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산 사람도 없고 죽은 사람도 없습니다

틀림없이 여기서만이 할 수 있다는 그 믿음!
이것이 바로 이 세상을 딱 뒤집어 놓고 바로 세울 수 있는
그런 용기와 패기가 생기게 하는 겁니다.

(지난 호에 이어서)
이 사람이 형성이 돼서 그저 사는 날까지 이렇게 살아도, 한번 병들고 쓰러지니 그뿐입니다. 보잘것없죠. 사람 인생이라는 게 얼마나 보잘것없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하루살이를 볼 때에 어떻게 생각이 드십니까, 하루살이를 볼 때. 저 산천초목이, 저 산봉우리가 또는 큰 돌이 우리를 볼 때에 어떻게 보겠습니까? 저 강원도 금강산에 일만 이천 봉이 우리를 볼 때 어떻게 보겠습니까? 하루살이로 보겠죠? 그러니 일만 이천 봉이라고 하는 것도 그것도 뜻이 있는 겁니다. 팔만 구 암자 하는 것도 뜻이 있죠.

그러니까 그 모든 옛날에 있었던 얘기도 현실 얘기고요, 미래의 얘깃거리가 오는 것도 바로 오늘 얘깃거립니다. 그리고 현실로 돌아가는 현생에서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겁니다. 어떤 사람은 “아이, 이렇게 좋은 세상을 못 보고 우리 조상들이 과거에 살았는데….” 하지만 그 조상들이 그냥 있는 게 아닙니다. 지금 현실에 여러분이 돼서 나왔기 때문에 그때 그 조상들은 못살았느니 못 먹었느니 할 것도 없죠.

그러니까 여러분이 공부를 진짜 하려면 생활 속에서 근면하고 착실하고 진실하게, 내가 지금 금방 죽는다 하더라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그 믿음, ‘네가 형성시킨 거니까 네가 없애려면 없애고 좀 더 살게 하려면 더 살게 하고, 마음대로 해라.’ 하면 좀 어떻습니까? 어차피 한 번 갈 거라면 그렇게 믿어 보면 좀 어떻습니까? 그리고 뜻으로 항상 이 몸뚱이 속에 사는 그 중생들이 전부 한마음이 돼서 중생과 부처가 둘이 아니게끔 한마음으로 한다면 얼마나 건강하고 좋을까요?

이 도리를 공부하는 거요, 사실 따지고 본다면 엄청난 공부입니다. 그거를 느껴 보지도 못하고 들어 보지도 못하고 맛을 모르고 그러기 때문이죠. 그러니깐 역대 조사들도 아마 속으로는 팔짝팔짝했을 거예요. 그렇지만 어쩝니까, 그거. 그러니까 턱 놔 버리고 그냥 편안하게 지냈겠죠. 허허허. 깡통은 깡통끼리 살기 때문에 왈가닥왈가닥하고 살 거고, 금은 금대로 살기 때문에 빛이 있을 거고. ‘아이고, 그대로 사는 거지 어쩌겠나!’ 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이 중세계는 체로 치는 거와 같다 이랬어요. 상세계로 올라가느냐, 하세계로 떨어지느냐가 달려 있죠.

그리고 지난번에도 얘기했지만 지옥이 따로 없다 이런 얘기죠. 지옥이라는 것이 한마디로 표현을 해서 ‘독사다.’ 그러면, 독사같이 살았으면 독사의 몸을 지니고 나오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렇게 무서운 거죠. 그 보이지 않는 자동적인 인과가 그렇게 무섭단 말입니다. 그런데 사람으로 살던 의식이 남아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다 그 독사의 모습을 가졌으니 얼마나 지옥이겠습니까? 그래서 지옥입니다. 옛날에 무당들이 칼을 들고 뭐랬느냐 하면은, 바가지에다 죽을 담아 가지고 끼얹으면서 칼을 던지면서 하는 소리 좀 보세요. “썩 물러가거라.” 하하하. “썩 물러가지 않으면 밥내 국내도 맡지 못하게 할 것이다.” 이러고 칼을 던집니다. 그게 뭐냐 하면, 그렇게 사람한테 귀찮게 굴고 그렇게 한다면 지옥으로 떨어져서 땅속의 벌레가 되느니라 하는 소립니다. 그런데 하는 사람도 그걸 모르고 하는 겁니다, 지금. 그러니깐 이 세상에 경찰서가 있고 유치장이 있고 감옥소가 있듯이 지옥이 어디 따로 있는 게 아니고, 그냥 막바로 가서 그대로 짐승이나 벌레의 모습으로 바뀌어 나온단 말입니다. 그러니깐 무슨 감옥소가 따로 있고 천당이 따로 있고 이런 게 아니고 이 세상이 그냥 지옥이고, 여기에 지옥도 있고 천당도 있고 이런 것이죠.

이 사람이라는 컴퓨터는 이 자체에 여러 가지가 한데 합쳐진 겁니다. 그러니까 오신통 하면 벌써 컴퓨터에 거기 붙어 있는 거, 사진기라든가, 또는 탐지기라든가 또 뭡니까? 저 통신기라든가 이런 것이 다 부착이 돼 있습니다. 이 망원경 하면은 천안통(天眼通) 이렇게 합니다. 천안통 타심통(他心通) 또 신족통(神足通) 천이통(天耳通), 이렇게 여기 부착이 돼 있는 거죠. 또 숙명통(宿命通) 하고 여기 이렇게 한데 부착이 돼서 돌아가니까, 이거는 뭐 사대 팔방으로 이 허공에 전부 그냥 조달이 되는 거죠. 그러니까 하나도 깔축없이 자기가 남한테 욕을 했으면 욕한 것이 입력이 돼서 욕을 또 먹게끔 입력이 된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될 수 있으면 아니, 모든 거를 주인에게 맡기세요. 주인이 하는 거지 자기 육신이 그냥 하는 게 아니에요. 텔레비전 하면 텔레비전 속에서 나오지 텔레비전 상자에서 나옵니까? 그렇죠? 텔레비전 상자가 텔레비전이 아니고, 텔레비전 오장 육부가 바로 텔레비전이거든요. 그러니까 오장 육부가 한데 합쳐서 모두 부합이 돼 가지고야 나오지, 부합이 되지 않으면 선 하나만 끊어져도 안 나와요. 그러니 사람도 역시 텔레비전과 같다. 그러니 텔레비전 상자를 믿지 말고, 텔레비전 속의 그 모두를 한마음으로 믿어라. 스위치만 누르면 이게 나왔다 저게 나왔다 하는데, 그거를 다 한꺼번에 용도에 따라 볼 게 있으면 보고 보기 싫은 건 그냥 누르지 말고, 이렇게 해서 그냥 그대로 거기만 믿어야지 어떻게 상자를 믿습니까? 내 육신은 그 오장 육부의 집입니다, 집! 그러니까 관리인이죠. 오장 육부를 보호하는 관리인. 그와 마찬가지로 오장 육부의 그 모든 의식들은 바로 한마음을, 한마음을 중시하고 들어가거든요.

표현을 잘했는지 못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마는 지구가 그렇게 돌아다녀도, 아까도 얘기했지만 지구가 어디로 돌아다니는지 아십니까? 모르시죠? 허허. 아는 분 있다면 손 들어 보세요, 지구가 어디로 돌아다니는지. 하하하. 어디로 돌아다닙니까?

신도1(남) ‘알고 있습니다.’ ‘모릅니다.’ 그게, 모르는 게 아는 게 아닙니까?
큰스님 하하하. 그러니까 이 인간 속에 든 세포 하나하나의 의식들이 이 인간이 어디로 그렇게 돌아다니는지 그것을 모릅니다. 그러니까 믿고 알려 줌으로써, 믿음으로써 ‘아, 이렇게 다니는 것도 나구나!’ 그러니까 자기 손가락을 자기가 꺾을 수가 없는 거죠.

그러니까 자기를 자기가 죽일 수는 없는 거죠. 그러니까 믿음을 가지려면 진실히 믿어서, 병이 낫고 안 낫고 그걸 떠나서, 또 안 되고 되고를 떠나서 믿어야 합니다. 진짜 자기를 그렇게, 수억겁을 통해 쫓고 쫓기면서 진화를 시키고 그랬던 것도, 쫓고 쫓겨 봐야 그게 마음이 발전이 되고 그러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어떤 어려움도 공부로 알라. 왕창 하늘이 무너진다 하더라도 믿는 것만은 ‘허, 무너지게 또 했군!’ 하고 넉넉한 마음으로 웃고 쳐다본다면, 그 대치가 다 되게 돼 있습니다. 모두 그렇게 믿지 못하면 아예 자기를 자기가 믿지 못하고 버리는 거나 한가지입니다.

자기 자성신(自性神)을 진짜로 믿어야지, 어째서 자기를 끌고 다니는 자기 자성신을 그렇게 믿지 못합니까? 이 세상에 뭐 믿을 게 있겠습니까? 대신 죽어 주는 사람이 있습니까, 대신 아파 주는 사람이 있습니까? 자식들이 아무리 효자 효부다 하더라도, 부부지간이 아무리 정이 좋다 하더라도 대신 똥 눠 주고, 대신 아파 주고, 대신 죽어 주고, 대신 잠자 주고 그러는 사람은 없습니다. 진짜로 자기를 자기가 믿어서 모든 사람이 한 가정이라도 밝게 살 수 있게끔 자기가 능력을 기르는 것이, 그것이 바로 부처님이 가르쳐 주신 법입니다. 질문 있으면 질문하십시오.

질문자1(남) 스님, 반갑습니다. 작년에 하신 법문 중에, 아직 스님 뜻을 잘 못 알아들어서 하나 물어볼까 합니다. 오(五)라는 숫자는 나의 근본도 되지마는 우주의 근본도 됩니다. 근데 오백의 아들과 또 오백의 여우와 오백 년의 여우 몸을 받고 또 오백 년 후 다시 여기서 만나자, 오백 나한 이렇게 여러 번 오백이라는 숫자가 나옵니다. 이 오백의 숫자를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스님의 뜻에 가장 가깝게 우리가 이해를 할 수 있을까 하는 그 생각에서 궁금증이 나서 왔습니다.

큰스님 오백(五百)이라는 것은 공(空)했다는 소리도 됩니다. 오백이라는 소리는 이 오온(五蘊) 이 자체가 바로 비었다는 소립니다. 찰나찰나 프로펠러 돌아가듯이 돌아가는데 어떤 거를 가지고 ‘이것이 도다, 이것이 도가 아니다.’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오백 숫자는, 그러게 백(百)이 아닙니까? 백! 오백! 하하하.
질문자1(남) 예. 감사합니다. 또 하나는 지난번 진주에 새벽같이 갔는데 그 점안식(點眼式) 할 때는 전부 밖으로 나왔습니다.

큰스님 왜요?
질문자1(남) 그래서 ‘이상하다, 왜 그랬을까?’ 하는 섭섭한 생각도 들면서, 거기에 대해 굉장히 의심이 들어서 한 며칠 생각해 보니까, ‘아, 등신불(等身佛)을 등신불로 보지 마라.’ 그리고 활공법(活空法)에 대해서 설명을 하신 걸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아! 한마음선원에 계신 부처님은 참 만년 보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들었는데, 그 점에서는 어느 정도 알겠는데 왜 스님이 쫓아냈을까 하는 것을 생각해 보니 과거에 부처님 시자가 두 분이 계셨는데 우바마라라는 존자가 부처님이 임종하실 때 “너는 여기 있지 말고 나가라.” 해서 멀리 쫓겨나간 일이 있습니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 나왔는지 아니면, 스님께서 그 의식을 하시는데 일반 사람들이 잘못 오해해서 마음공부에 어떤 지장이 돼서 쫓아냈는지, 그게 의심이 나서 다른 신도들에게 물어보니 “한마음선원에는 점안식(點眼式) 할 때 전부 다 쫓아내던데?” 이런 이야기만 합디다. 하하하. 그 점에 대해서 좀 궁금해서 물어봅니다.

큰스님 하하하. 지금도 얘기하셨다시피 가섭 존자가 모든 그 책을 편찬하는 데 “너는 자격이 없다.” 하고 아난 존자를 내보냈습니다. 그건 왜냐하면은 그 도리를 모르는 사람은, 얼른 쉽게 말해서 이 부처님한테 점안식을 하는 데에 생각을 달리할 수도 있는 거거든요. ‘왜 저렇게 하지 않아도 될 거를 왜 저렇게 하나? 왜 저렇게? 저거는 아닌데, 저거는 그런데….’ 하고 산란한 생각을 하게 되죠. 그러면 그게 사불이 되죠.
질문자1(남) 폐가 섞인다 이 말이네요.

큰스님 예. 금(金)에 즉, 사금이 섞이게 되지요. 그래 생각이라는 게 그렇게 중요하기 때문에 그 생각을 모두 금하고 스님네들의 그 한마음으로서, 일편단심에서 올리는 것입니다.
질문자1(남) 예. 감사합니다.

질문자2(남) 저는 1년여 전부터 저희 집사람의 도움으로 한마음선원에 나오기 시작을 했습니다. 그래서 주말마다 편안하고 넉넉한 마음으로 이렇게 나와서 큰스님의 가르침을 배우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법형제회에도 가입을 해서 선배 법우 여러분과 생활의 방식도 공부하고 또 불법에 대해서 토론도 하고 하면서 먼저 배운 분들의 공부를 훔쳐서 보기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희들끼리 여러 가지 토론을 하면서도 잘 풀리지 않는 문제들은 역시 스승님께 여쭈어 봐야 되지 않느냐 해서, 여러 가지 몇 가지 질문을 모아서 제가 대표로 질문을 올릴까 합니다.

첫 번째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예, 다름이 아니라 사람이 죽고 나면 어떻게 되는가 하는 의문입니다. 뭐 어느 책에서 보면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그 같은 질문을 받으시고도 대답을 하지 않으셨다고 하기에 제 자신도 이것은 여쭤서 알 일이 아니다라고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궁금해서….
큰스님 부처님이 대답을 하셨다면 안 하는 게 있고 하는 게 있으니까, 그것도 또 틀린 말이지요. 그러니까 대답을 안 하신 게 하신 거지요.

질문자2(남) 부처님께서는 무정물에도 불성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은….
큰스님 불성(佛性)을 지금도 얘기했지만 ‘아, 온 게 없으면 갈 곳도 없을 것을….’ 한 뜻이 바로 거기에도 해당이 되네요. 왜냐하면 사람이 이 텔레비전 상자가 자기냐, 텔레비전 자체가 자기냐? 저 방송국에서 이렇게 통신을 줘야만이 사람 노릇을 하는 거나 마찬가지로 텔레비전 노릇을 하는 것이죠. 그런데 텔레비전 상자가 자기라고 하니까 이것이 망가지면 방송국이 다 망가집니까? 아니죠? 그러니까 부서졌을 뿐이지 죽은 것도 없고 산 것도 없어요.

질문자2(남) 그렇다면 제가 언젠가는 죽어서 송장이 될 건데, 그러면 살았다는 거하고 지금 현재 살아 있는 저와 송장과는 어떤….

큰스님 본래 산 사람도 없고 죽은 사람도 없습니다. 지금 살아서 움죽거리는 이 몸뚱이가 바로 자성신이 있다는 거니까 둘이 아닌 자기 자성신(自性神)을 믿으라고 그런 거지, 그러니깐 형체가 꼭 자기만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이심전심이라는, 아까도 얘기했지만 이 마음과 마음은 이 육체를 비유할 수가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대답을 안 하셨죠. 대답을 안 하신 게 하신 거란 말입니다. 만약에 말입니다, 지금 살아 있어도 이 의식만 딱 끊어지면은 그냥 송장이죠, 뭐. 의식이 있다 할지라도 그거는 자기가 사는 게 아니고 산 송장, 죽은 송장 그것뿐이에요. 허허허. 산 송장, 죽은 송장!

질문자2(남) 잘 알겠습니다. 두 번째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지구 현상계에서 보면 지구 속에 화산이 일어나는 것은 지구 속에서 나오는 작용이고, 지구 바깥에, 바다에 해일도 일고 홍수도 생기고 전쟁도 일어나는 것은, 지구의 대기권이나 인간들에게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작용이라 볼 때, 지구라는 몸체가 처음 형성될 때 인연에 의해서 여러 가지 물질이 뭉쳐졌다면, 파괴나 난리라고 주장하기 이전에 지구 스스로가 자기를 지키고 정화하기 위한 작용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사람의 몸체도 인연에 의한 업식으로 뭉쳐진 것이라면 우리가 화산과 홍수가 작용을 하듯이 나를 제도하고 정화를 하기 위한 주인공의 작용이라 생각하니 그대로 넉넉한 마음이 듭니다. 지구가 작용을 하였어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듯이, 나한테서 나온 것을 제자리에 도로 놓는 것은 당연하겠지요. 큰스님 법문 중에 “병이라고 이름 짓지 마라. 병이 병이 아니다.”라고 하신 말씀과 뜻이 같은지요? 마음이 넉넉해지는 것도 공부가 되어 가는 증명인지요?

큰스님 그렇습니다. 모든 것은, 우리가 살아나간다 하더라도 그렇게 역력하게 믿고 모든 것을 맡기고 나갈 수 있는 믿음이 있다면, 물러서지 않는 믿음이 있다면, 패기도 생기고 잔잔한 물과 같이 아주 편안하기도 하면서 편안하고 잔잔한 그 속에서 솟아나오는 그 심력은 정말 누구도 그걸 당해 낼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거기에 끄달리지 않고 넉넉한 마음으로 가신다면 잘 되시는 겁니다.

이 세상에 계(戒) 정(定) 혜(慧)를 이렇게 정해 놨는데 계율도 모든 게 이 한마음 속에 들어 있고 지혜도 한마음 속에 들어 있으니 계 혜 정이죠. 계와 혜가 정 속에 들어 있다 이런 말이죠. 그 정 속에 듦으로써 지혜가 풍부해서 해탈이 생기고 해탈지견향(解脫知見香)까지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니 열심히 우리, 도반으로서 열심히 해 보십시다. 또 질문할 사람 없어요?

질문자3(여) 스님, 저는 질문하는 것보다 스님한테 고맙다는 인사 드리러 왔습니다. 저는 마음을 못 찾아서 헤매고 있는데 이종 언니로부터 『무(無)』와 『도(道)』 책을 받아 읽고 찾지는 못해도 마음을 한번 읽어 봤습니다. 그런데 마음을 찾자니 습을 제거해야 되겠고, 습을 제거하자니 나 자신을 버려야 되겠습디다. 그런데 그게 참 잘 안되더라고요. 이번 1월 3일 날 스님을 처음 뵈려고 했는데 안됐어요. 그런데 추석이 돼서 갑자기 손이 아파 왔습니다. 손가락이 아파 왔는데 이거를 주인공한테 한번 맡겨 보았지요, 첫 번에. 맡겨 보았는데 그게 잘 안되더라고요. 그래서 병원에 가서 아무리 치료를 해도 안 들어요. 결국 골수암까지 갔습니다. 골수암까지 가서 치료를 해도 안돼요. 그래서 그 다음에는 의사 선생님이 뼈 검사를 해 보자 이런 말씀을 합디다.

그때부터 제가 ‘아니다. 손가락을 끊어 내는 한이 있더라도 두 번 다시 병원에는 안 가고 내 주인공한테 맡기겠다.’ 그러면서 한 보름을 견뎌 봤어요. 그러다가 그때 큰스님께서 KBS 홀에, 부산에 오셨습니다. 그때 부산지원에서 스님을 뵈었지요. 그때는 마음이 완전히 놓입디다. ‘이제는 완전히 손이 낫겠구나.’ 그러고 스님 뵙는 순간에 몸에 전기가, 전류가 흐름을 느꼈습니다. 그러고 나서 손이 약간 곪더라고요. 그래서 고름을 내 손으로 직접 짜냈습니다. 짜내고 한 며칠 있으니까 완전히 나았어요. 그래 지금 사진 안 찍어 보고 검사 안 한다고 하지마는 저는 지금 믿습니다. 지금 아물었어요. 감사합니다.

큰스님 그 믿는 마음의 능력이란 건, 여러분이 못났든 잘났든 자기 마음이라는 건 이 태산을 지고도 남음이 있고 이 우주를 뚫을 수도 있고, 탱크를 부술 수도 있는, 얼마나 허, 이런 도리인지 모릅니다. 이게 어마어마한 도리입니다. 그런 건데 믿지들을 못해 가지고선 그렇게 허우적허우적거리니 마치 이 허공을 허우적거리는 거와 같은 겁니다, 그게. 그러니 단단히 믿음을 가져서 세세생생에 이 중세계의 통 속에서 벗어나십시오.

아이, 또 질문하실 게 있으면 하시라고요. 없습니까? 하하하. 여러분, 이 질문은 질문대로 해야겠지만 우리가 보통 평상시에 믿는다, 내가 이거 틀림없이 여기서만이 할 수 있다는 그 (주먹을 쥐어 보이시며) 믿음! 이것이 바로 이 세상을 딱 뒤집어 놓고 바로 세울 수 있는 그런 용기와 패기가 생기게 하는 겁니다.

우리가 지금 한 다리 절름발이고요, 한쪽 눈 장님이고요, 한쪽 귀 귀머거리예요. 아까도 얘기했지만 레이저 광선이 그렇게 지금 세계적으로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지마는 이 마음의 심력만은 못하다 이겁니다. 그렇게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지만 50%밖엔 안 되니깐요. 이 부처님께서는 자기 아님이 없기 때문에 자기 똥 누고 밑을 씻어줘 가면서, 그렇게 높은 게 없이 그저, 하다못해 개가 염원을 해도 개로 화(化)해서 병을 고쳐 주시고 또 무명을 벗겨 주시고 계십니다. 이렇게 하시는 것이 어떠한 개체의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전체의 한 덩어리의 한 불기둥을 표현해서 부처라고 한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 여러분의 마음은 체가 없어서 그저 이 ‘도리천’ 하면은 천체 한 기둥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좀 더 우리가 도반으로서 내가 더 높으니, 네가 더 얕으니 이런 거를 떠나서, 한 기둥의 마음으로서 우리가 심력을 똑바로 길러서 애고라든가 병고라든가 어떠한 애고라도, 어떠한 업식이라도 다 그냥 태워 버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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