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락정토에 모인 사람들
극락정토에 모인 사람들
  • 노재학 불교사진작가
  • 승인 2016.03.25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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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절집의 빛⑦ 파주 보광사 대웅보전 연화화생벽화

구품연지 연화화생과 구품왕생 장면. 왼쪽아래에서부터 오른쪽 위로 하품하생에서 상품상생으로 전개하고 있다.
하루나 7일 신심 염불하면 극락왕생
구품왕생 연화화생도는 판벽화
고려불화 아미타내영도의 형식과 구도
상단 모서리 연화대는 아미타불 상징

극락정토, 아미타 48대원으로 세운 불국
‘정토(淨土)’는 청정 불국토의 줄임말이다. 일체의 번뇌와 고통이 사라지고 기쁨으로 충만한 상락아정(常樂我?)의 세계다. 아미타여래의 정토는 극락정토이고, 약사여래의 정토는 유리광정토다. 하지만 정토의 실상은 시방삼세에 갠지스강 모래 수만큼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불가설불가설의 불국토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정토가 아미타불의 극락정토다. 극락정토의 생성 인과와 장엄세계의 실상, 극락왕생의 방법을 밝힌 경전이 ‘정토삼부경’이다. 정토삼부경은 〈무량수경〉, 〈관무량수경〉, 〈아미타경〉을 엮은 정토사상의 소의경전이다.

극락정토는 〈아미타경〉에서 말했듯이 ‘제상선인 구회일처(諸上善人 俱會一處)’, 즉 어질고 선한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사는 곳이다.

정토의 원인은 아미타여래의 48대원이고, 그 결과가 극락정토다. 즉 중생구제 48대원을 세우고, 5겁 동안 사유하고 섭취(攝取)해서 아미타불의 본원력으로 창조하신 청정국토가 정토사상의 근원인 극락정토다. 아미타불께서 성불하기 전 법장비구 였을 때 세운 48대원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서원은 ‘미타본원(彌陀本願)’으로 부르는 제18원이다. “제가 부처가 될 적에 시방세계의 중생들이 저의 나라에 태어나고자 신심을 내어 아미타불을 다만 열 번만 불러도 극락정토에 태어날 수 없다면 저는 결코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는 감동적인 서원이다. 저 서원의 본원력에 의지해서 하루나 7일 정도 신심으로 불보살을 관상하며 염불하면 누구나 극락왕생 할 수 있다. 그것은 벌써 48대원을 이루신 아미타불의 약속이시다. 그러니 굳게 믿고 따르면 된다.

그처럼 쉬운 일도 없다. 오죽 쉬우면 ‘나무아미타불’ 지명염불(指名念佛)을 이행법(易行法)이라 할까? 그런데 더욱 놀라운 일은 극락왕생의 지위가 더 아래로 물러나지 않는 자리인 아비발치, 곧 불퇴전지(不退轉地)라는 사실이다. 그 중에는 일생 한번만 더 거치면 곧바로 부처가 될 일생보처(一生補處)보살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선한 사람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인 구회일처의 극락정토인 것이다.

왕생자와 불보살의 세부. 불보살은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로 모두 중품중생의 수인을 취하고 있다.
세존, 관무량수경의 16관 보이시다
하지만 왕생의 방법이 너무 쉬우니 의심 많은 중생들이 믿지 않고 경시한다. 그러니 석가모니 부처께서 증명설주로 직접 나서신다. 〈관무량수경〉에 낱낱이 전하고 있다. 〈관무량수경〉은 석가모니불께서 ‘왕사성의 비극’에 등장하는 위제희 왕비의 간곡한 요청에 아미타불의 극락정토와 극락왕생 수행법을 설하신 내용의 경전이다. 석가모니불의 위신력에 의해 모든 중생들이 청정한 극락세계를 마치 거울에 자기 얼굴을 비춰 보는 것과 같이 여실하게 보게 된 것이다.

〈관무량수경〉의 핵심인 정종분의 내용은 극락정토의 16장면인 ‘16관상(觀想)’이다. 이 거룩한 설법의 내용을 회화의 방편으로 표현한 그림이 고려, 혹은 조선불화 〈관경16관 변상도〉다. 비단이나 삼베에 그린 탱화가 일반적이다. 벽화로 전해지는 관경16관 변상도는 우리나라에선 극히 이례적인 사례다.

파주 보광사 대웅보전 외벽에 변상도의 유일무이한 귀중한 벽화가 남아 있다. 16관(觀) 중에서 14, 15, 16관의 구품왕생 장면을 그린 연화화생도다. 그런데 벽화의 재질도 일반적이지 않다. 벽화는 보통 흙벽에 회죽으로 바탕을 마감하여 그 위에 그림을 그린다. 보광사 대웅보전 외벽은 흙이 아니라 나무판이다. 세로로 긴 나무판을 칸칸이 짜맞춘 판벽에다 그린 벽화다. 외벽에 연화화생도를 비롯해서 열 가지 제재의 작품을 대형벽화로 장엄했다. 재료공학적으로 시간과 물리적 풍화에 대단히 취약한 구조라 안타까움을 더한다. 나무판 벽화는 김천 청암사 대웅전, 문경 대승사, 의성 고운사 연수전 등에서도 간혹 만날 수 있다.

국내 유일의 연화화생도 벽화
벽화의 주제는 연화화생 장면이고, 벽화의 공간설정 무대는 허공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극락세계 구품연지(九品蓮池)다. 〈관무량수경〉에서 석가모니불은 아난과 위제희 부인에게 국토에 광명을 놓아 극락정토를 낱낱이 보여주시고는 16장면으로 극락왕생의 수행방법을 설하신다. 제1관은 서쪽으로 지는 해를 관상(觀想)하는 일상관(日想觀)이다.

이어서 물의 변화와 보배나무, 대지, 칠보궁전, 칠보로 장엄한 연못 등 극락정토의 공덕장엄을 세세히 보게 해서 정토에 왕생하고자 하는 신심을 끌어내신다. 제6관까지가 극락정토의 경계를 아우른 총관상(總觀想)이다. 보광사 연화화생도 벽화에서는 상단 부분에 궁전누각과 극락조, 칠보문, 불로장생의 영지문, 산개 등의 상징조형을 통해서 극락정토를 대단히 압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석가모니불은 그런 연후에 아미타불과 관음보살, 대세지보살을 일념으로 깊이 생각하며 바라보게 해서 불보살의 자비와 지혜의 마음을 관하게 이끄셨다.

중생의 선근과 쌓아온 공덕에 따라 일체중생은 상품상생에서 하품하생까지 극락왕생한다. 〈관무량수경〉의 특징적인 내용은 존속살인 등의 오역죄와 가지가지 악업을 행한 사람에게도 극락왕생의 길을 열어 두었다는데 있다. 단지 아미타불을 지극한 마음으로 열 번만 완전히 부르면 죄업을 면하고 연화화생하여 극락세계에 나아간다.

벽화는 중생의 선근에 따른 구품왕생의 장면을 담고 있다. 연화화생도의 화면 크기는 대략 세로 2m. 가로 3m에 이른다. 19세기 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한다. 벽화의 구도와 시점은 왼쪽 아래에서 오른쪽 위로 향하며 하품하생에서 상품상생으로 전개한다. 그림의 몇 몇 곳은 비바람에 채색이 떨어져 나가 원형을 잃었다. 벽화 속 왕생자는 19명이다. 두 분의 보살과 일곱 분의 여래께서 등장한다. 그런데 한 분의 여래는 연화좌만 남아 있고, 존상은 퇴색해서 없다. 채색의 흔적으로 실재를 짐작할 수 있다. 벽화의 내용은 구품연지에서의 연화화생과 왕생자에 대한 아미타내영도를 모티프로 삼고 있다.

아홉 분의 불보살 중에서 두 분의 보살은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로 짐작된다. 16관상에서 제10관이 관음관이고, 제11관이 대세지관이다. 관무량수경에서는 관음보살은 머리에 천관을 쓰고, 천관에는 화신불 한 분이 서 계신다고 묘사한다. 그에 비해 대세지보살은 머리에 홍련화와 오백 가지 보배꽃으로 장식하고 하나의 보병이 있어 그 병안에 온갖 광명이 가득하다고 해서, 두 분에 대한 도상학적 차이를 두었다. 벽화에서는 하품하생의 자리에는 관음보살을, 상품하생의 자리에 대세지보살을 봉안하였다. 관음보살은 자비를, 대세지보살은 지혜를 상징한다.

오른쪽 상단 모서리에 장엄한 대형 연화대와 다섯 분 스님들. 연화대는 아미타불을 상징한다.
한 곳에 모인 구회일처의 구품왕생도
구품왕생의 아홉 장면은 한 장면마다 아미타내영도의 축소판이다. 장면마다 모든 왕생자는 오른쪽 위에 계신 불보살을 향해 연꽃이나 연잎에 꿇어앉아 합장의 예경을 올리고, 불보살은 왼쪽 아래쪽에 연화화생으로 막 극락왕생한 중생을 자애로운 표정으로 내영하고 계신다. 고려불화 아미타내영도의 형식, 구도와 일치하는 대목이다. 아미타불과 두 보살은 한결같이 중품중생의 아미타 구품인을 수인으로 취하고 있어 장엄장인들이 중생근기의 중간수준에 눈높이를 맞췄음을 짐작케 한다.

즉 모든 불보살의 수인은 엄지와 중지를 붙인 중품중생의 구품인이다. 일반적으로 아미타여래께서 취하는 수인은 오른손은 가슴부분까지 들어 세워 보이고, 왼손은 배 부분에 눕힌 형식이다. 그런데 벽화에서는 오른 손을 내리고, 왼손을 가슴까지 올려서 눈길을 끈다. 업장의 두께에 따른 하품, 중품, 상품의 품계가 상승함에 따라 벽화 속 왕생자의 연륜대도 소년, 청년, 중장년으로 심화되고 있어 웃음을 자아낸다. 마치 대학졸업식에 학사, 석사, 박사를 자리배치한 풍경을 닮았다.

무엇보다 벽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오른쪽 상단 모서리에 배치한 커다란 ‘연화대(蓮花臺)’다. 연화대 밑에는 다섯 분의 스님들이 합장의 예를 올리고 있다. 대형연꽃은 청색의 연밥을 갖추고 흰색 꽃잎을 활짝 펼쳤다. 연화에 신령함과 거룩함이 흐르는 예사롭지 않은 연꽃인데, 이 꽃은 바로 〈관무량수경〉에서 아미타불을 상징하는 연화대다. 석가모니불은 16관의 제7관 ‘화좌관(華座觀)’에서 만약 아미타불을 생각하고자 한다면 먼저 이 연화대를 지성으로 생각하라고 하셨다. 번잡한 마음을 접고 연화대의 낱낱의 꽃잎과 알알의 구슬, 낱낱의 꽃받침을 분명히 보면 반드시 윤회의 업을 끊고 극락정토에 날 것이다고 설하셨던 그 연화대다. 어쩌면 연화대 밑의 다섯 스님은 이 벽화를 조성한 금어와 발원자들인지도 모르겠다. 저 장면을 보고 있으면 그림 속에서 ‘나무아미타불’의 염불수행 소리가 합창으로 들려온다

일체대중이 지성(至誠)과 신심(信心)으로 회향발원한 ‘나무아미타불'의 염불로 극락정토 한 자리에 극적으로 모였다. 우리는 저마다의 길에서 저마다의 욕망을 꿈꾸며 살지만 아미타불의 명호를 받드는 날 여러 갈래의 물줄기들이 바다에서 하나가 된다. 벽화 속 저 곳은 모두 함께 한 자리에 모이는 곳, 구회일처(俱會一處)의 국토다. 저 절집의 빛, 석가모니불께서 광명을 놓아 극락정토를 보이신 감동적인 자내증의 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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