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눈에 보이는 것들이 전부인 양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신을 한번 되돌아보라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돈과 명예, 권력 그리고 눈에 보이는 것에만 치중하다보면 정작 행복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부질없는 것을 좇다가 일생을 마칠 수도 있다. ‘나도 혹시 그런가?’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이도 있을 것이고 난 아니야!’라고 부정하며 당당하게 외치는 이도 있을 것이다.

나는 법회를 할 때마다 종종 눈에 보이는 것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설명하곤 한다. 대중은 흔히 눈에 보이는 것은 자신의 감각으로 느낀 것이기에 확실하다고 믿고, 결코 거짓된 것이 아닐 것이라고 받아들인다. 반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거짓투성이 오물들이 묻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반드시 믿지 못할 것은 결코 아니다. 눈에 보이는 현상도 한편으로는 허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허상을 좇다가 끝내 한 많은 생을 마감하게 되는 것이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중매를 해준 한 남녀가 결혼하고 1년도 채 되지 않아 이혼을 한다는 것이다. 걱정되는 마음이 앞서 부랴부랴 두 사람을 불러 상담했다.

아니, 결혼하기 전에 한창 만날 때는 그렇게 좋아 죽더니, 갑자기 웬 이혼이란 말입니까?”

스님, 결혼 전엔 몰랐는데 같이 살아보니 도저히 안 맞아서 못살겠습니다. 겉으로 보는 것과는 전혀 달라요. 둘이 이미 합의했습니다.”

이들이 헤어지려는 주된 이유는 하나였다. 서로 좁혀지지 않는 성격 차이였다.

선남선녀들이 기분 좋게 결혼을 하는 데도 얼마 지나지 않아 헤어지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들 때문이다.

결혼 전 나도 모르게 행복감에 취해 허상이 생기고 이에 매몰된 것이 나중에 고통을 낳는 것이다. 처음부터 이러한 허상을 잘 파악하고 맞춰가며 살았다면, 혹은 내가 부질없는 것에 너무 치중하는 건 아닌지 성찰했다면 조금은 이런 일을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물론 이와는 별개로 결혼을 오랫동안 하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아니 안 하는 이들이 있다. 누구보다 교육을 잘 받고 외모가 뛰어나도 자신의 짝을 못 찾고 헤매는 것도, 알고 보면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다면 저것이 없는 이치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일 수 있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자신의 모습을 바로 보는 연습을 해야 하지 않을까?

때로는 자식이 결혼을 하지 못하는 것인지, 하지 않는 것인지 알 수 없다며 부모님들이 하소연을 하러 찾아온다. 그럴 때마다 세상의 눈으로만 바라보지 말고, 진실한 내 마음의 거울을 들여다보라는 조언을 해준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눈으로 보는 게 전부가 아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보아야 하는 것들도 얼마든지 많다.

마지막으로 본인의 이야기를 통해 이 세상의 청년들에게 한마디 하고 싶다.

부질없어라, 부질없어라.”

본인의 어머니가 병실에 누워 초췌한 얼굴 위에 잠시 미소를 짓더니 내 손을 꼭 잡으며 이 말을 유언처럼 남기셨다. 어머니는 이승과 저승의 갈림길에서 계셨던 그 순간에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소중함을 알려주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그리하여 한마디로 잘라 부질없다는 말로 생의 정점을 찍었던 것이다.

이 세상을 마감하게 될 그날에 무슨 말로 일점을 찍을 것인가. 늘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게 좋지 않을까. 그러다보면 이 세상의 허상에 매달려 생기는 고통이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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