⑤ 단응(端應) 스님

17세기 후반 활동한 조각승
색난·승호·금문과 다른 계보
목불과 목각탱을 주로 조성

전북 완주 위봉사 주석하며
경북과 영서 중심으로 활동
용문사 삼존불·목각탱 대표작

17세기 후반 조각승 단응 스님의 대표작 예천 용문사 대장전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과 목각탱, 나무로 만든 목조불상으로 아미타불의 극락세계에 거주하는 존상을 꽉차게 배치한 것이 특징이다. 사진=최선일
조선후기 불교조각사의 절정기인 17세기 후반에 호남의 색난(色難) 스님, 영남의 승호(勝湖) 스님, 경기(京畿)와 영서(嶺西)의 금문(金文) 스님 등과 같은 시기에 경북과 영서 등에서 활동한 단응 스님은 전북 완주 위봉사를 중심으로 활동한 조각승(彫刻僧)이다. 단응 스님은  주로 나무를 사용하여 다양한 형태의 불상을 만들었지만, 사천왕상은 소조불(塑造佛)로 제작하였다. 또한 조선후기 전각 내 수미단 위에 걸었던 탱화 대신에 나무로 조각한 목각탱(木刻幀)을 만들었다. 현재 단응 스님이 수화승이 되어 만든 목조불상과 목공예품은 전국에 걸쳐 11건 50여 점이 조사되었다. 

아직까지 단응 스님의 생몰연대와 조각승이 된 배경 들을 구체적으로 밝힐 수 없지만, 불상에서 발견된 발원문과 공예품의 명문 등을 통하여 스님의 활동 시기와 거주 사찰 및 지역, 조각승의 계보, 불상 양식 등을 추정할 수 있다.

현재까지 조사된 자료를 바탕으로, 단응 스님은 무염 스님을 도와서 1656년에 전북 완주 송광사 나한전 목조석가삼존불좌상과 16나한상 등을 조성하였다. 이 불상 제작은 50여명의 작가가 동원될 정도로 큰 불사인데, 여러 조각승 계보에 속하는 조각승들이 완주 송광사에 모여 공동으로 불상을 제작한 것을 쉽게 추정할 수 있다. 특히, 단응 스님은 성환(性還), 삼응(三應), 법행(法行)과 16나한상 가운데 1구를 주도적으로 만든 것으로 보아 당시 재능이 뛰어났음을 알 수 있다.

단응 스님은 1665년 6월에 수화승으로 경북 김천 직지사 소조사천왕상을 만드는데, 12명의 조각승이 나무로 만든 뼈대 위에 흙으로 형태를 만들었다. 이와 같은 3~5m 정도의 소조불 제작의 전통은 대형 나무의 수급이 좋지 않았던 우리나라에서 임진왜란 이전부터 내려오던 전통적인 방식이다. 그 후 단응 스님은 수화승으로 제자들과 1681년에 충남 공주 마곡사 영산전 목조칠불좌상, 1684년에 경북 예천 용문사 대장전 목조삼존불좌상과 목각탱, 1689년에 충북 제천 정방사 목조관음보살좌상과 경북 성주 선석사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을 만들었고, 1690년에 경북 경주 기림사 목조약사삼존불상을 중수하였다.

그리고 단응 스님은 1692년에 경북 안동 봉황사 목조삼세불좌상과 목조불패, 안동 광흥사 명부전 목조지장보살삼존상과 시왕상, 제주 서귀포 영조사에 소장된 목조아미타삼존불감을 제작하였다. 이 가운데 목조불감은 태백산에 거주하던 신경 스님의 원불(願佛)을 문도들 중심으로 제작되었다.

단응 스님이 만든 대부분 불상은 조영신경(昭影神鏡) 스님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는 태백산인(太白山人)으로, 1684년 5월에 경북 상주 용흥사 괘불 조성 시 증명으로 참여하고, 9월에 경북 예천 용문사 대장전 목각탱 조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용문사사적(龍門寺事蹟)〉에는  “시왕상과 금당의 판불을 만드는 일은 실로 신경대사의 힘에 의지한 것으로, 스님들의 대부분이 그의 공덕을 탄복하여 축수전 서쪽에 별도로 감실 하나를 마련하여 장차 대사의 진영을 안치하려고 합니다”라고 적혀 있다.

그리고 조영신경은 1692년 음력 사월(孟夏)에 안동 봉황사(구 黃山寺) 목조삼세불좌상 조성에 증명(證明)으로 참여하고, 1706년에 의성 고은사에 선종조영당대사비(禪宗昭影堂大師碑)가 건립된 것으로 보아 이 시기 이전에 열반하였다. 그는 〈불교원류(佛祖源流)〉에 의하면 청허휴정→편양언기→환적의천→조영신경으로 이어지는 계보를 가진 스님이다.

단응 스님은 보조화승으로 활동할 때 수화승으로 무염이나 계훈과 불상을 제작해 그들의 제자일 가능성이 높다.

이런 문헌을 통하여 단응 스님은 1630년대 태어나 출가한 후 수련기를 거쳐 무염이나 계훈과 1656년에 완주 송광사 나한전 불상을 제작하였다. 스님은 전북 완주 위봉사에 거주하면서 수화승으로 1665년경부터 김천, 예천, 경주, 성주, 제천, 공주 등의 사찰에 불상을 제작하거나 중수하였다. 단응 스님의 조각승 계보는 무염(-1634~1656-)→계훈(-1654~1656-)→단응(-1650~1692-)·탁밀(-1665~1714-)·법청(-1665~1684-)→탁린(-1674~1716-)·정행(-1715~1738-)·혜주(-1703~1730-) 등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제주 영조사 목조아미타삼존불감에서 발견된 조성발원문 내 조각승들. 불상 조성을 담당했던 스님으로 단응 스님이 기록돼 있다.
단응 스님이 만든 대표적인 불상은 예천 용문사 대장전(大藏殿)에 봉안된 불상이다. 전각 내부 수미단(須彌壇) 위에는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관음과 대세지보살이 높은 팔각 대좌 위에 앉아 있고, 뒤쪽에 서방 극락세계를 새겨놓은 아미타목각탱이다.

목조여래좌상은 높이가 90㎝의 조선후기 중형으로, 상반신을 약간 앞으로 숙여 구부정한 자세를 취한 좌상이다. 본존인 아미타불은 머리에 소라 모양의 나발이 촘촘하고, 경계가 불분명한 육계가 낮게 솟아 있으며, 이마 위에 타원형의 중앙계주와 정수리에 원통형의 정상계주를 가지고 있다. 각이진 사각형의 얼굴에 가늘게 뜬 눈, 원통형의 코, 약간 미소를 머금은 입을 가지고 있다.

오른손과 왼손을 무릎 위에 자연스럽게 놓고 엄지와 중지를 맞댄 중품하생인(中品下生印)의 아미타수인(阿彌陀手印)을 취하고 있다. 착의법은 두꺼운 대의 안쪽에 편삼을 입고, 대의자락은 오른쪽 어깨를 반달모양으로 덮고 팔꿈치와 배를 지나 왼쪽 어깨로 넘어가고, 왼쪽 어깨의 대의자락은 수직으로 내려와 편삼과 복부에서 겹쳐져 있다. 하반신을 덮은 대의자락은 중앙에 흘러내린 옷자락을 중심으로 좌우로 몇 가닥의 옷주름이 표현되었다.

가슴을 가린 승각기(僧脚崎)는 수평으로 간략하게 처리되었다. 불상의 뒷면은 목 주위에 대의를 두르고, 왼쪽 어깨에 앞에서 넘어온 대의 자락이 전형적인 연판형(蓮瓣形)으로 길게 늘어지지 않고 등줄기를 따라 수직의 자락이 길게 늘어져 있다. 보살상은 화염문으로 장식한 커다란 보관을 쓰고, 양손에 연화가지를 들어 좌우대칭을 이루고 있다. 얼굴형과 이목구비(耳目口鼻) 등이 본존과 유사하다. 특히 관음보살 어깨에 걸친 천의가 밑으로 흘러내리고, 복부 화문장식(花文裝飾)의 복갑(腹甲)과 양 무릎에 갑대(甲帶)를 착용하여 화려함을 가지고 있다

목각탱은 본존을 중심으로 팔대보살과 십대제자, 사천왕 등 모두 15구의 권속이 3단으로 배치되어 있다. 본존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팔대보살은 본존불과 같은 단에 좌우 각 2구씩, 윗단에 좌우 2구씩 총 8구가 조각되었다. 팔대보살의 배치는 본존을 중심으로 좌측에 여의가지를 든 문수보살과 연화가지를 든 관세음보살, 우측에 연봉우리를 든 보현보살과 경책을 얹은 연화가지를 든 대세지보살, 상단에 금강저를 얹은 연봉우리를 금강장보살(金剛藏菩薩)과 연꽃가지와 연봉우리를 든 미륵보살, 우측으로 검을 든 제장애보살(除障碍菩薩)과 석장을 집고 보주를 든 지장보살을 배치하였다. 자그마한 체구, 두터운 천의, 둥근 어깨 등의 조각수법은 본존과 같으나 얼굴과 발은 유난히 크게 조각하였다. 보관(寶冠)은 상하 세 부분으로 선각되어 있고, 일부 보살상은 복갑 및 갑대 등을 착용하고 있다.

아난과 가섭존자는 상단 좌우 끝부분에 무릎을 꿇은 자세로 본존불을 향하여 합장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가섭존자는 광대뼈와 정수리 부분이 너무 과장되어 튀어나오고, 꽉 다문 입가에 앞니 2개가 보이고, 보살상과 달리 눈꼬리가 밑으로 쳐져 있으며, 상반신에 가사를 묶은 장신구가 표현되었다. 

사천왕상은 본존불의 대좌를 사이에 두고 왼쪽으로 검을 든 남방 증장천왕과 비파를 든 동방 지국천왕이 서 있고, 오른쪽으로 깃발은 없어지고 장대만 남은 당과 보탑을 든 북방 다문천왕과 여의주와 용을 잡은 서방 광목천왕 배치되어 있다. 사천왕의 얼굴은 광대뼈가 튀어나와 있고, 눈동자와 입을 붉은 색으로 칠하였다. 사천왕은 자세와 천의자락의 휘날림에서 다른 불·보살과 같이 역동성이 나타나고 있다.

이외에도 존상들 사이에 구름모양의 빛줄기가 표현되어 이 시기에 제작된 불화와 동일한 표현과 배치를 하고 있다. 군상(群像)들의 상단에는 2개의 판목에 본존에서 나온 서광(瑞光)과 아미타불의 설법을 듣기위하여 모인 불상 3구가 좌우로 표현되었다.

단응과 그 계보 조각승이 제작했다고 추정되는 불상은 충북 단양 청련암 목조보살좌상, 제천 원각사 목조보살좌상, 대구 옥련사 목조아미타불좌상, 봉화 각화사 동암 요사채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 울진 불영사 극락전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 등으로, 이들 불상은 양식적으로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전반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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