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문화원 초청대법회 금봉선원장 혜국 스님

현상은 생멸반복되듯 보이지만
실상 마음한 곳에서 비롯돼
남북 관계도 에너지본질과 같아
38선도 눈에 보이는 것일 뿐

 

▲ 혜국 스님은… 1961년 일타 스님을 은사로 해인사로 출가했다. 1970년 성불을 다짐하며 소지공양 이후 태백산 도솔암에서 2년7개월 간 장좌불와 수행을 했다. 1973년부터 1994년까지 해인사, 송광사, 봉암사 등 전국 선원에서 수십 차례 안거에 참여했고 경봉, 성철, 구산 스님 등 문하에서 수행 정진했다. 제주 남국선원, 부산 홍제사를 창건하고, 현재 충주 석종사 금봉선원장이다.

()신라문화원은 1114일 동국대 경주캠퍼스 100주년기념관에서 혜국 스님 초청대법회를 봉행했다. 혜국 스님은 불교의 진리 사성제와 한반도 통일이라는 주제로 법문했다. 혜국 스님은 고집멸도(苦集滅道)에서 집착은 원인이고, 멸에 이르는 방법을 부처님은 ()’라고 말씀하셨다면서 ()는 인간의 본질이라 죄에 물들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모든 에너지도 한 마음에서 생성되는 것이라고 설했다. 이어 스님은 남북도 결국 하나에서 비롯된 것이다. 생멸이 연속되는 것이 있는 것처럼 보일 뿐 실상은 오고감이 없으니, 현상에 휘둘려 남북관계를 바라봐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정리=윤호섭 기자

 

사성제(四聖諦)의 원리
부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사성제(四聖諦)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왕자로 태어나 왕위를 버리고 처절한 고행을 하셨습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남과 싸울 때는 전력을 다하지만, 자기 자신과 싸울 때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오로지 생명의 아름다움, 그 아름다운 생명이 왜 고통 받아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근본적으로 느끼는 고통을 해결하고자 처절한 고행을 하셨으며, 그 후 설한 법문이 바로 사성제입니다.

사성제(四聖諦)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입니다. 바로 고집멸도(苦集滅道)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모든 실상은 그림자에 의해서만 나타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림자에서 실상을 보면 멸에 이를 수 있지만, 그림자를 보면서 그림자를 따라가면 결코 팔성도를 이룰 수 없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남긴 글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말년에 건강이 좋지 않아 병원침대에 누워 지냈습니다. 그는 많은 재산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운전기사나 필요한 인력 등 많은 걸 살 수 있었지만, 나의 고통을 대신 아파하며 병원침대에 누워줄 수 있는 사람을 살 수는 없었다고 말합니다.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병원침대에 누워서 생각해보니 그 어떤 명성과 부()도 정작 자신에게 도움 되는 것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이처럼 결국 인간이 느끼는 근본적인 문제는 그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사성제의 를 말합니다. 그런데 부처님이 봤을 때는 병원침대에 누워 있는 게 그림자이자 환영이고, 몸 관리를 잘못해 침대에 눕게 된 것이 원인입니다. 원인을 먼저 해결하면, 즉 집착을 바로 보면 멸에 이르러 행복할 수 있지만 원인은 모른 채 병원에 누워 있는 것만 생각하면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최근 신문을 보면서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습니다. OECD에 가입된 143개국 중에서 우리나라 국민들의 행복지수가 118등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름다운 단풍을 볼 수 있고 즐거운 음악을 들을 수 있으며, 화를 내거나 슬플 줄 아는 모든 행위와 감정 등을 행복으로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만큼 커다란 아파트에 살고, 큰 자동차를 굴리는 나라도 드뭅니다. 이처럼 잘 먹고 잘 사는데도 행복지수가 118등이면 국가산업이나 GDP 등에서 세계 1위를 한다고 해도 행복할 수 없기 마련입니다. 모든 걸 불평불만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행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 고민이 필요합니다. 그저 상대방과 경쟁하느라 바빠서 긍정적인 기운과 내 영혼을 깨우는 방향으로 가지 못한 채 시간을 낭비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고()의 원인입니다. 앞서 얘기한 스티브 잡스의 일화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누군가 스스로 병원침대에 누워 있는 것을 원망하고, 몸이 아픈 것에 짜증을 낸다면 점점 더 그것에 집착하기 때문에 결코 병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어떤 사람이 감기에 걸렸다고 가정해봅시다. 머리가 아프고 목구멍이 따끔따끔하면 신경이 쓰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감기가 날 못살게 굴려는 게 아니라 몸 조심하십시오하고 충고해주려고 온 것으로 받아들이면 감사한 마음이 들 것입니다. 사람들은 원인은 분석하지 않고, 그림자인 결과에만 매달려 불행해지고 있습니다.

가끔 저를 찾아와 고민을 털어놓는 불자님들이 있습니다. 대부분이 자식걱정입니다. 아들이 말을 안 듣는다, 사춘기가 와서 반항을 한다, 부모를 너무 함부로 대한다 등 하소연을 늘어놓습니다. 그런데 달리 생각해보면 그것은 바로 친부모이기 때문에 자식이 할 수 있는 행동입니다. 아들딸들은 부모님 말만 잘 들으려고 이 세상에 온 것이 아닙니다. 부모로서 알고도 속아주고, 때로는 침묵하며 먼 훗날 자식들이 40~50대가 됐을 때 내 부모님이 정말 훌륭했구나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도 교육입니다.

고집멸도에서 집착은 원인이고, 멸에 이르는 방법을 부처님은 ()’라고 하셨습니다. 도라는 것은 내가 죄를 지어도 그대로 존재하고, 내가 아무리 슬퍼해도 그 슬픔 속에서 여여합니다. 온갖 못된 짓을 해도 내 본질인 도는 죄에 물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유정무정(有情無情)이 개유불성(皆有佛性)이라 너희들 마음은 부처 아닌 사람이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다른 종교에서 인간을 모두 죄인으로 보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스스로를 죄인으로 생각하고 세상을 사는 삶과 내 본질은 내 삶과 관계없이 항상 부처구나하며 대자유임을 알고 사는 것은 천지차이입니다.

 

에너지 본질은 모두 같다
제가 오른손을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이건 오른손이 맞습니다. 그럼 오른손을 내리고 왼손을 들어볼까요? 이건 왼손이 맞습니다. 우리 눈으로 볼 때 오른쪽과 왼쪽은 서로 다릅니다. 그렇다면 양 손을 움직이는 기운도 서로 다를까요? 아닙니다. 그런데 이 기운을 제가 만든 것은 아닙니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가 밤새 우리의 하품이나 각종 냄새를 받아들여 공기를 만들어 내고, 우리는 그 공기를 빌려 에너지를 생산합니다. 또 구름이 물이 되어 비가 내리면 그 물을 얻어다 마시고 에너지를 만듭니다. 태양빛으로 따뜻한 체온을 유지하고, 대지에서 나는 모든 음식으로도 에너지를 만들죠. 제가 세상에서 빌려와 만든 에너지와 여러분의 에너지가 다를까요? 당연히 같습니다. 새들도 우리와 같은 기운을 빌려서 하늘을 날고, 뒷산의 노루도 그 기운을 받아 뛰어다닙니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이 그렇습니다. 눈으로 볼 때는 나와 남이 다르지만 에너지 본질에서 보면 우린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한반도 통일론으로 이어진다면 엄청난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저만큼 남북통일을 바라는 사람도 드물 것이라 생각합니다만, 사실 저는 요즘 통일에 대한 생각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통일은 좀 늦춰져야 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북한의 체제가 붕괴돼 이뤄지는 흡수통일을 한다면 그야말로 풍비박산이 날 것입니다. 북한사람들의 의식이 우리와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핵무기나 땅 문제 등을 비롯해 왜 통일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려서 절에 들어와서 굶는 날이 허다했습니다. 옷이 해져도 엉덩이 부분을 기울 조각천이 없었습니다. 어디선가 천 한 조각 주우면 그날은 기분이 무척 좋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우리나라에서 지금처럼 잘 사는 것은 국민 모두 제 할 일을 잘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 대통령 욕을 안 하는 사람이 거의 없고, 심지어 무언가 조금만 잘못해도 쉽게 욕을 합니다. 이것이 우리나라에 얼마만큼 손해인지 다시 생각해봐야 합니다.

종종 법문을 하기 위해 외국에 가보면 외국에서는 한국을 기적의 나라라고 합니다. 경제규모 세계 10위권의 대단한 나라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귀국하고 나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한국은 이래서 안 돼라고 부정적인 말을 하는 것을 자주 듣습니다. 물론 중국이 경제규모에서 우리나라를 넘어 크게 성장했고, 인도의 발전 속도도 빠릅니다. 자원이 없는 우리나라에서는 막강한 경쟁상대가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남북통일의 필요성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린 더 진지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우리 자손들이 다시 한 번 세계에 한국을 알리려면 통일은 필수적입니다.

 

'빈 배'를 대하는 마음
우리들이 통일을 바라보는 시선은 어떻습니까? ‘북한은 금방 붕괴될 것이고 자연스레 흡수통일 될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보편적입니다. 하지만 저는 조금 걱정입니다. 통일이 됐다고 가정했을 때 핵무기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미국 등 여러 강대국이 개입하면서 더 심각한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요? 우리 손으로는 절대 해결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땅 투기꾼들이 자본을 바탕으로 북쪽 땅을 다 사버릴 수 있다는 등 사사로운 문제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중국이 공산주의임에도 발전할 수 있었던 배경 중 하나가 바로 등소평의 정책입니다. 등소평은 땅을 인민들에게 어떻게 나눠줄 것인가를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등소평은 인민들에게 땅을 50년 동안 임대를 주고, 당사자들이 돈을 벌어 살 수 있도록 장려했습니다. 우리는 어떤 고민을 하고 있나요?

미래를 위해 통일은 반드시 이뤄져야 하지만 그 전에 우리들의 의식이 바뀌어야 합니다. 사성제팔정도라는 정신문화사상을 바탕으로 나누는 법을 가슴에 새겨야 합니다. ‘북한사람은 나의 친형제나 다름없다. 내 재산을 나눠주자와 같은 의식이 필요합니다. 남북통일에 필요한 정신을 설명하는 데 다른 불자님의 일화를 예로 들겠습니다.

제가 알고지내는 한 처사님은 부인을 무척 사랑하고 서로 사이도 좋습니다. 처사님은 일이 많은 편이지만 일요일이면 항상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곤 합니다. 하루는 여행을 위해 부산을 출발해 경주에 도착할 때쯤 부인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 집에 다리미 전원코드를 꽂아놓고 나왔네!” 깜짝 놀란 처사님은 급히 차를 돌려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다리미 전원코드는 빠져 있었습니다. 이후 해인사를 갈 때도 부인이 똑같이 말했습니다. 집에 가보니 역시나 코드는 빠져있습니다. 그런데 다음에 순천에 놀러 가는데 부인이 또 그러는 것입니다. 그러자 처사님은 뒷좌석에서 다리미를 꺼내들며 여기 있으니 걱정 말라고 말했습니다. 그 처사님은 자기 부인을 사랑하는 만큼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다고 이해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이처럼 북한사람들을 위한 마음을 낼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낙동강 물을 얼마나 많이 보셨습니까? 아마 여러 번 보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낙동강 물은 한 번밖에 보지 못했습니다. 어제 제가 본 낙동강 물은 이미 흘러 바다가 되었고, 조금 전에 본 그 물도 흘러가버렸기 때문입니다. 현상은 생과 멸이 반복되고, 이 같은 생멸의 연속을 낙동강이라고 합니다. 우리 마음속에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가 없어지고, 그 생각을 계속 따라가다 보면 결국 고()가 됩니다. 생과 멸이 연속되는 것이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지 실상은 오고감이 없습니다. 내가 내는 화도, 차오르는 슬픔도 전부 한 곳에서 나오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누가 이 마음을 내고 있는가입니다. 이런 마음에서 보면 사실 38선도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현상 또는 우리 감정에서만 38선일뿐입니다. 새들은 그 위를 마음대로 날아다니고, 토끼들도 왔다 갔다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도에 들어가는 첫 걸음을 빈 배 대하듯이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빈 배를 대한다는 게 무슨 말일까요? 내가 나룻배를 몰고 가는데 물살을 못 이겨 다른 배와 부딪혀 배가 박살난다면 분명 화가 나고, 서로 엄청 싸울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빈 배가 나룻배를 향해 흘러내려온다면 어떻겠습니까? 싸울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빈 배를 대하는 마음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가정을 아끼고 이웃을 사랑하는 우리의 마음이 북한까지 이어질 때 통일의 준비가 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자신의 행복은 놔둔 채 남과 비교하며 사느라 중요한 걸 놓치는 사람이 많습니다. 지금이 지나면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 없듯이 소중한 오늘 하루를 행복하게 받아들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여러분들이 각자 마음의 물결을 잔잔하게 가라앉히는 작업을 꼭 하시길 바랍니다. 그런 뒤에 통일이 정말로 필요하다는 의식을 갖추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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