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이들이 무엇을 먹고 자라는지 살펴보면 가슴이 철렁할 때가 많다. 아이들에게 좋아하는 음식이 뭐냐고 물으면 한결같이 달고 기름지고 맵고 자극적인 음식을 줄줄 꿴다. 왜 아이들은 순하고 맑은 음식은 맛없다고 여기고, 달고 기름지고 자극적인 음식은 맛있다고 느낄까. 가끔 엄마들에게 제철채소 반찬을 아이들 밥상에 올리라고 하면 우리 아이는 원래 안 먹어요라고 답한다. 과연 아이들의 입맛은 원래그런 것일까.

몇 년 전부터 여름방학마다 초등학교 급식 영양사를 대상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찰음식을 기반으로 한 급식레시피 개발이 목적이지만, 많은 영양사들이 나의 강의를 듣고 음식에 대한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고 한다. 정년이 2년 남았다는 한 영양사는, 지금껏 잘해왔는데 왜 이런 강의를 들어야 하는지 좀 짜증이 났다고 했다. 그런데 음식이 몸뿐만 아니라 마음의 건강과도 관련이 깊고, 특히 아이들의 성품을 결정짓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나의 이야기를 듣고 크게 놀랐다고 했다.

스님, 저는 아이들이 밥을 남기면 안 된다고만 생각했어요. 그래서 주로 튀기거나 달고 짠 반찬을 만들었던 것 같아요. 스님 강의 듣고, 좋은 음식을 잘 먹게 하는 게 더 중요함을 알았어요. 언젠가 우리 초등학교를 졸업한 아이가 중학생이 되어 만났는데 비만이 되어 있었어요. 지금 생각하니 제가 만들어준 음식이 영향을 주었을 수 있겠구나, 생각되네요.”

바르게 알고 노력하는 것이 진정 최선을 다하는 것이겠지요.”

. 스님, 말씀이 옳아요. 남은 2년 동안 아이들에게 정말 건강한 음식을 만들어 줄 수 있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 그림 박구원.
아이들 입맛은 어른들이 만들어주는 것임을 새삼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최근 안국동 한국사찰음식문화체험관에서 유치원, 초등학생과 엄마들을 모아 미각 교실을 열었다. ‘좋은 음식, 맛있는 음식 만드는 법을 배우러 온 아이들은 한껏 들떠 소란스럽기까지 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합장을 하게 하고, ‘두 손을 모으는 것은 우주의 좋은 기운을 담아 나와 내 주위를 비춘다라고 설명해주었다. 그러자 아이들은 얼른 두 손을 오므리며 눈을 감았다. 바르게 설명해주면 그대로 따르는 마음이야말로 아이들의 본래 심성이다. 그 본성을 모르는 어른들은 우리 애는 원래 안 먹어요. 단 걸 좋아하고 고기만 먹어요.’하면서 입맛을 길들이는 것이다. 그날 실습한 요리는 우엉당근주먹밥, 아이들이 싫어하는 채소다. 나는 기다란 우엉 뿌리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우엉은 햇빛과 빗물을 먹고 땅 속 깊숙이 자란답니다. 어두운 땅 속에서 자라려면 참을성이 있어야겠지요? 스님이 조금 전 자연과 나는 하나라고 말했지요? 그러니까 우엉을 먹으면 우리도 인내심이 생긴답니다. , 이 우엉이 무엇으로 보이나요?”

왁자한 대답 속에 누군가 지팡이요!”라고 말했다. 맞다. 지팡이. 노인의 발이 되어주고 삶의 버팀목이 되는 지혜의 물건! 좋은 답이라고 칭찬한 뒤에 이어서 말했다.

맞아요. 우엉은 지팡이처럼 우리를 씩씩하게, 지혜롭게 해준답니다. , 이제 두 눈을 꼭 감고 우엉을 꼭꼭 씹으면서 우엉을 키워낸 땅과 물, 바람, 햇볕, 농부의 손을 생각해봐요.”

시종일관 까르르, 와하하 웃음 속에 진행된 미각 교실이 끝나고, 엄마들의 뒷담이 귀에 들려왔다. “우리 애가 우엉을 저렇게 잘 먹는지 오늘 처음 알았어요.”

중생들에게 대화로써 깨달음을 설한 부처님의 가피가 오롯이 전해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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