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내 님이 있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하고 발견해야

우리 생활 속에 바로 부처님이 계시고,
변소에 가도 자기가 변소에 갔기 때문에
부처님이 거기 계시다는 걸 아셔야 할 것입니다.

(지난 호에 이어서)
이 말을 하는 것은 누구를 헐뜯으려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지금 세대가 세대니만큼 그렇게 바쁘게…. 나는 눈물이 찡하게 나곤 하죠. 저기 있는 보살이 선원의 지금 사무장님으로 일을 하고 계십니다. 차를 타고요, 머리 빗고요, 빵 한 개 들고요, 그거 마시면서 그 빵을 먹으면서 얘기를 하면서…. 그뿐이 아니에요. 이 카세트를 거기 끼고 들으면서, 그러니까 귀도 일을 하고 입도 일을 하고요. 하하하. 아주 전체 몸뚱이가 일을 하는 거예요. 그분뿐 아니라 그렇게 사시는 여러분을 볼 때, 참으로 이것은 참선이 딴 데 있는 게 아닌데 이러는구나. 그러면 저런 분은 기독교 믿어도 한 번도 천당에 못 갈 거고 또는 불교 믿어도 승천 못할 거 아닙니까. 가난한 사람은 백팔배를 못 하고 그래서 리어카 끌어 먹는 사람은 그럼 승천 못할 거 아닙니까. 바빠서 절을 못 하니까 말입니다. 하하하.

그러니 여러분이 될 수 있으면 이 도리와 더불어 아까 얘기해 드린 거와 모든 것을, 지금 인공위성이 위로 올라가는 시대, 시대를 따라서가 아니라 부처님이 전자에 말씀해 놓으신 그 뜻이 바로 오늘도 있으신 겁니다. 여러분이 계시는 한, 여러분이 계시기 때문에 부처님은 계신 겁니다. 그러니까 기독교에서 얘기하는 부활절도 초 초마다 부활절이요, 4월 8일도 일 초 일 초 바로 부처님이 탄생을 하신 날이란 말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공해서 찰나찰나 돌아가는데, 찰나찰나 돌아가면서 생각이 나고 그러는데, 생각을 일으킬 때마다 바로 부활이고 바로 부처님 오신 날입니다. 그런데 부처님 오신 날 일 년에 한 번씩 와서 인등을 켠다고 하는데, 인등은 내 마음을 일으키고 불심을 일으키는 데서 그게 밝은 인등입니다. 그것을 꼭 해야만 되느냐 하지마는 마음이 일으켜졌으니까 움죽거려지고 활동을 하는 겁니다. 그걸 켜는 겁니다. 그러니 절마다 인등을 켜 놓는다고 하는데, 그게 뭡니까? 요만한 항아리에다가 예전에 기름으로 켜던 그런 식으로 된 데다가 요렇게 전깃불 하나 해 놓고, 거기다가 인등 켠다고 여러분이 기도한다고 그러거든요.

난 그런 것도 여러분 자신들이 개선해야 된다고 봅니다. 내 마음 한생각이 그렇게 광대무변하고 내 한생각이 우리 식구를 다 살릴 수가 있고, 내 한생각이 잘못돼서 구덩이에 빠지게끔도 할 수 있고 구덩이에서 꺼낼 수도 있는 그런 자력이 여러분한테 주어져 있고 재료도 주어져 있는데 그렇게 남한테 의존하고 맹종하고…. 사람을 믿으라고 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름을 믿으라는 것도 아닙니다, 더군다나 불교는. 기독교도 그렇고 다 그렇습니다. 어떤 형상을 믿으라는 것도 아닙니다. 단, 모르니까 나를 익게 하기 위해서, 겸손하게 하기 위해서 절을 시켰고, 또 자기가 자기 나무에서 실과가 무르익어서 아주 갖가지 맛을 내라고 그런 거고, 그 씨가 익으면 내년에 또 심으니까 영원한 자기를 맛보라고 그렇게 절을 시킨 겁니다. 절을 꼭 108배 할 것을, 마음을 둥글려서 일배를 잘 하신다면 108배 한 거보다도 그 일배가 더 중하다는 걸 아셔야 합니다. 남편은 바빠서 지금 그냥 공당공당 뛰고 나가는데 자기는 자기대로 돌아서서 자기 할 일만 뭐, 주문을 외운다거나 이런다면 굶주리게 되고 또는 고독하게 되고 이러는 거죠. 자기도 그렇고 가정이 다 그런 거죠.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지 않습니까.

그러니 우리가 이런 것도 있습니다. 이 도리를 그냥 지나갈 수 없는 도리라고 하는 것은 자기가 자동적으로 그렇게 그 모든 시스템이 돼 있어서 자동적으로 자유스럽게 살 수 있다. 이 도리를 아실 거 같으면 어떠한 별성도 바로 나인 것이고, 내가 별성이 될 수도 있고 핼리 혜성도 될 수 있고 또 그 핼리 혜성이 내가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첫째도 죽어서 나를 발견하고 두 번째는 또 나를 발견해 가지고 둘이 아닌 도리를 실험하고 체험해서 그 도리를 알아야 하고 세 번째, 내가 또 죽어서 서로 같이 둘이 아닌 도리를 알았기 때문에 둘이 아닌 나툼을 나툰다. 네 번째, 이 모든 사람들이 그 도리를 알았기 때문에 자유스럽게 산다. 자유인이 된다. 찰나찰나 생활을 그대로 자유스럽게 산다 이런 겁니다.

그러니 우리 생활 속에 바로 부처님이 계시고, 변소에 가도 자기가 변소에 갔기 때문에 부처님이 계시다는 걸 아셔야 할 것입니다. 불당에만, 법당에만 부처가 있는 게 아니고 또 교당에만 하나님이 계신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라는 것은, 나에게 내 님이 있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하고 발견해야 하고 나를 발견한다면, 바로 내 주처를 먼저 알아서 내가 구원을 받았을 때 비로소 그때부터는 바로 실험과 체험이 들어갑니다. 둘이 아닌 도리. 둘이 아닌 도리를 진짜로 알아야만이 스승도 팔아먹지 않을 거고 뼈다귀도 우려먹지 않을 거고 이름을 팔아먹지도 않을 거고, 또는 거기서부터 둘이 아닌 도리를 행하기 때문에 진짜 사랑을 할 수 있는 그런 도리가 나옵니다. 그리고 모든 여러분이 그대로 자유스럽게 살 수 있기 때문에, 어른들이 잘함으로써 자식들도 뿌리가 싱싱해지고 병 안 들고 그렇기 때문에 가지와 이파리는 아마도 싱싱할 겁니다.

그러니 불법이 어디 따로 국한돼 있는 걸로 알지 마시고, 또는 기독교가 따로 있는 걸로 알지 마시고, 우리 젊은 사람이나 또는 남녀를 막론해 놓고 법당에 들어가면 부처님 바로 그 생명이 내 생명이고, 부처님 마음이 내 마음이고, 부처님 형상이 내 형상이고 둘이 아닌 까닭에 둥글려서 일배를 진실히 진심으로 할 때 바로 과거심 현재심 미래심이 일심으로 돌아가서, 일체로 돌아가서 일배가 만배를 능가할 수도 있는 그런 이치가 돌아온답니다.

그래서 달마 대사가 양 무제더러 말했듯이 “얼마나 공덕이 됩니까?” 하니까 “넌 공덕이 하나도 없느니라.” 했지 않습니까. 돈을 많이 갖다 준다, 집을 지어 준다 해서 공덕이 되는 게 아니라 이 마음공부를 하면서 물 한 컵을 떠 줘도 공덕이 된다 이겁니다. 더군다나 만민이 다 와서 이 공부 하는 자리를 만들었을 때 이 공부를 하고 가는 사람의 공덕은 얼마나 크겠습니까. 여러분이 지금 사시는 그 마음씨가 바로 이다음에 다시 돌아서 나오실 때 무심의 통장으로서 다시 가지고 나오기 때문에 여러분이 편안하게 사실 수 있고 또는 자식들에게 햇빛을 줄 수도 있고 또 부모들한테 묵은 빚을 갚을 수도 있는 그런 능력으로 훌륭한 여러분이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꼭 중이 돼서만이 아니라 이 세상에 수백 명 수천 명을 거느리고 사는 회사 회장도 있고 또는 정치가들도 있고 또는 장관도 있고 대통령도 있고 그렇듯이 말입니다.

이 도리를 잘 알아서 그렇게 태어나서 다시금 그 통장을 쥐고 바로 자기가 자기를 인정한 그, 지금 사인이라고 그러죠? 사인을 착 받아 가지고 이 세상에 나와서 그렇게 많은 사람을 건질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이 하지 않은 일이 어떻게 돌아오겠습니까. 여러분이 한 달 내내 일을 안 했으면 일한 대가를 어떻게 받습니까. 그래서 내가 안 한 일은 나한테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것은 악도 그렇고 선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악도 거기 놓고 선도 놓고 잘한 것도 놓고 못한 것도 놓고 다 놓고 거기서만이 해결할 수 있다는 그 믿음을 가질 때 비로소 자성신, 자기 주처에서는, 바로 자기 님이 자기를 이끌어 갑니다. 내 님이라고도 할 수 있지마는 부처님이라고도 할 수 있죠. 그러나 부처님이라고 하는 거는 나라고 하는 것이 없는 거, 하나도 부처라고 하는 게 없는 것이 부처예요. 부처라고 했다면 벌써 부처가 아닙니다. ‘큰스님이다’ 이런 말도 이름이지 그것은 그 사람이 통달해서 남을 이익 하게 하고 말 한마디를 해도 한데 떨어뜨리지 않고 실천으로써 그것이 법이 돼야만이 그게 이득이 가고 여러분이 오면 말없이 왔다가도 충전이 돼야 합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도 지수화풍으로 뭉쳐진 거기 때문에 지금 과학적으로 연구도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러면 안에서도 그렇고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지금 세상에 살아가면서 좀 더 앞을 내다보고 우리가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과거는 어저께도 과거고 아까도 과겁니다. 그런데 내다보고 살려면 사는 대로 우리가 도리를 다해야죠. 앞으로는 모든 것이 점점 살아나가면서 내 뿌리를 상실하고, 즉 말하자면 나무로 친다면 그렇죠. 그러나 인간의 뿌리는 뭐 상실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고 항상 밝은 거고, 항상 심봉과 같은 거니까요. 맷돌을 돌릴 때에 아래 위를 꿰는 심봉과 같은 것이 바로 불성이니까요. 그러니까 없어지고 뭐 더하고 덜함도 없지마는 우리가 그 심봉이 딱 끼워져야 맷돌이 제대로 돌아가고 맷돌이 제대로 돌아가야 물건을 넣고 갈아 내서 우리가 맘대로 먹을 수 있다 이 소리죠.

두서없이 이렇게 얘길 하는 것도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지금 핵폭탄이나 수소폭탄이나 이런 것을 잠수함에 해도, 더 적게 하고도 크게 성과를 이루려고 연구들을 하는 판국에, 우리는 우리대로 기가 약해지고, 의술이 약해서가 아니라 약재가 아주 약해지는 겁니다. 만약에 감기약이 있다. 그러면 감기약을 먹고 나아야 할 텐데 감기약이, 이 약재가 벌써 사람으로 치면 기가 약해지고 그 성분이 약해졌어요, 똑같은 약인데도. 그렇기 때문에 잘 낫지 않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이 도리를 필수적으로 알아야 자유자재하게 내가 어디가 아프면, 즉 말하자면 콩팥이 잘못됐다, 걸러 주질 못한다 이런 때 그 콩팥에 대한 문제를 주인공에 맡겨 놓으면 그대로 저절로 자동적으로 충당이 됩니다. 이 식품이나 동물 생물 무정물, 전부 약 아닌 게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서로 나누어서 살 수 있는 거라 이 소립니다. 이렇게 나누어서 살 수 없다면 앞으론 살기가 더 어렵고 쓰러지는 사람이, 병자가 더 많을 테죠.

요새 정신 환자들이 너무도 많은 것 같아요. 나는 그런 분들을 많이 봐서 그러는데 그것도 이런 도리가 아니면 고칠 수 없다 이 소립니다. 그것은 약으로 해서 고치는 것도 아니고 이 말로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행동으로 해서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 마음속의 그 의식과 이 마음, 이 내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게 영계가 들어서 잘못됐다 하더라도, 이것이 한두 가집니까? 머리에서 나는 정신병도 있고 타의에서 세균으로 그런 법도 있고 유전으로 그러한 법도 있고 영계로 해서 그런 법도 있고 인과로 인해서 그런 법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어떻게 약으로 해서 낫게 하겠습니까.

그러니까 모든 것은 내 마음의 주처에서 그 주처로 아주 집어 주는 거죠. 모든 거를, 즉 말하자면 유전이다 또는 영계다 인과다 하는 것도 이 물 한 방울이, 보십시오. 한 사람의 마음속에 이 물이 이렇게 들어갔습니다. 들어갔으면 이것이 한 그릇의 물이지 두 그릇의 물입니까? 마음은 체가 없기 때문에, 의식은 체가 없기 때문에 한 그릇입니다. 그러니까 ‘주인공!’ 하면 벌써 둘이든 셋이든 하나가 돼 버려요. 그러면 ‘네가 끌고 가지 않는다면 어떡하느냐. 네가 끌고 가야지!’ 할 때 바로 이것이 올바르게 됩니다.

내가 지난번에도 그런 얘길 했습니다. 회사 직원이 도둑질을 너무 해서 그 회사가 망하게 됐다고요. 어느 분이 그러길래 내가 “그러면 그 도둑질해 내는 사람은 증거를 잡지는 못했지만 알고 있느냐?” 그러니까 “대략 짐작은 합니다.” 그래. “그럼 그 사람한테 모든 관리를 맡기고 진급을 시키고 보수를 더 주고, 너희들 둘밖에는 이 회사를 살릴 수 없다고 그렇게 말을 하고 다 맡기십시오.”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그랬더니 아, 그 두 사람한테 맡기고부터 회사가 도둑을 안 맞더랍니다. 도둑도 안 맞고 또 회사가 잘되는 거예요. 좀도둑이나 대도둑이나 이게 있으면요, 너도 해먹고 너도 해먹고 그러면 회사 망하거든요. 근데 증거가 없으면 잡을 수가 없죠.

그러니까 그렇게 하듯이 이 속에도 말입니다, 인과로 인해서 뭉쳐진 이 악업 선업이 있다 할지라도 거기에 속지 마시고 거기서 별 생각 다 나와도 거기다 다 맡겨 놓으시고 ‘너밖에는 나를 이끌어 갈 수 없다. 너밖에는 나를 살릴 수 없다. 너밖에는 내 가정을 이끌어 줄 수 없다.’ 하고선 그냥 맡겨 버린다면…. 이거 보세요. 예전에 종을 부려도 이름을 부르고 “야, 이건 너밖에 심부름할 수가 없다. 얘, 너밖에는 이걸 해 가져올 수 없으니 이것 좀 해 가져오너라.” 하고 참 좋게 추켜 주면서 하면 몇십 리라도, 어떠한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해 가져옵니다, 군말 없이. 그러나 아주 종이니까 너는 으레 그런 걸 하려니 하고선 그냥 “야! 너 이거 좀 해 가져와.” 이러고 할 때는 빗나갈 수도 있는 겁니다. 빗나갈 수도 있거니와 가다가 뺄 수도 있죠. 또 ‘얘, 이거 해 가져와.’ 이러지도 않았다면 “얘, 아무개야!” 하고 이름만 부르면, “주인공!” 이러고 이름만 부르고선 가만히 있으면 그건 뭐를 하라는 줄 압니까? “예.” 그러고선 왔는데 뭘 하란 말을 안 하니까 그냥 도로 돌아갔다가 또 “주인공!” 그러면 또 와요. 또 왔다가 그냥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냥 가죠. 이렇듯이 주인공만이 지금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주인공만이 이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그런 아주 단호한 믿음! 이것이 바로 진실하고, 해결할 수 있는 그런 방법이라고 볼 수 있죠.

그러니까 항상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오늘도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전화가 왔는데요, 의사인가 봅니다. “제가 알기로는 며칠 됐는데 거기 갈 수는 없고요, 제가 지금 폐암에 걸렸습니다. 근데 병자들을 봐야 할 테니까 못 갑니다.” 그러면서 전화로다가 “그거를 어떻게 하면 낫겠습니까?” 이러는 겁니다. 가만히 전화기를 들고 생각해 봤습니다. ‘이 세상에 잘났든지 못났든지 내가 나서 무조건이지, 무조건 심부름꾼이 돼야지 무조건 심부름꾼이 되지 않는다면 아니 되겠다. 그게 무슨 섭섭하고 섭섭하지 않고가 어디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고선 “예.” 이렇게 하면서 그렇게 하시라고 잠깐 말을 해 드렸습니다마는, 이것을 무슨 나를 위해 준다 이렇게 해서는 아니 됩니다.

나를, 누구든지 따르더라도 세 가지를 보시고 따르세요. 그러면 틀림없어요. 말과 행과 마음 씀씀이, 이거. 그것도 믿는 게 아니라 따르는 거요. 믿는 건 여러분의 주인공을 믿으세요. 누굴 믿습니까? 이 세상에 누굴 믿습니까? 또 대신 죽어 줄 사람도 없습니다. 대신 아파 줄 사람도 없고요. 대신 똥 눠 줄 사람, 먹어 줄 사람, 자 줄 사람 이런 것도 없죠? 여러분은 이렇게 만났다가 헤어지면 구름이 한데 모였다가 다시 구름이 흩어지면 또 딴 구름하고 모이고 이러는 거와 같죠.

그렇기 때문에 수억겁 광년을 미생물로부터 거치면서 인간이 제일 나중에 태어났다고 보는데 그게 진화되는 과정이죠. 다 같이 그렇게 생겼지만 인간이 제일 나중에 됐다 하는 거는 진화되는 과정이 있기 때문에 그렇죠. 그러니까 우리 인간이 그렇게 태어나서 쫓고 쫓기면서 인간까지 왔는데 그 인간의 도리를 모르고 간대서야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린 필수적으로 그것을 알아야 되겠죠. 그래서 마음의 세계로 승진을 하느냐, 또는 냄새만 맡고 사는 세계로 좌천을 하느냐. 그런 삼차원 세계의 체로 거르는 세상, 이 삼차원 세계 중세계에서 다시금 또 돌아서 이거 뭘로 태어나느냐 이게 문제죠. 그러니 모르면 바로 그렇게 팔자 운명이 있는 것이고, 자기 한 것대로 자기한테 올 것이고, 모르고 죄를 지은 것은 모르고 받게 마련이고 알고 지은 것은 알고 받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지었든 모르고 지었든 모든 거를, 그 입력이 된 거를 없애 버려라. 지금 자꾸 입력을 해 넣으면 그 앞서 것이 다 없어짐으로써 우리는 편리하게 살 수 있다 이러는 겁니다. 만약에 그게 없어지지 않는 한 자꾸, 이렇게 금방 될 것도 안돼, 막으니까. 그게 인과거든. 자빠져도 코가 깨지죠. 허어, 그런 거 뭐 한두 건입니까.

그래 가지고 날더러 와서요, 뭐라 그러는 줄 아세요? “스님, 아휴! 지금 당장 거리로 나앉게 됐는데 집이 팔려야 됩니다. 은행으로 그냥 당장 넘어가게 생겼습니다.” 이럽니다, 또. 그럼 내가 복덕방이 돼야 되거든요. 하하하. 그래서 나는 그러죠. “당신 속에 복덕방도 있고 의사도 있고 또 판사도 있고 검사도 있고 서기도 있고 또 관세음도 있고 지장도 있고 용신도 있고 뭐, 다 있어. 그러니 당신 속에다가 당신이 시켜, 당신이. 당신이 해!” 이럽니다. “당신이 그렇게 하다 보면 정히 당신이 모자랄 때 나도 거기 있잖아? 둘이 아니야, 이게.” 이럽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요 이거는 복덕방만 되는 게 아니라 삼신인 저, 저 뭡니까? 애도 받아야 하고 뭐, 남의 손(孫) 받는 데도요, 그것도 있죠.

어느 사람이 이러더군요. 어느 신도의 올케가요, 아주 가난했고 남편은 병들었고 참, 이 속에 옷을 못 입어서 배가 다 나올 지경으로 극히 기가 막혔습니다. 나도 울고 그 사람도 울었지만 어린애를 임신을 했는데 병원에 가 보니까 거꾸로 앉았다고 배를 째야 된다고 그러는데 돈은 한 푼도 없고 속에 옷도 없어서 못 입은 사람이 어떻게 수술을 합니까. 그래서 “아휴, 그 의사 오진했단 말이야. 오진했으니까 걱정하지 마라. 오진한 거야. 거꾸로 있을 리가 없어.” 그랬죠, 어떡합니까. 그 의사가 오진한 건 아닙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야 안정이라도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그렇게 말을 해 놓고 생각을 깊이…, 그 배를 보니까 너무나 기가 막히고 그래서 그 애는 걔대로 울고 돌아서고 “이삼 일, 삼 일만 있다가 나한테 다시 오너라.” 그래 놓곤 이제 나는 나대로 울었습니다. 그랬는데 말입니다 아이, 제대로 돌아서서 어린애를 낳을 수 있게 됐더군요. 그러니까 병원에 다시 가 봐라 이랬습니다. 왜냐하면 자꾸 고통을 받으니까, 사람이. 그러니까 의사가 하는 소리가 이러더랍니다. “야, 나는 오진을 안 했는데….” 이러면서 “아, 거반 바로 다 섰네요. 아휴 참, 당신은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이러면서 의사 선생님이 그러시더래요. 그래서 속으로만 ‘의사 선생님이 잘 돌봐 주셨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하고 그냥 “그럼 병원에 가서 그 의사 선생님한테 어린애를 돌봐 달라고 그래라.” 그러고선 보냈어요. 보내고 돈을 준비해서 암암리에 전달할 수 있도록 딴 사람을 시켰죠.

그런데 이런 적도 있어요. 어린애를 배기만 하면 낙태가 되는 거예요. 그건 어쩔 수가 없는 거죠. 그래서 낙태가 돼서 쫓겨나게 됐어요. 부잣집인데 그냥 쫓아냈어요. 친정으로 갔어요, 인제. 그래 친정으로 가서 이 선원에 왔어요. 어린애만 생기면 한두 달만 되면 벌써 낙태가 되는 거예요. 외아들인데 그거 안 되잖아요. 그러니까 시부모가 친정에 가 있으라고 하고 아마 혼인을 시키려고, 여기 득보던 모양이죠. 그러니까 색시도 아주 참해요. 그래서 친어머니하고 와서 울더군요. 그 우는 거를 보니까, 난 참 약하거든. 이런 생각이 들어 갔어요. ‘에이 참, 어린애 낳고 사는 게 뭔지. 남이 낳은 애 좀 기르면 어떤가. 아이, 꼭 그냥 낳아야만 하나.’ 이러고선 속으로 중얼중얼하면서 “그러면 어린애 낳으면 나 뭐 해 줄 거야?” 웃으면서 그러니까, 웃기려고요. 그러니까 쭈물쭈물하면서 하는 소리가 “제가 뭐 잡숫고 싶은 거 맛있는 거 사다 드리죠.” 그래요. 그래서 “야, 잡숫고 싶은 거 사다 드리기 이전에 너나 맛있는 거 사다 먹어. 어서 가거라.” 그랬는데, 그달부터 어린애가 있어서 그 어린애를 지우지 않고 낳았어요. 남편이 정은 있으니까 아마 친정으로 왔던 모양이죠. 그래서 어린앨 배서 낳았는데 아들 쌍둥이를 낳았어요. 하하하. 그래 가지고 그 시집에서요 내쫓았던 며느리 찾으러 오느라고 사돈한테 두 손 싹싹 빌고 그냥 데려갔다고요. 저, 상쾌하데요, 그럴 때는요.

그런데요, 사람사람이 모두가 이 도리를 공부하게 되면, 그거는 우리가 전화가 없으면 아주 갑갑하듯이 필수적으로 이거를 알아야 된다는 얘깁니다. 그건 무슨 종교를 믿고 안 믿고 그걸 떠나서요. 종교다 종교가 아니다 이걸 떠나서 말입니다. 지금 제가 이런 말을 한 것을 깊이 잘 들으시고 요담에 만났을 때 실험을 얼마나 하셨는지 한번 다시 질문을 하겠어요. 그리고 또 요담에 만날는지 그건 모르겠습니다마는 또 만나게 되겠죠, 인연이 있으면요.

※위 법문은 1990년 4월 28일 남가주 불교 청년연합회에서 설법하신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한마음선원 홈페이지(www. hanmaum.org)에서도 같은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