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없는 베풂이 진정한 보시
지진 성금보낸 할머니께 배워
진실한 자비행에 박수 보내야

미래의 부처님은 미륵불이라고 한다. 사랑을 뜻하는 인도 고어인 빠알리어 메따(metta)와 마이뜨레야(maitreya)의 중국어 번역을 우리말로 발음하는 것이다.

사랑이라는 말은 석가모니부처님(샤카무니)의 전생수행자 시절의 존재를 부르는 다른 이름인 보살(bodhisatta)이었을 때 깨달음의 여정에서 수행한 내용 가운데 하나를 가리킨다.

보살은 네 가지 한량없는 마음(四無量心)이라고 해서 사랑함(, metta),연민함(, karuna),기뻐함(, mud ita),평온함(, upeckkha)을 실천해야 수행을 완성할 수 있다. 그 가운데 사랑함과 연민함의 한자어를 합쳐서 우리가 자비라고 부르며 불교의 대표적인 용어 가운데 하나로 보고 있다.

자비의 짝은 지혜(智慧, panna). 자비 없는 지혜 없고, 지혜 없는 자비는 가능하지 않다. 그래서 깨달은 분, 아는 분이라는 뜻을 나타내는 부처님 가운데 미래의 부처님인 미륵부처님의 이름이 메따 또는 마이뜨레야이고 우리 발음으로 미륵인 것은 뜻이 깊다.

온전히 우리말로 옮기면 사랑하는 이가 바로 미륵부처님인 것이다. 조금 한자어를 넣어 쓴다면 자비로운 이가 미륵부처님인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웃종교이며 유일신을 믿는 그리스도교의 구세주를 메시아(messiah)’라고 하는데 역시 사랑의 신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불교의 미래불이나 그리스도교의 미래 구세주가 모두 자비와 사랑을 특기로 하는 것은 어떤 뜻일까?

미래의 구세주 아니라 지도자는 다른 존재, 다른 이들을 자기와 자기 씨족·국가처럼 따뜻하게 여기고 받아들이며 배려하는 덕목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의 부처님은 대승의 <법화경>에 의하면 부처님의 지견을 열어 보여 깨달아 들게(佛之知見開示悟入)’하려고 이 세상에 오신다고 하였다.

부처님의 지견은 모든 존재가 나요, 내 것이라고 할만 한 어떤 알갱이도 없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니 나도 없는데 그 반대라고 오해하는 너 또는 다른 이가 있을 수 없다.

너 또는 다른 이가 없다는 것을 우리네 민초 또는 중생들의 정서언어로 이해한다면 무슨 뜻일까?

바로 너, 너희가 아닌 우리가 되는 것이다. 이런 사상이 들어있는 우리나라에서만 쓰이고 있는 말이 다른 종교(other religion)’가 아니라 이웃종교(neighbor religion)’라는 말이다. 세계 종교인들이 부러워하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 불교에서는 이보다 더 뛰어난 생각이 있다. 바로 어떤 관계가 있어야만 사랑하는 조건적 사랑이 아니라 아무런 관계나 이유나 이득이 없이도 사랑하는 자비 즉 무연자비(無緣慈悲)를 가장 큰 사랑으로 여기는 사상이다.

그런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바로 나누고 베푸에 있어서 아무 계산 없이 베푸는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이다.

사랑하거나, 관계가 있거나 이득을 위해서 하는 베풂과 나눔이 아닌 나눔을 했다는 데 이견이 있다는 소리가 들린다.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람들이 나눔을 실천한 자신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준 당사자들의 나라라는데 이런 저런 생각이 있는 모양이다.

설사 그런 생각이 조금 있다고 할지라도 다른 이들도 아니고 직접 말 못할 고통을 겪은 그들이 이른바 종교인들도 하기 쉽지 않은 사랑을 베풀었는데 무슨 다른 소리를 할 일이 아니다.

더구나 그런 나쁜 일을 한 것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민간인들이 아니라 그 당시의 지도자나 국가가 한 것이 아닌가? 군대 성피해자(위안부) 할머니들이 일본 구마모토 지진 위로성금을 보냈다고 한다. 우리들이 부끄러워하고 따라서 실천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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