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니 70년사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수행·교육
배출 인재 각 분야서 활동 ‘활발’

첫 비구니 스님 조직 우담바라회
현재 전국비구니회 결성 ‘견인차’
종무기관·중앙종회의원 진출했으나
아직도 위상과 권익 보호는 미흡해

2003년 전국비구니회관에서 열린 선수행 특강. 해방 이후 비구니 승가는 스스로 선풍을 호지하며 수행 정진에 힘썼다. 또한 경학과 율학에도 힘써 전국에 비구니 전문 강원, 율원을 세워져 인재를 배출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런 노력으로 비구니 승가는 한국불교 발전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현하 한국불교의 교단사회에서 비구니의 위상과 권익은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 같은 사실은 역사적 발자취를 통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거니와, 사상 첫 경선으로 치러진 대한불교조계종 전국비구니회 제10대(2011.10.17) 및 제11대(2015.10.12) 회장후보들이 공약 일성(一聲)으로 “종단의 중앙종회의원과 교역직에 비구니들의 진출을 확대하는 등 ‘비구니의 위상’을 드높이겠다”고 이구동성 역설했던 최근의 현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현대사 공간에서 발자취를 뚜렷이 남기고 있는 비구니승가의 활약상을 조망하는 일은 작금의 차별적 교단구조의 변화에 일정한 당위를 던져줄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유의미한 일이다. 다만 종이신문의 특성상 지면의 제한으로 활자화되지 못하는 내용과 비구니선지식들의 숫자가 부지기수(不知其數)라는 점을 양해바랄 뿐이다.

수선(修禪)
○…역사 속에서 비구니 스스로 선풍을 호지하며 가행정진 힘써온 바 크다. 덕숭산 수덕사에 개설된 견성암선원을 위시해 천성산 내원사·가지산 석남사·사불산 윤필암·오대산 지장암 등 전국 30~40여 개의 비구니전문선원에서 니승납자들의 선풍진작이 성성한 모습을 어렵지 않게 목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 선원에는 평균 800~1,000여 명의 니승납자들이 매 안거 때마다 방부를 들고 있다. 현하 총림을 비롯한 60여 개의 선원에서 1,200~1,400여 명의 납자들이 입방하고 있는 비구들의 안거현황과 비교해 볼 때 비구니들의 수선행각이 간단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근·현대기를 가르며 비구니선풍을 호지해온 인물로는 법희·성문·월혜·일엽·만성·수인·도준·정행·긍탄·상근·자현·대영·법일·진오·선경·본공·쾌유·인홍·천일·광호·장일·혜춘·응민·세등·봉려관·일조·은영·명주·영명·윤호·도원·창법·인완·지명·명수·경순·경희·상륜·혜해·현행·자행·경심·광우·묘엄·명성·진관·백졸·불필·도문·육문·자민(이상 무순) 스님 등이 있다.

강학(講學)
○…광복 이후 비구니 전문 강원은 동학사·운문사·청암사·봉녕사 등 네 곳을 비롯해 서울 옥수동 미타사·충남 서산 개심사·경기도 용인 화운사·전북 전주 정혜사·삼선승가대학·전남 화순 유마사 등 20여 곳에 개설되었으나 대다수 폐원되고 지금은 네 곳만 운영되고 있다.

광복과 때를 거의 같이 하는 비구니에서 비구니로의 강학전등은 근·현대기 비구니 3대 강백으로 이름을 남긴 금룡·혜옥·수옥 스님이 효시를 이룬다. 1940년대 초 수옥스님이 상주 남장사의 강주로 취임하면서 관음강원을 개설한 바, 이것이 비구니가 비구니에게 교수하고 전강하는 비구니 전문 강원의 처음이다. 관음강원은 1944년께 일제의 위안부 강제징집을 피하기 위해 문을 닫았다.

광복 이후 최초의 비구니 전문 강원은 1956년 동학사에 개설되었다. 동학사는 1864년에 강원을 개설한 이후 10대 강주까지 비구강원으로 운영되어왔으나, 1956년 2월 비구니 대현스님이 주지로 부임해 비구니 전문 강원을 개설함으로써 지금의 동학사승가대학의 전형을 갖추기 시작했다. 1977년에 비구강백 호경기환으로부터 전강받은 일초스님과 묘엄스님의 전강제자 일연스님이 동학사 비구니강주의 맥을 이었다.

운문사는 금룡스님이 1954년 말 교단정화운동 이후 초대주지로 부임하면서 도제양성에 진력한 결과, 마침내 1958년 종단이 공인하는 비구니 전문교육도량인 운문승가학원으로 거듭나면서 오늘날 비구니사관학교로서의 위용을 갖추기 시작했다. 금룡스님은 이때부터 주지직을 그만 두고 직접 강사직을 맡음으로써 비구니가 비구니를 직접 가르치는 교육체계의 일대 혁신을 가져왔다.

청암사는 혜옥스님의 숨결이 깃든 곳이다. 혜옥스님은 1955년 교단정화운동 이후 청암사 초대주지로 부임해 쇠락해가던 강원의 위용을 바로 세웠다. 혜옥스님이 입적(1969.5)하면서 단절될 위기에 처했으나, 1987년 3월 지형스님이 주지로 부임하면서 상덕스님과 함께 강원을 복원해 지금의 청암사승가대학의 위용을 갖췄다.

봉녕사는 1971년 묘전스님이 주지로 부임해 경내를 일신한 후 1974년 묘엄스님을 강사로 초빙하면서 비구니승가학원을 설립했다. 1979년부터 묘엄스님이 주지와 학장을 겸임하면서 1983년 봉녕사승가대학으로 개칭한 이래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삼선승가대학은 1978년에 설립자 지광스님을 학장으로, 묘순스님을 강사로 경기도 의정부시 호원동 약수선원에서 ‘주림승가강원’으로 개원했다. 1979년 서울시 성북구 동소문동으로 이전하면서 삼선강원-삼선승가대학으로 개명하고 유일한 통학강원 형태로 운영되었으나, 학인수가 급감하면서 2014년 3월부터 폐원했다.

대학강단에 몸담고 있는 비구니로는 교수 제1호인 해주스님을 비롯해 혜원?계환?대원스님이 동국대에서, 본각·혜도스님이 중앙승가대에서, 소운스님이 부산 동명대에서, 명법스님이 능인불교대학원대학에서, 서광스님이 동방문화대학원대학에서 각각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2007년 비구니 명사 법계 품수식. 한국불교 사상 최초의 일로 주목받았다.
지율(持律)
○…조계종 단일계단 수계산림의 전통은 비구율사 자운스님에 의해 1981년 2월 17일 제1회 사미(니)계 수계산림을 거행하면서부터다. 이듬해인 1982년 초 자운스님은 비구니 이부승구족계수계의식(이하 양중수계의식)의 복원을 중앙종회에 제안해 그해 6월 종법이 제정되는데 실질적인 기능을 담당했다. 그해 10월 범어사 대성암에서 양중수계의식이 처음 치러지고, 이때부터 양중수계산림의 전통이 복원됐다. 하지만 양중수계 자체가 비구와 비구니의 차별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복원을 마냥 반길 수만은 없다.

비구니의 계율수학이 이뤄진 최초의 전문율원은 1999년 5월 21일 개설된 봉녕사 금강율원이다. 당시 율주인 묘엄스님은 2007년 5월 7일 제1회 전계식을 거행해 적연·신해 스님에게 전계함으로써 비구니 율맥의 독립적 계승을 공식화했다. 그해 9월 14일 제2회 전계식을 통해 대우스님에게 율맥을 전하고, 2011년 1월 18일 금강율원 졸업식을 기해 의천스님에게 전계증을 수여했다. 묘엄스님은 입적직전인 2011년 11월 도혜·혜정·선나 스님에게 또다시 전계함으로써 총6명의 비구니율사를 배출했다.

청암사율원은 청암사승가대학장 지형스님을 초대율원장으로 선임하고 2007년 4월 18일 개원했다. 운문사 보현율원은 2008년 4월 4일 개원했으나, 2010년도부터 한문불전대학원으로 학사에 변화를 주었다. 

포교
○…비구니 포교활동의 선두는 어린이포교였다. 1960년대 서울 마포 석불사 천일스님과 삼선동 정각사 광우스님이 사찰에 어린이법회를 개설한 것이 시초다.

화성 신흥사 성일스님은 청소년계층에서 교화의 원력보살로 칭송받는 인물이다. 포교지침서를 직접 간행하고, 교계 최초로 1천여 평 규모의 청소년수련원을 건립해 매년 3천여 명의 청소년들을 교육하는 등 1973년부터 청소년포교의 지표를 제시해오고 있다. 

도심포교분야에서는 조계종이 1977년 임명한 비구니포교사 제1호인 지광스님이 일찍이 도심포교의 중요성에 착안해 서울 동소문동에 국보 제20호 분황사 모전석탑을 모델로 한 탑주양식의 대형포교당 삼선포교원을 개원했다. 상담포교는 2000년 4월 설립된 불교상담개발원이 그 기능을 담보하고 있다. 2,3대 원장을 역임한 정덕스님은 불교상담개발원 출범에 앞서 1990년 3월에 개통한 자비의전화를 통해 상담포교의 포문을 열었으며, 4대 원장을 지낸 담교스님이 전문가로서 역량을 발휘했다. 5대 원장 도현스님을 비롯해 벽공·혜타·희철·규정·선법·도영 스님 등 10여 명의 비구니들이 전문상담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군포교에서는 명법스님이 2014년도에 최초로 비구니 군종장교로 파송되었다. 교도소포교는 태경·자민·명우·상덕·정현 스님 등 법무부 교화위원 70여 명의 비구니가 활동하고 있다. 1987년 1월 창단된 경승단에 소속되어 경찰포교에 전념하고 있는 비구니는 성일·정명·경륜·보안 스님 등이 두드러진다.

국제포교는 캐나다 토론토의 불광사 광옥스님과 미국 시카고의 불심사 법춘스님, LA의 원명사 원명·명은 스님, 뉴욕의 연국사 혜영·선묵스님 및 조계사 도명·묘지스님 등이 해외포교 1세대로서 이름을 남겼다. 한마음선원 대행스님은 미국 4개·아르헨티나 2개·캐나다, 독일, 태국, 브라질 각 1개 등 10여 개의 해외지원을 설치해 상좌비구니들을 파견했다.

청암사 학인 스님들의 모습. 현대적 시설에 대중과 함께 하며 수행정진하고 있다.
복지
○…비구니의 복지활동은 서울 신림동 약수사 묘희스님이 1986년 대만불교 자제공덕회와 자매결연을 맺고 발족시킨 불교자제공덕회로부터 출발한다. 불교자제공덕회는 1989년 화성에 부지확보와 1991년 4월 사단법인화에 이어 그해 10월 자제정사 양로원을 개원했다. 계속해서 2004년 7월 사회복지법인을 설립하고 노인요양시설과 장애인시설 등을 잇달아 개원하는 등 노인복지활동의 전범을 보이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묘희스님은 2007년 3월 31일 세납 72세 법랍 57세로 입적했다.

비구니 복지의 전형은 능행스님이 주도하고 있는 울산시 울주군에 소재한 재단법인 정토사관자재회를 빼놓을 수 없다. 1989년 결식아동돕기 모금운동을 시작으로 1993년 아미타호스피스회를 설립해 전문호스피스교육을 실시하고, 1997년에는 한국불교간병사협회를 결성해 전문 직업간병사교육을 실시했다. 2000년에는 불교계 최초 독립형 호스피스센터인 정토마을을 개원하고, 2014년 6월에는 완화의료전문 정토마을 자재요양병원을 개원하는 등 수행과 돌봄이 하나 된 출-재가의 행복공동체로서 불교복지의 지표를 제시해주고 있다.

서울도심의 대표적인 복지시설은 전국비구니회가 위탁받아 1988년 10월 26일 개관한 목동청소년회관이다. 현재 지역에서 없으면 안 될 정도로 주민들의 자랑스러운 복지관으로 자리매김했다. 1999년 1월부터 명칭을 목동청소년수련관으로 바꾼 이래 현재 경륜스님이 관장으로 있다. 수현스님은 군포에서 1997년 10월 매화종합사회복지관을 개관한 이래 현재까지 여법한 운영으로 지역복지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방생선원 성덕스님을 중심으로 1994년 9월에 창립한 불교자원봉사연합회는 봉사자 교육과 수료자들을 각 복지단체에 배치해 주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노인복지는 대구 서봉사 경희스님이 화성양로원을, 서울 인과선원 정덕스님이 성라실버타운을 각각 운영했으며, 무구스님이 서울 수효사에서 전문노인요양원 효림원을 운영하고 있다. 장애인복지는 원심회에서 수화교육을 받고 활동하는 해성·은성스님이 대표적이다. 종실스님은 아나율불교학교를 세워 <점자불교성전>을 간행하는 등 맹인불자들의 불교공부에 도움을 주었다.

조계종은 1995년 2월 25일 대한불교조계종사회복지재단을 설립해 제반 복지시설을 통합관리해오고 있다. 현재 산하에 수도권 106개, 영남 38개, 호남 23개, 충청 10개, 제주 2개 등 총 179개의 복지시설을 두고 있는데, 비구니가 시설장으로 있는 기관은 사회복지관 5개, 장애인복지시설 4개, 노인복지시설 8개, 어린이?청소년시설 1개, 어린이집 3개, 노인요양시설 5개 등 총 26개이다.

전국비구니회관 법룡사의 전경. 전국비구니회는 우담바라회가 모태가 되어 결성됐다.
문화
○…비구니의 역량은 문화분야에서도 활발발하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로 활약했던 옥봉스님은 죽화(竹畵)부문에서, 일선스님은 서양화 부문에서 이름이 높았다. 최근에는 희상스님이 수행과 불교미술을 접목한 현대조형미술로 대중의 관심을 받고 있다. 혜담·수증·법성·귀산·선유·무애 스님 등도 미술계에 이름을 올렸다. 

범패분야에서는 동희스님이 단연 돋보인다. 지성·범조·묘심·수법·오공·무진·정진 스님 등은 찬불가수로 유명하다. 다솔스님은 국악가수로서, 정율스님은 성악가로서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 ‘첼로 켜는 비구니’로 유명한 법현스님도 아름다운 선율로 불법전파에 앞장서고 있다. 서연스님은 ‘인드라’라는 예명으로 대중가요음반을 낸 최초의 비구니다.

꽃꽂이분야의 선도적인 인물로 기원사 지연스님이 있다. 지연스님은 1983년 우담회를 창립하고 불교꽃꽂이연구소를 개설했다. 지연·상덕·보명·정명 스님을 주축으로 1988년 한국불교비구니꽃꽂이협회를 창립했다. 보명스님은 1988년 연화꽃꽂이회를, 정명스님은 1991년 연화플라워회를 별도로 결성했다.

방송계에서 활약하는 비구니로는 정목스님이 독보적이다. 불교방송에서 ‘차한잔의선율’을 진행하며 방송포교에 일대 전기를 마련한 공로로 방송대상을 수상했다. 지금은 마음공부 전문방송인 유나방송을 운영하면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데 기여하고 있다. 자용·진명·일엄스님도 정목스님을 잇는 MC로서 확고한 이미지를 심어주었다. 사찰음식분야에서는 대안·홍승·선재·효원·은우·운아·우관·선오 스님 등이 활동하고 있다.

조직 및 종무
○…비구니승가공동체의 결집력을 보여준 사건(?)으로는 문중성립이다. 1970년대 전후부터 청해·계민·법기·삼현·수정·봉래·육화·실상·보운·일엽·보문종 문중이 속속 결집했다. 이밖에도 두옥문중·봉완문중·청량사문중·보문동 미타사 탑골문중·옥수동 미타사문중 등, 독립문중을 형성하지는 않았지만 대표인물 내지 단위사찰 중심으로 세계를 잇고 있는 문중이 산일(散逸)해 있다.

대한불교보문종이 창종된 1972년 전후의 교단상황은 1962년 3월 25일 출범한 조계종 통합종단을 둘러싸고 비구 측과 대처승 측의 대립으로 여전히 혼돈의 시기였다. 긍탄스님과 은영스님은 보문사가 분규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위기에 처하자 어느 쪽에도 가담하는 것을 거부하기로 결의하고 비구니의 독립적인 권리와 능력을 공인받기 위한 방안을 강구했다. 재단법인 대한불교보문원을 설립하고 비구니와 여성의 권익과 위상을 높여 사회발전에 공여한다는 목적으로 마침내 비구니만으로 구성된 종단을 1972년 4월 출범시켰다.

조직면에서 비구니들의 위상과 권익을 대변하고 있는 전국비구니회의 결성을 간과할 수 없다. 전국비구니회는 1968년 2월 24일 서울 숭인동 청룡사에서 발기한 우담바라회에 뿌리를 두고 있다. 우담바라회는 당시 3대 강령으로 ①비구니총림 건립 ②포교의 합리화 ③복지사회 건설을 내세웠다.

1971년 공식 발족하고 1985년 9월 5일 석남사에서 대한불교조계종 전국비구니회로 명칭을 변경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역대회장은 초대 은영·제2대 천일·제3대 지명스님(이상 명칭변경 이전)에 이어 혜춘(제4,5대)·광우(제6,7대)·명성(제8,9대)·명우(제10대) 스님이 뒤를 이었다. 광우스님은 숙원사업인 전국비구니회관(법룡사)을 건립·개관(2003.8)했으며, 명성스님은 한국 비구니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친목단체로는 선원수좌들이 주축인 선문회를 비롯해 목련회(원로비구니)·보현회(소장파 비구니)?금련회(부산지역 비구니)·영산회(대구지역 비구니) 등과 조계종 비구니(설봉·상덕·정목 스님 등)?원불교 정녀(지정·인신 교무 등)·천주교 수녀(베아따·양요순 수녀 등) 등이 1988년 4월 창립한 삼소회가 있다. 정혜도량은 1994년 비구니의 권익을 종헌종법에 반영하기 위한 개혁활동을 전개했으나, 비구들의 위기의식에 따른 완강한 반대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해산됐다.

종무분야에서는 조계종 중앙종회의원으로 현재까지 50명이 활동했다. 총무원 문화부장에 비구니로서는 최초로 탁연스님이 2004년 6월 부임했으며, 수경·효탄·진명스님이 후임자로 부임했다. 현 집행부에서는 보경스님이 재무부장을 맡았으며, 구과스님이 한국문화연수원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작금의 비구니승가는 1968년 최초의 전국비구니조직인 우담바라회를 발기할 당시 발원한 3대 강령의 포교합리화와 복지사회건설에 일정한 역량을 발현해왔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총림건립과 참정권 확대 등은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비구니승가의 분야별 주요인물
○…근현대기를 가르며 성성한 선풍을 드날린 대표적 인물은 비구니선풍을 중흥시킨 삼현문중의 법희스님이다. 만공스님께 법인가를 받고 최초의 비구니선원인 수덕사 견성암 비구니총림원장을 지내며 구도의 지표를 수많은 후학들에게 전했다. 범어사 대성암에 최초로 비구니선방을 개설한 만성스님은 법희스님의 뒤를 이어 비구니선풍을 정립시킨 인물로 이름이 높다. 실상문중의 상징인물로서 역시 만공스님께 법인가를 받았다.

본공스님은 제방의 비구고승으로부터 ‘선사’로 공인받은 비구니다. 만공스님께 법인가를 받았으며, 봉래문중의 태동주역으로 전국비구니회장을 역임한 명성·명우스님이 손상좌들이다. 일엽스님은 신문학 초창기 선구적 여류문인으로 이름을 남기더니 세납 33세에 홀연히 출가해 만공스님의 법을 잇고 일생동안 가행정진의 전범을 보여준 비구니다. 천성산 내원사에서 선풍을 드날렸던 선경스님은 국내 니승납자들은 물론 외국인 출가자들도 다투어 제자로 입문할 정도로 경지가 높았던 비구니고승이다. 한암스님께 인가받은 육화문중의 핵심인물이다.

가지산 호랑이 인홍스님은 성철스님 회상에서 구도열정을 불살랐던 용맹정진의 표징이다. 석남사를 선수행도량으로 일신하고 전국비구니회 총재를 역임한 법기문중의 상징인물이다. 해인사 보현암선원을 창건한 혜춘스님은 성철스님 회상에서 촌음도 화두를 놓지 않았던 걸출한 선객이다. 전국비구니회장을 역임한 비구니계 거목으로, 동화사 내원암 장일스님과 청해문중을 태동시켰다. 보운문중의 핵심주역인 수인스님은 교단정화 이후 금룡스님에 이어 1958년부터 1966년 12월 30일까지 운문사 2,3대 주지를 역임하며 오늘날의 사격을 갖춘 주인공이다. 90평생 참선과 간경과 주력을 놓지 않았던 비구니종풍의 근간이 된 인물이다.

○…비구니 교육분야에서 독보적인 존재는 비구니 3대 강백으로 저명한 금룡·혜옥·수옥스님이다. 이들 3대 강백의 강학을 계승해 강원교육을 선도하며 이름을 남기고 있는 강사는 광우·묘엄·명성·묘순·지형·일초스님 등이다. 서울 정각사 회주 광우스님과 운문사승가대학장 명성스님은 비구니가 비구니에게 건당한 초유의 주인공들이다.

광우스님은 1958년 금룡스님의 법장을 전해 받았고, 명성스님은 1983년 수옥스님에게 위패건당하면서 전법게를 수지했다. 묘엄스님은 성철선사·운허강백·자운율사 등 당대 비구고승으로부터 선?교?율 삼장을 모두 전수받은 비구니이다. 명성스님은 흥륜·일진·계호·묘정·진광·세등·운산·영덕·은광·효탄·일진·명법·법장에게 강맥을 전하고, 묘엄스님은 일연·성학·혜정·대우·일운·탁연·적연·상일·본각에게 전강했다. 삼선승가대학장 묘순스님은 일홍·도안·수경에게, 동학사 강주를 역임한 일초스님은 수정·명선·보련·경진·행오·도일·법송에게 전강했다.

○…비구니의 율맥전승은 자운율사로부터 전수받은 정행·인홍·명성·묘엄스님에 의해 비구니전문율원이 개원되면서 비롯되었다. 특히 정행스님은 조계종 사상 첫 비구니 전계사로서 이름을 남긴 율사다. 1982년 10월부터 1993년 11월까지 조계종 제3,4,5,6,8,9,10,11,13,16,19회 단일계단 비구니 별소계단의 전계대화상을 역임하며 비구니수계의식을 주도했다.

○…조직분야에서 초창기 전국비구니조직인 우담바라회를 이끈 주역들을 간과할 수 없다. 1968년 2월 발기 당시 우담바라회 초대회장에 보문사 주지 은영스님이 선출됐다. 우담바라회는 1971년 공식 발족하면서 서울 마포 석불사 천일스님을 제2대 회장으로 선출했다. 천일스님은 1965년 비구 운문스님과 불교계 최초로 마포연화어린이회 구성과 어린이법회를 개설하고 찬불가를 통한 어린이포교의 단초를 제공했던 비구니다.
우담바라회 제3대 회장에는 1975년 9월 9일 경기 용인 화운사 지명스님이 선출됐다. 지명스님은 서울 구기동 연화사 명수스님과 함께 1992년 3월 1일 화운사에서 실상문도회의 발족을 공식화하고 문중을 태동시킨 주역이다. 만공스님께 ‘월조(月照)’라는 당호를 받고 교단안팎에 수행종풍을 드날렸던 인물로서, 2013년 12월 세납 93세 법랍 80세로 입적할 당시 수덕사 비구대중이 직접 상여를 메는 기연(機緣)으로 신선한 충격을 던져주었던 화제의 주인공이다.

○…포교분야에서는 청소년포교의 성일스님(화성 신흥사)이 독보적이며, 상담포교의 정덕스님(인과선원)과 도심포교의 지광스님(삼선포교원)도 간과할 수 없는 인물이다. 복지분야에서는 자제공덕회 묘희스님과 전문호스피로서 이름 높은 정토마을 능행스님이 단연 돋보인다. 이밖에도 지역복지의 수현스님(매화종합사회복지관)과 성덕스님(불교자원봉사연합회), 장애인복지의 해성스님(수화)과 종실스님(맹인), 노인복지의 무구스님(효림원)을 간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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