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조 前 금강대 총장

참불선원 불교인문학 강좌한국불교철학의 세계화

1700년이라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한국불교. 불세출의 위인들과 뛰어난 문화예술이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은 불교를 제외하고는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다. 하지만 정작 우리는 우리의 것을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문화사대주의에 빠져 우리의 귀중한 것을 잊은 채 다른 나라의 것만 좇고 있진 않을까? 한국불교철학의 시원은 누구이고, 한국불교를 세계만방에 알리려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할까? 정병조 금강대 총장은 516일 참불선원 인문학 대강좌에서 한국불교철학의 세계화를 주제로 강연했다. 총장은 한국불교철학에 대한 자긍심을 갖는 한편 국수주의에 빠져선 안 된다. 시대정신을 초월하면서도 공감대를 이룰 수 있는 가치를 발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리=윤호섭 기자

▲ 정병조 박사는… 1967년부터 동국대에서 인도철학을 전공한 뒤 영남대 대학원에서 철학석사를, 동국대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한국불교연구원 이사·동국대 인문학부 교수·한국철학회 이사·한국종교학회 이사·동국대 부총장·한국불교연구원 이사장·불교학연구회장·제4대 금강대 총장 등을 역임했다. 〈무엇이 그들을 위대하게 만들었을까〉 〈왕초보 화엄경 박사 되다〉 〈정병조의 불교강좌〉 등 30여권의 책을 저술했다.
1700년 한국불교 역사에도 불구
우리의 것경시하는 세태로
한국철학 가치 세계화 못 이뤄
불교 제대로 알고 자긍심 갖자

한국철학의 시원 원광
오늘은 한국불교철학의 세계화를 주제로 얘기하려 합니다. 이를 위해 한국철학의 시원은 누구인지 개인적인 견해를 밝히고, 우리가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한국철학의 시원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요? 신라·고려시대는 불교, 조선시대는 유교가 중심이었던 역사를 감안할 때 불교와 유교가 핵심이라는 건 이미 나와 있는 결론입니다. 이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여러 가지 의견이 있겠지만 저는 신라 원광법사(555~638)를 한국철학의 시원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학교 다닐 때 외우기 싫으셨을 텐데요. ‘세속오계잘 알고 계실 겁니다. 그런데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한번 잘 생각해보세요.

당시 임금이 진흥왕이었습니다. 신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군사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약했습니다. 결국 수나라의 힘을 빌려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친분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진흥왕은 수나라에서 10년간 유학하며 황제와 친분을 쌓은 원광법사를 찾아갔습니다. 진흥왕이 원광법사에게 말했습니다.

스님, 저를 살려달라는 게 아닙니다. 나라가 살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스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수나라와 동맹관계를 맺는 외교서신을 써주십시오.”

즉 강대국의 힘을 빌려 다른 나라를 멸하자는 것입니다. 그러자 원광법사가 말했습니다.

내가 살기 위해 남을 해치는 일은 출가사문의 도리가 아닙니다. 허나 제가 대왕의 땅에서 대왕의 초목으로 연명하고 있으니 어찌 그 명을 어길 수 있겠습니까.”

전자는 원론적인 출가사문의 입장을 얘기한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나라 없이 불교 또한 있을 수 없기 때문에 결국 도움을 줬습니다. 이 이율배반을 어떻게 해석해야 되겠습니까? 그래서 추후 원광법사가 세속오계를 설한 것도 이런 의도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귀산·추항이라는 두 화랑이 원광법사를 찾아가 계명을 청하고, 세속오계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사군이충·사친이효·교우이신·임전무퇴는 다 이해했는데 살생유택이 무엇인지 이해되지 않아 물었습니다.

스님이 말했습니다. “산목숨을 가려 죽여야 한다. 첫째는 택시(擇時). 시간을 가려라. 아무리 미물일지라도 산란철에는 죽여선 안 된다. 한 달에 5번 있는 재일에도 안 된다. 둘째는 택물(擇物). 종류를 가려라. 사람이 짐승을 죽이는 건 인간을 해치기 때문이거나 잡아먹기 위해서일 때여야 한다. 어린 것이나 작은 것은 죽여도 먹을 수 없고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도 아니기에 안 된다. 또한 가축도 죽여선 안 된다.”

재일을 피하라고 한 것은 불가에서 사천왕이 인간을 점검하는 날이기 때문이고, 가축을 죽이지 말라고 한 것은 농경사회인 시대현실을 그만큼 반영한 것입니다. 이처럼 원광이야말로 한국철학의 시원으로 봐도 무리가 없습니다.

원광과 원효·의상, 그리고 자장
원광법사의 뒤를 이은 한국철학의 대가를 알아볼까요. 신라불교를 중심으로 봤을 때 원광법사와 원효(617~686)·의상(625~702) 사이에 간격이 조금 깁니다. 원광법사는 굉장히 장수하셨던 분인데 연대기를 따져봐도 원효·의상이 원광법사에게 법을 배웠을 가능성은 극히 적습니다. 그렇다면 이를 이어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누가 했을까요? 직접적인 증거는 없지만 저는 통도사 창건주인 자장율사(590~658)라고 생각합니다. 이 어른은 승통을 지낸 분입니다.

후대에 전해지는 기록에 따르면 자장은 엄청난 고승임에도 그 마지막 모습이 조금 속 좁게 그려져 있습니다. 그는 승통에서 물러나 문수보살의 계시로 절을 짓고, 보살을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보잘 것 없는 늙은이의 모습으로 찾아온 보살을 알아보지 못하자, 보살은 자장의 아상(我相)을 지적하며 서쪽 하늘로 날아갔다고 합니다. 자장이 기겁해 가사장삼을 수하고 쫓아갔지만 다시 만날 수 없었고, 그렇게 입적했다는 기록이 전합니다. 하지만 이 부분은 고승의 죽음치고 석연치 않은 점이 많기 때문에 불교학자들은 후세의 누군가에 의해 다르게 기록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원효와 의상에게 법을 가르칠만한 인물은 자장을 제외하고는 찾기 어렵습니다.

그 다음으로 원효와 의상이라는 불세출의 영웅이 한국불교계에 등장합니다. 원효는 여러 가지 면에서 위대한 분임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우선 한 사람의 저술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엄청난 양의 저술을 남겼습니다. 가짓수로 25가지, 권수로는 200권 가까이 썼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하나가 정말 금과옥조같이 아름답습니다. 또한 17관등제에서 육두품으로 태어난 출신 탓에 대중적이었습니다. 출가해서 계급사회를 타파하고 싶었을 겁니다. 부처님께서 사성(四姓, 카스트) 타파를 부르짖었듯이 인간의 고하가 태어날 때 신분으로 결정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았겠죠. 게다가 원효는 당시 신라불교를 귀족불교라고 신랄히 비판했습니다. 귀족불교는 귀족이 믿는 불교를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교만한 자에게는 겸손을 가르치고, 가난한 이에게는 왕권에 대한 적개심을 없애준 것이 바로 불교였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정부에 대한 대중의 불평불만을 해소해준 일등공신인 겁니다. 이게 지나치다보니 당시 불교가 운명론으로 흐릅니다.

원효는 이걸 보고 불교를 왜곡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대중불교, 귀일심원 요익중생(歸一心源 饒益衆生)’을 강조한 겁니다. 모든 생명이 한마음에서 나왔고, 그 한마음 깨달으면 부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이들에게 이익 되는 삶을 살았는가를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반면 의상은 원효와 달리 진골 출신이었습니다. 원효와 중국 유학을 가다가 원효가 해골물을 마시고 돌아갈 때 의상은 홀로 쓸쓸히 장안을 향해 걸었습니다. 의상은 중국 지상사를 찾아가 지엄 스님에게 화엄학을 수학했습니다. 그리고 그 유명한 화엄일승법계도를 완성합니다.

의상이 대단한 것은 문무왕에게 던진 말 때문입니다. 당시 문무왕은 삼국통일 후 민심을 사로잡지 못했습니다. 잘못된 인사정책과 경주에 축성을 하며 민중의 불만은 커져만 갔습니다. 이때 의상이 문무왕을 찾아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대왕이시여, 대왕께서 덕이 높으시면 땅 위에 금을 그어놓고 넘지 말라 하시면 개미 한 마리 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덕이 없다면 아무리 성을 쌓아도 하루 저녁에 무너질 것입니다. 대왕은 덕을 쌓으시겠습니까, 성을 쌓으시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문무왕은 정신을 차려 축성을 멈추고 민생을 살피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 다음부터 문무왕은 음력 초하루가 되면 의상이 있는 곳을 찾아다녔습니다. 이 같은 우리의 위인들은 진심으로 존경해야 할 인물입니다.

자긍심 갖되 국수주의 버려야
우리는 한국의 위대한 전통에 대해 제대로 배워본 적도, 가르쳐본 적도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떠셨나요. 저는 어렸을 때 읽을 수 있는 책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나오는 건 에디슨이나 퀴리부인 같은 외국의 위인들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책은 강감찬이나 을지문덕 등과 같은 무인이 많았기에, 어린 마음에 군인이 제일 위대한 줄 알았습니다. 원효나 의상을 알 리 없었죠. ‘해골물 일화외에는 말입니다. 심지어 국민학교 때 썼던 책받침에도 모나리자와 로뎅 같은 외국의 문화뿐이었습니다.

지금 와서는 불교가 얼마나 위대한지 어렸을 때 몰랐던 것이 속상합니다. 선생님이 한마디라도 해줬으면 제 인생이 달라질 수도 있었을 테니까요. 귀한 걸 귀한 줄 모르고 컸습니다. 우리의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을 보고 독일 철학자 칼 야스퍼스는 이 세상에서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미소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렇기에 한국철학의 뼈대를 이룬 위의 인물들이 얼마나 위대한지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이제는 한국불교철학의 세계화를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다만 꼭 염두에 둬야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위대한 사상은 시대정신을 초월한다는 겁니다. 동시에 시대정신의 공감을 형성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설명했던 조사들을 비롯한 철학자들이 주장했던 건 분명히 시대정신을 초월하는 신선한 것이었고, 그 시대 지식인들을 매료시키는 공감대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걸 찾아야 합니다.

또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데 이게 세계 제일이다라고 외치는 국수주의적인 사고방식을 타파해야 합니다. 10년 전만 해도 TV를 보면 마애불을 발견했는데 동양 최대 규모라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그 마애불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에 대한 깊은 내용 등은 뒤로 밀려났습니다.

듣기 불편하실 수 있겠지만 세계화를 위해서는 영어를 반드시 해야 합니다. 의상법사가 중국에 유학을 가 법문을 하고, 그걸 듣기 위해 대중이 구름같이 몰려들었다고 합니다. 그때 의상법사가 어느 언어로 법문을 했겠습니까? 우리나라 큰스님들의 선법이나 그 경지가 세계적으로도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건 영어로 풀어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요즘 말로 그들만의 리그인 겁니다. 우리끼리만 1등인 것이죠. 그래도 요즘 젊은 스님들은 영어를 잘하는 분이 많아져 다행입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영어로 한국불교를 읽고 말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합니다.

아울러 여기에 반드시 뒤따라야 하는 건 불자들의 관심과 호응입니다. 매우 송구스럽지만 한국불교를 폄하하는 가장 모욕적인 말이 치마불교입니다.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마세요. 왜 그럴까요? 보살님들이 절에 가서 절하고 등 달고, 그것으로 불자의 도리를 다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선 안 됩니다.

불교는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자는 운동입니다. 네가 부처고, 네 마음 깨치면 그것이 성불입니다. 그러면 여기에 남성이고 여성이고, 노인이고 젊은이고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불교를 제대로 알고, 제대로 생활 속에 실현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제는 우리가 이런 문제를 극복해야 합니다. 불자로서의 자긍심을 바로 세워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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