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가원자비복지타운 원장 묘전 스님

장애인 보살핌 20년

1996년 소쩍새마을 봉사활동 계기
2005년 이천으로 이전하며 원장 맡아
300여 장애인 돌봐… 묘엄문화상 수상

장애인 능력 개발 10년

보치아 경기 육성… 장애인올림픽서 금메달
2007년 지적장애인축구팀 ‘FC승가원’ 창단
장애인 가족들로 사물놀이단 만들어

경전에는 부처님 제자인 ‘주리반특’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지적장애를 가졌던 ‘주리반특’은 지능이 너무 떨어져 조금 전에 일어난 일도 기억하지 못했다. 그에게는 청소와 같은 허드렛일만 주어졌다. 하지만 그는 지극정성으로 청소를 했고 방이 깨끗해지듯 마음이 맑아졌다. 주리반특은 수행자로 대중들의 존경을 받았다. 부처님은 장애를 내치지 않고 오히려 사랑과 관심으로 이들을 이끌었다. 신체의 불리함을 인욕과 지혜의 근간으로 오히려 본 까닭이다.

부처님과 같이 20년 가까이 지적장애인들을 사랑과 관심으로 보살펴 온 한 스님이 있다. 장애인들의 척박한 삶에 희망을 전하는 이는 바로 승가원 자비복지타운 원장 묘전 스님이다. 경기도 이천에 위치한 자비복지타운에서 스님을 만나는 12월 15일, 기자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부터 걷어낼 수 있었다. 스님은 최근 묘엄불교문화재단이 선정하는 묘엄불교문화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소쩍새마을’에서의 봉사 인연으로 시작

아이러니하게도 묘전 스님이 장애인 보살핌에 나서게 된 것은 장애인 복지에 일대 파문이 일고 있었을 때였다. 바로 1995년 소쩍새 마을 사건이 계기였다. 당시 MBC PD수첩에서 지적장애인 보호시설의 실태를 다룬 ‘소쩍새마을의 진실’을 보도했다. 당시 원장이었던 일력 스님은 소위 가짜승려로 판명됐으며 그가 보여준 비행은 수많은 후원자들은 배신감을 안겨줬다. 이에 조계종립 승려교육기관인 중앙승가대학은 소쩍새마을을 인수했다. 승가의 명예가 훼손되지 않고 재발방지를 막기 위해서였다. 묘전 스님은 중앙승가대 사회복지학과에 재학 중이었고 자원봉사를 통해 소쩍새마을을 알게 됐다.

“사회복지학과 교수 보각 스님의 추천에 1996년 11월 재학 중에 처음 소쩍새마을에 봉사활동으로 가게 됐습니다. 당시 후원이 줄어든 상태에서 승가원이 인수했고, 이에 소쩍새마을의 살림 형편은 어려운 상태였어요. 장애인 가족들은 그대로였는데 말이죠.”

이후 총무소임을 맡게 된 스님은 그 당시 상황이 너무나 열악했다고 말했다.
“인수받았을 때 시설이 폐교에 있었는데 학교시설을 이용하다보니 상황이 너무 어려웠어요. 대부분이 피부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호적이 없는 장애인 가족들이 21명에 달했어요. 병원에도 가지 못하는 처지였습니다. 자기들끼리 개똥이, 공주 이렇게 부르고 있어서 가장 먼저 한 것이 선재, 연화 등 불교 이름으로 호적을 만든 것이었어요.”

스님은 장애인 가족들과 함께 생활하며 이들의 다양한 욕구와 문제해결에 나섰다. 총무로서 효율적인 시설운영과 예산절감을 위해 후원처를 발굴하는 한편 야채, 육류 등의 식자재를 후원받고, 원주의 시장 등을 혼자 다니며 시설 인수 초기의 어려운 살림을 묵묵히 헤쳐 나갔다.

겨우 정상화 시키니 사람 홍수가

근 1년여를 정신없이 지내다보니 살림살이는 나아졌다. 하지만 문제가 또 있었다. 중앙승가대학에서 맡게 된 이후 ‘정상화’가 언론에 보도되자 전국에서 장애인 가족들이 몰려왔기 때문이었다. 자고 나면 시설에 의탁하는 장애인들이 늘어났다. 묘전 스님은 ‘사람 홍수’라고 표현했다.

“인수 당시에는 78명의 지체장애인 가족들이 있었어요. 하루는 아침 6시에 아이들 밥을 짓기 위해 방문을 열었는데 문 앞에 라면박스에 3개월 정도 된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아이가 놓여 있는 거예요. 하도 울었는지 목소리도 나오지 않는 아이였어요. 날이 추워 온몸에는 빨간 반점이 나 있었습니다. 어떻게 합니까. 생명인데 살려야죠. 원장이셨던 보각 스님의 성을 따서 조경로라고 이름을 짓고 보듬어 안았습니다. 이렇듯 자고 일어나면 사람들이 몰려왔어요. 그 사람들 모두가 절절한 사연이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1997년 쯤 됐을까요? 함께 사는 장애인 가족들이 316명으로 늘어났어요. 1년 만에 200여 명이 불어난 것이죠.”

스님에 따르면 당시 자비복지타운 내 직원은 채 30명이 되지 않았다. 암말기환자를 비롯해 중증장애인 등이 많아 스님을 비롯한 직원들은 밤낮없이 2교대를 서기 일 수였다.

“지금 같으면 못한다”며 활짝 웃는 스님은 “모든 직원이 나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했다”고 회상했다.

“그때는 환경이 갖춰지지 않은데 사람들이 몰리다 보니 잘해주지 못한 점이 지금도 마음에 걸립니다. 현재는 후원도 늘었고 재정적으로 국가보조도 일부받고 간병인도 지원이 나오지만 당시에는 직원들이 모두 다 했어야 했습니다.”

장애인 인식 바꾸는 일이 가장 힘들어

하지만 이러한 물리적인 어려움보다 더 큰 어려움이 있었다. 바로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것이었다. 미인가 시설이었던 소쩍새마을은 주거환경 개선과 개방, 자원봉사활동 활성화 등을 통해 자비복지타운으로 쇄신했지만 처음부터 국립공원 내에 위치해 사회복지시설 인허가가 법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래서 장기적으로 재활과 주거의 공간 확보를 위해 2005년 이천으로 이전하게 된다. 스님은 그해 12월부터 원장을 맡아 시설이 본궤도에 오르는 데 앞장섰다. 시설 이전과 인가시설로의 전환을 위해 후원자를 모집하는데 나서는 한편 지역 주민들의 강력한 이전 반대에 봉착하게 되는 이중고를 겪었다.

“장애인 시설이 들어온다니 지역에서 반대가 심했습니다. 각 가정을 지속적으로 찾아가 호소하며 주민들을 설득했죠. 그 과정에서 승려로서도 듣지 못할 많은 말을 들었어요. 그래도 어떻게 합니까. 웃는 얼굴로 한분 한분 설득해야 했지요. 담배 말리고 농사일을 거들며 승낙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10년이 흐른 아직도 지역 내에는 반대하시는 분들이 계세요. 매년 경로잔치를 열고 지역 어르신들이 마음을 내도록 하게하고 있습니다.”

스님을 비롯한 당시 원력 있는 이들의 십시일반 노력으로 승가원 자비복지타운은 정부 지원금 12억 원을 유치하고 전국에 흩어져 있는 후원자들을 대상으로 현재 건립부지 마련을 위한 모금을 벌여 30억 원을 모았다. 이를 통해 2006년 11월 불교계 최대 장애인 생활시설인 ‘승가원 자비복지타운’이 자리하게 됐다.
스님은 2011년부터는 지역사회 주민들에게 장애가족들이 생산한 비누와 두부 등 상품을 나누는 한편, 주민자치센터를 이용하는 지역주민들에게는 ‘천연비누제조’ 강좌를 개설해 장애인들과 지역주민이 함께 교육과 훈련을 받는 나눔 사업을 전개했다.

“많은 분들이 장애에 대한 편견을 바꾸셨다고 전합니다. 함께 어울리다 보면 생각이 저절로 많이 바뀌게 되지 않을까요?”

2015년 8월 진행된 볼링대회에서 스님과 선수로 나선 불자 원생이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중증장애인 재활에 적극적으로 나서

묘전 스님은 이천으로 자비복지타운이 자리를 옮긴 뒤 본격적으로 중증장애인들의 재활에 앞장섰다. 타운 내에 물리치료실을 개원하고, 특수교사를 채용하여 의료재활과 특수교육을 실시했다. 또 시설 내 보치아 경기장과 경기용품을 구비하여 장애인들이 손쉽게 체육활동에 접근 할 수 있도록 했다. 보치아는 ‘컬링’이나 ‘볼링’과 비슷한 경기로 뇌성마비 중증 장애인과 운동성 장애인만이 참가할 수 있는 종목이다.
“다소 장애가 있지만 능력이 있는 이들이 많아요. 모든 장애인 가족을 평등하게 대해야 하지만 한두 명이 대외적으로 위상을 높여도 다른 장애인 가족들에게도 혜택이 함께 돌아오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다양한 장점을 발휘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스님은 1998년부터 시설 내에서 보치아 경기를 준비했다. 2002년 10월, 안명훈 가족이 부산 아태장애인경기에서 금메달을 2개 획득했으며 2004년에는 아테네장애인올림픽에서 역시 안명훈 가족이 금메달을 획득하기도 했다.

스님은 “다소 장애가 있지만 이들이 생각하는 것은 일반인들과 다름이 없다”며 “이들이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밖에 2007년에는 경기도 세 번째 지적장애인축구팀으로 ‘FC승가원’을 창단해 2009년 전국장애인체육대회에 경기도 대표로 7명의 선수가 선발되기도 했다. 이들은 인근 설성초교 방과후학교로 파견돼 초등학교 및 어린이집의 아동들에게 축구활동을 지도하고 있다.

“2014년에는 지역초등학교 학생과 다문화가정의 학생 15명으로 구성된 ‘리틀FC승가원’도 창단 했습니다. 청소년과 학부모들의 불교시설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에서죠.”

이와 함께 스님은 장애인 가족들로 사물놀이단을 육성하기도 했다. 장애인가족들의 높은 열의 속에서 이들은 창단 1년 만인 2008년 전국장애인예술제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고 2009년 경기도 두둥페스티벌에서 대상, 2011년 제1회 경기도지사배 풍물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하는 등 국내 최고의 사물놀이단으로 발전했다. 현재도 지역의 다양한 무대에서 매년 15회 이상 초청공연을 하고 있다.여기에 2008년 일본 요코하마시 라폴센터에서 ‘사물놀이’와 ‘꼭두각시’ 공연을 했으며 2010년에는 일본 이세하라시 문예회관 극장에서 일본 장애인·비장애인 팬터마임 극단인 쇼난 가메구미 30주년 공연에서 초청공연, 2013년에는 일본 에노시마 가마쿠라 예술회관에서 합동공연을 하는 등 현재까지 총 8회에 걸쳐 한·일 장애인 교류사업도 진행했다.

이와 함께 2009년에는 이천아트홀에서 ‘사물놀이’, ‘난타’, ‘꼭두각시’, ‘댄스’팀으로 구성된 ‘승가원자비복지타운 공연단’을 만들어 지역주민 대상의 유료 공연을 성공적으로 진행하기도 했다.

“당시 이천 시장을 비롯한 많은 시민들이 감동적이었다고 전하더군요. 장애인들도 사회적으로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알린 계기였습니다. 장애인이라고 끼와 재능이 없는 것은 아니잖아요. 이들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들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이 ‘승가원자비복지타운 공연단’은 2008년 파주 전진사 군부대 공연을 시작으로 삼척23사단, 포천 이동8사단, 원주교도소, 여주교도소, 장충체육관, 원주치악체육관 공연 등 17회의 외부 공연을 하며 군인, 재소자, 지역 시민들에게 희망과 감동을 전했다.

스님은 “역으로 교도소 재소자의 경우 장애인 가족들도 이렇게 열심히 꿈을 이루기 위해 사는데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고 한다”며 “생각을 조금만 바꿔보면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들이 함께 어우러져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일반시민들에게도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2013년 5월 진행된 장애인문화예술경진대회에 출전한 사물놀이단
“장애인 독립가정 이루도록 돕는 게 꿈”

이와 함께 스님은 장애인들이 독립적으로 삶을 살 수 있는 기반을 닦아주는 일에도 나서고 있다.
“많은 이들이 착각하는 것이 지적장애인들이 ‘돈’의 가치에 대해 모를 것이라는 것이에요. 이들도 자신의 생일에는 외부에 나가서 지인들을 모아 파티를 열기도 하고, 외식을 하기도 합니다. 또 자신이 옷을 사 입기도 해요. 그래서 자신이 노동을 해서 수익을 얻기를 원해요. 모두가 각자 통장이 있고, 월급을 받기도 합니다.”

스님은 2010년부터 장애인 직업훈련의 일환으로 전개됐던 비누 및 두부 제조 프로그램의 결과물을 상품화하는데 노력하고 있다. 승가원 자비복지타운 내에는 비누·도자기·스태플러 제작, 제과, 카페 운영 등으로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현재 외부업체에 5명이 직업을 두고 있고, 자체 내 보호작업장에 시설 거주자 50%, 재가 장애인 50%로 근무를 하고 있어요. 이윤이 발생하면 인원수대로 나눠서 모두 돌려주고 있습니다.”

“장애인도 사랑하고 결혼할 권리가 있다”는 스님은 “살다보니 그 안에서도 서로 좋아하는 애들이 있더라. 서로 커플반지를 주고받기도 한다”고 말했다. 또 외부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이들도 있다고 했다.

스님은 “현재 5쌍이 결혼한 상태로 내년에도 1쌍이 결혼할 예정”이라며 “시설에 남은 가족의 경우 별도의 부부 방을 마련해 생활하도록 하고 있다. 당시의 여건과 사회적 인식 등을 고려하여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19년이 넘게 행복한 부부생활을 꾸려 나가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 같은 노력 끝에 2014년 2월에 발표된 ‘전국장애인시설평가’에서 전국상위 10% 내 시설로 평가되기도 했다. 거주 장애인들의 자립 활동에 대한 노력이 긍정적으로 평가받은 것이다.

스님은 “장애인 가족의 어머니들도 안 된다고 하는 것이 많았다”며 “장애인들에게 기회와 선택권을 주고 함께 책임을 지게 할 수 있는 체계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불교계, 장애인복지에 보다 관심 가져야”

“스님인데 참선이나 기도를 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는 스님은 “주변과의 인연도 소홀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마음공부는 많이 됩니다. 여기 아이들은 사탕 하나에도 행복해합니다. 그럴 때마다 몸 하나 건강한 제가 가진 것이 너무 많다고 생각해요.”

스님은 소임을 보며 나온 월급을 모아 장애인 치료 등에 도움을 준 동국대 일산병원에 기부하기도 했다.
스님은 “함께 지내는 장애인 가족이 한명도 소외됨이 없이 행복한 것이 남은 생의 목표”라며 남은 임기 동안 승가원 자비복지타운이 장애인들의 삶의 공동체로 발전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끝으로 스님은 불자들의 후원과 관심도 당부했다.

“3개 프로그램 외 10개가 넘는 자활 프로그램이 모두 후원으로 운영됩니다. 그런데 그 내역을 보면 종교가 없거나 이웃종교인 분들이 더 많은 상황이에요. 한번은 장애인 가족들의 공연을 수십 개 사찰을 다니며 홍보를 했는데, 결국 아무 절에서도 오지 않으셨더라고요. 불자들에게 장애인들이 그 한계를 넘은 것을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지역 장애인 분들만 관람하셔서 실망했죠. 후원뿐만 아니라 불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많이 와서 봐주시고 격려해주시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됩니다.”후원 문의 (031)642-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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