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 떠나는 山寺紀行 - 단양 청련암

충북 단양군 대강면 사인암리 입구에 위치한 청련암은 조계종 제5교구 법주사의 말사이다. 새롭게 불사한 극락보전 뒤 기암괴석이 무척 아름답다.
1373년 고려말 나옹선사가 창건
목조대세지보살좌상 문화재 볼거리
빼어난 절경에 옛 藝人들 극찬 잇달아

조선 시대 천재 화가인 김홍도. 그가 한눈에 반한 절세의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단양 사인암. 자연이 조각한 깎아지른 절경으로 빚어진 수려한 경치를 새해 벽두부터 즐기려 찾는이들이 많다. 충청북도 단양은 자연풍경이 수려한 곳이 넘쳐난다. 대표 명소로는 ‘단양팔경’을 꼽는다.

특히 그 단양팔경 중 5경인 사인암(舍人巖)은 사계절 내내 각계절의 풍미를 만끽할 수 있는 곳으로 한 해 평균 40여 만 명이 찾는 대표 관광지이다. 처음에는 사인암을 사찰 암자로 착각해 들어왔다가 입구에 청련암이란 암자가 따로 있음을 알고 웃음짓는 관광객도 눈에 띤다. 추사 김정희는 해금강을 연상시키는 이곳을 두고 하늘서 내려온 한 폭 그림과 같다고 찬양했을 정도로 그 경관이 특이하고 아름답다. 고려시대 경사와 역학에 능통한 역동(易東) 우탁(禹倬ㆍ1263~1342)이 정4품 벼슬인 사인(舍人) 재직시 이곳서 머문 사연이 있어 조선 성종 때 단양군수인 임재광이 사인암이라 명명했다고 전한다. 그래서 암벽에는 우탁선생의 글이 아직도 새겨져 있다. 우탁은 어떤 사람인가. 단양이 낳은 불세출의 인물이다. 그가 원나라에 갔을 때 중국 학자 정관이 우탁의 역학(易學)에 대한 식견에 놀라 “우리가 논하는 주역은 동쪽에 이미 있었다”라고 말했다. 정관의 이 말은 이후에 그의 별호가 되었는데 그것이 역동(易東)이다.

이곳은 높이 50m의 기암절벽이 장관을 이루는데다 맑고 깨끗한 계곡 덕분에 2008년 9월 국가명승 제47호에 지정됐다.

아담한 청련암 경내. 오른쪽 바위 사이로 빼곡히 모습을 드러낸 전각이 신비감을 자아낸다.
웅장하기로 따지자면 구담봉이나 옥순봉에 비해 조금 덜 하지만 모양새나 감흥은 이들 못지않다. 하늘 높이 치솟은 기암들은 마치 여러 색깔의 비단들로 무늬를 짠 것처럼 색이 화려하다. 바위 꼭대기에는 노송이 여백을 메우고 남조천이 세월의 무게를 뿜어내며 면면히 흐른다. 사인암 아래쪽에는 숱한 시인과 학자 묵객들이 스스로 새겨놓은 글귀와 이름들이 빼곡하다. 사인암 가는 입구에 위치한 작지만 예쁜 암자가 바로 청련암이다. 사력을 살펴보니 고려 말기인 1373년에 나옹선사가 창건했다 전한다. 1592년(선조 25)의 임진왜란 때 소실돼 빈 절로 내려오던 것을 1710년(숙종 36) 인근 대흥사(大興寺) 승려들이 중창하여 선실(禪室)을 세우고 청련암이라 했다. 이후 1741년(영조 17) 장마 비로 떠내려가자 마을사람들의 시주를 얻어 1746년 중건했다. 하지만 그 뒤 다시 폐허가 되었던 것을 1953년 재건해 오늘에 이른다.

청련암은 말 그대로 작은 암자다. 당우도 극락보전과 요사채, 칠성각 정도로 단촐하다. 그런데 유명한 것이 하나 더 있다. 본존불로 봉안된 조선 후기 목조대세지보살좌상(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 309호)이다. 이 불상은 원래 청련암이 단양군 황정리 산 28에 소재했을 때 봉안한 아미타삼존불의 하나로 대세지보살상이다. 1954년 청련암이 현 위치로 옮겨지면서 본존상은 없어졌고, 관음보살상은 제천 원각사로 그리고 대세지보살상은 이곳으로 왔다. 복장은 지금은 도난된 상태다. 높은 보관을 쓴 보살상으로 전체적인 모습은 불신에 비해 얼굴이 작은 편이다. 보관 안의 머리는 높게 보발을 묶고 일부는 어깨로 늘어뜨리고 있다. 옷은 조선시대 후기 불상의 일반적인 표현처럼 대의를 오른쪽 어깨만을 둥글게 가린 편단우견에 속에 편삼을 입고 있는 형상이다. 편삼자락이 대의에 낀 모습이 도식적으로 표현돼 배 부분에 둥근 옷 주름이 옆으로 두 번 겹쳐 있는데, 이는 충북지역 목조상서 자주 볼 수 있는 특징이다. 손은 아미타인으로 따로 만들어 끼었으며 몸에 비해 크게 조각되었다. 보관 역시 나무로 형상을 만들고 표면에 화염문과 운문, 새 등을 금속으로 조각해 부착했으나 다소 부식이 있다. 이 상의 조성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인근 제천 신륵사의 목조삼존불상(擁正 8년, 1730년 작)과 양식적으로 연관을 보이는 것으로 보아 18세기 전반 작으로 추정된다.

병풍처럼 둘러쳐진 기암괴석들이 절경을 자랑하는 단양8경중 하나인 ‘사인암’ 전경.
청련암의 목조대세지보살좌상은 비교적 큰 규모의 불상으로 제천 원각사의 목조관음보살상과 더불어 원 청련암의 아미타삼존상이던 유래가 있는 상으로, 양식적으로도 같은 특징을 보임을 확인할 수 있다. 배 부분에 둥근 옷 주름이 옆으로 두 번 겹쳐 있는 점이 특징인데, 이와 같은 예는 제천 신륵사의 목조보살좌상(1730년)에서도 볼 수 있어서 양식적으로는 18세기 전반 충북지역에서 유행한 불상양식의 한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깎아지른 절벽에 위치한 칠성각은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야 하지만 ‘참나’를 만나기 위해 잠깐 좌정하며 속세의 번뇌를 조금 떨어내기에 안성맞춤이다.
목조대세지보살좌상(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 309호).

 


주변 광광지

도담삼봉
산수화보다 더 그림같은 단양팔경
단양 최고의 명소다. 단양군을 중심으로 12㎞ 이내 자리한 명승지를 지칭하는 단양팔경은 이름처럼 아름다운 8곳의 명승지로 나뉘어 있다. 봄이면 철쭉이, 가을에는 단풍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하선암과 중선암, 상선암을 비롯해 고려 말 학자 ‘우탁’이 사인재관 벼슬에 있을 때 휴양하던 곳인 사인암, 거북과 같은 기암괴석이 돋보이는 구담봉, 퇴계 이황이 이름을 붙인 옥순봉, 정도전이 머물던 도담삼봉(왼쪽 사진), 무지개 모양의 돌다리가 걸려 있는 석문 등이다. 그중 도담삼봉은 남한강 상류에 3개 기암으로 이루어진 섬이다. 짙푸른 강물 한가운데 우뚝 솟은 기암괴석이 고고한 자태를 뽐낸다. 특히 이곳은 정도전이 중앙봉에 정자를 짓고 경치를 감상하고 풍월을 읊었던 곳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이곳 이름을 따서 자신의 호를 ‘삼봉’이라고 지었다고 전해진다.

온달관광지
단양팔경과 더불어 단양을 대표하는 관광지 중 하나는 ‘온달관광지’다. 바보온달과 평강공주 이야기를 담은 이곳은 민속놀이장과 향토음식점, 온달촌, 온달관, 전통혼례장 등 다양한 볼거리가 자리한다. 또한 언제 세워졌는지도 가늠하기 힘들 만큼 오랜 세월을 머금은 온달산성과 신비로움을 간직한 온달동굴도 볼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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