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응답하라 1988’

가족은 숭고한 삶의 유전이 깃든 공동체인 것이다. 응답하라 1988에서는 그 시대의 인연을 소중히 다룬다.
전작에 비해 폭이 넓어진 등장인물, 얽힌 인연도 많아
점과 점이 모여서 선을 이루고, 선과 선이 모여 면을 이루는 관계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다. 드라마의 이름을 줄여서 응팔이라고 한다. 응칠(‘응답하라, 1997’), 응사(‘응답하라, 1994’)에 이은 일종의 세 번째 연작이다.
사견이지만 필자는 응팔이 전작보다 훨씬 더 재미있다.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 우스꽝스러운 정황들이 복고적이어서 정겹고, 둘째, 전작들에 비해 인물들의 동선이 가족중심적이기 때문이다.
전편인 응사는 하숙집 주인인 성동일과 이일화의 집에서 딸인 성나정(고아라)과 쓰레기(정우), 칠봉이(유연석), 삼천포(김성균), 해태(손호준), 빙그레(바로), 조윤진(도희) 등이 모여 살면서 겪는 이야기를 담았다. 다시 말해 응사의 인물들은 성동일과 이일화를 제외하면 대부분 대학생들인 것이다. 하지만 응팔에는 성동일과 이일화 가족 말고도 많은 가족이 등장한다. 성동일과 이일화 가족이 세 들어 사는 집의 주인은 김성균과 라미란이다. 성동일과 이일화 가족은 빚 보증을 잘못서서 반 지하에서 살아야 하는 상황이 된 반면, 김성균과 라미란 가족은 복권에 당첨되어 팔자를 고쳤다.
성동일과 이일화 사이에는 서울대에 다니는 보라(류혜영), 특공대(특별히 공부 못하는 대가리)라는 별명을 가진 덕선(혜리), 노안(老顔)의 외모를 지닌 노을(최성원)이 있다. 김성균과 라미란 사이에는 공부 빼고는 다 잘 하는 대입 오수생 정봉(안재홍)과 우등생인 정환(류준열)이 있다. 이 두 가족이 응팔의 두 기둥 역할을 한다.
골목 친구인 선우(고경표), 택(박보검), 동률(이동휘)의 가족도 등장한다.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는 선우는 편모슬하에서 자라고 있다. 반면 바둑 천재여서 한 해 1억을 버는 택은 편부 슬하에서 자라고 있다. 덕선만큼이나 공부를 못하는 동률의 아버지는 쌍문고 교사이다.
응팔에 나오는 인물들은 마치 점과 점이 모여서 선을 이루고 선과 선이 모여서 면을 이루는 형국이다. 드라마의 시작은 골목 5인방 친구들이 자기 집의 음식을 친구 집에 배달하는 것이다. 수행여행을 앞두고 경제적으로 부유한 라미란이 상대적으로 빈곤한 이일화에게 덕선의 용돈에 보태 쓰라고 돈을 건네기도 한다. 그것도 옥수수가 담긴 바구니에 슬쩍 편지봉투를 넣어서.
응팔을 보면서 필자는 가족의 의미에 대해 숙고하게 된다.
 

응팔에서 덕선은 인연 고리의 중심이다.
고 최인호 작가는 〈산중일기〉라는 산문집에서 가족의 중요성을 이렇게 강조했다.
“서로 모르는 타인끼리 만나서 아이를 낳고, 그 아이들과 더불어 온전한 인격 속에서 한 점의 거짓도 없이 서로서로의 약속을 신성(神聖)하게 받아들이고, 손과 발이 닳을 때까지 노동으로 밥을 빌어먹으면서 서로를 사랑하고 아끼면서 살다가, 마치 하나의 낡은 의복이 불에 타 사라지듯이 감사하는 생활 속에서 생을 마감할 수 있는 가족이라면, 그들은 이미 가족이 아니라 하나의 성인(聖人)인 것이다. 그렇게 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가정이야말로 하나의 엄격한 수도원인 셈이다. 그 가정에서 살고 있는 가족들은 이미 종신서약을 약속한 수도자들인 것이다. 가족이라는 수도원에서 우리는 일상을 공유하며 사랑을 수양하고 있다.”
최인호 작가의 말대로 가족은 또 하나의 수행공동체이다. 그리고 그 수행법은 다름 아닌 사랑을 수양하는 것이다. 가족은 한 개인이 가질 수 있는 최초이자 최후의 사회집단이다.
응팔에서 성동일의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장례를 치르는 장면이 나온다. 장례식장의 풍경은 일상사와 다르지 않다. 술 마시고 고스톱 치고 더러는 웃기도 한다. 그러다가 장남이 나타났을 때 형제들이 모여서 얼싸안고 눈물을 흘린다. 이 장면을 보면서 필자는 붓다가 대애도 비구니의 장례를 치른 이야기가 떠올랐다. 대애도 비구니는 붓다의 이모이자 어릴 적 유모였다. 사실상 어머니와 같은 존재다.
붓다는 대애도 비구니의 몸 위에 꽃과 향을 뿌리고 이렇게 게송을 읊었다고 한다.
“일체의 현상은 덧없는 것 한 번 나면 반드시 다함이 있네. 태어나지 않으면 죽지 않나니 이 열반이 가장 큰 즐거움이네.”
붓다의 일화에서 필자는 가족의 소중함과 함께 소중한 인연과 헤어져야 하는 법도 배웠다. 이렇듯 가족은 가장 비장하면서도 숭고한 삶의 유전(流轉)이 깃든 공동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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