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비구니회, 종로노인福서 대중공양 봉사

제11대 집행부 스님 20여 명
대사회적 활동 첫 행보 나서
취약계층 봉사 정례화 계획

▲ 전국비구니회 부회장 일진 스님이 어르신에게 육개장을 배식하고 있다.
“세상에! 살면서 스님들께서 주신 공양을 먹을 일이 얼마나 되겠어요? 그저 감개무량할 따름입니다.”

12월 29일, 전날 갑작스레 찾아온 동장군에 찬바람을 피하기 위해 옷깃을 세우는 사람들의 손길이 분주하기만 이때 비구니스님들이 얼어붙은 세상을 녹이려 대중 속에 뛰어들었다. 바로 ‘일하는 비구니회’를 표방하는 제11대 전국비구니회 집행부 스님들이 종로노인종합복지관에서 대중공양 봉사를 펼친 것이다.

지난 11월 대중과의 소통ㆍ봉사를 운영기조로 삼으며 출범한 제11대 전국비구니회 집행부 스님 20여 명은 이날 11시 30분부터 2시간가량 복지관 어르신들을 위해 성심껏 배식봉사를 했다. 제11대 집행부가 공식적으로 사회봉사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스님들은 봉사에 앞서 연두색 앞치마와 마스크, 팔토시를 착용하고 밝은 얼굴로 배식에 임할 것을 다짐했다. 밥과 반찬 배식ㆍ자리 안내 등 각자의 소임을 정한 스님들은 어르신들에게 어떤 인사를 건넬 것인지 의견을 나눴다. 같은 시각 식당 문 앞에는 이미 어르신들이 10m 가까이 가지런히 줄을 선 채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문이 열리자 여느 때와 다름없이 어르신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하지만 평소 봉사자들과는 다른 스님들의 모습 때문이었을까. 몇몇 어르신들은 스님을 보고 흠칫 놀란 눈치였다.

▲ 종로노인종합복지관 배식봉사에 앞서 전국비구니회 집행부 스님들이 주먹을 불끈쥐어 '화이팅' 구호를 외치며 즐거워 하고 있다.

“허허허…. 스님들을 이곳에서 만나 뵙게 될 줄은 전혀 몰랐네요. 봉사하러 나오셨다고 들었는데 참 대단하십니다.”

털모자를 푹 눌러 쓴 채 배식을 받던 한 할아버지는 이색적인 광경이 생경한 듯 주위를 둘러보면서도 스님들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스님들은 어르신들마다 밥이나 반찬이 부족하진 않은지 물으며 ‘고객 맞춤형’ 서비스를 실천했다. 짐이 많거나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위해서는 직접 자리까지 음식을 배달하고, “맛있게 드시라”는 인사도 잊지 않았다.

이날 메뉴는 많은 어르신들에게 사랑받는 육개장. 안 그래도 맛있는 음식에 비구니스님들의 정성이 전해져서인지 식사하는 어르신들은 한결같이 “정말 맛있다”며 엄지를 추켜올렸다. 어느덧 북적대는 식당에는 스님과 어르신들의 웃음소리가 가득 찼고, 식사를 마친 어르신들은 스님들에게 합장인사를 올렸다.

길상사에 다닌다고 밝힌 신재심(79) 할머니는 “평소 절에서 스님들께 공양만 올렸는데 이렇게 공양을 받게 되니 음식이 더 없이 맛있고 신심까지 깊어지는 것 같다”면서 “평소 접하기 어려운 일을 경험하게 됐다. 멀리 복지관까지 찾아주신 스님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녹색 스카프와 검은 모자로 한껏 멋을 낸 할머니는 지나가는 관장 정관 스님을 붙잡고 칭찬을 늘어놓기도 했다. 이 할머니는 “어제 복지관에서 친구를 새로 사귀었는데 오늘은 스님들 덕분에 맛있는 공양을 했다. 좋은 일만 계속되는 것 같아 즐겁다”며 “스님들도 늘 행복한 일만 가득하길 바란다”고 덕담했다.

▲ 어르신들에게 음식을 배식하고 있는 전국비구니회 집행부 스님들.

스님들은 배식이 끝난 뒤에도 어르신들의 식판을 대신 정리하고, 주방청소까지 하면서 맡은 일을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전국비구니회가 이처럼 적극적으로 사회봉사에 나선 데는 젊은 비구니스님들의 제안이 큰 역할을 했다. 전국비구니회 운영기조와 잘 어울리면서도 사홍서원의 제1서원인 ‘중생무변서원도’에 부합하기 때문이었다. 더불어 불교복지분야에서 비구니스님들의 활약이 두드러진 점도 한몫했다.

종로노인종합복지관장 정관 스님은 “전국비구니회가 한국불교 비구니를 대표하는 단체이지만 그동안 대사회적인 활동에는 많이 부족했다는 걸 느꼈다. 앞으로 대중과의 소통을 약속한 만큼 많은 사람들이 기대를 걸고 있다”며 “오늘을 시작으로 사회적 약자를 품고 돌보는 전국비구니회가 될 것이라 믿는다. 복지관도 지역사회와 더욱 가까워지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전국비구니회는 지난 11월 13일 회장 육문 스님 취임법회를 통해 모연한 쌀 600kg을 수서경찰서에 기탁했다. 이어 12월 4일 대전교도소를 방문해 교정교화활동을 펼쳤으며, 동지에는 육문 스님이 사비로 마련한 쌀 500kg을 수서경찰서에 전달한 바 있다.

▲ 어르신들이 스님들이 배식한 음식을 제자리에 앉아 맛있게 먹고 있다.

 

“공익적 활동에 주력할 터”
전국비구니회 부회장 본각ㆍ일진 스님

▲ 전국비구니회 부회장 본각<왼쪽> 스님과 일진 스님.

“11월 출범 이후 조금 늦은 감은 있지만 공약처럼 일하는 비구니회가 되기 위해 적극적으로 대사회활동에 참여할 것입니다.”

종로노인종합복지관 대중공양 봉사에 동참한 전국비구니회 부회장 본각ㆍ일진 스님은 비구니회의 공익적 사회참여 역량강화에 집중할 것을 밝혔다. 이는 공익을 위한 활동을 펼치지 않으면 사회로부터 고립되는 것은 물론 중생구제를 강조하는 출가본분사에도 어긋나기 때문이다.

전국비구니회가 공익적 활동의 첫 행보를 노인복지관 봉사로 정한 것은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대를 이겨낸 어르신들에 대한 예의를 갖추기 위해서다. 당초 전국비구니회장 육문 스님도 봉사에 동참할 예정이었으나 감기증세가 악화돼 참여하지 못했다.

일진 스님은 “우리 사회에는 여러 계층의 약자가 있지만 가장 먼저 어르신들을 위한 봉사를 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회장스님께서도 동참하지 못해 많이 아쉬워하셨다”면서 “이번 봉사를 시작으로 어린이ㆍ장애인 등 모든 계층을 아우를 수 있는 전국비구니회로 거듭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본각 스님은 “스님들은 대부분 산중에서 수행만 하는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불교의 특성상 좋은 일은 잘 드러내지 않는 면이 있어서다. 이제는 대중과 가까이서 호흡해야 한다”며 “현재 비구니스님들이 복지현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전국비구니회가 이를 확실하게 뒷받침하며 한국불교 발전에 기여하겠다”고 강조했다.

전국비구니회는 앞으로 사회봉사를 정례화해 복지사각지대에 따뜻한 손길을 전할 계획이다. 일진 스님은 “젊은 비구니스님들이 사회복지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아래로부터의 변화를 통해 대중에게 비구니의 역량을 각인시키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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