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사하사암무료급식소

▲ 부산사하구불교연합회에서 운영하는 ‘사하사암무료급식소’는 1995년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 매주 월, 화 무료급식을 진행하고 2013년 6월 현재 사하보훈회관 지하로 자리를 옮겨 나눔을 진행하고 있다. 2010년부터 매년마다 장수사진을 무료로 촬영하며 장학금 전달, 불우이웃돕기 김치ㆍ쌀 나눔, 경로잔치, 산사음악회 등 다양한 활동으로 지역민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 2013년 사하구청장상, 2015년 부산시장상을 수상했다. 스님들도 공로를 인정받아 부산시장상, 부산경찰청장상, 사하경찰서장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십시일반으로 40년 운영
사하구 10여개 사찰 동참
지역민 사랑방으로 거듭나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 펼쳐
지역 6개 병원 인연 맺고
환우들 찾아가 위로연도

여러 명이 먹을 밥과 반찬을 혼자 만드는 일은 어렵다. 하지만 백짓장도 맞들면 나은 법, 많은 이들이 일손을 보태면 달라진다. 그만큼 함께 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으로 보였던 일도 가능케 하는 무궁한 힘을 갖고 있다.

200명을 위한 공양을 만드는 일 역시 불가능할 것만 같았다. 대형 사찰도 없었을 뿐더러 지역형편도 썩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 사하구 불자들은 한마음으로 똘똘 뭉쳤고, 40년간 그 기적을 이어오고 있다. 바로 부산 최고 빈민지역으로 불렸던 사하구에서 지역민들을 위해 매일 한 끼 식사를 정성으로 대접하고 있는 ‘사하사암무료급식소’다. 부산사하구불교연합회 스님들과 불자들이 보살행을 펼치고 있는 현장을 지난 11일 방문했다.

정성과 배려로 공양 올려
머리가 희끗한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계단을 내려가며 꾸부정한 허리를 펴지도 못한 채 한걸음 한걸음이 벅차다며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어르신들은 발걸음이 급한 기자를 위해 길을 내어주며 연신 쉬었다 내려가길 반복했다. 사하사암무료급식소는 부산 괴정1동에 위치한 사하보훈회관 지하에 둥지를 틀었다.

오전 10시 30분, 급식소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이미 빈자리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붐볐다. 대부분의 어르신들은 자리에 편히 앉아 배식을 기다렸다. 한 할머니가 음식을 받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자 봉사자가 “앉아계시라”며 일일이 식사를 배달했다. 식판에는 뜨끈하게 끓인 소고기국과 오색으로 예쁘게 빚은 송편, 각종 나물들이 먹음직하게 담겼다.

“1년에 250만원이 넘는 월세를 내고 있지만 다른 곳으로 옮길 생각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나마 어르신들이 찾아오기 편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건물에 비해 계단도 적고 오는 길도 많이 가파르지 않고….”

사하구불교연합회를 이끌고 있는 회장 혜우 스님(약수사)은 말끝을 흐렸다. 어르신들을 위해 값진 봉사를 하고 있음에도 죄송하다고 했다. 지금보다 더 편한 장소로 어르신들을 모시지 못해 아쉬움이 가득하단다. 혜우 스님은 오랜 숙원 사업이 바로 ‘어르신들을 위한 편안한 식사 공간’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금의 급식소도 하얗게 도색해 정갈한 벽과 넓은 공간, 직접 조리할 수 있는 깨끗한 부엌까지 별다른 부족함은 없어 보였다. 스님의 ‘조금 더 나은’ 배려를 느낄 수 있었다.

혜우 스님은 “사하구불교연합회관을 하나 마련해서 추울 때는 더 따뜻하게 모시고 더울 때는 시원하게 모시고 싶다. 계단이 없으면 어르신들이 더욱 편하게 방문할 수 있고, 사랑방처럼 문화생활도 하기 좋을 것 같다. 이 공간이 단순한 급식소가 아니라 종이 접기, 이발 등 어르신들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됐으면 좋겠다”고 개인적인 바람을 밝혔다.

스님과의 인터뷰 중 식사를 마친 한 어르신이 합장인사를 올렸다. 스님의 손을 잡으며 감사 인사를 거듭 전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신의 자리를 스스로 정리하는 모습도 보였다. 스님에게 엄지를 ‘척’ 들어 보이며 만족스러운 웃음으로 격려하는 어느 할머니의 미소가 퍽 행복해보였다.

▲ 2013 사하구자원봉사의 날 시상식

40년간 빈민지역 위해

지금의 급식소는 1976년 사하시장에서 진행하던 무료급식현장이 모태다. 당시 사하불자회가 매주 월ㆍ화에 무료급식에 동참했고, 사하사암무료급식소 스님들은 수ㆍ목을 담당했다. 현재 사하사암무료급식소에서 급식을 돕는 사찰은 10개, 그 가운데 8개 사찰이 함께 했었다.

“당시 연세 많으신 스님들이 저희를 이끌어 주셨어요. 지금은 많이 연로하셔서 함께하지는 못하지만 선배 스님들께서 저희들의 귀감이 되어주셨죠. 굶고 있는 사람들은 너무나 많았지만 당시에는 무료급식이란 말조차도 생소했습니다. 그때 사하시장에서 무료급식을 한다는 말을 듣고 발벗고 동참했죠. 누가 주관하는가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더부살이였어요. 더 주고 싶어도 줄 수 없어 아쉽다는 것만 빼고, 저희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봉사를 더 늘려나갔습니다.”

이후 1980년 스님과 불자들은 부산 용두산 정수사에서 진행하는 무료급식소에도 찾아갔다. 그리고 매주 수요일 공양을 담당했다. 여름에는 800명, 겨울에는 600명 정도가 그곳을 찾았다. 여름보다 겨울에 사람이 줄어든 이유는 동사자가 그만큼 많았기 때문이란다. 그만큼 어려운 시절이었다.

1984년 스님들은 다시 사하구 지역에 집중하며 독자적으로 활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사하구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단다.

“전쟁 고아원 집결지였습니다. 버림받은 할머니들이 모여 살던 모자원, ‘빈민굴’이란 표현이 어울릴 겁니다.”

당시 부산에서는 도시발전이라는 명목 아래 가난했던 전쟁 피난민들의 정착지를 철거하고 변방이었던 사하구로 강제 이주시켰다. 그런 그들에게 제공됐던 땅은 겨우 10평 남짓, 쫓겨나 갈 곳이 없었던 이들은 하루하루 끼니를 걱정하며 살아야 했다.

“아침이면 떡, 과자, 재첩국, 채소 등을 가지고 3~4시간을 걸어서 충무동 시장으로 갔습니다. 시장에서 물건을 팔고 돌아올 때 겨우 보리쌀을 살 수 있었어요. 그러면 하루 종일 굶었던, 그리고 혼자 있었던 아이들에게 밥을 줄 수 있었죠.”

이들을 위해 스님들은 1995년 6월 정식으로 무료급식소를 열었다. 그 어느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았다. 오직 십시일반으로 정성을 모아 문을 열었다. 돈뿐만이 아니었다. 스님들과 불자들은 청소를 하고 식기를 닦으며 깨끗한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바삐 움직였다.

“그때 처음 임대했던 장소가 어느 가정집 지하였습니다. 이전에 불이 났던 곳이었는데 손 볼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죠. 곰팡이는 말할 것도 없었고 배관 시설, 상수도 공사, 조리 시설 까지 새롭게 장만해야 했습니다. 인력을 부를 수 있는 형편은 안 됐고 스님들과 불자들이 나서서 모두 함께 청소하고 준비했습니다.”

새롭게 문을 연 급식소를 찾아 매주 월ㆍ화요일마다 60여 명의 사람들이 찾아들었다. 아침 일찍 시장에서 장을 보고 식자재를 다듬어 위생적이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대접하자 금세 입소문이 퍼졌고, 점차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확실한 위생을 위해 냉장고도 두지 않았다. 그날 마련한 재료를 당일에 소비하기 위해서다.

“지금도 저희는 냉장고를 두지 않습니다. 신선함을 위해서는 냉장고가 있어야 할 거라 생각하지만 가장 신선한 것은 그날 사서 그날 바로 조리하는 것입니다. 어르신들의 건강과 가장 맛있는 음식을 위해 저장한 것을 쓰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정성과 배려로 마음을 다한 공양은 소문이 났고 100명으로 늘어난 사람들을 더 이상 수용하기는 어려웠다. 35평의 공간으로는 턱 없이 부족했다. 어르신들은 줄을 서서 기다렸고 스님들은 이런 상황이 마음 아팠다고 한다.

“어르신들이 추운 날 서서 기다리는 모습을 보면 너무 속상했습니다. 어서 다른 공간을 마련해야겠다고 생각했지요. 더 좋고 따뜻한 공간에서 모시고 싶다는 일념뿐이었습니다.”

스님들은 새로운 공간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넉넉지 않는 형편이었지만 다시 십시일반 돈을 모았다. 그 원력으로 2013년 6월 지금의 사하보훈회관 지하 1층에 100평의 공간을 얻었다. 매주 월, 화 오전 11시가 되면 200여 명의 어르신들이 문을 열고 들어와 자리를 잡는다.

올해 급식소 운영비로 필요한 예산이 총 8000만원이다. 소소하게 드는 부대비용을 제외하고 오직 급식과 시설 유지에만 소요되는 금액이다. 스님들은 보금자리가 된 이곳에서 자신들의 주머니를 털어 내놓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또 가장 의미 있다고.
▲ 사하사암무료급식소 스님들의 요양병원 위문공연 모습. 두달에 한번씩 병원을 방문하고 환우들을 위해 위로하고 있다.

나눔은 삶이 되어
오랫동안 큰 스님들과 함께 활동하며 그 삶을 면면히 봐왔던 사하사암무료급식소 스님들은 “나눔이 곧 습관이 됐다”고 했다. 이웃을 살피기 위해 마을의 통장을 알아두는 것은 필수라는 용주암 정홍 스님은 나눌 수 있기에 행복하다고 말했다.

“통장들은 어느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도 알잖아요. 그분들을 알아두면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어 좋더군요. 그분들을 통해 손주를 데리고 폐지를 주우며 어렵게 사는 할머니들을 알게 됐어요. 밤에 몰래 쌀을 전달해드리려 갔는데 깜짝 놀라시며 어느 교회에서 왔느냐고 묻기도 했죠. 하지만 나눠드리러 가는 길은 정말 행복합니다.”

칠보사의 승공 스님은 급식소를 찾는 어르신들이 추운 겨울에도 슬리퍼를 신고 오면 곧장 뛰어가 털신을 사서 신겨드린단다.

“별다른 건 없습니다. 자동으로 몸이 움직이는 거죠. 요즘에는 인재불사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급식소 앞에 종립학교인 해동고교가 있어요. 해동장학회에 매년 장학금을 전달하는 것이 가장 보람된 일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뿐만이 아니다. 매년 김장을 담아 동사무소를 통해 전달하던 약천사 법인 스님은 3회째가 되던 해 직접 김장김치를 이고 배달에 나섰단다.

“소년소녀가장과 독거노인, 지체장애인, 시각장애인을 봤습니다. 매년 그분들에게 김치가 전달됐겠지 했어요. 근데 속상하게도 전달이 안 됐더군요. 보살님들과 함께 직접 김치를 가져다 드리면 사실 감사해 하는 건 결국 보살님들이었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 존재인지 봉사를 하며 알게 됐다는 거죠. 살아있는 가르침의 현장이 됩니다.”

사찰을 찾는 신도들에게 어느 집이 형편이 어렵냐고 묻는 게 버릇이 된 대부암 선혜 스님, 소리 소문 없이 보살행을 하는 것이 가슴 속 보배처럼 됐다는 무학사 보승 스님, 무슨 일이 있어도 급식소를 찾아 봉사하는 보살들이 가장 고맙다는 문수암 묘덕 스님, 총무 소임을 맡아 매달 회원 스님들과 불자들을 격려하며 살림을 보살피고 이끌고 있는 해장암 송우 스님, 성불사 혜원 스님, 길상사 자인 스님, 그리고 스님들을 따라 보살도를 실천하고 있는 재가불자 모임 지장회 이귀연 회장까지 사하사암무료급식소에서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담당하는 이 시간이 가장 행복한 시간들이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회장 혜우 스님은 “가난하고 병들고 약한 이들이 곧 저희의 부처님이십니다. 하지만 여기 이곳에서 함께 해주시며 마음 모아 주시는 급식소의 회원 스님들과 불자님들은 저의 가르침이 되십니다. 이분들을 통해 관세음보살님의 자비와 사랑을 배웁니다. 진심으로 이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 환우에게 음식을 전달하며 위로하고 있는 회장 혜우 스님과 전 회장 법인 스님

행복 위한 사회운동으로

스님들의 활동은 무료급식소에서 사회운동으로 발전해 나아갔다. 시대적 변화의 필요성에 맞춰 스님들은 매달 첫 주에 월례회를 개최하고 더 나은 나눔은 무엇인지 논의했다. 그렇게 스님들은 지역에 있는 병원들을 방문해 환우들을 찾아 손을 잡기 시작했으며, 그들을 위한 위로연을 두 달에 한 번씩 베풀었다. 그렇게 방문하고 인연을 맺은 병원만 6군데다. 또한 무료급식소에서 경로잔치, 장수사진 촬영, 다대포 해수욕장 청소년 선도 및 성폭력ㆍ가족폭력ㆍ학교폭력ㆍ불량식품 4대악 근절 캠페인, 사하구 관내 쌀 전달, 교통질서 확립 캠페인, 불자의 밤 한마당, 고혼영가 수륙재, 을숙도 낙동강 철새먹이 지원사업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먹고 사는 것이 어느 정도 해결되면 행복이라는 문제가 우리에게 닥칩니다. 어르신들의 남은 삶이 더욱 아름답게 마무리 되고 행복하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많은 사업을 펼치고 있습니다.”

스님들은 무료급식소를 통해 얻은 가장 큰 성과로 ‘화합’을 꼽았다. 활동하는 스님들과 불자들만이 아니라 지역민들과 하나가 됐다고.

“처음에 급식소 문을 열 때만 해도 주민들의 우려가 많았어요. 지금은 주민들이 이곳을 찾아 봉사도 하고 쌀을 기부하기도 해요. 지역민들이 나눔을 실천하는 구심점이 됐죠. 그래서 이제는 급식소가 지역민을 위한 공간으로 거듭나길 발원합니다.”

음식은 생명을 이어갈 수 있는 힘을 주는 필수요소다. 이런 에너지에 보살핌과 사랑이 더해지면 사람들은 삶의 만족을 얻는다. 나눔으로 얻은 행복으로 고슬고슬 지은 밥이 온 세상을 두루 밝히길 발원한다. 후원계좌 부산은행 101-2007-6614-08(사하사암무료급식소)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