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 스님

스님이 가진 것 더 나누고자
고민하는 모습서 항상심느껴
어떤 사람이든 마음으로 안아

 

▲ 명성스님 상, 종이에 수묵 채색, 84×59cm, 2015

사진작가 주명덕 선생님과 동행하여 운문사에 갔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학장스님이신 명성 스님을 만나 뵈었다. 스님께서는 자상하고 따뜻하며 상대에 대해 세심한 배려가 몸에 밴 분이셨다. 나는 그런 스님의 모습에서 진심과 정성을 느꼈다. 우리 일행은 학인스님들이 거처하는 공간에서 쉬며 새벽부터 밤까지 암송하는 스님들의 맑고 청아한 글 읽는 소리에 빠져들었다. 운문사와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 후 나의 아이들이 운문사 여름불교학교에 참여했고, 가족 나들이와 특강 그리고 탁본 등을 위해 여러 차례 운문사를 찾았다. 스님께서도 내가 개인전을 할 때마다 올라오시어 격려해 주셨다. 이런 인연들로 나는 운문사에 일종의 경외심까지 갖게 되었다.

한번은 학생들을 데리고 운문사 답사를 했다. 불교문화를 이해시킬 욕심으로, 발우 공양을 경험하게 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렸다. 그리고 운문사 경내의 국보급 불교문화재를 학생들이 편하게 관찰하며 사진 채록을 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부탁을 드렸다. 이에 스님께서는 흔쾌히 그리고 따뜻하게 나의 말을 들어주셨다.

그리고 나는 학생들이 답사 오기 하루 전에 운문사 학인스님들을 대상으로 한국미술특강을 하기 위해 운문사를 찾았다. 강의는 작품과 그 속에 숨은 의미를 찾는 내용으로 구성하였는데, 많은 수업을 진행해 본 경험이 있었던 나에게도 250여 분의 비구니 스님들 앞에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그러나 스님들의 열의가 워낙 대단했고 그분들의 맑고 청수한 기운에 내 스스로가 감화되어, 강의를 하는 내내 신이 났다. 유쾌한 강의가 진행되던 가운데 특히 명성 스님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명성 스님께서는 맨 앞자리 중앙에 앉아계셨고, 강의가 진행되는 내내 가장 호기심 가득한 천연스런 모습으로 강의를 들으셨다. 그리고 강의를 마치자 제일 먼저 질문을 하셨다. 그 이후에도 명성 스님은 그때와 같은 적극성과 애정으로 강의에 관심을 보이셨다. 나는 이런 스님의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 새벽, 종이에 수묵, 86×59cm, 2000새벽에 부스스 일어나 오줌을 누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다. 스님께서는 이 그림에 대한 관심만큼 해석도 탁월했다. 인간의 심리와 마음의 진실함 그리고 생명력을 읽으셨다.
스님께서는 내가 화가이기에 그런지 내 작품에 많은 관심을 보이셨다. 특히 재미있게 말씀하셨던 것은 우리 딸 하운이라는 작품과 새벽이라는 작품이었다. 두 작품 모두 가족을 모티프로 한 작품인데 한 점은 변기에 앉아 일을 보고 있는 딸의 모습이고 다른 한 점은 새벽에 부스스 일어나 오줌을 누고 있는 아들의 모습이다.

스님께서는 두 그림에 대한 관심만큼 해석도 탁월했다. 인간의 심리와 마음의 진실함 그리고 생명력을 읽으셨다. 또한 선승은 어떠한 권위도 인정하지 않으며 어떠한 전통에도 의지하지 않으면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한다. 화가도 마찬가지다고 하시며, 상상력과 창의력을 개발해야 한다는 조언도 아끼지 않으셨다.

한번은 차담을 나누는 가운데 느닷없이 질문을 하셨다.

내 얼굴상이 어때요?”

나는 어떤 고민도 없이 즉각적으로 잘 생긴 상이라 볼 수 없는데 보면 죽은 데가 하나도 없어 해석의 여백이 훨씬 큰 인상입니다. 머리카락의 굵기가 굵습니다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내 눈을 똑바로 보면서 크게 웃으셨다. 나는 순간 당황하여 말실수를 한 것은 아닌지 우려하였다. 그러나 나는 그림을 그리며 줄곧 인간의 머리카락의 의미를 생각했다. 머리카락에는 종이나 성을 구별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것은 여성과 남성의 머리에서 차이가 주는 대조, 머리와 욕망을 연결하는 종교적이고 사회적인 관념에서 그러하다. 나는 머리카락 축소의 극단적 행위는 삭발로 보았다. 삭발은 자발적으로 신에 귀의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따라서 종교적 의미의 짧음은 자제와 규율, 경건, 단호함 등을 상징한다. 그러나 스님의 머리는 삭발의 형태임에도 그분의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성정이 느껴졌다.

또 한 번은 새해 인사차 가족 모두 비구니 회관에 들러 스님께 예를 올린 적이 있었다. 그 때는 스님께서 전국비구니 회장으로 선출된 후였다. 스님께서는 인사를 받으시고, 우리가족에게 붉은 색 봉투와 각각 다른 형태의 선물을 주셨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어떻게 하면 더 나누어주고자 하시는지 받는 내내 죄송스런 마음만 들었다. 그 모습이 스님의 변하지 않은 항상심이었다.

스님을 여러 해 뵙는 동안, 나는 어떤 사람이든 마음으로 품어주는 큰 포용력을 보았다. 스님은 어느 편도 가르지 않으셨고, 형과 색도 구분하지 않았다. 모든 것을 품안에 끌어안으셨다. 이런 스님의 인품과 가르침이 있었기에 오늘날 운문사가 세계 최고의 비구니 스님 교육기관으로 우뚝 서게 되었을 것이다.

작년 봄 운문사 주지 스님께서 봄에 진달래 꽃 색이 곱다며 불러서 내려오게 하더니 올 가을엔 단풍 빛이 맑고 투명하다며 또 내려오라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명성 스님의 얼굴빛에 생기가 돌 때 스님을 기억하게 하고 싶은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나 올해는 운문사에 내려가지 않았다. 스님의 소매엔 국화 향기가 가득 스미어 있겠지만 단풍이 주는 세월의 상징성과 암시를 외면하고 싶어서였다.

나는 명성 스님으로부터 자신의 모습을 그려 달라며 그림을 주문 받은 적이 없다. 그러나 운문사 스님들이 명성 스님의 진실 된 모습만은 기록하고 싶다는 원력이 나의 마음을 불러 세웠다. 스님께서 차를 끓여 속진을 씻고 열린 창문 사이로 등나무를 보며 싱긋 웃는 모습을 언제 또 볼 수 있을까? 내년 봄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 물, 종이에 수묵, 60×89cm, 2015예술의 힘은 상투적인 것을 함축적인 일반성으로 승화시킬 때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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