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가상담사 가섭·승천 스님에게 듣다

교육원 2월 19일 상담전화 개설… 1일 50여 건 이상 쇄도
취업좌절 20대·이웃종교인·장애인 등 사연 ‘각양각색’
개종 상담건 가장 조심… “종교, 절대적인건 아니기 때문”

 

 

 

 

▲ 조계종 출가 상담사로 활동하는 가섭 스님<사진 왼쪽>과 승천 스님<사진 오른쪽>. 출가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은 사람들은 이웃종교인인 천주교 신부부터 20대 청년, 주부 등 다양하다.

 

“저는 천주교 신부입니다. 그런데 성모마리아상 앞에 서면 자꾸 마음속으로 ‘관세음보살’이 외져요. 어떡하면 좋을까요?” 이웃종교 성직자에게서 걸려온 전화에 순간 식은땀을 흘렸다. 애써 평정심을 찾고 조심스럽게 다시 되묻는다.

“언제부터 그러셨어요? 마음에 느끼시는 바를 자세히 말씀해주세요.”

5~6차례 걸려온 전화에서 몇 번은 술의 힘을 빌린 듯 했으나, 출가 상담사 가섭 스님은 “결코 장난으로 한 말은 아니었다”고 한다.

조계종 교육원이 지난 2월 19일 ‘출가상담 전화’를 신설한 후 3달여, 하루 50여 건 이상 전화가 쇄도할 만큼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녹록지 않은 취업현실로 좌절을 느낀 20대, 기존 종교에 회의를 느낀 이웃종교인, 여생을 수행자로서 마감하고 싶단 중년까지. 각자가 출가를 고민하게 된 사연은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했다.

상담사 스님들이 가장 곤혹스러웠던 경우는 이웃종교 혹은 이웃종단에서 출가상담 전화를 걸어올 때다. 종교란 어느 것이 옳다 그르다 절대적으로 평가할 수 없는 것이기에 개종(改宗)하려는 사람들에게 조언하는 것이 더욱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출가 상담사 승천 스님은 부모님의 영향으로 태어나면서부터 특정종교의 신자가 되어야 했던 20대 여성 A씨의 사연을 회고하며 “가장 안타까운 상담 중 하나였다”고 말했다.

“가족들이 모두 세대 간 전승이 의무와 다름없는 특정종교를 믿고 있었어요. 그래서 A씨도 부모님을 따라 어려서부터 그 종교를 믿었는데, 성인이 되면서 점점 회의감을 느꼈던 거죠. 그러다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으로 호주 유학을 떠나 그곳에서 만난 남성과 결혼까지 했지만, 이혼의 아픔을 겪게 돼요.”

그 후 A씨는 친정에 들어가 살게 되는데, 딸아이에게까지 종교를 강요하는 가족들 모습에서 환멸을 느꼈다고 한다. 그러다 틱낫한 스님의 책 <화>를 접하고 불교에 관심을 갖게 돼 인터넷ㆍ서적 등을 통해 불교 공부에 깊이 빠져들었다.

“자신이 출가 한다면 딸을 맡아줄 보육시설이 불교계에 있는지 물었어요. ‘아직은 그런 시설이 없다’고 말하니 너무 안타까워했어요. 그래서 ‘자라는 아이에게 지금은 엄마의 존재가 필요할 시기’라고 당부하며 딸과 함께 이곳저곳 사찰을 찾아가 스님들과 차담도 나누고, 절에 대해 직접 느껴보라고 권유했습니다. A씨는 ‘알겠다’며 전화를 끊긴 했지만, 제도가 갖춰져 있지 않아 도와줄 수 없는 현실에 저도 속이 많이 상했습니다.”

이처럼 출가 상담사 스님들은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줄 수 없는 사연들을 직접 들으며, 불교계가 앞으로 해 나가야할 과제를 발견하기도 한다.

가섭 스님은 30대 중반 남성 B씨와 통화를 마친 후 ‘장애인 특수출가’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지체장애를 앓고 있는 B씨는 “스님이 돼서 장애인을 위한 포교를 펼치고 싶다”며 상담을 요청해왔다.  

“현행은 장애인 출가를 불허하고 있는데, 장애인 특수출가 제도를 마련해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B씨는 절실한 신심으로 출가에 대한 뚜렷한 의지를 갖고 있었어요. 그렇지 않아도 장애인 포교가 미약한 불교계 현실에서 B씨와 같은 뜻을 가진 장애인들을 받아들인다면, 불교 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가섭 스님은 “언젠가 장애인도 출가할 수 있는 길이 열리면 꼭 연락드리겠다”며 B씨의 연락처를 수첩에 메모해두었다.

이웃종교 성직자 “성모상 앞에서 자꾸 ‘관세음보살’이 외져요”
어느 20대 청년 “삶이 평온해지는 길을 스스로 찾고 싶습니다”

 

 

그런가하면 20대 청년들의 상담 요청도 줄을 이었다. 출가에 대한 가벼운 호기심으로 걸려온 전화가 대부분이었지만, 팍팍한 삶의 출구를 찾고자 출가를 고민하는 청년들도 많았다.

“고등학교를 중퇴했어요. 부모님도 안 계셔서 하루에 아르바이트를 3개 이상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너무 힘들게만 살아왔는데, 이제는 저 스스로 평온해지는 길을 찾고 싶어요.”

조금은 긴장한 듯 머뭇거리던 20대 청년 C씨는 ‘괜찮다’며 다독이는 가섭 스님에게 불우했던 어린 시절 사연을 털어놓았다. 얼굴을 마주하지 않았지만 진심을 통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얼마나 안타까웠는지 C씨의 사연을 전하는 가섭 스님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원래 불교적 정서를 가지고 있는 청년이었어요. 전화 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섣불리 출가를 권유하지 않지만, C씨에게는 꼭 출가가 아니더라도 삶의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길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직접 만나고 싶었지만 부담스러워할까 그만두었습니다. ‘출가를 위해선 검정고시를 봐야한다’는 제 당부에 C씨는 ‘마음정리를 마친 후 검정고시에 응하겠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승천 스님에게는 ‘외상 후 스트레스’로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20대 남성 D씨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몇 해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화재사고의 피해자였다.        

“D씨는 바로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옆에서 함께 웃고 있던 사람들이 한 순간 죽어간 것을 보고 엄청난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어요. 현재는 많이 나아진 상태지만, 과거엔 불안장애ㆍ공황장애까지 함께 찾아와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았어요. 그런데 D씨는 마음챙김수행을 하며 스스로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불교적 수행법으로 아픔을 극복하며 출가를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현행 종법상 정신질환자의 출가는 금지된다. 승천 스님은 D씨에게 차마 이 말을 하지 못해 “여건이 나아지면 꼭 도와드리겠다. 꾸준히 치료해 하루빨리 쾌유하길 바란다”며 에둘러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고 애석해했다.

“전화하는 모든 사람들이 저를 믿고 아픔을 털어놓는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할 수 없는 얘기들이 있잖아요. 울고 웃으며 얘기를 나누다보면 항상 마지막에는 서로 ‘감사합니다’라며 웃으면서 끊어요. 전화를 걸어주는 모든 분들이 출가를 하든 안하든 자신이 정말로 행복한 길을 찾아가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오늘도 가섭ㆍ승천 스님은 머리맡에 ‘상담 전화기’를 두고 잠든다. 24시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순 없지만, 출가를 고민하는 이들이 진정으로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은 한시도 쉬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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