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성 없는 여성들의 권력 승계 영화 ‘차이나타운’

"증명해 봐

네가 아직 쓸모 있다는 증명"


"결정은 한 번이고

그게 우리 방식이야"

앞서 필자는 모성을 주제로 한 신수원 감독의 〈마돈나((Madonna)〉를 소개하면서 올해 상반기 영화계의 최고 화두는 ‘부성(父性)’이었다고 평가한 바 있다. 그리고 〈국제시장〉, 〈인터스텔라(Interstellar)〉를 그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았다.

이번에 소개하는 〈차이나타운〉은 모성 부재 혹은 여성성 부재에 대한 작품이어서 눈길을 끈다.

주인공인 일영(김고은)은 지하철 10번 보관함에 버려진 아이였다. 아이는 오직 쓸모 있는 자만이 살아남는 차이나타운으로 흘러들어간다. 차이나타운을 지배하는 것은 엄마(김혜수)이다. 자라면서 일영은 엄마에게 신임을 얻는 데 성공한다. 이는 다시 말해 일영은 제법 쓸모 있는 아이가 되었다는 방증일 것이다. 일영에게 차이나타운은 세상의 중심이자 전부이다. 가짜일지라도 신분증을 만들어주고 이름을 붙여주고 불러주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다. 가족은 인간관계의 1차적 확장이다. 영화 속 두 여성의 운명이 혈연이 아님에도 유전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던 중 일영은 악성채무자의 아들 석현을 만난다. 석현과의 만남이 깊어질수록 일영은 마음이 흔들린다. 석현은 차이나타운의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사랑에 빠진 뒤 일영은 쓸모 있는 아이에서 쓸모없는 아이로 바뀌게 된다. 이를 눈치 챈 엄마는 일영에게 석현을 죽일 것을 지시한다. 일영이 엄마의 말을 듣지 않자 엄마는 석현을 처리한다. 그리고 엄마가 엄마의 엄마를 죽이고 엄마의 자리를 차지한 것처럼 일영도 비정한 대물림의 운명을 수행한다.

▲ 일을 처리 할 때는 한치의 망설임이나 감정의 동요도 없는 엄마. 일영이 석현을 만난 후부터 차이나타운이 아닌 새로운 세상을 꿈꾸게 됐음을 알아챈다. 일영에게도 예외란 없다.

서사(敍事)만 보자면, 〈차이나타운〉은 전형적인 느와르 필름의 공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냉정한 어둠의 세계에서 자란 주인공이 사랑에 빠진 뒤 두목을 배신한다는 줄거리는 식상하기 그지없다. 설령, 권력 승계라는 데 초점을 맞춘다고 해도 〈차이나타운〉은 단선적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이나타운〉은 신선하게 느껴진다. 그 이유는 비정한 세계의 주인공이 남자가 아니고 여자이고, 그 비정한 세계의 권력 승계가 여성에서 여성으로 이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여성의 권력 승계라는 특이한 설정에 대해 한준희 감독은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더 강한 것 같다. 여자들은 결정적인 순간과 중요한 순간에 변명도 하지 않고 더 강력한 결단을 내린다.”고 설명했다.

엄마와 일영의 친연성은 부모로부터 유기됐다는 동질감에 기인한다. 엄마가 볼 때 일영은 엄마의 과거이고, 엄마는 일영의 미래이다. 그런 까닭에 냉정하기 짝이 없는 엄마도 일영을 벌해야 하는 순간에 망설이는 것이다.

일영에게 엄마는 ‘오브제 프티 아(object little a)’이다. 엄마는 차이나타운 질서의 대표자이자 일영이 스스로 동일시하는 대타자인 것이다. 그래서 일영의 욕망은 실현되지 않고 외려 어긋나는 것이다.

〈차이나타운〉의 주인공은 엄마와 일영이라는 두 여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곳에는 모성도 없고, 여성성도 없다. 〈차이나타운〉에는 다산의 여신인 아르테미스 원형의 여성은 쓸모가 없다. 도시와 대장장이와 전쟁과 지혜의 여신인 아테나 원형의 여성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차이나타운〉에 등장하는 두 여성의 여성성에 모성이 전면 결여됐다고는 할 수 없다.

지장보살은 사전적 의미는 ‘어머니 대지의 자궁’이다. 지장보살의 범명은 Ksitigarbha, Ksiti는 땅을 의미하고 garbha는 태 혹은 자궁을 의미한다. 그런데 어머니 대지의 자궁인 지장보살이 들고 있는 게 중생의 죄과를 따지는 육환장이다. 대자연 어머니의 표상은 엄함과 자비를 아울러 지닐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자연 어머니의 자궁은 우주만물의 생산자인 동시에 파괴자이기 때문이다.

〈차이나타운〉이 놀라운 점은 어머니의 자궁이 지하철 10번 보관함으로 표상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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