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감사관’ 명상

()에 악으로 대응해선 안 돼
먼저 사과할 때 지옥 벗어나
가까울수록 항상 보시·감사해야
받는 이 보다 주는 이가 행복

모든 인간관계는 2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좋은 것(+)을 주고받거나 나쁜 것(-)을 주거나 받는 관계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속담도 있듯, 내가 먼저 좋은 말을 했는데 상대방이 나쁜 말로 응답하진 않는다. 또한 내가 나쁜 말()을 했는데 상대방이 좋은 말로 응답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나와 상대방 사이에 플러스(+)적인 것을 주고받는 일은 하면 할수록 좋다. 문제는 마이너스(-)적인 것을 주고받을 때이다. 마이너스적인 것을 주고받다보면 안으로는 점차 고통이 쌓이다 마침내 그것이 폭발하면 싸움이 되고 만다.

나의 스승인 용타 큰스님은 이것을 보감사관(보시 · 감사 · 사과 · 관용)’ 명상이라고 했다. ‘보감사관명상은 바람직한 인간관계를 형성할 때 반드시 필요한 삶의 덕목이다.

내가 상대방에게 베푸는 것을 보시라 한다. 베푸는 것은 평화와 행복의 밑거름이다. , 표정, 선물, 재물 그 어떤 것이든 좋은 마음으로 주는 건 다 +적인 베풂(보시)이다. 상대방으로부터 좋은 것을 받았는데 감사한 마음이 안 들 리 없다. 정신이상자가 아닌 한 마이너스적인 것으로 응답하진 않는다.

그렇게 상대방이 베푼 좋은 것에 대해 좋은 마음으로 응답하는 것, 그것이 감사다. 그것은 또한 준 상대방을 기쁘고 행복하게 하니, 나도 모르게 나 또한 상대방에게 다시 기쁨과 행복을 선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보시는 받는 상대방만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베푸는 나를 먼저 기쁘게 한다. 그것이 보시의 가장 큰 매력이자 본질이기도 하다. 나와 너의 관계가 항상 이 같은 보시와 감사의 관계로 이루어진다면 모든 인간관계는 평화롭고 행복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서로 -적인 것을 주고받을 때이다. 내가 먼저 욕을 했는데 상대방이 아이고, 아무개야, 욕해줘서 고마워라며 환하게 웃으며 대답할 리 만무하다. 특별한 성자(聖者)가 아니곤 대부분 속이 부글부글 끓거나 더 심한 욕으로 응대하기 마련이다. 그러다보면 점점 난투극으로 이어지고, 끝내는 1·2차 세계대전 같은 관계전쟁으로 번지고 만다. 잠시 멈췄다 해도 언제 또다시 폭발할지 모르는 관계전쟁, 즉 휴전이다.

관계전쟁을 끝내는 길은 오직 사과관용밖에 없다. -적인 것을 준 사람이 먼저 사과하고 나서는 것이 제일로 좋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고,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도 있듯, 웃는 얼굴로 먼저 사과하고 나서는데 거기다 대고 더 나쁜 말로 욕하고 폭력을 휘두를 사람은 없다.

하지만 나쁜 말을 한 상대방이 먼저 사과하지 않는다고 내가 계속 지옥에 살 필요는 없다. 내가 먼저 관용을 해버리면 상대방은 계속 지옥을 살아도 나는 대번에 천국을 살 수 있다. 스스로 지옥을 만들고 계속 그곳에 머무는 사람만 손해다. 그런 지옥은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다. 그러기 전에 내가 먼저 사과를 해버리면 상대방이 나를 이해하고 용서하든 말든 나는 내가 만든 지옥에서 벗어나 평상심을 되찾을 수 있다.

또한 상대방으로부터 -적인 것을 받아 내 마음이 지옥일 때도 상대방이 사과를 하기 전에 내가 먼저 관용을 해버리면 상대방을 계속 지옥을 살아도 내 마음은 단박에 행복모드를 바뀐다. 신기한 것은 상대방이 사과를 하기 전에 내가 먼저 관용을 해버리면 오히려 상대방이 더 미안해하며 용서와 잘못을 빈다는 것이다.

절집에서는 오히려 이것을 사서하기도 한다. 석가모니 부처님 때부터 사과와 관용은 수행의 커다란 줄기였다. 자자(自恣)가 그것이다. 안거(安居; 승려들이 일정한 기간 동안 외출하지 않고 한곳에 머무르면서 수행하는 것. 우리나라에는 여름철 석 달 동안 하는 하안거와 겨울철 석 달 동안 하는 동안거가 있음)가 끝나는 날 온 대중들이 모여 함께 사는 동안 자신이 잘못했던 점을 스스로 밝히고, 다른 사람들에 대해 무례나 결례를 하는 등 -적인 것을 준 것에 대해 스스로 먼저 진심으로 사과함으로써 잘못을 닦고 참회하는 것을 말한다.

대인관계를 하면서 이 같은 자자청(自恣聽; 사람들에게 자신의 잘못이나 허물을 스스로 먼저 묻고 고백하고 사과하는 것)을 수시로 하면 어떤 극한 상황에서도 관계전쟁이 일어날 수 없다. 오히려 늘 자자청을 하고 사는 사람은 높은 인품의 소유자가 돼 다른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인정을 받는다.

사람은 누구나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다. 가족관계도 마찬가지다. 부부 사이, 부모와 자식 사이일수록 더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크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부부와 부모 자식 사이일수록 먼저 베풀고 감사하고 사과하고 관용하는 일이 잘 안 된다. 너무 가깝기 때문일까? 오산이다. 가까울수록 보감사관명상을 더 해야 한다. 내 가족, 내 가정부터 천국으로 만들지 못하는데 세상 어디 가서 천국을 만들고 낙원을 건설하겠는가. 내 가족부터 먼저 사랑하고, 베풀고, 감사하고, 사과하고, 관용할 때 그 에너지는 동심원을 그리며 점점 넓어질 수 있다. 그러면 비로소 내 이웃, 내 국가, 전 지구촌으로 아름다운 파문을 그리며 번져나갈 것이다.

보감사관명상 가운데서도 가장 큰 공덕은 보시명상이다. 보시(베풂) 명상은 우리 가족과 우리 사회는 물론 전 인류를 행복과 화합으로 이끈다. 육바라밀(보시 · 지계 · 인욕 · 정진 · 선정 · 지혜) 가운데 보시가 으뜸으로 나오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보시만 잘하고 살아도 나머지 5가지 바라밀은 저절로 따라온다.

보시는 특히 나의 욕심(탐욕)을 녹여낼 뿐만 아니라, 구세군 냄비처럼 우리 사회에 따뜻함과 우호감을 더해준다. 또한 상대방을 기쁘게 해주기 전에 나부터 기쁘게 해준다. 주는 것은 나인데 더 행복해지는 것도 바로 나인 것이다.

기부왕 빌 게이츠나 워렌 버핏, 마크 주커버그처럼 베풀기를 좋아하면 커다란 덤도 따라온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저절로 사랑과 인정과 존경을 받는 것이다. 바라지도 않는데 사랑받고 싶은 욕구와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한꺼번에 채워지는 것이다. 그 첫 출발점은 가정이다. 가족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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