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헌 세종대 교수

미붓아카데미 인공지능, 붓다의 시선으로 바라보다

인공지능이 어느새 화두로 떠올랐다. 최근 미래창조과학부가 10년간 1000억 원을 들여 국산 슈퍼컴퓨터 개발 사업에 착수한다고 밝혔을 만큼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은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지만 이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두려움기대로 나뉜다. 인공지능은 인간에게 어떤 존재가 될까? 이상헌 세종대 교수는 48일 열린 미붓아카데미 강좌에서 인공지능, 붓다의 시선으로 바라보다라는 주제로 강의했다. 이 교수는 인공지능 자체는 위협적이지 않다. 다만 사람이 이를 나쁘게 사용했을 때 위협적인 존재가 된다고 강조했다. 미붓아카데미는 불교 안의 과학, 과학 안의 불교를 주제로 매주 금요일 오후 7시 서울 방배동 사찰음식점 마지에서 열린다. 정리=윤호섭 기자

인공지능 능력 의견 분분
인간 넘어설 수 있다” VS
실현 불가능주장 대립
가장 중요한 건 사용방법

▲ 이상헌 교수는…서강대 철학과 및 동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동국대와 가톨릭대 강의전담 교수를 역임하고, 현재는 세종대 교양학부 교수로 있으면서 한국철학회 사무총장과 생명문화연구소 상임연구원을 맡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융합시대의 기술윤리〉 〈철학, 과학기술에 말을 걸다〉 등이 있다. ‘자연에서 배우는 청색기술’ ‘인간 뇌의 신경과학적 향상은 윤리적으로 잘못인가’ ‘칸트 도덕철학의 관점에서 바라본 포스트휴먼’ 등의 논문을 썼다. 사진제공=미붓아카데미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알파고의 바둑대결 때문에 근래에 많은 분들이 인공지능에 관심을 갖고 있는데요. 저는 서양철학 중 칸트를 전공하고, 컴퓨터 관련 기자생활을 했습니다. 기술과 관련된 윤리적철학적 문제에 관심을 갖다가 우연한 기회에 불교를 접하게 됐고요. 현재 연구영역을 확장하는 중에 있기 때문에 불교를 잘 알지는 못합니다. 따라서 제가 전공한 서양철학 관점에서 불교를 받아들이면서 인공지능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합니다.

인공지능에 대한 기술은 대부분이 비슷합니다. 다만 대중이 이해하는 인공지능과 전문가가 이해하는 그것 사이에는 상당한 괴리가 있는데요. 이러한 괴리를 만들어낸 건 언론을 비롯해 기술자, 대중 모두 책임이 있겠죠.

최근 인공지능과 관련된 영화들이 꽤 많이 상영됐습니다. 인공지능을 주제로 한 영화들은 유토피아적인 상상을 담은 것도 있고, 디스토피아적인 상상을 담은 것도 있는데요. 엑스마키나(Ex Machina, 2015), 그녀(Her, 2013), 터미네이터 제네시스(Terminator Genisys, 2015) 등 영화 종류도 다양합니다.

제가 소개한 이 영화들은 헐리우드영화죠. 헐리우드영화는 인공지능이 아주 발달한 시대에 인간이 겪는 공포감 등에 중점을 둔 것이 많습니다. 이와는 달리 인공지능 하면 떠오르는 게 일본 애니메이션인데요. 여기에 등장하는 로봇들은 인간과 매우 친합니다. 물론 로봇과 인공지능이 같은 건 아니고, 로봇 머리에 들어가는 게 인공지능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학자들이 얘기하는 인공지능은 애니메이션이나 영화와는 조금 다릅니다. 저는 특정 학문 연구분야를 인공지능이라고 지칭합니다. 지능이라는 것은 범위가 매우 넓은데요. 인공지능은 지각 능력, 계산 능력, 학습 능력, 문제 해결 능력, 언어 이해능력, 자율적 판단 능력, 감정 표현 능력 등 인간의 지능을 컴퓨터를 통해 구현하는 연구를 하는 분야입니다.

인공지능 연구의 선구자들
인공지능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역사를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인공지능이 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제일 먼저 언급할 수 있는 사람은 앨런 튜링(Alan Turing, 1912~1954)입니다. 영국의 수학자이자 논리학자인데요. 프로그램 내장형 컴퓨터를 처음 언급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요새 컴퓨터는 전부 프로그램 내장형이지만 옛날엔 그렇지 않았거든요. 앨런 튜링은 1950년 기계가 인공지능을 갖추었는지 판별하는 실험인 튜링 테스트를 제안했습니다. 이 테스트는 기계가 인간과 얼마나 비슷하게 대화할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삼습니다.

튜링은 이외에 다른 걸로도 유명합니다. 바로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끄는 데 기술적으로 공헌했기 때문입니다.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이 골치 썩었던 것 중 하나가 독일군 잠수함이죠. 독일군 암호기계 에니그마(Enigma)’가 생성한 암호를 해독하지 못했기 때문인데요. 이 암호체계를 깨뜨린 컴퓨터 콜로서스를 개발한 게 앨런 튜링입니다.

다음은 존 폰 노이만(John von Neumann, 1903~1957)입니다. 현대적인 컴퓨터 개념을 창안한 사람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또 원자폭탄을 만드는 맨해튼 프로젝트(Manhattan Project)’에 참여해 핵심적인 역할을 맡기도 했습니다.

인공지능을 얘기할 때 가장 중요한 해는 1956년입니다. 인공지능이(AI)라는 학문분야가 탄생한 해이기 때문인데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미국 다트머스대학의 존 맥카시(John McCarthy, 1927~2011)입니다. ‘인공지능의 아버지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그는 기계의 지능에 관심 있는 학자들을 초청해 인공지능에 관한 다트머스 여름 연구 프로젝트라는 학술모임을 개최했습니다.

프랭크 로젠블럿(Frank Rosenblatt, 1928~1971)1957년에 퍼셉트론이라는 최초의 신경망 모델을 만들었습니다. 인간의 뇌는 하나의 뉴런이 수천 개의 뉴런과 연결돼 있는 형태인데 컴퓨터의 정보처리 방식은 순차적입니다. 즉 직렬이라는 것이죠. 그런데 신경망 모델은 병렬처리 시스템입니다. 따라서 1997년 체스대회에서 인간챔피언을 이긴 인공지능 딥블루와 2011년 퀴즈대회 제퍼디에서 우승한 인공지능 왓슨이 전문가시스템이라면 알파고는 신경망 모델입니다. 둘은 전혀 다른 성격의 것입니다.

전문가시스템은 1980년대 초 정점을 찍었습니다. 특정 분야의 모든 지식을 집어넣어 다루는 방식입니다. 현재는 기업연구소정부기관 등에서 널리 사용하는데 의사결정 보조수단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단점이라면 입력된 지식 분야 말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점이 있습니다. 한계가 분명하다고 볼 수 있죠.

그래서 학자들은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알지는 못하더라도 학습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 없을까 고민했습니다. 그게 아까 말씀드린 퍼셉트론입니다. 최근에 다시 주목 받기 시작한 기계학습, 딥러닝이라고 할 수 있죠.

토론토대학 교수 제프리 힌튼은 2006년 심층신경망(Deep Neural Network)을 개발했습니다. 2012년 열린 세계 이미지 인식 경연대회 ‘ILSVRC’에서 압도적인 차이로 우승했는데요. 알파고 역시 이런 심층신경망을 활용한 인공지능입니다.

이처럼 딥러닝은 굉장히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습니다. 인간과 기계의 대결 역사에서 볼 수 있듯이 말이죠. 과연 인간처럼 생각할 수 있는 기계가 등장할 수 있을까요? 뒤에도 다루겠지만 인간의 정신에는 지능만 있는 게 아니라 정서도 있고 도덕심이나 의지도 있습니다. 이 부분애 매우 중요하겠죠.

미국 철학자 존 설(John Searle, 1932~)은 인공지능 연구가 궁극적으로 도달하려고 하는 목표에 따라 약한 인공지능(weak AI)과 강한 인공지능(strong AI)을 구분했습니다. 영국의 물리학자인 로저 펜로즈(Roger Penrose, 1931~) 등 약한 인공지능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인간과 같은 인공지능 실현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 반면 강한 인공지능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인공지능이 인간을 능가할 정도의 지능을 갖출 수 있다고 봅니다.

인간 넘는 인공지능 가능할까
지금부터는 이와 관련된 몇 가지 물음들에 대해 얘기해보려 합니다. 먼저 인간을 능가하는 인공지능은 가능한가?’입니다.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은 자신의 저서에서 인공지능이 거의 모든 분야에서 인간을 넘어서는 시점을 특이점이라고 명명했습니다. 그는 2030년이면 인간과 인공지능의 구분이 없어지고, 2045년이면 특이점이 올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닉 보스트롬(Nick Bostrom)도 인간의 모든 능력을 능가한 수준의 인공지능이 개발되는 시절이 온다고 예견했습니다.

이런 주장에 대해 인문학자들은 말합니다. ‘도대체 그 특이점의 기준을 무엇으로 삼을 것인가라고 말이죠. 앞서 말씀드렸듯이 인간은 단순히 지능만 갖고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칸트가 인간과 동물의 본질적인 차이를 얘기한 게 있습니다. 그는 지능이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는 기준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동물과 인간의 지능 차이는 양적 차이이고, 질적 차이가 아니라고 봤습니다. 따라서 양적 차이는 극복될 수 있는 것으로 봤고요. 무슨 얘기일까요? 동물은 자연법칙에 지배받기 때문입니다. 물론 인간도 자연법칙의 지배를 받지만 온전히 받지 않는 영역이 있습니다. 칸트는 그 영역을 자유라고 말했습니다.

인공지능이 사람처럼 행동하는 로봇이 된다고 가정해봅시다. 사람인지 아닌지 잘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말이죠. 그렇다면 그 로봇은 생명을 가진 것으로 봐야할까요? 이런 물음을 혹시 가져본 적이 있으신가요? 과연 생명은 무엇일까 고민하게 합니다. 불교에서는 생명현상이나 생명체를 설명하는 데 연기라는 개념을 사용하죠. 이는 인공지능을 생명체로 볼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와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한 발 더 나아가 인공지능이 불성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고민할 수 있겠죠. 영화 인류멸망보고서에 등장하는 로봇 RU-4입니다. 본래 목적은 사찰 가이드죠. 이 영화에서는 마치 로봇이 득도한 것처럼 그려집니다. ‘인명이라는 법명도 있고요. 영화 마지막에는 스스로 전원을 끊습니다. 다른 영화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등장하는 인공지능 HAL9000은 우주탐사선 승무원을 모두 죽입니다. 결국에는 사람이 이기지만 인공지능의 마지막 멘트는 삶에 대한 욕망이 있는 것처럼 표현됩니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은 불성을 가질 수 있을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전문가시스템처럼 세상 모든 법문을 다 집어넣어도 깨달음이라고 하긴 어렵고, 인공지능 안에 있는 데이터가 어떤 조직화를 통해 다른 상태로 진보해야 가능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서양철학을 공부해서 깨달음과 계몽을 비교해봤습니다. 계몽은 근대적인 개념이죠. 미성숙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반면 깨달음은 욕망과 번뇌로부터 벗어나는 것이고요. 미성년자의 잘못을 되도록 법률적으로 처벌하지 않는 것은 책임질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자기 지성을 스스로 사용하는 상태로 만드는 게 계몽입니다.

욕망과 번뇌에서 벗어나는 건 한순간이라고 하죠. 계몽은 끊임없는 시행착오를 통해 점진적으로 이뤄집니다. 그리고 계몽은 결코 완성되지 않습니다. 깨달음은 경계와 분별을 넘어서서 마음을 비우는 것 같아요. 그렇게 무심의 경지를 말하는데 계몽은 모든 것을 분별할 수 있도록 지성을 예리하게 갈고 닦습니다. 즉 경계와 분별 넘어서는 게 아니라 모든 경계와 분별을 만들어내는 것이죠. 깨달음의 자유는 해방이나 벗어남과 같지만 계몽의 자유는 스스로 통찰하는 것입니다. 둘 다 인간의 불완전성을 가정하지만 계몽은 원칙적으로 목표이기 때문에 극복 불가능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오늘날 인공지능 연구의 방향이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마음과 인지과정을 이해하기 위한 학문 분야로 시작했는데 이제는 그게 아니라 알고리즘 등 철저하게 개발된 기술을 갖고 특정 영역에서 실질적인 효과를 내는 방식으로 연구하기 때문입니다. 알파고나 딥블루나 비슷하겠죠. 그만큼 상업화된 거죠. 진정한 인공지능 연구가 안 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그것들이 사람을 착각하게 하기도 합니다.

의지가 있는 또는 영혼을 가진 인공지능이 과연 가능할까요?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왓슨이나 딥블루, 알파고 등의 인공지능이 아무리 뛰어나도 사실 위협적이진 않습니다. 위협이 되는 건 그 능력을 어떤 사람이 나쁘게 사용했을 때 발생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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