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전 스님 (제주 보덕사 주지)

혜전 스님은 … 1983년 동학사 승가대학 대교과를 졸업하고 1994년 동국대 정보산업대학원 최고 관리자 과정, 2003년 동국대 불교대학원 불교 경영자 최고위 과정을 수료했다. 2008~2009년에는 제주시자원봉사자 아카데미 과정을 수료하고 요양보호사 자격증 1급, 보육교사 자격증 2급을 취득하는 등 자원봉사의 이론을 겸비했다. 스님은 지난 1975년 도남 보덕사 주지에 취임 후 2006~2015년 전국비구니회 제주지회장을 역임했고, 현재 1990년 안봉려관 후손 문도 대표, 보덕사 마야봉사회 지도법사, 보덕사 염불봉사회 회장 소임을 맡고 있다.
소외된 이웃향한 자비행
40여년간 양로원·복지관서 봉사
2013년 김만덕상 봉사부문 수상

제주불교 역사 바로 세우기
2010년 봉려관선양회 출범으로 탄력
봉려관 스님 조명 세미나 및 행적비 건립

올곧게 살아온 수행자의 마음은 소외된 이웃들에게도 늘 한결같다. 부처님의 자비 나눔을 실천하는 수행자로서 40여 년을 묵묵히 소외된 이웃들의 그림자가 돼 준 제주 보덕사 주지 혜전 스님. 그 공로를 전 도민들로부터 인정받아 지난 2013년 10월 제 34회 김만덕상(봉사 부문)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부처님의 자비를 실천, 제주도민이 존경하는 의녀 김만덕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김만덕상은 1794년 제주도에 태풍과 흉년이 겹치면서 대기근이 일어나자 전 재산을 풀어 육지에서 쌀을 사들인 후 굶주림에 허덕이던 주민들에게 나눠주는 등 천여 명의 목숨을 살린 의녀 김만덕을 업적을 잇고자 제정한 상이다. 나라님도 하기 어려운 구휼(救恤)을 일개 평민인 김만덕이 사재를 털어 나눔을 실천했듯 혜전 스님도 40여년이란 세월동안 소외된 이웃들에게 관세음보살로 화현해 시대를 넘어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커다란 귀감이 되고 있다.

“지금은 트럭이나, 오토바이 등으로 폐지를 줍는 어르신들이 많지만 20~30년 전만해도 손수레는 그 부류에서도 상류층이었죠. 특히 그 당시에는 복지혜택이 지금과 같지 않은 때라 장애인들이 절뚝거리는 걸음으로 폐지 줍는 모습을 보면 그냥 지날 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가다가도 차를 멈추고 작지만 요구르트, 우유 등을 사서 빨대를 꼽아 드리면 어린아이처럼 마냥 행복해 하더군요. 그 모습을 보며 이보다 더 큰 행복이 또 있을까 생각했었지요”

혜전 스님은 지난 1975년 제주 보덕사 주지로 취임하며 매월 정기적으로 도내 복지시설을 비롯해 병원, 교도소 등 소외된 이웃들에게 30년 이상 자비행을 펼쳐 왔다. 고통받고 그늘진 곳이라면 어디든 서슴치 않고 달려가길 주저하지 않았다. 어려운 이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무주상 보시로 실천하는 자비행은 스님의 봉사 활동을 더욱 값지게 했다. 모래알이 쌓여 태산을 만들듯 한 순간에 큰 재산을 쾌척하기보다는 늘 주변에 도와야 할 어르신들이 있으면 주머니를 ‘탈탈’ 털어 어르신들에게 조그만 것이라도 드려야 혜전 스님은 직성이 풀린다. 그 마음씨가 도민들의 입소문을 타고 전해져 상으로 답례가 돌아온 셈이다.

혜전 스님은 “불교계 시설로 제주양로원이 있었어요. 1980년대만 해도 모두가 어렵고 힘들게 살 때였죠. 요즘은 성인용 기저귀 같은 게 있지만 그 당시는 천으로 해결할 때였습니다. 치매 앓는 어르신들의 경우 인분을 여기 저기 묻혔는데 그거 치우려고 고생 많이 했죠.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가 제일 열정적으로 봉사했던 시간이었습니다.(웃음)”

자비를 실천해야 할 수행자로서 할 일을 다했을 뿐이라는 혜전 스님은 “만덕 할머니가 어려운 도민을 구휼했듯 수행자로서 도민의 정신적 치유와 물질적 보시 등을 통해 남은 생도 소외된 이웃을 향한 보살핌의 삶을 계속하겠다”고 앞으로의 원력도 피력했다.

2013년 김만덕상 수상후 우근민 前도지사와 기념촬영
김만덕상 수상 4개월 뒤인 2014년 2월에 혜전 스님은 상금 500만원 전액을 들고 서울로 올라와 대한불교 조계종 산하 아름다운 동행(이사장 자승 스님)에게 전하며 훈훈한 감동을 자아냈다. 이날 성금은 조계종이 아프리카 탄자니아에 개발을 추진 중인 농업기술학교 건립불사에 전달됐다.

봉사활동이 점차 확대되고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자 봉사단체 창립의 필요성을 느낀 스님은 지난 2001년 ‘자리이타의 보살도와 무주상보시를 실천하며 더불어 사는 따뜻한 세상을 만들자’는 취지로 보덕사 신행단체인 마야봉사회를 창립한다. 이후 스님은 관음사 산하 제주양로원·요양원, 태고복지재단 산하 제주태고원 등 교계 노인복지시설을 방문해 중식제공, 금일봉 전달 등 봉사활동 규모를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확대 개편한다. 또한 혜전 스님은 수행자 신분으로 어르신들이 정서적 안정을 찾도록 염불기도를 통해 마음까지 치유해 드린다.

“신도들이 큰 힘이 돼 주었습니다. 어르신들에게 더 맛난 음식도 차려줄 수 있고, 성금도 조금이나마 보태드릴 수 있으니 흐뭇하죠. 무엇보다 신도들에게 부처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할 기회가 주어졌다는 데 기뻤습니다.”

마야봉사회는 창단 10년 째인 지난 2011년 6월 그 공로를 인정받아 백범김구기념관 컨벤션홀서 개최된 제10회 전국사회복지자원봉사대회서 보건복지부장관(단체부문) 표창을 수상했다. 이외에도 혜전 스님은 봉사 전문 지식을 갖추고자 지난 2008년 제주시 자원봉사센터 아카데미 과정을 수료한데 이어 2009년에는 제주전문대학(현 제주국제대)서 보육교사 자격증 2급과 요양보호사 자격증 1급을 취득했다. 또한 마야봉사회는 지난 2009년 일일식당 운영 수익금 1천1백만 원을, 2014년 4월 일일찻집 운영수익금 1천 만원 등을 도내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달라며 제주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전달하기도 했다.

“신도들과 합심해 소외된 이웃을 돕자는데 의견이 모아지면 일일식당을 열죠. 신도들에겐 힘이 부치고 부담 가는 일이지만 그래도 자신의 일처럼 도와주는 신도들에게 감사할 따름이죠. 항상 봉사 수익금 일부는 남겨놓지 않고 모두 사용하죠. 수익금이 혹 모자라면 더 얹어서 전달합니다. 그래서 신도들에게 늘 말씀드리죠. 부처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은 당연한 불자의 도리이고, 지속적인 보살행을 통해 사회의 등불을 밝혀야 한다고 말입니다. 마야봉사회는 앞으로도 일손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지 나눔 활동을 펼칠 계획입니다.”

특히 혜전 스님은 현 신도들 뿐 아니라 지금은 연로해 요양원 등에 기거하는 전 신도들에게도 지속적으로 마음을 쓴다. 혜전 스님은 정기적으로 옛 신도들과도 가끔 조우해 부처님 가르침을 교감한다. 10여년 전 부터는 특히 인간방생 일환으로 치매 등으로 요양시설이나 혼자지내는 옛 신도들을 직접 찾아 나서 위로해주고 봉사한다.

“신도님들이 치매 등으로 인해 사찰에 올 수 없으면 직접 찾아갑니다. 기억 못하는 분들도 많지만 가끔 우리를 알아봐 주실 때 그 기쁨은 상상 그 이상이죠. 그날 챙겨온 빵이랑 음료수를 직접 입안에 얹어 드리면 신도님들이 눈물 흘리세요. 말하지 않아도 아시는 거죠. 저 뿐만 아니라 함께 찾아간 신도들도 가슴 뭉클하답니다.”

또한 혜전 스님은 전국비구니회 제주지회장 소임을 맡은 지난 10여 년 동안 도내 비구니스님들과 매년 연말이면 이웃들에게 ‘자비의 연탄’을 전달한다. 비구니회는 연탄 뿐 아니라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병원비 마련에 어려움을 겪는 어르신들이 입원한 병원을 방문해 성금을 전달하는 한편 경전을 독송하며 어르신들이 병고서 조속히 완쾌되기를 부처님께 기원 한다.

혜전 스님은 “한해를 정리하는 연말이면 사회 전반적으로 어수선한 상황이어서 소외된 이웃들에 대한 관심이 줄 수밖에 없다”면서 “이웃들을 보듬기 위해 성품을 직접 전달하게 됐다”고 자비나눔 실천 배경을 설명했다.

혜전 스님은 지난 2003년 전국비구니회 중앙운영위원으로 추대된 뒤 2006년 전국비구니회 제주지회장 소임도 겸임했다. 이어 2007년 중앙 수석부위원장을 맡아, 원만히 그 역할을 수행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스님은 제주불교의 독특한 문화적 특색을 감안해 종단을 초월, 도내 비구니 스님들이 참여해 화합과 상생의 모범 사례를 만들었다.

2010년 11월 봉려관선양회 제막식 모습.
또한 혜전 스님은 지난 2013년 백흥암 비구니 스님들의 수행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길위에서’ 제주상영도 적극 추진했다. 당시 영화 ‘길 위에서’는 제주서 상영관을 잡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혜전 스님은 비구니 스님들의 의견을 모아 전국비구니회 제주지회 주관 하에 제주상영을 결정한다. 혜전 스님의 선견이 있었던 걸까. 영화는 사흘 동안 12차례 제주영화문화예술센터에서 상영되는 동안 제주불자들의 뜨거운 반응으로 소위 ‘대박’을 쳤다. 매회 상영마다 줄줄이 매진사례가 이어졌다.

“사흘 동안 어린이와 학생들을 비롯해 4500명이 영화에 그려진 스님들의 출가의 인연과 수행 과정을 보면서 불교와의 선근 씨앗이 싹텄으리라 믿어요. 또한 타종교에 이해심을 넓히기 위해 천주교의 수녀님과 원불교의 교무님 등을 초대, 영화를 통해 상대의 종교를 이해하고 상생의 길을 마련하는 토대가 됐다고 봅니다.”

혜전 스님이 수행자로서의 삶을 다하는 그날까지 놓을 수 없는 일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제주불교 중흥조 봉려관(蓬廬觀, 1865∼1938) 스님에 대한 재조명이다.

남성중심인 근현대사 역사 속에서 봉려관 스님은 1990년대 이르기까지 ‘스님’이란 호칭보다 ‘화주’, 심지어 ‘무당’이라 불렸다. 봉려관 스님의 5대 법손인 혜전 스님은 이 같은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고 훼손된 명예를 되찾는데 헌신한다.

“봉려관 스님의 명예 회복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처럼 어려웠습니다. 봉려관 스님의 부족한 문헌기록을 발굴해 이를 증명해야 했죠. 봉려관 스님의 문헌기록과 증언자를 찾아 20여년 전 부터 일본을 비롯해 부산, 통영 등 전국 각지를 돌며 자료수집에 나섰습니다. 비로소 통영의 한 사찰서 봉려관 스님이 화주한 탱화를 찾아냈습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지난 2006년 6월 1일 서울 비구니회관서 열린 ‘한국비구니 수행전통포럼’에서 발표한 ‘제주불교 중흥과 봉려관 스님’이었습니다.”

이 포럼서 혜전 스님은 1918년 3·1운동 보다 5개월 앞서 일어난 ‘무오법정사 항일운동’에 봉려관 스님이 깊숙이 관여했을 개연성이 충분하다고 주장을 제기 했다.

봉려관 스님을 통한 제주불교 역사 바로 세우기는 ‘봉려관 선양회’ 출범으로 더욱 탄력을 받는다. 지난 2010년 11월 출범한 봉려관 선양회는 도내 사부대중이 종파를 초월해 스님의 업적과 행적을 널리 알리겠다고 천명한다.

혜전 스님은 “봉려관 스님은 200년의 명맥불교를 마감하고 제주 땅에 불심을 심고 가꾼 것은 물론 법정사 항일항쟁 주역인 스님들께 자금을 지원하는 등 참된 애국자요, 선각자”라며 “하지만 열반한 지 72년이 지난 지금 스님의 이름마저 잊혀지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창립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스님은 “만해사상실천선양회는 20년 전부터 한용운 스님의 선양사업을 펼치며 만해대상 시상을 비롯해 장학·포교·청소년문화·학술연구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며 “봉려관선양회도 스님의 일대기를 정립하고 재조명하는 세미나 및 강연회 등을 통해 업적을 널리 홍포 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아름다운 동행에 김만덕상 상금 전액을 기부한 혜전 스님.
선양회 창립 후 2011년 8월 봉려관선양회는 이향순 교수(미국 조지아대)를 초청, ‘봉려관 연구의 현황과 과제’라는 주제로 강연회를 개최했으며, 지난 2012년 7월 관음사 경내에서는 봉려관 스님이 관음사 창건을 위해 기도한 해월굴에 스님의 행적비를 세웠다. 또한 지난해 12월에는 관음자비량합창단의 불음을 통해 봉려관 스님의 항일항쟁 업적을 기린 ‘칸타타(교성곡)’를 제작해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혜전 스님의 끈질긴 노력 덕분일까. 도내외 많은 사부대중이 이제는 봉려관 스님을 제주불교의 중흥조요, ‘관음사’ 개산조로 칭송하고 있다.

이처럼 혜전 스님은 조선중기 200여 년 간 끊긴 제주불교를 다시 일으킨 안봉려관 스님같이 남성보다 더 강직한 성품을 닮았다. 봉려관 스님이 수행자를 뛰어넘어 제주여성 특유의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고 치열한 삶을 추구한 것처럼 혜전 스님도 안봉려관 스님의 모습을 점점 닮아가며 대중들에게 의지처가 돼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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