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의 근본에서 주인이 되라

허운 대사 지음|정원규 옮김|불광 펴냄|1만 7천원
허운대사, 중국의 선종5가 법맥 이어
전쟁 등으로 신음하는 중국인들 아픔 위로
전국 각 사찰마다 불교대학 설립해 교육
법맥 끊긴 위앙·법안·운문종 되살려

허운(虛雲) 대사(1840~ 1959)가 태어난 1840년은 아편전쟁이 발발한 해로 근대 중국이 시작된 때이다. 허운 대사는 부패가 만연한 청나라 말엽 아편전쟁과 태평천국운동, 청일전쟁, 신해혁명과 청의 멸망, 공산당 창당과 국공합작, 항일전쟁, 사회주의 국가인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등 중국 근현대의 굵직한 사건들과 함께한 일생을 보냈다. 피할 수 없는 고난과 역경으로 가득 찬 삶을 산 허운 대사는 미신으로 치부되며 무너져 가던 불교 전통을 다시 확립하고 선종 5가의 법맥을 이으며, 전쟁으로 신음한 동시대 중국인들의 아픔을 위로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명나라 시대 감산덕청 대사 환생으로 여겨지며, 불심이 돈독한 양 무제 후손인 허운 대사는 19세에 출가해 56세에 깨달은 뒤 120세에 입적할 때까지 전쟁과 혁명으로 가득한 환란 속에서도 선(禪)의 중흥과 불교 전통의 회복, 중생구제를 위해 노력했다. 뼈를 깎는 노력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언제 어디서나 계율을 준수하기 위해 애썼으며, 경전을 손에서 놓지 않고 연구하며 대장경의 보존을 위해 팔방으로 다니며 노력했다. 또한 혼란스러운 때일수록 불법(佛法)의 진리로 중생을 이끌기 위해 머무는 사찰마다 불교대학을 설립하여 출가와 재가를 막론하고 불교 교육에 힘썼으며, 남화사, 대각사, 진여사, 태화사, 화정사 등 많은 사찰을 중건했다. 특히 허운 대사는 중국 선종 5가 중 임제종(臨濟宗) 43세, 조동종(曹洞宗) 47세로 임제종과 조동종 법맥을 이어받고, 당나라 말기에 법맥이 끊긴 위앙종, 법안종, 운문종을 되살린 선사이다. 또한 계율을 철저히 지킨 율사이자 경전을 손에서 놓지 않은 강사로서 근현대 중국서 가장 존경받는 고승이다. 현재 중국의 선종 승려 대부분은 허운 대사의 법맥을 따른다.

허운 대사의 여러 법문과 생애에 관한 기록은, 신해혁명을 이끈 잠학려가 남긴 〈허운화상연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잠학려는 불교를 미신으로 여기고 있지만, 복건성 고산 용천사서 대사를 만나 감화를 받고 법명을 받은 뒤 경전을 독송하며 참선 했다. 1951년 운문사변으로 대사가 크게 다친 뒤 대사의 법문과 행적을 기록으로 남겼는데 그 후에 발간된, 허운 대사에 관한 모든 책은 잠학려가 쓴 〈허운화상연보〉를 기초로 한다. 대사의 생애는 고난과 역경에 무릎 꿇지 않고 역경을 오히려 수행의 방편으로 삼아온 본보기이다. 대사는 전쟁의 화염 속에서라도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몸과 마음을 점검하며 수행해 생사의 주인이 될 것을 강조했다. 대사에게 고난은 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기꺼이 맞닥뜨려 자신을 단련시키는 시험장이었다.

허운 대사가 남긴 법문에는 참선수행에 관한 것뿐만 아니라 불자들이 꼭 배우고 익혀야 할 근본 도리에 관한 가르침도 많다. 허운 대사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닦기 위해서는 먼저 인과(因果)의 도리를 받아들여야 하며, 불법(佛法)에 대한 견고한 믿음과 계율의 엄격한 준수가 그 기본이며, 한 가지 수행법을 선택하였으면 세세생생 물러나지 말고 수행할 것을 강조했다. 다시 말하면, 인과의 도리와 바른 믿음, 계율 준수, 불퇴전의 정신을 갖춰야 어떤 수행을 하든 불도를 성취할 수 있다. 이 네 가지는 모든 수행의 가장 기본적인 요건으로 참선 수행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대사가 남긴 참선 법문은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자세하며 간결하다. 참선의 목적과 선결조건, 초심자와 구참자의 수행상의 어려움과 타파 방법, 의정을 일으켜 화두를 드는 방법 등을 알기 쉽게 설명한다. 대사가 주로 든 화두는 ‘염불하는 것이 누구인가?’로 ‘누구인가?’에 그 방점이 있다. 또한 대사는 화두를 ‘한 생각 일어나기 전’으로 규정하며 한 생각이 일어난 이후인 ‘화미(話尾)’와 구별하고, 화두 참구를 ‘한 생각 일어나기 전’의 자리를 보는 것이라고 하였다. 또한 ‘화두를 보는 것’과 ‘자신의 마음을 돌이켜 관하는 것’이 같음을 설했다. 이 책은 10여 년 동안 중국 스님들의 법문과 경전 해설을 소개한 각산 정원규 거사가 허운 대사의 감명 깊은 법문과 참선수행에 대한 가르침, 대사의 생애 이야기를 엄선해 번역한 책이다.

120년의 세월을 겪어내며 대사가 체득한 불법의 요체뿐만 아니라 참선수행자에게 꼭 필요한 내용을 선별하여 실었으며, 마지막 장에 대사 생애를 소개하며 위법망구(爲法忘軀)의 정신과 중생구제를 위한 참된 보살도를 기렸다. 재난과 역경을 수행의 방편으로 삼아 깨달음을 얻고 보살도를 실천해온 허운 대사의 법문과 생애를 통해 지금 어려움을 겪는 많은 불자들이 고난을 견디며 정진을 이어나갈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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