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불자연합회 고문 류재환 (경희대 동서의학대학원 동서의학과장)

류재환 교수는 … 경희대학교 한의과와 의과를 졸업하고 1999년부터 경희의료원 동서협진실 실장으로 재직중이다. 2004년부터 경희대 한의대 교수, 경희대 동서의학대학원 동서의학과 과장 및 주임교수를 맡고 있다. 2004년에 조계사불교대학 43기 수료, 2007년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원 최고위과정(5기)을 수료했다. 2007년 5월 병불련 3대 회장에 취임해 2014년(5대)까지 회장을 지냈다. 2012년~2013년 중앙신도회 부회장에 선임됐고 2014년부터 병불련 고문단장을 맡고 있으며, 2015년 6월 사단법인 신청 중인 (사)병불련 초대 이사장으로 선임됐다. 2006년 연화보현상(동국대 불교대학원), 2014년 포교대상 공로상(조계종 포교원)을 수상했다.

1976년 대학 불교동아리서 첫 봉사
첫 현장서 평생 봉사 원력 세워
의료봉사활동하며 ‘보시’에 눈 떠
2000년 병불련 합류, 봉사단 이끌어

병불련 3, 4, 5대 회장 역임
내년부터 해외 개안수술 시작
휴가, 주말 반납 병불련서만 100회 봉사
“봉사활동, 포교에 많은 도움 돼”

반야회 이끌며 병원 법당 추진
병불련 사단법인 추진 이사장에 추대

서울 회기동에 자리한 경희의료원. 본관 로비와 각 병동을 잇는 통로는 많은 환자들로 붐볐다. 여전히 세상엔 아픈 사람들이 많았다.

한방병원 연구실 3303호. 연구실의 주인은 평생 의료봉사로 보시바라밀을 실천하고 있는 전국병원불자연합회 고문 류재환 교수(의학박사)다.

연구실의 문을 두드렸지만 방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약속 시간이 5분정도 지났을 때 연구실의 주인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지금 가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그는 법당에서 오는 길이었다. 경희의료원 바로 곁에는 연화사가 있다. 그는 오전 진료(내과)를 마치고 외출했다 병원으로 돌오는 길에 연화사에 들렀다.

“수시로 시간이 나면 오다가다 연화사에 들러 기도하고 옵니다.”
그의 말속엔 단단해 보이는 불심이 있었다.

2010년 티베트 라싸의 데붕사원에서 의료봉사를 진행하는 류재환 교수.
의료봉사의 시작
류 교수의 불심은 그의 어머니에서 왔다. 어머니의 종교가 고스란히 유전자로 전해졌다. 어려서부터 의심 없이 품었고, 몸과 마음이 자랄 때 함께 자라고 단단해졌다.

1974년 경희대 한의과에 입학한 류 교수는 교내 불교 동아리에 들어갔다. 어머니의 손을 놓고 스스로의 종교를 시작했다고 할까. 몸과 마음이 새로운 궤도를 시작한 것처럼 그의 종교도 새로운 궤적을 시작했다.
그는 동아리 활동을 통해 크고 작은 봉사활동을 경험하게 됐고, 봉사가 주는 보람을 조금씩 느껴가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동아리 내 의대·한의대·치의대 연합 의료봉사모임인 ‘녹원’에 가입하면서 의료봉사를 시작하게 됐다.

그는 3학년 때인 1976년, 강원도 양양의 산골마을로 첫 의료봉사를 나갔다. 당연히 봉사란 어려운 곳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곳의 환경은 류 교수가 살고 있는 환경과 너무나 달랐다. 의료혜택이 부족한 것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들은 몸만 아픈 것이 아니었다.

봉사를 마치고 돌아갈 때, 류 교수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어렵고 아픈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은 의술만으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더구나 앞으로 평생 의술을 통한 봉사를 하기 위해서는 더욱 그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류 교수는 단순히 의술만을 들고 달려온 자신을 돌아보며, 진정한 봉사와 보시에 대해 생각했다. 진정한 의료봉사는 의술만을 보시하는 것이 아니라 어렵고 아픈 이들의 마음도 함께 돌보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한의대를 졸업하고 의대에 재입학하고 난 후에도 꾸준히 의료봉사활동을 이어갔다. 새로운 궤적을 그리기 시작한 그의 종교는, 불심은 바로 ‘보시’에 눈뜬 것이었다.

2014년 양양노인복지관에서 어르신 무료의료봉사를 진행한 류 교수.
약왕보살의 서원, 전국병원불자연합회

“만약에 불자가 일체의 앓는 사람을 볼 때에는 언제나 정성껏 공양할 것이 부처님과 똑같아야 하고 달라서는 안 된다. 복전 중에는 병을 간호하는 복전이 제일의 복전이다.” -<범망경>

아픈 이를 돌보는 일은 법을 전하는 일만큼 귀한 일이다.

어떤 중생이든지 자기 명호를 들으면 병고가 완전히 사라지게 해달라는 약왕보살의 서원이 있다.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후 상법의 시대에 일장(日藏)이라는 비구가 대승의 위없고 청정하며 평등한 지혜를 대중에게 설법하고 있었다. 그 때 대중 가운데 성수광장자가 그 가르침을 듣고 너무나 기뻐 설산 중에 나는 양약으로 일장비구와 그의 제자들을 공양했다. 그리고는 그 공덕으로써 보리로 회향하여 위와 같은 서원을 세웠다.
1999년 10월, 그 약왕보살의 서원을 따르는 사람들이 모인다. 전국병원불자연합회(이하 병불련). 당시 국립서울병원 김효주 간호과장이 중심이 되어 서울 시내 7개 병원 불자회 대표들로 구성된 창립 발기인대회를 거쳐 다음 해인 2000년에 병불련이 정식으로 출범한다.

병불련이 출범하자 류 교수는 대학교 시절에 불교 동아리를 찾았을 때처럼 병불련에 합류한다. 단순히 합류의 차원이 아니었다. 류 교수는 병불련 주요사업인 의료봉사의 매뉴얼을 만들고, 봉사에 필요한 장비를 사비로 제공하는 등 의료봉사단의 중심이 되었다.

2000년 10월 1일, 류 교수가 합류한 병불련의 의료봉사단은 강원도 홍천 구만리에서 첫 공식 의료봉사를 시작했다. 이때부터 류 교수는 주로 병불련을 통해 의료봉사를 하게 된다.
경희의료원 동서의학과장으로서 강의와 진료로 바쁜 삶을 살면서도 그는 2007년부터 2014년까지는 병불련 3대, 4대, 5대 회장직까지 맡아 병불련의 의료봉사를 이끌었다. 휴가를 반납하고 주말을 반납하고 아픈 사람들을 찾아갔다.

“의료봉사는 병원 진료의 연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병원을 찾아오는 환자보다 더 세심하게 환자를 살펴야 하죠. 마음까지 아픈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회장직을 놓은 현재까지 류 교수가 참여한 병불련의 공식적인 의료봉사는 100회에 이르고, 총 진료인원과 검사인원은 해외를 포함해서 각 69,078명과 19,983명에 이른다. 1999년에 경희의료원에 부임한 류 교수는 종교와는 상관없이 경희의료원 봉사단체인 한마음봉사단체를 통해서도 의료봉사를 해오고 있다.

2015년 티베트 데붕사원 봉사에는 초음파기기도 사용됐다. 진료를 보고있는 류재환 교수.
포교, 이심전심으로 느끼는 것

“백령도에는 군인 4천 명, 민간인 4천 명이 살고 있는데 90%가 기독교에요. 사찰이 하나 있는데 신도가 거의 없어요.”

병불련은 재작년부터 섬 지역 의료봉사를 시작했다. 그 첫 지역이 백령도였는데 의료 환경도 열악했지만 불사도 많이 열악했다. 백령도 주민이 제대로 된 진료를 받기 위해선 인천까지 나가야 하는데 약 5시간이 걸린다. 병불련 의료봉사단은 첫 해 주민들 반응이 좋아 작년에도 다시 백령도를 찾았다. 그리고 주민들은 다시 찾은 봉사단을 반갑게 맞았다.

“첫 해, 봉사를 마치고 떠나올 때 봉사단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과 흔드는 손에서 느낄 수 있었죠. 다시 오기를 바라는 그들의 마음을.”

봉사단의 진료를 받은 백령도 주민들은 거의 타종교인이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봉사단이 다시 오기를 기다렸다. 류 교수를 비롯한 봉사단의 따뜻하고 진심어린 봉사에 고마움을 느낀 주민들은 종교와 상관없이 봉사단을 기다린 것이다.

류 교수는 의료봉사 활동이 포교에 도움이 많이 된다고 했다. 의료봉사의 목적이 포교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기대할 수는 있는 일이고 결과적으로는 포교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봉사현장에서 특별히 포교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럴 수도 없고요. 그저 불자들이 모여서 좋은 일 하는 것 보여주는 거죠. 서로 염화미소, 이심전심으로 느끼는 거죠. 그게 포교라고 생각해요.”

한 두 번의 봉사로 그들의 종교를 흔들 수는 없지만, 그리고 그런 기대를 해서도 안 될 것이지만 주민들이 봉사단을 기다렸다는 것은 그들의 마음속에 병불련이라는 이름이 기억된 것이 분명하고, 그것만으로 흐뭇한 일이 아니겠냐고, 불교를 보여준 것 아니겠냐고 류 교수는 덧붙였다.

병불련에서 진행하고 있는 의료봉사는 사찰을 중심으로 한 ‘사찰순례 자비나눔 의료봉사’와 이주근로자 및 다문화가정 의료봉사, 도서 지역 등 오지를 포함한 지역주민 의료봉사, 라오스, 몽골, 네팔, 인도 등에서 진행되는 해외의료봉사, 그리고 종단과 관련된 종단의료봉사가 있다.

“의료혜택이 제대로 미치지 못하는 사찰 주변 낙후지역 주민들이 아직도 많습니다.”

병불련 의료봉사단은 봄·가을로 안거 해제에 맞춰 사찰순례 의료봉사를 나간다. 봉사단이 사찰지역의 의료봉사를 다녀가면 사찰 이미지까지 좋아진다고 한다. 사찰의 이미지가 좋아지면 사찰 행정에도 좋은 영향을 준다. 공무원을 비롯한 지역 관계자들의 시선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렇듯 의료봉사는 굳이 포교라는 거창한 간판을 달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불교를 심는 일이다. 봉사단이 전하고 온 것이 몇 알의 약과 의술만은 아닌 것이다.

병불련 의료봉사단은 2000년대 초부터 몽골을 시작으로 인도, 라오스, 페루 등 해외봉사도 시작했다. 류 교수는 해외에서도 그 옛날 강원도 산골에서 느꼈던 걱정을 하게 됐다고 한다.

“의료만의 문제가 아니었죠. 그들은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것들이 너무나 부족했습니다. 의료는 그 다음이었죠. 눈앞의 끼니를 걱정하는 그들에게 병세에 따라 음식을 가려 먹으라는 말은 그야말로 난센스였죠.”
류 교수는 생각했다. 당장의 진료도 필요하지만 장기적으로 그들을 도와야겠다고. 그래서 류 교수는 백내장으로 시력을 잃은 이들을 위한 개안수술을 생각했다. 류 교수는 2010년 인도로 의료봉사를 갔을 때 시력을 잃은 이들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세상을 볼 수 없다는 것은 삶을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이죠.”

류 교수는 힘든 삶이라도 살아가기 위해선 우선 세상을 볼 수 있어야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시력을 찾는다는 것은 정말 드라마틱한 일이죠. 바로 세상을 볼 수 있게 되는 일이니까요. 그 드라마틱한 의술을 봉사에 쓴다면 의사에게도 환자에게도 더더욱 잊지 못할 일이 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시력을 찾은 사람이 많아지면 그 지역의 삶을 증대시킬 수 있죠. 그들에게 궁극적으로 필요한 것은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개안수술 프로젝트는 쉽지 않았다. 안과 전문의를 구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았다. 병불련에는 이비인후과나 안과 같은 특수과 의사가 없었다. 그래도 류 교수는 포기하지 않고 안과 의사를 찾았다. 그리고 안과를 비롯한 특수과 의사들을 충원할 수 있었다. 병불련은 내년 해외의료봉사부터는 개안수술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다고 한다.

“해외의료봉사에서 보람을 느낄 때는 다시 그 지역을 찾았을 때, 우리를 알아보고 세관 통과 절차를 편하게 해준다든지, 여러 가지 편의를 봐주려고 노력하는 지역주민들의 모습을 볼 때죠.”

해외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따뜻하고 진정한 마음이 마음을 움직이고 있었고 그것이 자연스러운 포교로 이어지고 있었다.

2008년 3월 진행된 병불련 춘계 연합의료봉사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류재환 교수(오른쪽).
불자로서의 소명

“병원에 법당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는데…, 아직은 쉽지 않네요.”

류 교수는 지난해부터 병원 내 법당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병원 사정이 여의치 않고, 가깝게 연화사가 있다는 이유로 법당 건립 추진은 현재 낙관적이지 않다. 류 교수는 경희의료원 내 불자직원 모임인 ‘반야회’의 수장이다. 경불회에서 이어진 반야회는 2010년에 창립됐다. 회원은 현재 60명 정도다. 처음엔 호기심에 모인 회원이 많았다고 한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연화사에서 정기법회를 갖는 정도였다.

류 교수는 회원들에게 사찰순례 의료봉사를 권했고, 많은 사람들이 동참하게 됐다. 소풍가는 마음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던 직원들은 봉사활동을 통해 새벽예불도 경험하고, 법문도 들으면서 불교에 가까워지고 깊어지기 시작했다. 회원들이 나서서 정기적인 법회를 열고 경전공부반도 만들었다. 류 교수는 그런 반야회를 보면서 회원들과 함께 할 법당을 가지고 싶었다. 류 교수는 병원 내 법당 건립이 빠른 시간에 이뤄지기는 힘들다고 보고 연화사와 병원을 직접 잇는 길을 추진하고 있다. ‘환자 및 보호자를 위한 의료원 인근 연화사 진입로 개방’을 병원측에 요청했다. 연화사측에서는 환영하고 있지만 병원 측에서는 아직 답이 없다. 류 교수는 의료봉사 외에도 병원 안팎에서 많은 불사를 하고 있었다.

많은 세월을 함께 해온 병불련은 현재 사단법인을 추진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사단법인 인가 신청 중이다. 올해 6월 사단법인 출범 총회를 개최했고, 류 교수가 초대 이사장으로 추대됐다. 2014년 병불련 회장직을 놓으면서 평회원으로 돌아가 의료봉사에만 전념하고 싶었던 류 교수였다. 하지만 류 교수는 이번에도 기꺼이 이사장직을 받아들였다.

“모든 것이 불사이고, 그 불사에 동참해야 한다면 해야죠.”
류 교수는 지금도 일 년에 10회 정도 의료봉사를 나간다. 평생 의료봉사를 실천해온 류 교수는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덤덤하게 대답했다.

“반야회 회원들 더 늘었으면 좋겠고요. 병불련 살림 많이 늘어서 의료봉사 더 많이 다닐 수 있었으면 좋겠고요. 병원에 법당 만들고 싶고요. 아픈 사람 없었으면 좋겠어요.”

인터뷰를 마치고 본관 로비로 돌아왔다. 아직도 약왕보살의 명호를 듣지 못한 사람들이 여전히 많았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