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암 스님 (은진사 회주·국제구호단체총연합회 총재)

지암 스님은 … 한국장애인연합회 회장, 부산광역시 남구 장학재단 회장, 부산국제불교연합회 회장, 한국·태국·티벳·베트남하노이·국제불교 교류회장, 국제NGO자비의등불 회장 등을 역임했다. 또한 캄보디아정부로부터 사마트라이 훈장 품수를 받았으며, 캄보디아 승왕 뎃붕 스님으로부터 한국 제1대 승왕으로 인준 받았다. 현재는 (사)Dream C.T 다문화공동체 이사, 대한불교법운종 은진사 회주, 대한불교법운종 종정, 국제구호단체총연합회 총재를 맡고 있다.
보시행에 눈을 뜨다

20년간 지역 학생 1천명에 장학 사업
지난해 중학교에 교복 8백 여 벌 보시
사회진출 후 감사인사 답지 큰 보람

해외 구호사업에 첫 발

캄보디아, 쌀 및 의류 전달과 학교수리
미얀마, 우물 및 정수기 시설 설치
빈민지역 학생들과 후원 자매결연 추진
 

“벽암록(碧巖錄)에 ‘천지여아동근(天地與我同根) 만물여아동체(萬物與我同體)’란 말이 있습니다. 세상은 나와 더불어 한 뿌리이고 모든 존재 역시 나와 더불어 하나라는 뜻이지요. 동체대비(同體大悲) 사상에 기반을 두어 자비의 종교라고 불리는 불교계가 이웃 종교보다 국제구호 운동에 뒤처진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국가와 민족, 인종과 언어, 종교와 문화, 이념과 사상의 차이를 뛰어넘어 돕는 것이 글로벌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의무입니다.”

태국, 베트남, 캄보디아 등서 활발한 봉사활동을 펴는 부산 은진사 회주 지암 스님(국제구호단체총연합회 총재)은 1995년대부터 20년간 해외로 눈을 돌려 빈곤국의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앞장서고 있다.

“선행 가운데 목마른 이에게 물을 주는 급수공덕(給水功德)이 으뜸이라고 합니다. 빈곤국에서는 빗물을 받아 식수와 생활용수로 쓰는 곳이 적지 않다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가뭄 때는 오염된 웅덩이의 물을 마시다가 배탈이 나기도 하고 피부 질환이나 수인성 질병에 시달리는 것을 보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핸드펌프를 10여기 설치해 맑은 물을 마실 수 있도록 하자고 다짐했죠. 사전 조사와 사후 관리를 철저히 한 뒤 20가지 수질 검사를 해 식수에 적합한지, 생활용수로 쓸 만한지 꼼꼼히 따집니다. 우물 개발 이후에도 수질을 정기적으로 점검해 문제가 생기면 더 깊이 파주거나 이용을 제한하죠. 그곳에서는 펌프가 고장 나면 부품을 구하기도 어렵거든요.”

5년전부터 미얀마 고아원과 초등학교에 우물 및 정수기 시설 설치 사업에 진력하고 있는 지암 스님은 당시 현장 모습을 생생히 전한다. 스님은 ‘국제 NGO 자비의 등불’ 회장을 역임한 뒤 지난해 1월 부터는 본격적인 구호활동을 위해 국제 구호단체인 ‘국제구호단체총연합회’를 설립했다. 이 단체서 주로 관심을 기울이는 지역도 캄보디아와 미얀마이다. 극심한 부의 편중과 낮은 교육으로 인한 가난의 대물림, 수질 등 열악한 생활환경. 이를 보다 못한 한국의 여러 단체와 스님들이 이미 구호활동을 펼치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 손길이 안 미치는 곳이 더 많다는게 지암 스님의 생각이다.

지암 스님이 캄보디아 칸달주 속피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사탕을 나눠주고 있다.
“가난한 나라는 모든 것이 열악하고 힘들지만 특히 자라야할 아이들의 상황은 더 가슴 아프지요. 아이들이 제대로 못 배운다는 것은 한 가정 한 국가의 미래가 끊기는 것과 같습니다. 캄보디아 미얀마 어디를 가든 지붕이 낡아 우기 때면 시도 때도 없이 내리는 비를 피할 길이 없어 수업을 제대로 진행하지 못한 현실은 가슴을 아프게 만들었습니다. 화장실은 물론 식수 등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갖춰진 곳이 없었지요. 한 번은 캄보디아 씨엠립의 한 마을에 쌀 5톤과 의류를 지원하고 돌아오는 길에 뼈가 앙상한 아이들과 마주쳐 눈시울을 붉힌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힘들지만 다시 마음을 다져 원력을 세웠지요. 비록 내가 가난을 해결하지는 못하지만 손닿는 데까지 지원을 해서 부처님을 믿는 나라에서 굶주리는 아이, 시설이 낡아 배움을 중단해야하는 아이가 있어서는 안 되겠노라고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씨엠립시 소재 돋우어 초등학교 오지마을 학교를 개보수하고 장학금을 지급하는 사업을 펼치게 됐다. 캄보디아에서는 아이들을 위해 교과서를 나눠주고 빈민촌을 방문해 쌀을 후원했다. 후원에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지원이 끊어지지 않도록 종교국 행정 책임자를 만나 관심과 지원을 당부하기도 했다. 대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스님들을 위해 컴퓨터도 지원했다.

그런데 지암 스님은 미얀마를 가는 순간, 오히려 캄보디아가 선진국으로 느껴질 정도로 이곳 사정은 더 심했다는 것을 실감했다. 캄보디아는 그나마 낡은 시설이라도 갖춰져 있어 개보수를 했지만 미얀마는 아예 시설 자체가 없었다. 그냥 작은 책상 하나 갖다 놓고 나무 그늘 밑에 앉아 공부하는 것이 전부였다.
“미얀마 달라섬 빈민가부터 찾았습니다. 초등학교에는 교실도 없는 나무 아래 바닥에 칠판을 놓고 가르치는 등 환경이 열악한 데다 그것마저도 형편이 되지 않는 어린 학생들은 중도에 그만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난이 대물림되고 국가적으로도 빈국을 벗어나지 못하는 악순환이 이곳 미얀마에서도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지암 스님은 지역민들에게 말했다. “인도차이나 서북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부처님 탄생지인 인도와 인접한 미얀마는 부처님의 발자취와 유적이 많은 나라입니다. 아쇼카왕이 부처님 머리카락을 가져와서 탑을 조성한 인연으로 불국정토를 이룬 것이라 생각됩니다. 미얀마 국민의 90%가 불교도로서 세계에서 가장 독실한 불교국가이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전 국민들이 청정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도(道) 높은 수행승도 많은 나라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남방선인 미얀마 위빠사나 수행법과 대승불교인 한국의 간화선 수행법이 접목되어 많은 명안(明眼) 종사가 나오고, 한국 미얀마 두 나라가 더욱 우의가 돈독해져 불교와 국가발전에 이바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부처님 머리카락이 와서 불국정토가 되었듯이 오늘 수리한 학교가 작은 도움이지만 전 세계에 꽃을 피울 수 있는 계기가 되고 미얀마를 부흥시키고 발전 할 수 있는 큰 인물들이 많이 배출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고.

2014년 ‘자비의 등불’ 회원들과 미얀마에 설치한 정수시설 앞에선 지암 스님이 즐거워하고 있다.
지암 스님이 보시행을 발심하게 된 계기는 25년 전 성남의 한 절에서 수행 생활을 하고 있을때 당시 청화 스님의 법문을 듣고서 였다.

“당시 크고 작은 문제들로 인해 회의를 느낄 때 였지요. 불사를 하다 사기를 당해 수억원이 넘는 돈을 날려 절망감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큰 스님의 보시를 주제로 한 법문은 제 수행 생활의 목표를 다시금 잡아준 큰 계기가 됐습니다. 스님께서는 남을 도와준다는 것을 의식하거나 대가를 바라면 안 된다는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의 정신을 말씀하셨지요. 그리고 작은 것부터 실천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특히 강조하셨습니다.”
이후 지암 스님은 부산에 은진사를 창건하고 지역 초중고생의 장학 사업부터 시작했다. 우선 21명을 선정해 학비를 지원해 주었다. 이런 스님의 보시 정신이 알려지자 신도들도 십시일반 동참하기 시작했다. 20여년간 지암 스님에게 장학금을 수혜받은 인원만 해도 족히 1천여명이 넘는다. 장학금 만을 준 것은 아니었다. 교복과 책가방이 없는 학생들이 제법 있다는 얘기를 듣고 지난해에는 지역의 중학교에 교복 800여 벌을 기증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신도들과 함께 장학금 모금 활동을 하며 지원했습니다. 짧은 시간에 후원금도 많이 모였지요. 하지만 어느 순간에 신도들에게 부담을 주는 것 같아 적은 돈이라도 혼자서 추진하게 됐습니다. 작지만 정성을 담아 정말 후원이 필요한 학생들에게 학비를 지원했습니다. 그랬더니 나중에 사회에 진출해 절로 찾아와 고마움을 표시하더군요. 참으로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이렇게 국내 장학 사업을 주로 하던 지암 스님은 우연히 캄보디아 성지 순례를 갔다가 목격한 초등학교의 열악한 환경을 보고 해외로 눈을 돌린다. 캄보디아 씨엠립 주 소재 꿀렌 초등학교에서는 기금만 후원하는 것이 아니라 낙후된 시설 보수에 직접 팔을 걷어 부쳤다. 학교 지붕위를 올라가는 가하면 페인트를 묻힌 붓을 들고 직접 담장을 칠하기도 했다. 매년 두 차례씩 5천만원 상당의 학용품과 쌀, 의류도 지원한다. 힘이 많이 들지만 그러나 현지 학생들과 학부모, 주민들이 좋아하고 고마워하는 모습을 보면 이내 흐뭇해지고 뿌듯해진다고 한다.

“정말 줄 것이 없는 격오지 지역입니다. 하지만 우리 봉사단 일행들에게 야자를 따와서 건네고 음식을 만들어 먹어보라고 권합니다. 함께 따라간 분 가운데서도 주민들의 그런 모습을 보고 국제구호운동에 발심한 분이 많을 정도입니다. 나눌 것이 없는 그들도 무엇인가 만들어 우리에게 주려고 하는 그 아름다운 모습을 보는 재미에 강행군을 하는데도 하나도 힘든 줄 모릅니다. 이 것이 봉사의 참 묘미 같아요.”

이어 지암 스님은 보시에 대한 평소 생각도 밝혔다. “육바라밀 가운데서도 보시(布施)가 첫째입니다. 화엄경 보현행원품에도 널리 공양(供養)하고 공덕을 회향하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런데도 승가에서는 세상과 떨어져 깨끗하게 살며 수행하는 것을 최고로 여기고 있고, 불자들은 기도와 기복이 전부인 것처럼 잘못 알고 있습니다. 관념에만 매달려 옳다고 생각하면서도 실천하지 않는 것입니다. 동남아 국가의 불교는 개인 수행을 중시하는 소승불교의 전통을 이어왔는데도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게 체질화돼 있지요.”

지암 스님은 학교보수 수리를 하는데도 팔을 걷어 부치고 직접 나선다.
지암 스님은 수행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화두를 들고 흩어진 생각을 정리합니다. ‘이뭣고’를 골똘히 생각하면 구방심(求放心), 즉 달아난 마음을 찾게 됩니다. 화두는 자기 전에도, 차 안에서도 항상 듭니다.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에 간단(間斷)없이 정진(精進)하라’는 만공 선사의 말씀대로 바쁜 중에도 수시로 참선하려고 노력 합니다. 그것이 수행자가 가져야할 본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암 스님은 이제 다시 원력을 세웠다. 기금과 물품 후원을 함과 동시에 캄보디아와 미얀마 학생들과 한국 신도들간에 자매 결연을 맺어 주는 사업을 시작했다. 현지 학생 한명에 대해 결연을 맺어 지속적으로 공부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자는 차원이다. 아직 시작 단계라 많은 인원이 동참하지 않았지만 꾸준히 알려 일시적 도움이 아닌 지속적 도움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생각이다. 또한 한국의 다문화 정책에도 관심을 갖고 이들을 위한 법회와 포교에도 힘쓸 생각이다.

“빈민국가에 많이 방문해야 여러 사정상 1년에 3~4차례 밖에 못갑니다. 하지만 자매결연 사업을 펼치면 지속적인 관계를 갖고 계속 관심을 두기 때문에 효과적이지 않을까 생각해 올해 초부터 시작했습니다. 시간 날때마다 만나는 불자들에게 취지를 알리고 동참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봉사행은 중단하지 않을 것이라고 굳은 각오를 피력한 지암 스님은 마지막으로 불자들에게 당부했다. “자비는 어떤 가치보다 소중합니다. 자비심이 있으면 대화 못할 상대가 없고 껴안지 못할 대상이 없습니다. 이제 두 달 있으면 연말연시가 다가오는데 주변에 가난하고 외롭고 고통받는 이웃이 없는지 한 번쯤 둘러보시기 바랍니다.”

올해 1월 꿀렌 초등학교에서 보수공사 및 학용품을 전달한 지암 스님(사진 앞줄 맨 왼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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