. 자미원은 북극 근처의 세 영역 중의 하나다. 북극성은 자미원 영역의 중심, 곧 천체의 중심에서 모든 별을 통솔한다. 그래서 자미대제다. 천문의 북극성이 도교에서 의인화 하여 자미대제가 되고, 자미대제는 다시 불교에 수용되면서 치성광여래로 승화된다.

‘치성광’이라는 말은 맹렬히 타오르는 불빛 같이 밝은 빛이라는 의미다. 인도에서는 묘견보살로 불리운다. 북극성 별 하나를 두고 인도, 중국, 한국 등에서 각각 보살, 대제, 여래로 섬기고 있는 셈이니 흥미로운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치성광여래를 주존불로 하고 밤하늘의 별자리를 의인화해서 그린 천문도적인 14세기 고려불화가 〈치성광여래왕림도〉다. 미국 보스턴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화면의 중심에 치성광여래께서 소가 끄는 수레를 타고 있고, 그 주변에 해와 달, 북두칠성, 12궁, 스물여덟 분의 보살로 신격화한 28수의 별자리 등을 이름표 갖춰 배열한 천문성수도(天文星宿圖) 불화다. 불화 속에 갤럭시가 펼쳐져 있다. 이 치성광여래왕림도가 조선시대 중후기에 대량생산의 양상을 뚜렷이 보인 칠성탱의 단초로 작용했다.

칠성탱(七星幀)의 주존불은 금륜을 손에 쥔 치성광여래다. 좌우에 해와 달이 각각 일광보살과 월광보살로 협시한다. 약사여래삼존불과 연동한 파격적인 도상이다. 그만큼 칠성신앙이 민중 속으로 깊숙이 파고들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 주위에 북두칠성을 상징하는 칠성여래와 28수 별자리가 관복을 입은 성군으로 등장한다. 칠성탱을 봉안한 전각이 보통 칠성각, 또는 삼성각이다. 칠성각은 우리나라 사찰에서만 나타나는 고유한 현상이다. 칠성도는 거의 대부분이 천에 그린 탱화다. 안양 삼막사 칠보전에는 유일무이하게 화강암 암벽에 새긴 치성광여래 마애삼존불이 현존한다. 그 외는 모두 탱화라 보면 된다. 그런데 국내에 칠성도 벽화가 존재해서 주목을 끈다. 성주풀이의 땅 안동에 국내유일의 칠성벽화가 있다. 안동 봉정사 지조암 칠성전 좌우벽면에 그려져 있다.

칠성전은 민간신앙, 도교, 불교의 습합

보통은 칠성각인데 봉정사 지조암은 ‘칠성전’이다. 당호의 존격을 최상으로 높여 두었다. 칠성각은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삼막사의 경우 ‘칠보전’, 수원 용주사에선 ‘시방칠등각(十方七登閣)’, 통도사 안양암에선 ‘북극전’으로 부른다. 나반존자의 독성과 산신을 함께 봉안할 때는 ‘삼성각’으로도 부른다. 만해 한용운은 〈조선불교유신론〉에서 칠성신앙을 미신이라면서 ‘논할 것도 없이 가소로운 것’이라 하였는데, 실제로는 한국불교의 포용력과 민간신앙의 흡수에 의해 한국 사찰가람의 필수적 요소가 돼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봉정사 칠성전의 벽화는 대단히 도교적이다. 벽화만을 떼놓고 보면 완전한 도교적 도상이다. 보통 칠성도는 같은 별자리를 상징하는 불교와 도교의 위계가 서로 대응하는 구도로 그린다. 상단에는 치성광여래께서 칠성여래를 거느리고, 하단에서는 자미대제께서 칠원성군(七元星君)을 거느린 형태다. 불교와 도교의 세계를 한 화면에 담아 보여주는 방식이다. 하지만 봉정사 칠성전의 벽화는 도교적 세계관에 집중해서 대단히 독특한 특색을 보이고 있다. 벽화는 회칠로 마감한 바탕의 좌우 벽면에 조성하였다.

한 벽면에 세 칸씩, 총 여섯 칸의 화폭에 6폭 병풍처럼 전개했다. 벽화는 하늘의 천군세계의 도석인물화로 여길 정도로 모든 별자리의 이름을 밝혀 두어 민속학적 가치를 더 높인다. 별자리 이름은 머리에 쓴 관모에 둥근 원을 마련해서 기입하거나, 인물 옆에 붉은 글씨로 써두기도 했다. 별자리 성수들은 한결같이 도교적 인물인 진군(眞君), 천자(天子) 등으로 인격화 했다. 좌우대칭의 구도로 배치하였고, 벽화에 등장하는 인원은 총 45분이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도가적 관복복식을 갖추었다. 등장무대는 신령한 구름이 뭉개 뭉개 피어오르는 하늘세계다.

봉정사 지조암 칠성전 전경.
북극성, 해와달, 삼태육성, 28수 담아

향우측의 중심인물은 북극성을 인격화한 자미대제다. ‘북극진군(北極眞君)’이라는 별호도 덧붙였다. 중심인물을 더 크게 그리는 대상비례의 법칙을 적용하고 있다. 흰 수염이 길게 바람결을 타고 있고, 풍모에 위엄을 갖췄다. 같은 화면에 삼태육성(三台六星)과 일궁천자(日宮天子)를 배치했다. 일궁천자는 붉은 해를 그릇에 담아 어깨 위로 떠받치고 있어 태양의 의인화임을 손쉽게 알 수 있다. 삼태육성은 세 개의 별로 보여 삼태성이라고도 부른다. 하지만 각 별은 두 개씩 이뤄져 있다. 벽화에서도 두 사람씩 짝지어 시립해 있다. 관모에 적어 둔 존명에 의해 삼태육성은 허정(虛靜), 곡생(曲生), 육순(六淳)임을 알 수 있다. 자미대제 좌우의 화면에는 별자리 28수 중 제1궁과 제3궁의 별자리를 인격화해서 배치했다. 1궁엔 각, 항, 저 등의 동쪽하늘 일곱 별자리를, 3궁엔 규, 위, 묘 등의 서쪽하늘의 일곱 별자리를 그렸다. 채색에 사용한 색채는 오방색인데, 청색의 채색이 수채화 물감의 덧질 터치기법과 유사해서 채색의 근현대성을 짐작하게 한다.

향좌측의 중심인물은 남극노인(南極老人)이다. 인간의 수명을 관장하고 무병장수를 상징해서 수노인(壽老人)으로도 부른다. 남극에 가까운 남쪽 지평선에서 관측할 수 있어 남극노인이다. 북극성의 자미대제에 대비해서 배치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관측할 수 있는 곳은 제주도 서귀포 일대 뿐이다.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왕실의 무병장수와 국태민안을 위해 제주도로 천문관을 보내 수노인성을 관측하고 올 것을 하명하는 대목을 간혹 접할 수 있다.

그런데 수노인은 때론 도가의 교조인 노자로 여기기도 한다. 수노인이 현생에 나타난 화신이 노자라 보는 것이다. 벽화에도 남극노인과 태상노군(太上老君)의 방제를 함께 병행해서 써놓았다. 동일인물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태상노군은 노자를 신격화한 도교의 존명이다. 태상노군 곁엔 붉은 그릇에 흰색 보름달을 어깨 위로 받쳐 든 월궁천자(月宮天子)가 협시하고 있다. 태상노군 좌우의 벽면엔 28수 별자리의 제2궁과 제4궁을 그려 두었다. 2궁엔 두, 우, 여 등 북방7수를, 4궁엔 정, 귀, 류 등 남방7수를 베풀었다. 벽화를 통해 28수제대성군(二十八宿諸大星君)을 한 눈에 만날 수 있는 매우 놀라운 벽화다.

봉정사 칠성전 벽화는 큰 규격을 갖춘 칠성탱에서 도교적 요소들만으로 재구성한 전대미문의 도상을 구현하고 있다. 북극성과 남극노인성, 해와 달, 삼태육성, 28수 별자리들이 결집한 동양의 천문세계관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벽화에 코스모스적 우주를 담고 있다. 더욱이 모든 일월성신을 인격화한 까닭에 사람의 무병장수와 복록을 기원하는 갸륵한 마음이 별처럼 빛난다. 별은 빛이 있어 빛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동경과 간절한 마음이 있어 빛난다. 우주만유에 일심(一心)이 있어 해와 달과 별, 여래, 사람이 천지간에 빛나는 법이다. 마음 밖에 무엇이 빛나는가? 벽화 속 일월성신들에 사람의 마음이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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