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 善 추구하되 단순 중재로 끝나선 안 돼”
“공동 善 추구하되 단순 중재로 끝나선 안 돼”
  • 윤호섭 기자
  • 승인 2015.12.28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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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특집-화쟁, 왜 이 시대 화두인가?

화쟁, 그 실천 방법은?

바야흐로 화쟁(和諍)이 화두(話頭)인 시대다. 사회에 만연한 갈등을 풀어낼 수 있는 불교적 접근법으로 화쟁이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화쟁은 그 실효성을 두고 설왕설래하고 있다. 도대체 화쟁은 무엇이고, 이 시대에 왜 화쟁이어야 하는지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편집자주

조성택 고려대 철학과 교수

이분법적 논리서 벗어나
독선 버리고 경청하며
더 큰 공동 선 만들어야

성태용 건국대 철학과 교수

불교적 관점 깊은 성찰 바탕으로
추상적 목표 현실로 끌어내려
현실 속 苦 올바르게 인식해야

불교사회정책연구소장 법응 스님

기계적 중립 문제 고착화
개념 정립해 논쟁 없애고
조직이 대중 신뢰 얻어야

박병기 한국교원대 윤리교육과 교수

소통의 장으로 담화공동체 이끌어
여실지견 지혜 발휘되는 과정 될 때
대중 관심 집중과 중도 실천 이뤄져

유정길 지혜공유협동조합 이사장

화쟁, 누구 편 드는 일 결코 아냐
장기적 목표 위해 비난 감수하며
새 해법과 시각 제시할 수 있어야

 

불교계가 현대사회에 일어나는 갈등을 마주하고, 평화롭게 해결하기 위해 나서면서 화쟁이 사회적으로 대두되고 있다.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논란·4대강 사업·쌍용차 노사문제·철도노조 파업사태, 최근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의 조계사 피신까지 불교계는 2000년대 이후 다양한 사회갈등 현안에 화쟁을 중심으로 참여했다. 하지만 화쟁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부족했던 걸까. 대중은 불교계가 강조하는 화쟁에 대해 물음표를 던지고 있다. 긴박한 갈등상황에서 화쟁이 정확히 무엇이고, 왜 화쟁이어야 하는지 고민할 여유가 없었을 지도 모른다. 도대체 화쟁은 왜 이 시대의 중요가치로 받아들여져야 하는 것일까?

현대사회의 화쟁 가능할까
화쟁은 신라 고승 원효가 당시 대립하고 있던 불교 교리적 쟁론들의 조화를 위해 주창한 것이다. 특정 종파나 이론을 고집하지 않고 개시개비(皆是皆非, 모두 옳고 모두 그르다)를 통해 집착에서 벗어나 대립을 극복, 더 높은 차원의 지혜로 나아가자는 것이다. 이후 화쟁은 한국불교의 중요사상으로 자리 잡았는데 현대사회에 와서 사회갈등에의 접목을 두고 끊임없는 진통을 겪고 있다. 화쟁, 현대사회에서 적용할 수 있는 걸까?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가능하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물론 여기에는 결코 쉽지 않은 전제조건이 붙는다. 조성택 고려대 교수는 배타적 주장을 하는 사람은 내가 옳고, 다른 이는 그르다고 하지만 각자의 주장은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모두 일리(一理)가 있다화쟁은 평화가 아니다. 평화롭게 다투자는 것이다. 독선을 버리고 경청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병기 한국교원대 교수 또한 원효의 화쟁과 현대사회 화쟁의 본질은 다르지 않다. 다른 관점이 지니는 일리를 찾아 존중하면서 보다 올바른 대안을 찾는 것이 화쟁이기 때문이라며 서로 대화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을 만들고, 그 장을 통해 보다 이상적인 담화공동체로 이끌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대립하고 있는 양측이 상대방 주장을 무조건적으로 배척할 것이 아니라 각자의 주장에서 일리 있는 부분은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서로의 이익을 두고 대립하는 이들 사이에서 이뤄지기 매우 어려운 일이다.

불교사회정책연구소장 법응 스님은 현대사회에서 화쟁은 자유·인권·복지·다양성·평화·환경 등 인류가 추구하는 공동의 가치들이 조화롭게 구현된 세계를 위한 사회통합의 불교적 방편이어야 한다사회 또는 인류적 합의나 공통의견이 전제된다면 이를 구현하기 위한 마음과 행동을 합일해나가는 노력이 화쟁이고, 화쟁의 현대적 적용이다고 주장했다.

성태용 건국대 교수는 화쟁을 위해 상대방의 주장이 전적으로 옳거나 틀릴 수 없다는 데 동의하도록 하는 노력을 기울이면서 모두 공동의 목적을 지향하고 있는 것을 납득하는 바탕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원효가 화쟁을 위한 더 높은 차원의 지혜를 강조했던 것처럼 우리 사회도 공동 선()’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다.

자본주의 따른 갈등 접근법은
화쟁을 설명하는 데 있어 가장 많이 언급되는 예는 장님 코끼리 만지기. 장님들이 코끼리의 전모는 알지 못한 채 일부분만 만지며 서로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들이 코끼리라는 걸 알게 되면 다툼은 사라지고, 실상이 드러난다는 얘기다. 여기서 장님은 중생으로, 코끼리는 진리로 대변되기도 한다. 즉 중생이 갖는 한계를 현실에서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가 핵심이다. 하지만 이 문제에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다. 바로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데는 특정한 이익 추구가 담겨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장님 모두 각자 만진 것이 코끼리라는 것을 알게 됐을 때 다툼은 쉽사리 멎었을 가능성이 높다.

반면 현대사회에서 불거지는 대부분의 갈등은 장님들과 같이 단순한 관점·인식의 차이만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자본주의에 따른 구조적 갈등과 정치적 이념의 차이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여기에는 늘 이익 추구가 뒤따르게 마련이다. 이 때문인지 최근 불교계의 대사회적 화쟁은 중립소통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와 관련해 법응 스님은 기계적 중립을 경계했다. 스님은 세계는 서로 엮이고 연계돼 있지만 그 방식은 결코 평등하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계적 중립은 결국 사회를 기득권에게 유리한 구조로 고착화시키는 행위라며 대립하는 당사자들이 스스로의 입장을 충분히 밝힘으로써 그것을 드러내고, 모두에게 가장 바람직한 상태를 가져오기 위한 노력이 곧 화쟁이라고 설명했다.

조성택 교수는 단순히 강자와 약자라는 이분법적인 논리의 접근은 옳지 않다. 중중무진(重重無盡)의 연기적 관계에서 일방적으로 갑이기만 하고 또 을이기만 한 관계가 아니다핵심은 서로에 대한 불신과 내가 옳다는 독선이다. 화쟁은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전환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성태용 교수는 현대사회의 근본문제에 대한 성찰, 계급과 집단에 따른 이기주의의 양상 등에 대해 보다 깊이 있는 성찰을 해야 한다. 또 그것을 극복할 방법에 대해 불교적인 관점에서 성실한 모색을 해야 한다며 불교계의 대사회적 고민을 주문했다. 각종 사회갈등에 불교계가 접근하고 있지만 추상적인 가치만으로는 문제해결이 어렵다는 뜻이다.

전문가들은 또한 화쟁이 단순한 중립으로 끝나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박병기 교수는 각 당사자들의 관점에는 당연히 구조적 한계와 특성이 포함될 수밖에 없다. 화쟁은 이에 대한 직시, 즉 여실지견(如實知見)의 지혜를 발휘하는 과정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법응 스님은 각자의 양보를 이끌어내 합의하도록 중재하는 것을 화쟁이라고 할 수는 없다. 굳이 화쟁이 아니어도 이름 높은 중재기구들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불교의 화쟁이 중재기구들과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유정길 지혜공유협동조합 이사장은 화쟁은 누군가 이기고 지게 하는 일을 거드는 게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문제를 인식해 새로운 해법과 시각을 제시하는 것이라며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전혀 다른 차원의 변화를 도모하는 방향으로 전개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화쟁, 대중 속에 자리 잡으려면
화쟁이 세상을 맑히는 가치임에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일련의 사회갈등에 대한 불교계 화쟁을 보면 자칫 눈앞의 문제를 도외시한 채 이상향만 좇는다는 지적이 뒤따를 수 있다. 강을 건널 배도 만들지 않은 상황에서 강 건너의 아름다운 풍경을 상상하는 것은 여행의 설렘에 들뜬 여행자에게나 가치 있는 일이다. 그렇다면 대중이 진정한 화쟁을 중요 가치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성태용 교수는 불국토 건설이라는 추상적인 목표를 현실로 끌어내려야 한다. 추상적인 이상의 제시만으로는 화쟁을 이룩할 수 없기 때문이라며 불교계가 끊임없이 현실의 고()를 올바로 인식하고, 대중의 바람에 부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피상적인 차원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조성택 교수는 갈등은 인간사회의 여실한 모습이다. 서로 다른 의견이 존재하는 게 당연하다. 고로 상호신뢰 회복이 최우선시 돼야 한다면서 종교는 늘 약자와 함께해야 하지만 편을 드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조금 더 큰 공동의 선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법응 스님은 화쟁의 개념 및 실천방식에 대한 이론이 정립돼 불필요한 논쟁이 없어야 한다. 더불어 화쟁의 주체로 나서는 조직이 대중의 신뢰를 얻고, 문제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정보가 필요하다무엇보다도 화쟁의 결과 실제로 갈등이 해소되고, 안정적인 평화와 정의가 구축된 사례가 단 한 번이라도 만들어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박병기 교수는 생존에 내몰린 이들이 다른 사람의 입장에 귀 기울이기는 결코 쉽지 않다. 더욱이 우리 사회는 이분법적 사고가 만연해 대중의 관심을 모으기 어렵다다양한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이번 조계사 피신 사례와 같이 외부 비판을 수용하면서도 중재를 통한 중도의 실천을 이어나가는 일이 지속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정길 이사장은 화쟁의 성공은 당장이 아닌 장기적으로 사람과 생명 모두에게 이익인지를 따져야 한다. 그래서 현재 사람들의 세계관으로는 이해하지 못할 결정처럼 보여 비난을 받을 수 있다. 비난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화쟁은 분명 갈등이 만연한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불교적·시대적 가치다. 하지만 대중은 화쟁의 참된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현대사회의 화쟁을 두고 이렇다 할 공통된 의견이 정립되지 않아서다. 부처님이 2500년 전 설한 진리를 현대사회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에 대한 불교계의 고민이 끝없이 이어지는 것처럼 화쟁 또한 같은 과정을 겪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불교에서는 진흙 속 연꽃을 두고 더러움에 물들지 않으며 진리를 추구하는 참 수행자의 모습으로 비유한다. 그러나 시선을 조금만 옮기면 그 더러운 진흙은 연꽃을 피우는 중요한 영양분이 된다. 화쟁이 경주마의 차안대를 벗기는 역할을 맡아 현대인들의 시선을 넓히는 영양분으로 거듭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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