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펼쳐지는 지금

알마스 지음 / 박인수 옮김 / 김영사 펴냄 / 1만 7800원
‘참 나’로 살기위한 자유 찾기
저자 가르침 핵심 ‘개인 에센스’ 자각
18개의 챕터 통해 영적체계 소개

현대 심리학은 지난 100년간 자아를 연구해왔다. 이드·에고·슈퍼에고뿐만이 아니라 잠재의식과 집단 무의식, 의식의 층들, 의식의 발달 과정, 자아와 두뇌활동의 관계, 개인과정과 초개인과정 같은 다양하고 세밀한 이론 체계를 통해 인간 본성이 무엇인지 밝히려 했다.

켄 윌버가 ‘가장 균형 잡힌 가르침’으로 극찬한 세계적인 영성 지도자 알마스(Almaas)는 현대 심리학의 발견들을 적극 활용해서 우리 자신의 ‘에센스’를 깨우려 한다. 우리들 각자는 자기 삶에서 일어난 모든 내용들을 소화하고 통합하여 마침내 ‘개인 에센스’에 도달하게 되는데, 심리학에서는 ‘해결해야 할 골칫거리’로 여기던 삶의 이슈들이 ‘그대로’ 나의 본성에 도달하는 문으로 사용된다. ‘번뇌 즉 보리’의 현대적 실현인 셈이다.

알마스의 ‘총체관’은 어떠한 깨달음의 관점도 수용할 수 있고, 그중 어떠한 것에도 결정적으로 고착되지 않고서 그 모든 관점을 수용할 수 있거나 동시에 여러 개를 수용할 수 있다. 이것은 실재에 관한 가능한 모든 참 관점들을 수용하면서 그것을 판단하거나 등급을 매겨 평가하지 않는 관점이다. 자기계발서와 심리학 도서들이 여전히 각광을 받는 시대에, 알마스의 길은 ‘진짜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자유’에 대해 새로운 관점과 삶의 방식을 펼쳐 보인다. 알마스의 ‘다이아몬드 어프로치’는 심리학과 영성의 진정한 결합이라 할 수 있다.

자기 자신으로, 실재로 존재하기
남의 방식을 참고하고, 남과 비교하고, 그래서 자신이 아닌 다른 무언가로 바뀌기 위해 스스로 동기부여마저 강요당하는 현대인들에게 알마스의 방식은 낯설고 평화롭다. 나 아닌 다른 존재를 추구하지 않고, 자신이 있는 그곳에서 그 상태 그대로를 인정하며 시작하기 때문이다. 언제나 늘 함께 있는, 어쩔 수 없이 ‘있는 그대로’인 나 자신의 지금 그 상태가 이 모든 여행의 종착역이자 출발점이다.

“나 자신으로 존재하려면, 먼저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발견해야 한다. 있는 그 자리를 자각하는 것이 반드시 자신으로 존재함을 뜻하지는 않더라도, 하나의 시작점이 될 수는 있다. 있는 그 자리의 자각은 참자기의 요소, 혹은 맛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맛이나 요소를 ‘진리’라 부른다. 그래서 우리가 어디에 있든, 우리의 경험이 무엇이든, 그 모두는 어떤 식으로든 참본성과 관련되어 있다. 비록 그 경험이 떨어져 있거나 단절되어 있거나, 반응 혹은 반영이거나 대체물이라 할지라도, 어떻게든 자신의 참본성에 이어져 있다.”

이러한 접근법은 그의 방식을 따르는 이들에게 깊은 안도감을 가져다준다. 지금 그대로도 괜찮다는 가벼운 위로만이 아니라,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고 무작정 읊조리던 수많은 말들과 문장들 사이에서 실체의 ‘의미’를 들여다보며 비로소 마음이 쉬게 되기 때문이다. 그저 나 자신으로 있는 단순함. 이를 통해 자연스레 사랑과 고마움이 샘솟는다. 수많은 기도와 수행을 통해 구하려고 애쓰던 그것이.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가 여기서도 실현되는 것이다.

“사랑과 고마움을 인식하는 순간은 아주 소중하다. 그때 우리는 뭔가를 성취하기 위해서 수행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나는 나 자신을 더 개선하기 위해 명상, 기도, 염송을 하거나 영적인 작업을 하지 않는다. 나는 다른 사람만큼 훌륭해지기 위해서 이 작업을 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내가 발달시킨 개념이나 들어서 알고 있는 관념이 열렬히 따를 만큼 좋은 것이라서 이 작업을 하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뭔가를 추종하는 일이 아니라, 단지 나 자신과 함께 안착하는 작업이다.”

영적인 수준서도 개인성이 깨어나는 시대
알마스의 가르침 중 가장 차별적인 내용은 ‘개인 에센스’의 자각이다. 오랫동안 종교나 영성 분야에서는 개인성을 초월하여 전체와 하나 되거나, 현세적 삶을 떠나 영적인 단계(천국·열반 등)로 들어가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겨왔다. 형이상학적 차원에서도 ‘둘이 아님(不二)’을 표방하면서 전체적인 하나를 중요시했고, 심리적 차원에서도 작은 ‘나’인 에고를 벗어나 더 큰 나, 전체로서의 나, 심지어 ‘나 없음(無我)’에 이르고자 애썼다.

“내적인 여정, 영적인 수행은 모두 궁극적으로 여기에 도달한다. 진짜 자신으로 존재하는 것 말이다. 어떤 초능력을 개발하고 차원이동을 하거나 유별난 경험을 하기 위해서 내적 수행을 하려 한다면, 당신은 진실한 영적 작업이 무엇인지 아직 모르는 것이다. 그 이유는 당신이 아직 실재(reality)가 무엇인지, 실제로 존재하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알마스는 되묻는다. “만일 개별성이 없다면, 무엇을 통해, 누가 성장하고 완성되는가?” 현대에 이르러 개체의식을 에고와 구별하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가르침들은 개인성을 무시하고 억누르게 되었다. 그러나 개체의식이라는 선물을 통해 우리들 개개인은 삶의 경험과 이해를 거쳐 성숙하고 발달한다. 이미 주어진 각자의 삶을 통해 개인성을 완성해가는 것이 전체성을 이 땅에 실현하는 통로이며, 자신이 에고가 아니라 본래 전체적인 에센스의 현현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이는 불교, 특히 대승불교에서 ‘보살’의 길이나 십우도의 입전수수(入廛垂手) 등으로 전해져 왔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인성을 온전히 꽃피우면서 참사람으로 나아가는 것, 이것이 ‘다이아몬드 어프로치’가 표방하는 방식이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중시되는 현대의 시대적 요구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바야흐로 오랫동안 잊혔던 영적인 신비가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달라이 라마의 따뜻함을 겸비한 스승, 알마스

‘다이아몬드 어프로치’를 다룬 일련의 저서를 통해 1990년대부터 심리학과 영성, 에니어그램 분야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알마스는 1944년 쿠웨이트 태생으로, 18세에 미국으로 건너와 UC 버클리에서 물리학과 심리학을 전공했다. 학창시절 때부터 임사체험을 비롯한 다양한 영적체험을 거쳤던 그는, 물리학 박사과정 도중 삶의 진로를 마음의 탐구와 영적인 추구로 바꾸게 된다. 심리학 박사학위를 수여하는 한편, 수피즘(이슬람 신비주의), 티베트 불교, 초기 불교, 플라톤주의, 구르지예프 ‘제4의 길’ 등 다양한 수행 체계를 섭렵하면서 동서양의 수행 전통과 이론들, 자신의 체험을 통합하는 작업을 계속한다. 특히 티베트 불교 16대 까르마파의 전수식에서 알마스는 ‘에센스(essence)의 현존’과 함께 자신이 인류 모두와 연결되어 있음을 체험한다. 이 에센스 경험을 계기로 그에게는 새로운 여정이 시작된다. 바로 새로운 영적체계인 ‘다이아몬드 어프로치’의 열림이 시작된 것이다.

이 책은 총 18개의 챕터를 통해 한국에 처음으로 알마스 ‘다이아몬드 어프로치’의 정수를 차근차근 안내한다. 특정 종교나 명상법, 어렵고 복잡한 이론들을 전혀 들먹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동일시, 현존, 경험, 저항, 받아들임, 자각, 용기, 상호연결성, 증오, 무지, 앎과 모름, 존재와 비존재 등 심리학과 종교를 불문하고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는 어떤 체계에서도 공통적으로 다루게 되어 있는 주제들을 쉬운 말로 하나하나 짚어 가며 그 의미를 새롭게 밝혀준다. 불교나 기독교, 명상 등 종교적 수행을 해왔다면 그 체험의 깊이만큼, 심리학이나 철학 등 현대 학문을 공부했다면 그 고민의 넓이만큼, 이제껏 접해보지 못한 색다른 따뜻함과 번뜩이는 통찰들이 가득하다.

지구인에게는 낯선 은하계의 깨달음

현대에 이르러 다양한 분야들의 통합과 통섭, 융합을 제시하는 이론들이 등장했지만, 세계적으로 가장 뛰어난 통합이론가로 인정되는 켄 윌버마저도 알마스의 가르침을 ‘가장 균형 잡힌 가르침’으로 칭송할 정도이다. 알마스는 오래된 모든 영적 전통들과 미국에서 앞다투어 발전한 현대 학문들을 용해시켜 하나로 녹여낸 다음, 그마저도 넘어 더 멀리까지 새 길을 열어주고 있다. 그는 농담처럼 ‘이것은 아직 지구인들에게는 낯선 은하계의 깨달음’이라고 말한다. 켄 윌버의 지성에 감탄해본 사람이라면, 그 번뜩임에 따뜻함과 힘을 아무렇지도 않게 버무려 색다른 감동으로 뚝딱 빚어내는 알마스의 솜씨에 다시 놀랄 것이다.

나에게서 나에게로

우리는 불편한 시대에 살고 있다. 모든 것을 시간과 돈의 효율성으로 저울질하는 가치관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타인과 비교하며 스스로 변화를 종용하고, 한편으론 그에 저항하고 있는 것이다. 물질세계나 정신세계나 이런 경향은 마찬가지이다. 더 나은 행복, 더 나은 환경, 더 나은 자신을 찾는다. 그래서 대부분의 자기계발서와 가르침들은 자기 자신을 바꾸고, 발전시키고, 더 낫게 만들려고 한다. 심지어 작은 나(에고)를 없애고 더 큰 나, 마침내 ‘나 없음(無我)’에 이르자고 한다. 하지만 힘들다. 이렇게 변화를 요구하는 것은 자칫 지금 존재하는 상태를 거부하는 폭력일뿐더러, 그 ‘찾고 바꾸려는 나’ 자체는 변함없이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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