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이 아름다운 산사 - 치악산 구룡사

신라 문무왕 6년(666)에 의상대사가 창건
구룡사엔 아홉 마리 용의 전설 전해져
절입구 조선시대 조성된 부도군 ‘눈길’
‘구룡소’는 치악산 최고의 단풍 명소

치악산은 아름다운 단풍으로 손꼽힌다. 특히 일주문서 구룡사 대웅전으로 올라가는 계곡의 단풍이 곱기로 유명하다. 이 때문에 1년 중 치악산 탐방객이 가장 많은 시기도 단풍철이다.

치악산 단풍은 우뚝우뚝 치솟은 침엽수림과 어우러져 자아내는 단풍빛이 신비하리만치 오묘한 것이 강점이다. 치악산 단풍은 구룡사 계곡과 태종대, 향로봉 및 비로봉 구간이 단풍명소로 꼽힌다. 올해는 강수량이 적고 일교차가 큰 날이 많아 산마다 그 어느 해보다 단풍 빛깔이 곱다. 단풍 길에서 느끼는 모처럼의 여유는 힐링 그 자체다.

치악산(1288m)은 예로부터 산이 깊고 험해 호랑이가 많았다. 산세가 험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악산이다. 오죽했으면 ‘치가 떨리고 악에 받쳐 치악산’이라는 말이 나왔을까 싶다. 하지만 명이 있으면 암이 있는 법이다. 치악산 북쪽 정상인 비로봉으로 가는 길목에는 수려하고 울창한 숲길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구룡사 앞 구룡계곡이다.

의상대사가 창건한 천년고찰 구룡사 대웅전과 경내모습.
10월 26일 치악산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전국서 단풍객들로 인산인해다. 단풍으로 유명한 치악산이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구룡소와 세렴폭포를 안고 있는 구룡계곡 단풍길은 단연 최고의 가을선물이다.

실제 치악은 가을단풍이 무척 곱고 아름다워 붉을 적(赤)자를 써서 적악산(赤岳山)으로도 불렸다. 그러나 꿩의 보은설화가 유명해지면서 꿩 치(雉)자의 치악산이라 바꿔 부르게 됐다. 구렁이에게 잡아먹힐 뻔한 꿩을 구해준 선비와 생명을 바쳐 은혜를 갚은 꿩의 보은설화는 지금도 치악산 상원사 벽화로 전해진다.

치악산 구룡계곡은 구룡탐방지원센터를 지나면서부터 바로 시작된다. 단풍숲길 감상에 앞서 초입서 꼭 봐야 할 것이 금강소나무다. 탐방지원센터를 지나면 바로 왼쪽에 강원도 기념물 제30호로 지정된 황장금표가 있다. 이 표는 조선시대에 송림을 보호하기 위해 일반인들의 벌목을 금지한 표식이다. 덕분에 치악산에는 궁궐에서만 사용하던 질 좋은 아름드리 금강소나무가 지금도 무성하다. 약 900m에 걸쳐 수령이 수백 년 된 소나무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숲터널 이룬다. 속이 붉고 단단한 금강소나무는 껍질이 붉다고 해서 적송, 아름다운 자태로 인해 미인송으로도 불렸다. 껍질이 호랑이 가죽 무늬를 닮은 금강송은 구룡교를 지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돼 구룡사 일주문 앞서 절정을 이룬다. 본격적인 단풍 감상은 일주문 부터이다. 노란색, 붉은색, 초록색, 갈색 등 팔레트에 물감을 묻혀 나뭇잎에 칠해 놓은 듯 울긋불긋 참 곱다. 원통문이라 현판에 붙여진 목조의 일주문과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원통문이 사바세계와의 경계이듯 문을 들어서면 선경이 펼쳐진다.

예전에 폐교 자리를 지나 10여분 걷다보면 어느새 담장 위 구룡사의 가람이 위용을 자랑한다. 구룡사 앞에는 수백년동안 여여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선 커다란 은행나무가 관람객을 맞는다. 신비롭고 신령스럽다. 온 몸과 주변은 노란 은행잎이 지천에 깔려 낭만적 분위기를 연출한다. 5분여 그 풍광을 감상하고 서 있으려니 연실 주변서 핸드폰 카메라로 그 가을을 주워 담으려 셔터를 눌러댄다. 세월이 변했다. 세월의 무게를 이기고 묵묵히 서 있는 저 은행나무 만이 변화된 세상을 감지하고 있을 것이다. 예전에는 자신을 찍었던 것이 필름 카메라였다면 지금은 디지털 아니 핸드폰 카메라라는 것을.

치악산의 으뜸 봉우리인 비로봉에서 학곡리 쪽으로 6㎞ 떨어져 있는 구룡사는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에 의하여 창건되었다.

신라 문무왕 6년(666)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대웅전 자리에 9마리의 용이 살고 있는 연못을 메우고 사찰을 창건하여 구룡사(九龍寺)라 하였으나, 조선 중기에 거북바위 설화와 관련하여 현재의 명칭인 구룡사(龜龍寺)로 개칭하였다고 전해진다. 또한 <치악산구룡사사적>에 따르면 신라말의 고승 도선국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현재는 강희45년 글자가 새겨진 와당이 출토되어 숙종 32년(1706)에 구룡사가 중건되었음을 알 수 있다.

대웅전 앞 좌우에는 서상원과 보광루, 적묵당, 심검당의 승사가 있으며 이밖에도 원통문, 국사단, 사천왕문, 범종각, 응진전 등이 있다.

사찰입구에는 수백년 수령의 은행나무가 주위를 온통 금빛으로 물들였다.
절 입구에는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부도군이 있고, 또 구룡사의 전설을 말해주는 거북바위와 폭포아래에 용소가 있다. 구룡사에는 의상 대사와 아홉용에 얽힌 전설이 전해온다. 원래 대웅전 자리에는 연못이 있었다. 그곳에 아홉 마리 용이 살고 있었다. 의상은 그 연못 자리가 좋아, 연못을 메워 절을 지으려고 용들과 도술시합을 했다. 용들이 먼저 솟구쳐 올랐다. 그러자 뇌성벽력이 치고 산들이 모두 물에 잠겨버렸다. 용들이 흐뭇해하며 주변을 살피니, 의상은 비로봉과 천지봉에 줄을 걸어 배를 매놓고 그 안에서 자고 있었다. 다음은 의상이 움직였다. 부적을 한 장 그려 연못에 넣었다. 그러자 연못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고 용들이 뜨거워 날뛰었다. 그때 놀란 용 여덟 마리가 절 앞산을 여덟조각 내면서 동해로 도망치고, 한 마리는 눈이 멀어 계곡의 못에 머물렀다. 그래서 절 이름도 구룡사(九龍寺)라 했다.

세월이 흘러 절이 퇴락하게 되었다. 어느 날 한 노인이 나타나 절 입구의 거북바위 때문에 절의 기가 약해졌으니 그 혈을 끊으라 했다. 그대로 했더니 절이 더 힘들어졌고 폐사가 되려 했다. 이번에는 한 도승이 나타나 훈수를 했다. 거북의 혈맥을 끊어서 절이 쇠락해졌으니 다시 그 혈맥을 이으라는 것이다. 그래서 절 이름을 구룡사(龜龍寺)로 바꾸었다고 한다.

치악산의 명물 단풍숲은 이 구룡사를 지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구룡사를 지나자마자 곧 나타나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구룡소’는 치악산 최고의 단풍 명소로 꼽히는 곳이다. 의상대사에 의해서 쫓겨난 용 중 한 마리가 미처 멀리 못 가고 근처 연못으로 급히 도망을 간 곳이라는 전설이 전해진다. 폭포는 작지만 그 앞의 소는 깊고 넓어 신비롭다.

이 구룡소는 치악산 8경 중 하나로 꼽힐 정도로 빼어난 풍경을 자랑한다. 특히 가을철이면 그 무엇에도 비할 데 없는 최고의 비경을 선사한다. 가을햇살을 받아 선홍색으로 빛나는 단풍잎은 마치 스스로 발광하는 생명체처럼 경이롭다. 이곳 오색단풍은 암벽 사이로 쏟아지는 폭포수와 어우러져 한 폭의 동양화가 됐다. 그러나 무엇보다 바닥이 훤히 보일 정도로 맑은 용소에 비쳐지는 가을의 서정이 단연 백미다. 도대체 누가 이토록 아름다운 물감을 풀어놓은 것일까. 인간의 솜씨로는 결코 흉내낼 수 없는 절정의 풍경이다.

그 눈부신 가을 풍경에 반해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지만 그다지 걱정할 필요는 없다. 구룡소를 지나 단풍으로 물든 계곡을 발 아래 굽어보며 낙엽길을 걷는 것도 운치 있다. 아쉬움을 털고 마저 걸음을 이어간다. 숲속 넓은 공터에 자리한 대곡야영장을 지나 완만한 오르막을 오르면 그 끝에 세렴폭포가 수줍은 듯 고운 자태를 드러낸다.

세렴폭포는 2단으로 휘어져 떨어지는 환상적인 물줄기가 일품이다. 폭포 주변의 바위에 걸터앉아 물소리를 들으며 휴식을 취해도 좋다. 이곳은 구룡계곡의 끝이지만 본격적으로 치악산 등산로가 시작되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세렴폭포 앞으로 난 철제다리를 건너면 된비알을 따라 정상인 비로봉까지 오를 수 있다. 10월에는 가만히 있기엔 좀이 쑤신다. 그냥 나서보자. 어느 산이든 붉게 물든 곳이면 어디든지 말이다. 사진 : 치악산 구룡사의 단풍은 아름답기로 손꼽힌다. 특히 일주문 격인 원통문에서 사찰 경내로 들어가는 길은 가히 선경이라 불릴만큼 울긋불긋한 단풍이 만산홍엽의 풍광을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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