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자 세상보기

▲ 서인원 진선여고 수석교사

설마 했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가 2015년 10월 12일을 기해 확정되었다.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중학교 ‘역사’와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으로 발행하는 내용의 ‘중·고등학교 교과용도서 국·검·인정 구분(안)’을 행정예고했다. 이로써 중·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는 2011년 검정 교과서로 바뀐 지 6년 만에 국정으로 회귀하게 되었다.

이는 1973년 4월 20일 박정희 정부가 국사 교과서의 국정화 전환을 발표한 지 42년만의 일이다. 또한 2014년 2월 13일 박근혜 대통령이 교육부·문화체육관광부 업무 보고에서 “사실에 근거한 균형 잡힌 역사 교과서 개발 등 제도 개선책을 마련해 주기 바란다”고 지시한 이후 1년 8개월 만의 일이다.

교육부는 국정화 추진 논리로 ‘사실 오류·편향성 수정’, ‘다양성의 확보’, ‘질 관리 체계 구축’, ‘헌법 가치 수호’ 등을 내세웠다. 그러나 현행 8종 교과서가 이명박 정부시기에 교육부의 교육과정과 지필 기준대로 서술돼 교육부의 검정을 통과하였으며, 그 중 일부는 집필진 의사에 반해 교육부의 명령대로 수정까지 해서 일선 학교에 배포되었다. 따라서 현재 한국사 교과서가 오류투성이고 편향성이 있다면 지금까지 교육부가 이를 방조한 것으로 밖에는 볼 수 없다.

국사편찬위원회를 중심으로 질적 관리 체계를 구축하겠다는 내용도 어불성설이다. 지금까지 검정을 맡아온 기구가 국사편찬위원회였으며, 사실상 국사편찬위원회는 역사 연구 및 자료 수집 기관의 성격이지, 역사교육을 담당하는 기구가 아니다.

한국사 교과서에 국정화에 찬성하는 여당 역시 자기 모순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새누리당의 당내 연구기관인 여의도연구원이 2013년 펴낸 정책 보고서에서는 “자유민주주의 이념과 맞지 않고, 특정 정권의 치적을 미화할 수 있다”라고 사실상 국정화 반대 입장을 보였기 때문이다. 하물며, 국정 교과서 집필진의 근현대사 부분에는 역사가뿐만이 아니라 정치사, 경제사 및 사회·문화 전반을 아우르는 분들을 초빙해서 구성하도록 한다는 부분에서는 말을 잃게 하고 있다. 그러면 다른 과목 교과서에서는 그런 집필진 구성을 하지 않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유독 한국사 교과서만은 역사 전문가가 아닌 사람도 저술할 수 있다는 것인지 도대체 아리송하다.

기존의 한국사 교과서 집필진이 이념 논쟁을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정부와 여당이 이념 논쟁을 부추기는 것은 아닌 지 우려스럽다. 교과서는 학문적 업적을 바탕으로 보편 타당하게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서술되는 것이 근본이다. 정부나 여당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이념 논쟁으로 몰아 붙여 국정화를 실시한다면, 우리나라의 역사 교육은 다시 1973년 수준으로 후퇴하는 것이다.

불교계의 입장에서도 한국사 및 역사 교과서 저술 시에 늘 생기는 오류 내용과 사실 왜곡 등의 문제에 있어서 우려를 표명해 왔다. 여러 종의 검정 교과서의 경우에는 오류가 있더라도 다른 교과서와 비교 분석이 가능했으나, 국정 교과서에서는 오류나 사실 왜곡이 생길 경우 검정 교과서와는 달리 치명적인 상황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전 중학생과 고등학생이 모두 한 교과서로만 배우기 때문이다. 불교계의 요청으로 수정될 수는 있겠지만, 이미 잘 못 배운 학생들에게는 수정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불교계에서는 한국사 교과서가 국정화 되던지 검정화 되던지 간에 상관없이 지속적으로 교육과정과 교과서를 모니터링 할 수 있는 기구가 필요하다.

역사는 결코 하나의 시각으로만 기술할 수는 없다. 붕당 정치로 정쟁이 무척 심했던 조선 시대의 〈조선왕조실록〉 저술 과정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남인이 작성한 〈현종실록〉을 마땅치 않게 생각한 서인은 경신환국으로 다시 권력을 잡고 〈현종개수실록〉을 썼다. 그러나 정쟁이 심했던 이 시기에도 서인들은 후대가 참고하고 판단하라고 원래의 〈현종실록〉은 파기하지 않았다.

조성들도 저지르지 않았던 역사에 대한 결례를 현 정부에서도 저지르지 않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한 번 잘못된 교육 정책은 우리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청소년들에게 큰 죄악을 저지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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