맷돌 심봉 꽂힌 것처럼 인간에게도 뿌리가 있다

꼭 그렇게 맡겨 놓고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이 돼서 체험을 해라.
하나하나 체험을 하다 보면 완성된 참다운 인간이 돼서
훌륭한 자유인이 될 수 있다.

(지난 호에 이어서)
질문자2(남) 예. 스님께서 말씀하시는 영원한 친구, 자기 자신의 주인공 있죠? 그런 자기 자신의 주인공인 한마음이 항시 좋은 것만 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나쁜 걸 하려고 그러고, 열심히 살려고 그러는 게 아니라 놀면서 그냥 많은 것을 바라기만 하고 그런다면 그런 주인공도 그렇게 맡겨 놓고 따라야 되겠습니까?

큰스님 이거 봐요. 그렇다면 주인공이 말이요, 그 사람을 올바로 이끌어 가기 위해서 더 타격을 주는 거죠. 타격을 줘서 자기 자신을 생각하게 만들어서 다시 그 후에 끌고 가요. 참 묘한 겁니다. 그러니까 잘되는 것만 법이 아니고 안되게 하는 것도 법이다 이겁니다. 자기 주인공은, 자기가 자기 마음을 다스리고, 자기를 다스리고 나가야 할 텐데 다스리지 않고, 즉 말하자면 악으로 나간다든가 잘못된 도둑질로 나간다든가 이런다면 그 주인공은 도둑질하게 내버려 둬요. 열 번이고 다 내버려 둬서 인생관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어요. 한 중간쯤 가다가 만들어 가지고선 다시 회전을 해서 나와요. 조금이라도 기미가 보이면 다시 회전을 해서 나오죠.

그러니까 그런 것도 그래요. 지금 댁이 억소리야, 그게. 얼른 쉽게 말해서 어떻게 사람이 나쁘게만 나갈 수 있겠나? 때에 따라서 나쁜 생각도 해 보는 건 앞에 너무 고달픈 일이 생기고 그 참, 살려고 바둥거려도 안될 때 막생각을 해 보는 수도 있지. 그러나 막생각이 들걸랑은 ‘주인공, 내가 이렇게 막생각을 하게 해서 되겠어?’ 하고 거기다 맡겨 놓으면 그렇게 이끌고 가진 않아요. 나는 어저께부터 얘기할 때 “꼭 그렇게 맡겨 놓고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이 돼서 체험을 해라. 하나하나 체험을 하다 보면 자기는 완성된 참다운 인간이 돼서 훌륭한 자유인이 될 수 있다. 자기 내면의 친구를 정말 그대로 서로 자문자답하면서 리드해 나갈 수 있는 그런 내 능력이 생긴다.” 이러는 겁니다. 또요?

질문자3(남) 어제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죽을 때 육신은 데려가지 못하고 영혼은 영원히 지속된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영혼이라는 게 각자 개개인이 다 영혼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면 ‘한마음이라는 건 둘이 아니다. 일체 만물은 한마음이다.’ 이렇게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영혼과 한마음이라는 게 다른 것인가가 궁금하고요, 그다음에 모든 생물에는 불심이 있다고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태양이나 바람, 모든 무생물 자체에도 불심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큰스님 아, 하나 대답하걸랑은 얘기해, 허허허. 두 번째 다시 얘기하고. 지금 한마음이다 이런 것이 왜 한마음이냐? 영혼과 한마음이 다르냐, 똑같으냐? 인제 댁하고 지금 나 얘기했지? 얘기하는 순간은 전력이 들어온 거와 마찬가지야. 전기선이 붙은 거와 마찬가지야. 그래서 한마음이야. 그런데 그 말이 끊어지면 너는 너고 나는 나야. 이 영원한 내 친구는 각자 있어. 근데 그 각자 있는 그 자체가 전력과 같고 광력과 같아. 그러니까 다시 말해서 이렇게 저거 할 땐 선이 탁 이어졌다가 또 그냥 너는 너 주인공이고 나는 나 주인공으로 떨어져. 그러니까 떨어졌다 붙었다 떨어졌다 붙었다 이렇게 돌아가니까 이것은 한마음이면서도 너는 너가 있고 나는 나가 있다 이거야. 그러니까 우리가 전기도 꺼졌다 켜졌다 꺼졌다 켜졌다 하는데, 이 전구에서만 그렇지, 전력은 다 똑같아.

질문자3(남) 그러니까 하나가 둘일 수도 있고 둘이 하나일 수 있다는 거….

큰스님 그렇지. 아니, 만 명일 수도 있지, 이 의식 자체가 이 영혼의 한생각을 하면. 그래서 부처님께서 이런 말을 했거든요. 내 마음 한생각에서 분리돼서 나가는 거를 그 천백억화신이 털구멍을 통해서 들어왔다 나갔다 하느니라. 그랬는데 지금 시쳇말로 한다면 대기권입니다. 내 이 원자에서 입자가, 입자에서 분자가, 분자가 화해서 그냥 이 두리를 다 하고 있거든. 빛보다 더 빨리 왔다 갔다 하면서 말이야, 생각이. 지금도 여기 앉아서 그 생각을 한번 해 봐요. 집에 갔다 오너라 그러고 금방 집에 가서 집을 보는 생각과 동시에 회사 보는 생각을 해 봐. 회사도 금방 갔다 오고 집도 금방, 아이고, 일분일초도 안 걸려. 그것과 같은 거지. 그러니 어찌 조화를 이루고 돌아가지 않겠느냐 이거지. 그러니 나쁜 놈도 좋게 만들 수 있는 건 내 주인공에 맡겨서 그 주인공에 내가 잠시, 만날 들어왔다 나갔다 하면 착해져, 허허허. 나쁜 놈도 착해져. 그러니까 그렇게 우리가 해 나갈 수 있는 거죠. 또 그다음에 뭐라 그랬지?

질문자3(남) 그다음에는 미생물이든 모든 생물에는 불심이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생물에, 이런 카메라 같은 것에도 불심이 있는 건가 궁금합니다.

큰스님 댁이 불심이 있기 때문에 그것도 있는 거지. 지금 우리가 있기 때문에 이것도 돌아가. 왜 돌아가느냐? 이게 책상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돌아가는 거야. 법상이라는 이름을 우리가 붙인 거야, 즉 말하자면. 그래서 이것이 우리에게 쓸모가 있어. 이거를 항상 움죽거리게 만들지. 이것도 돌아가고 있어.

질문자3(남) 그러면, 우리 중생들 생각 자체가 멈췄을 때는 부처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무생물들은 생각이 없기 때문에 그 자체가 부처 아닙니까?

큰스님 무생물들은, 즉 말하자면 무정물, 무생물 이런 것이 전부 그 생명이 있는 것은 벌써 깎아서 이렇게 나왔기 때문에, 생명이 있기 때문에 이것도 둘이 아니라는 얘기야. 그러니 이것도, 즉 말하자면 우리 몸과 같다 이거지. 우리 몸과 같아서 이것도 변하고 부서지고 우리 몸도 변하고 부서지고, 그렇게 해서 없어지지마는 나무라는 근본은 그대로 있어. 이게 나무로 만들었지. 책상이라는 이름은 없어져도 이게 나무라는 이름은 영원해. 또요? 허허허. 궁금한 거 있으면 말씀하세요.

질문자3(남) 다시 한 번 물어보겠는데요, 아까 스님이 내 주인공과 나와 자꾸 이렇게 말씀하시는데요, 과연 나하고 내 주인공인 나하고 어떻게 구분하는 건지, 그리고 그….

큰스님 댁의 생명하고, 생명 아시죠? 생명하고 마음 내는 거하고 둘입니까, 하납니까?

질문자3(남) 생명 그 자체는 그 육신이 돌아가는 거 그거하고 마음하고 같은 거 아닙니까? 머릿속에 있는 마음이나 원래…, 구분을 잘 못하겠습니다.

큰스님 하하하. 아니, 생명과 마음과, 마음 내면서 이러고 우리 사는 거와 육체가 움죽거리는 게 삼합이 한데 합쳐서 돌아가지, 삼위일체로 돌아가지, 어떻게 따로따로 있소? 그것이 한데 삼위일체로 돌아가는 자체가 주인공이야. 주인이자 공했단 말이야. 맷돌인데, 이걸 맷돌로 칩시다. 심봉이 딱 아래 위 끼워졌어. 그런데 이 심봉이 끼워졌기 때문에 정상적으로 맷돌이 돌아가는데 심봉이 먼저냐, 이 맷돌이 먼저냐 그런다면 이게 어떻게 되겠소? 맷돌하고 심봉하고 어떻게 둘이오? 하하하. 그러니까 심봉이자 맷돌이지. 그러니까 주인공이지? 응.

질문자3(남) 나를 완전한 주인공에게 맡기라고 하시는데 그 완전한 주인공은 누구고 나는 누구냐 이거죠.

큰스님 맷돌은 심봉을 믿어라 이거야. 심봉 때문에 맷돌이 돌아가니까, 얼른 쉽게 말해서. 심봉은 움죽거리지 않거든. 힘으로 인해서 그 맷돌이 돌아갈 뿐이지.

질문자3(남) 육신이 쇠해서 제 생명이 다했을 때요, 지금 나는 없어지고 영원한 나는 남아서 다시 후세까지 연결된다고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그 후세에 남는 나와 지금의 삼위일체인 나하고 어떻게 구분되는 건지 가르쳐 주십시오.

큰스님 그러니까 내가 말하지 않소? 업이라는 거는 다른 게 아니라 우리 일상생활에서 물질로만 살던 그 의식이, 내 요런 거 하나 말하죠. 여러분이 지금 이 물질로다 살던 세상에서는 깊은 물을 보면 빠져 죽을까 봐, 의식이 벌써 빠져 죽을까 봐 안 들어가죠? 불이 그냥 막 활활 오르는 데 못 들어가시죠? 타 죽을까 봐. 아이, 안 그래요? 대답해 봐요.

질문자3(남) 그렇죠. 하하하.

큰스님 예. 그리고 깡패 소굴이 있어서 칼을 가지고 총을 가지고 막 찔러 죽이는데, 이런 데는 무서워서 못 들어가죠?

질문자3(남) 예.

큰스님 예. 그래, 세 군데를 비유했어요. 그렇다면 지금 산 사람들이 그렇게 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죽어서도 그 의식은 남아 있어요. 살던 의식이 남아 있어 가지고 어떡하느냐 하면, 죽어서 몸뚱이는 태웠든지 갖다 묻었든지 다 사대로 흩어져 버렸는데 그 의식이 남아 가지고선, 영원한 생명의 근본은 그냥 있고 그 의식이 작용을 하는데 물을 보면 빠져 죽을까 봐 글쎄, 자긴 체도 없는데, 빠져 죽을 물건도 없는데 빠져 죽을까 봐 애를 쓰고 못 가는 거예요, 의식이. 허허. 또 불에 들어가서 타 죽을까 봐 못 가고 산이 높으면 은산철벽이 높아서 못 가는 거예요, 높아서.

글쎄, 이 마음이 지금 지구 바깥으로도 나갈 수 있는데 그 의식이 지금 물질로만 살던 의식이라서 그냥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아휴, 빠져 죽으면 어떡하나.’ 하고 그냥 뱅뱅 도니까, 저 기독교에서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이랬는데 요단강을 건너갈 수가 있어야지, 빠져 죽을까 봐. 또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강을 건너서 우리 같이 만나서 같은 자리에 도달하자 이러는데도 내가 빠져 죽을까 봐 건너갈 수가 있어야지. 또 불에 타 죽을까 봐 건너 갈 수가 있어야지. 산이 높아서 넘어갈 수가 있어야지. 여러분, 지금 물질세계에서, 그 의식화된 거기에서 살면서도 그걸 벗어나서 살라 이겁니다. 그게 영원치 않다. 그러니 산 생각으로서 모든 걸 벗어나야 한다. 그래서 맡기라는 겁니다.

질문자4(여) 제가 한 시간에 천 번을 빌거든요. 좀 잘살았으면, 잘됐으면, 부자로 좀 살아 봤으면, 남같이 많이 좀 깨끗하게 잘해 가지고 잘 먹고 잘살아 봤으면, 이런 마음이 한 시간에 몇 번씩 그냥 돌거든요. 도는데 그것을 다 스님은 그냥 버리고 내 마음으로….

큰스님 아니, 버리라는 게 아니라 그게 수없이 돌아가는 게 이게 공했다는 뜻이거든요. 고정됨이 없이 막 돌아간다 이거죠. 지금 우리 보살님은 그래도 딴 분보다도 좀 빠릅니다. 아주 여기 믿고 나가는 힘이 남보다는 유달리 좀 있다고 봅니다, 처음에 봤을 때에. 그러나 인식을 조금 잘못해서 나가기 때문에 그것이 완전히 서지 못해서 그렇지 그것만 완전히 잡아 준다면 이거는 대인이 될 수도 있는 그런 무기가 될 수 있죠. 그러니까 여러분이 좀 더 공부를 잘하고 인식을 잘해서, 자기가 자기를 다스려서 큰 기둥을 만들 수 있는 그런 여건을 세우시라 이거죠.

한 시간에 몇 번이 아니라 일분일초에도 지구가 말입니다, 일분일초에 지구가 7바퀴 반씩 돌아가요. 어때요? 거짓말입니까? 조금 보탰습니까? 보태기도 했을는지 모르죠. 하하. 그러니 지금 사람 한생각이 변동이 얼마나 많은지, 그냥 요 변덕 저 변덕 요 변덕 저 변덕 돌아가는 그게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말입니다, 그 변덕이 없으면, 24시간 동안에 8시간을 일을 한다고 봅시다. 요거 했다 저거 했다 저거 집었다 요거 집었다, 허허허, 그 대신 몸이 또 그렇게 요변덕을 떨어요. 아이, 보세요, 글쎄. 요거 집어서 요리로 오고 요거 집어서 요리로 오고, 저기 갔다 저기 갔다 요 사람 만났다 저 사람 만났다, 요변덕을 하루 얼마씩 떱니까. 갔던 데 또 가고 갔던 데 또 가고, 이리로 발 디뎠다 저리로 발 디뎠다…. 아니, 상점에서 일할 때도 도섭을 부리지? 허허허. 그러니 이게 그냥 있는 겁니까? 그냥 돌아가는 거지, 그냥. 마음이 돌아가지 않으면 육체가 돌아가고 육체가 돌아가지 않으면 마음이 돌아가고, 온통 가만히 있지를 않아요. 그러니 주인공이죠.

질문자4(여) 주인공을 꼭 잡아야만….

큰스님 예. 자기 주인공이죠. 돌아가는데, 아까 맷돌 심봉 꽂힌 것처럼 인간에게도 뿌리가 있다 이 소리입니다. 인간의 뿌리가 있기 때문에 그냥 돌아가는 겁니다, 그게. 중심이 있기 때문에 돌아가지 중심이 없는데 사람이 어떻게 돌아갑니까? 중심이 없으면 미쳤다 그러고 목석이라 그럽니다. 그러니 중심이 있기 때문에 그것이 심봉이라 이거야. 중심이 있기 때문에 프로펠러가 돌아가, 비행기도. 중심이 있기 때문에 차바퀴도 돌아가고. 사람도 중심이 있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앉아 계시지, 중심이 없다면 미친 것처럼 막 이러고 뭐, 바깥으로 돌아다니고 해갈을 할 겁니다.

그러니 우리 이렇게 몇 안 되는 이 식구라도 제발 공부를 열심히 하시면서, ‘그저 바쁘니까 난 못 나와.’ 이게 무슨 일입니까? 우리가 시간을 내기에 달려 있지 아니, 누가 자기를 꽁꽁 붙들어 매 놨습니까? 왜, 한 시간이든지 두 시간이든지 세 시간이든지 나올 때는 문을 닫고도 나오는데, 어떤 사람은 그럽디다. 문을 닫고 나와서 다녀가니까 그 시간 덜 팔았던 양을 저녁에 다 벌충했다고 그럽디다. 네? 생각하기에 달린 거예요. 내가 이렇게 가서 이거를 배우는 이 시간이 더 소중하다 할 때 물질이라는 거는 저절로 따라 들어오게 돼 있어요. 물질을 내가 자꾸 좋아서 쫓아가도요, 안 되죠. 달아나가요. 그러니까 물질이 내가 가만히 앉아 있을 때에 그게 쫓아오도록 만들어야 되는 지금 세상이야. 이렇게 빠르게 살아야 돼. 지금은 몸뚱이가 쫓아다녀서 안 돼요. 앉아서 끌어들이는 세상이야. 끌어들이기도 하고, 앉아서 모든 일을 책정을 다 해서 주인공에 맡겨서 다 해 놓고는 몸뚱이는 그때 슬슬 부지런히 돌아다니는 거야. 방편이야, 이거.

그래서 사람은 멋지게 살 수 있다. 나 이래도, 생기긴 못생기고 그래도 멋지게 사는 사람이야, 나는. 여러분이 돈이 아무리 많다 해도 나만치 많지 못해. 왜? 나는 짊어지곤 안 다녀. 그러나 내가 쓸 때에 쓸 수 있으면 되는 거지 내가 짊어지고 다니면 도둑놈 끓지, 강도 쫓아다닐 테지. 내가 왜, 골이 비었나, 그 짓을 하게? 하하하. 아, 나 쓸 때 딱딱 쓰면 되는 거야. 불쌍한 사람 보면 도와줄 수 있고, 하다못해 짐승이든지 뭐든지 다, 내 눈에 띄는 거, 어디 길에 가다가도…. 오늘도 술 먹고 그냥 해갈을 하는 사람 여기서 만났어. 그래서 내가 잔등이를 두들겨 줬더니 그냥 들어오는 거야. 그러나 그 사람이 어느 때 가면 인제 새사람이 될 때가 올 거라고요. 그 마음 한생각 착, 그 뽀뽀해서 내보내는 그 마음이…. (녹음 안됨)

이런 시점에 앉아서 이 세계를 바꾸고 세계를 보고 있듯이, 세계를 보면 내가 그걸 보고서 현실로 내가 모든 것을 절제하고 가고 판단하고 가고 책정하고 가야 될 거 아니냐 이거야. 그러면 그대로 되는 거야. 그걸 못 믿으면 당신네들이 모두 실험을 해 봐라 이거야. 해 보는 거 해 보지도 않고. 돈이 들어서 못해 볼 거야? 가난해서 못해 볼 거냐고? 누구든지 못났든 잘났든 마음공부 하는 건데 왜, 누구라고 못해? 기독교인이 돼서 못해, 가톨릭교인이 돼서 못해, 불교인이 돼서 못해? 나는 그런 거 가리지 않아. 진리를 탐구하고 진리를 배워라 이거지.

또 이런 얘기 하나 할까요? 여러분이 현실에 살면서 불에 들어가면 타 죽는다는 거 아시죠? 어때요? 물에 들어가면 빠져 죽는다는 걸 아시죠? 그리고 산이 너무 높으면 내가 저 산은 높아서 못 간다 이럽니다. 그믐밤에 산 꼭대기를, 아주 높은 산을 넘어가려면 못 간다 합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인식을 가지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죽어서 이 몸뚱이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타 죽을 것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마음이, 의식 자체가 불을 보면 그냥 불에 타 죽을까 봐 못 들어가는 거죠. 이승 저승 가름을 하는 것이 뭐냐 하면 이 바로 불바퀴, 앞뒤 없는 가운데 뚫어진 불바퀴거든. 거기를 서슴없이 들랑거려야 죽은…. (녹음 안됨)
타 죽을까 봐 거기 못 들어가거든요. 그럼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물에 빠져 죽을까 봐 물에 못 가고 불에 타 죽을까 봐 불에 못 가고 그러니까 여러분 마음 의식이 글쎄, 살아서 그 관습이 있어 가지고는 그렇게 그 관습을 떠나지 못해서 죽어서 영혼도 그렇게 하거든요. 네? 그러니까 이 세상에 떠돌다가 오는 인생이 되는 거죠. 그래서 내가 어떤 때는 그래요.

자기 한마음 주인공에, 거기 맡기고 살아라 그러는 것이 뭐냐 하면 그 인식, 타 죽을까 봐 못 가는 인식, 빠져 죽을까 봐 못 가는 인식, 또는 못 간다는 인식 또 구렁이나 이런 게 있으면 물릴까 봐 못 가는 의식, 그런 거를 다 떠나게 할 수 있는 그런 작업을 해라. 모든 것을 우리가 지금부터라도 그렇게 한다면 벌써 이 마음속에 그 의식들이 수만, 아까도 얘기했지만 16억이라고 한다면 16억의 마음이 한마음으로 돌아가니 내 마음이 벌써 편안해. 그리고 병이 없어져. 그리고 건강해. 그리고 그걸 알면 한 식구를 다 끌어 나갈 수 있어. 주인공은 둘이 아니기 때문이지. 생명이 어떻게 둘일 수 있나? 전력이 둘이 아니듯.

이 공부가 얼마나 유리하고 얼마나 묘한 도린데, 뭐? 어떤 사람은 “우린 젊은데 뭐, 노인네들이 그런 데 가는 거 아니에요?” 아, 요래. 허허허. 그래서 “아이, 노인네만 죽고 너흰 안 죽니?” 그랬더니 “우리도 죽죠.” 그래서 인생은 나와서 늙든지 젊든지 그저, 고정돼 있지 않고 젊어서도 죽고 늙어서도 죽어. 죽는다는 거, 어차피 사는 날까지 꼭 살다가 죽는 거다. 그렇지만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 살아 있으면서 그 모두를 다 놓고 열반을 봐야 된다.’ 이 소리는 자유스럽게, 걸리지 말아야 된다 이 소리지, 네? 살아서 통달하는 것이 바로 열반이지, 무쇠를 갖다가 용광로에다 넣어서 다시 재생을 시킨들 무쇠가 아니고 뭐겠소? 금으로 변하나? 금은 금대로 넣어서 내도 금이 되지만 무쇠는 무쇠대로 용광로에 넣어서 또 내도 무쇠는 무쇠야. 그런데 마음은 체가 없기 때문에 무쇠로 돌릴 수도 있고 금으로 돌릴 수도 있어. 이건 자유자재야.
이렇게 참 빛보다 더 빠르기도 하거니와, 우리가 지금 생활하면서도 빛보다 더 빠르게 야, 찰나찰나 그렇게 빠르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지금 아버지가 됐다가 형님이 됐다가, 남편이 됐다가 자식이 됐다 이렇게 온통 돌아가는 세상에서 그게 인식이 안돼요? 생각이 안 돌아가느냐고, 모두? 내가 지금 여기서 이렇게 해야만 얻어먹나? 하하하. 참 내, 기가 막혀서!

그러니 공짜는 하나도 없어. 이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소? 자기가 지옥에 가는 것도 공짜가 없는 것이고 천당에 가는 것도 공짜가 없어. 자기가 해 놓은 것대로 이 세상에 와, 나한테 용도에 따라서. 그런 걸 하려면 좀 한번 쓱 뒤집을 줄 알아야지. ‘야, 네놈들이 그렇게 한 거 네놈들이 알아서 해! 내 껍데기는 그저 너희 놈들이 살고 나왔다 들어갔다가 요리해 먹고 이렇게 할 수 있는 저 오븐밖에 될 수가 없어. 나는 오븐 역할을 할 수밖엔 없어.’ 이렇게 하고 그냥 다 맡겨 버려야지, 네? 우리 총무 스님이 그만 하래.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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