禪과 현대미술 - ⑦ 엘스워스 켈리(Ellsworth Kelly)

파리서 유학하며 禪불교 접하고
관념 벗어나 창의적 사유 배워
직관·통합적 사고력 표현 작품들
‘낯설음·단순함’ 관객 해석 유도
절제 속에 나타난 자유로움 ‘눈길’


▲ 켈리의 작품 〈Red Curve with White Panel(1989, oil on canvas, 181x323cm)〉. 빨강색의 형상은 전체의 일부분처럼 보이거나 그 자체로 완전한 모습이기도 하다. 모두가 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서 달라 보인다.
삶의 과정에서 단순함을 추구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모두가 같은 방향을 보고 달려가는데 자신 혼자서 그 흐름을 거슬러 간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 보여 진다. 한번은 가야하는 길이라 생각하지만 그것을 젊은 날에 실천하는 것은 결코 쉬운 선택은 아닐 것이라 생각된다.

화면에 나타나는 색채는 단색인 경우가 많다. 색을 대할 때 화면에 색칠이 된 색을 보거나 아니면 색이 칠해진 부분을 벗어나서 공간을 보는 경우가 있다. 어디를 보는 것이 더 자유로워 보이는가? 우리는 익숙해진 방식으로 사유하며 그 판단력을 존중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하지만 어느 날 익숙해진 사유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으로 대상을 보기를 바라며 자신의 예술을 만들어 가는 작가가 있다.

엘스워스 켈리(Ellsworth Kelly, 1923~2015, 미국)는 자신의 이성적 판단에서 벗어나고자 하였으며 복잡하게 무엇인가를 화면에 가득 채워야하는 것으로부터 탈피하여 가장 단순하면서 강렬한 색채를 통하여 사유의 전환과 깊이를 표현하고자 하였다. 대상은 사라지고 색과 도형만 남은 화면은 미지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듯하다.

단순하게 하면을 대하니 그동안 보이지 않던 작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끝부분의 모서리가 보이고 서로 새로운 관계성을 형성해 가는 색채의 특성을 발견해 나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동안 자신은 온통 화면의 중심만을 보고 거기에 어떠한 대상을 표현하느냐가 커다란 흐름으로 진행되는 상황에서 화면 중심의 중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하는 생각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젊은 켈리는 새로운 예술을 꿈꾸며 미국에서 프랑스로 유학을 온다. 당시에는 현대미술의 중심지가 프랑스 파리였기 때문에 세계의 많은 예술가들이 파리로 오는 시대적 흐름을 그도 거역할 수 없었던 것 같다. 파리는 자유와 낭만, 철학과 예술, 문학, 음악 등 전후 가장 활기차고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도시였다. 때문에 다양한 예술적 실험과 사조들이 혼재되어 자신의 예술세계를 구축하고자 노력하였던 켈리에게도 파리는 매력적인 도시였던 것 같다.

그에게 가장 큰 자극제가 된 것은 당시 파리를 중심으로 활달하게 전개되고 있는 선사상이었다. 선사상은 그에게도 커다란 충격이었으며 선에 대한 서적을 탐독하거나 토론하는 것은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는 점차 선의 매력에 깊은 울림을 체험하며 자신의 사유체계가 변화해감을 직감적으로 느끼게 된다. 그동안 자신이 보고 느끼고 하던 대상들이 전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관념적 사유의 틀에서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한 그는 그러한 자신의 생각들을 정리하기 시작하며 단순하고 사유적인 특성들을 찾아가기 시작하였다.

더 이상 화면에서 중심은 그에게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 것이다. 역사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구도·형태·색감 등 관념화된 틀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관점을 표현하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그러한 시도들이 낯설음과 단순함으로 인하여 사람들에게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하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적으로 이러한 생각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단순함은 오히려 많은 가능태를 내포하고 있다. 복잡하고 다양한 형상들이나 색채들은 서로의 관계성을 형성하며 긴장관계를 유지하게 되는데 반해 단순함은 더욱 많은 생각과 관계성을 형성할 수 있는 미지의 세계를 보는 사람의 몫으로 남겨놓는 것이다. 관객의 역할에 변화가 온 것이다. 관객들 역시 처음에는 혼란스러워 한다. 지금까지 보아오지 못한 익숙하지 않음과 작가의 의도를 도저히 알 수 없는 상징체계는 인식의 혼란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창의성의 관점에서 보면 새로운 관점의 시작은 인식의 변화에서 출발한다. 인식이 변화하지 않고 표면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것은 처음에는 창의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 가치는 사라진다. 즉, 창의성은 깊은 내면의 변화에서부터 출발하여 자신만의 상징체계를 설정하며 객관화의 과정을 거쳐서 표출되어야 한다. 암호화되고 기호화된 창의성들이 해독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창의성의 범주에서 벗어나는 것이라 생각이 되기 때문이다.

〈Red Curve with White Panel〉(1989)은 켈리의 생각이 잘 드러나 있는 작품 중의 하나이다. 번역하면 ‘하얀색 캔버스와 함께 한 빨간색 원형’이다. 여기에서 독자들께서는 어는 쪽이 먼저 시각적으로 다가오는가? 자세히 보시기 바란다. 그것은 자로 지금 당신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빨강색의 원형은 강렬하고 날카로움과 부드러움을 동시에 가지고 있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강한 에너지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하게 보인다. 반면에 옆에 붙어있는 하얀색의 직사각형의 캔버스는 얼핏 보면 벽면과 별로 차이가 나지 않아 벽면의 일부가 아닌가 하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그 존재감이 미약해 보인다.

하지만 보이는 것은 모두가 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서 달라 보인다. 이것이 이 작품이 주는 중요한 매력이다. 어떠한 사람은 하얀색의 직사각형이 너무나 가슴 깊이 느껴진다고 할 수 있다. 즉, 자신의 순일한 마음을 보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한 조각의 모습으로 보이는 빨강색의 형상은 전체의 일부분처럼 보이기도 하고 아니면 그 자체로 완전한 모습과 색으로 보일 수 도 있다. 지금 자신의 마음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 작품 〈Dark Blue Curve(1995, oil on canvas, 116x482cm)〉. 시간이 흐르면서 켈리의 작품은 더욱 단순해지고 상징화 된다.
〈Dark Blue Curve〉(1995)는 번역하면 ‘어두운 파란색의 원형’이며 시간이 흐름을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켈리의 작품은 더욱 단순해지고 상징화 된다. 단순화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나타나는 특징 중의 하나가 형태와 색채의 교감이 더욱 분명해 진다는 것이다.

형태는 이미 대상을 떠나 있기 때문에 어떠한 상징성을 잃어가며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형식으로 변화하기도 한다. 켈리가 보여주는 직선과 곡선의 교차점은 우리의 사고의 특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성과 감성, 직관 등은 각각의 영역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성은 육근을 통하여 인지하는 감각들을 분석하고 판단하여 저장하며 객관성과 주관성의 경계를 분명하게 하는 특성이 있다.

반면 감성이나 직관은 단순하면서 예지적이지만 또한 현실을 떠나지 않는다. 여기에서 상상력과 차별화하여 생각할 필요가 있다. 오감을 통하여 경험하는 인식들이 모두 감성과 직관으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하여도 그러한 체험들을 벗어나지도 않는 것이라 생각해 볼 수 있다.

선사들이 이야기하는 직관과 통찰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필자의 짧은 소견으로 이것 또한 현재의 육근을 벗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단지 현재에 일어나는 현상들에 대하여 집착하지 않을 뿐 현재의 감각이나 느낌이 사라지지는 않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으며 나아가서 그러한 현상들은 어떠한 인과에 의하여 일어나는지를 통하여 통합적인 인지능력들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해 볼 수 있다.

켈리의 작품에 나타나는 특성들 또한 직관과 통합적 사고력의 표출이라 볼 수 있다. 화면에서 보여 주는 형상은 이미 과거의 관점들이 보이지 않는다. 대상에 대한 관조에서 보여 주는 추상표현주의 특성들 또한 사라지고 어디에도 걸림이 없는 단순함을 통하여 선과 면의 접점과 직선과 곡선의 만남을 통하여 새로운 교감과 질서, 감성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하나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직관적 관점들이 여러 작품을 보면서 새롭게 느껴지는 것은 직관의 연속성이 아닌 통찰력의 관점이라 볼 수 있다. 즉, 상징화되고 암호화된 특성들이 이제 더 이상 해독할 수 없는 것이 아니므로 그 작품에 대한 인식들은 더욱 자유로워진다고 볼 수 있다. 

필자가 독일 뒤셀도르프 근처에 있는 인젤 홈브로히(Museum Insel Hombroich) 미술관에서 처음 켈리의 작품을 마주했을 때 느껴지던 절제와 자유에 대한 그의 관점들이 지금 다시 생생하게 느껴진다. 처음 켈리의 작품을 보았을 때 약간의 이성적인 측면들이 강하게 느껴지며 직관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이러한 특성들 때문에 일부의 비평가들은 그를 하드엣지(Hard-Edge)로 구분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구분은 외형적인 특성들만의 관점에서 보여주는 관점이라 볼 수 있다. 당시 추상미술이 새롭게 등장하며 기하학적, 상징적, 표현주의적 특성들을 내포하고 있는데 이들은 모두 보이는 대상이 아닌 직관적인 인식의 표출을 중심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추상미술의 거대한 흐름 속에 있는 모든 작가들이 선사상의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는 증거는 많이 없다. 하지만 당시의 문화적인 특성들을 살펴보면 대부분의 추상을 추구하는 작가들은 선사상에 깊은 영적이며 직관적인 사고의 관점들을 접하였으며 이를 통하여 정신성을 표현하고자 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부분이다.

켈리의 작품에 나타나는 특성 역시 정신적이며 자유를 추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자유는 절제가 전재가 되며 사고의 전환을 통한 새로운 가치와 이를 표현하기 위한 질서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진정한 자유를 찾아 자신 스스로의 변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며 자신의 예술세계를 구축해 많은 관객들에게 새로운 삶의 가치를 찾아가게 한 켈리의 노력은 현재 많은 변화를 경험하는 우리들에게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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