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절집의 빛⑨ 청도 운문사 처진 소나무

운문사 처진 소나무 안에서 바라본 모습. 외부의 부드러운 수형과는 달리 내부 모습은 대단히 웅혼하고 역동적이다.
소나무 막걸리 공양은 세계적 사례
50여 학인스님들이 염송하며 공양헌공
소나무 밑은 강의실이고, 배움의 공간
낮춤의 겸손 일깨우는 수행자의 큰스승

소나무 민족, 소나무 문화
우리민족은 소나무 민족이라 해도 지나침이 없다. 소나무 가지를 엮은 금줄로 신성한 생명이 세상에 태어남을 알리고, 소나무로 지은 집에서 솔가지로 불을 지펴 밥을 지어 먹고 산다. 죽어서는 소나무로 만든 관에 들어가 솔숲이 있는 산에 묻힌다. 삶과 문화에 소나무 유전자가 깊숙이 유전하고 있다. 2006년 문화체육관광부는 우리민족이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공간적ㆍ시간적 동질감을 바탕으로 형성되어온 문화 중에서 대표성을 가진 100가지 상징을 뽑아 〈100대 민족문화상징>을 발표했다. 식물 중에서는 정자나무와 함께 소나무가 응당 꼽혔다. 애국가에서는 남산 위의 저 소나무를 민족의 기상으로 받아들인다. 지난해 한 정당의 이름 공모에는 〈소나무당>이라는 당명이 막판 최종심사까지 오른 적이 있으니, 과히 ‘소나무 문화’의 나라라고 할만하다. 그런 나라이기에 천연기념물 소나무에 대한 예우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파격적이다. 나무에게 장관급 벼슬을 내리고(정이품송), 호적에 이름을 올려 전 재산을 물려주기도 한다(석송령). 소나무에 대한 기념비적인 예우다.

2014년 현재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자연유산은 총 455건 정도다. 이 중 소나무와 관련된 천연기념물은 곰솔, 백송을 포함해서 총 42건에 이른다(괴산의 왕소나무 포함). 그 중 처진 소나무는 네 그루다. 울진 행곡리 처진 소나무, 포천 직두리 부부송, 청도 매전면의 처진 소나무, 그리고 청도 운문사의 처진 소나무가 그것이다. 운문사의 처진 소나무는 그 수형에서뿐만이 아니라 사찰내의 종교적 상징, 생명에 대한 특별한 행사 등으로 인하여 각별한 주목을 받는다.

막걸리와 물을 일대일로 희석하여 막걸리 공양을 올리는 학인스님들.
500여년 동안 완성한 불국토의 건축
운문사 처진 소나무를 외부에서 보면 초가지붕의 곡선처럼 부드럽고 아늑해 보인다. 그런데 안으로 들어가 보면 역동적이며 힘찬 기세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3m에 이르는 주간은 역발산기개세의 웅혼한 기운을 내뿜으며 짙푸른 소나무 산을 들어 올리고 있는 형세다. 세상을 떠받치는 세계의 기둥으로 하늘과 땅을 잇는 우주목의 신성함이 역력하다. 우주목의 몸통은 승천의 기세로 용트림한 후 천(千)으로, 만(萬)으로 시방삼세의 시공간으로 뻗쳐 우주법계를 이루었다.

위로, 아래로, 옆으로 때론 솟구치고, 파고들고, 굽히고, 낮추고, 나선형으로 배배꼬고, 그 확산의 형세가 신출귀몰하고 기상천외하다. 나무 밑은 직선과 곡선, 나선의 거대한 만다라이자, 비정형과 비선형, 불규칙의 카오스 세계다. 그런데 전체 수형은 대단히 대칭적이며 안정적이고 조화로우니 귀신이 곡할 지경이다. 마치 고도로 체계적인 설계도면을 바탕으로 공학적이며 역학적인 플랜트 구조물을 완성해둔 듯하다. 그것도 500여 년의 비바람 속에서 오직 침묵으로 완성한 위대한 건축물이다. 나무 아래서 고난의 수행으로 이룬 자연 스스로의 불국토를 만난다. 나무가 이뤄 온 수행의 길을 헤아려 보면 나무가 나무가 아니다. 소우주이자 화엄의 연화장세계다. 그런데도 자신을 한없이 지상으로 몸을 낮췄다.

운문사 학인스님들의 마음엔 저 나무가 선승이시다. 수행자의 자세를 일깨우는 겸손의 큰 스승이시다. 외경으로 공경하고 특별한 공양을 올린다. 매년 삼월 삼짇날 막걸리 열 두 말 공양을 올린다. 그것도 절집의 독송의식에 부쳐서 예우 올린다. 나무의 건강과 왕성한 생명력을 발원하는 공양행사다. 나무에 종교의식을 거치며 곡식으로 만든 발효주를 공양하는 사례는 세계 유일의 일이 아닐까 싶다. 생명존중에 대한 커다란 울림의 자비행이다. 지난 4월 9일 삼짇날에 운문사에 가서 소나무에 막걸리를 공양 올리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드라마틱한 세계적인 장면으로 다가왔다. 감동적이며 가슴 뭉클하다. 생명의 무게를 다는 저울은 어느 쪽으로도 기울여지지 않는다. 소나무에 대한 민족문화의 자긍심이 이보다 더 선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은 없다. 운문사 승가대학 학장 일진스님을 찾아뵙고는 무릎 가까이에 앉아 그 내력과 서사들을 들었다.

일 년에 열 두 말 막걸리 공양
70년대 초 내가 학인시절일 때에는 소나무에 막걸리 주는 행사가 없었어요.
승가대학 졸업 후 70년대 후반 다시 운문사로 돌아왔을 무렵에 그 행사를 진행하고 있었죠. 그렇게 보면 막걸리 공양행사는 40년쯤 되었네요. 공양행사 초창기에는 봄, 가을로 나눠 일 년에 2회씩 막걸리를 줬어요. 봄엔 음력 3월 3일인 삼월 삼짇날에, 가을엔 음력 9월 9일인 중양절에 줬어요. 그런데 청도군청 산림과에서 일 년에 두 번 주는 것은 과하다는 거예요. 이후로 지금처럼 일 년에 1회 행사로 해왔어요.

사람들이 궁금해 할 수도 있을 거예요, 왜 나무에게 하필 막걸리를 주느냐고? 그 이유를 저도 잘 몰라요. 그런데 막걸리를 영양보충 하는 거름의 방편으로 여긴 것은 분명해 보여요. 왜 난초나 정원수 등이 생기가 없을 때 맥주나 막걸리를 주곤 하잖아요, 같은 이치에요. 곡물이 발효된 액체 성분의 거름인 거지요. 나무는 씹을 수 없으니까. 한번씩 운문사에 다녀가신 법정 스님은 저 처진 소나무를 ‘주송(酒松)’이라 불렀어요. 막걸리 드시는 소나무라, 하하. 한 때는 또 반송(盤松)으로도 여겼지요. 그런데 엄밀히 반송과는 다르니, 다시 형상을 보고 ‘처진 소나무’라 부르고 있지요. 여기 운문사 부근에 처진 소나무들이 다수 있어요. 제가 부근의 산을 오르내리면서 곳곳에서 어린 처진 소나무 여러 개체를 만났어요. 이 곳 지형적 특성과 연관이 있는지 모르겠어요.

막걸리를 뿌려주는 행사를 삼월 삼짇날에 잡은 것은 한 해 농사의 시작과 관련이 있어요. 음력 삼월에 청명, 곡우 등 봄의 절기가 있잖아요? 농가월령에서 이 시기에 농사를 시작하고 나무를 심지요. 농경사회의 시대상을 반영한 것이라 보면 될 거예요. 막걸리는 청도 동곡 양조장 막걸리예요. 쌀 7, 밀가루 3의 비율로 섞어 만든 막걸리라 그래요. 청도에서 아주 유명한 막걸리죠. 한 해 12말씩 보내오죠. 그러면 절에서는 막걸리와 물을 1:1로 희석시켜 소나무와 은행나무에 공양 올리는 겁니다.

소나무와 은행나무에 막걸리 공양 올리는 의식은 간단하고 소박해요. 보통 오전 예불이 끝난 10시경에 시작하지요. 학인스님들이 소나무 주위를 둘러서요. 참가하는 스님들은 4학년 대교반 학인스님과 대학원 스님, 그리고 강사스님 등 대략 50여 명이 참여하지요. 둘러 선 후 반야심경을 염송하는 의식을 가져요. 그 후 바로 나무 주위에 막걸리를 뿌려요. 소나무에 12말, 은행나무에 12말씩. 한 시간정도 소요 될 겁니다.

운문사 승가대학 학장 일진스님.
나무가 수행의 길이예요
수행공간은 원래 숲 이예요. 숲의 전체가 총림이잖아요. 나무 아래가 곧 수행공간 이예요. 부처님도 보리수나무 아래서 깨달음을 얻으셨죠. 이전에는 여기 종무소 일대가 허름한 땅이었어요. 저 은행나무에 소 매어 두고 그랬죠. 삼사십 년 동안 명성스님을 중심으로 정토로 일궈온 거예요. 그 때는 강의실도 부족해서 따뜻한 봄날이면 소나무 밑에 둘러앉아 책을 펴 경전공부를 했지요. 소나무 밑이 강의실이었고, 배움의 공간이었던 거죠. 그 동안 저 소나무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학인들의 발자국 소리와 기침 소리, 또 삶을, 수행과정을 지켜보았을까요? 그냥 서있는 나무 한 그루의 생물학적 의미를 뛰어 넘었어요. 나무의 수형(樹形)을 보면 아래로 처져 있잖아요. 저희 같은 수행자에겐 수행이 깊을수록 나를 낮추는 수행자의 덕목을 일깨워 줘요. 겸손의 덕목을 말없이 가르치는, 겸손의 큰 스승 이지요.

제 생각은 그래요. 나무가 도량 한 자리에 10년 이상 서있었다면 나무도 그 자리를 차지할 권리를 가졌다고 봐요. 함부로 베어낼 수 없죠. 한 자리에서 수처작주(隨處作主)가 된 거죠. 한 자리에 500년, 600년 뿌리내린 나무를 바라보는 마음은 어떻겠습니까? 제가 인도여행을 다녀와서 가진 생각이 그래요. ‘나무는 그가 있는 곳이 길이다.’ 수행의 길이고, 성찰의 길로 다가오더군요. 나무가 한 자리에 있는 것을 보면 화두 하나를 잡고 선정에 든 선승의 모습과 겹쳐져요. 그래서 나무 한 그루가 인격화 된 스승으로 다가오곤 하지요. 운문사 처진 소나무도 학인들에겐 스승 이예요. 다 바라보고 계시죠. 운문사의 조실이고 방장이신 셈이지요. 자연이 말없이 일깨우는 큰 가르침이 있지요. 나무가 길이예요.

일진 학장스님의 소나무 공양 이야기를 듣고는 다시 처진 소나무 아래로 들어가 보았다. 나무줄기들의 기묘하고도 복잡한 결구들이 깊은 인상을 남긴다. 빈 공간을 전체 형태의 골간을 예리하게 짜맞추며 비선형의 씨줄날줄로 역학적으로 건축한 탁월한 경영능력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용트림 하는 가지를 통해 무질서 속의 조화의 길을 본다. 역학의 불규칙 속에서도 전체적인 통일의 아름다움을 엮어낸 과정은 한 편의 영화요, 장대한 다큐멘터리가 아닐 수 없다. 500여년의 역사로 이룬 안정적인 대통일장의 구조, 그것은 모순과의 투쟁 속에서 성취한 주인됨의 거룩한 승리다. 수처작주의 빛은 무량수(無量壽)의 만고에 푸를 것인데, 저기 오백 년 푸르른 방장이 불립문자로 계시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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