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자 세상보기 - 허남결 동국대 윤리문화학과 교수

예전과 마찬가지로 올해 추석연휴에도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잇따랐다. 그중에서도 제사지내기와 재산나누기 등으로 가족 간에 극단적인 폭력사태가 빚어진 몇몇 사례들은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른다. 그동안 쌓여 있던 해묵은 갈등이 하필이면 모두가 즐거워야 할 명절에 폭발하는 사회현상은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풍경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지금과 같은 추세대로라면 이런 일들은 날이 갈수록 더욱 빈번해질 것이 분명하다. 새삼스럽게 들릴지 모르지만 이번 추석을 계기로 명절과 가족관계를 다시 한 번 더 되돌아보게 되었다.

민족의 고유명절인 추석 혹은 한가위는 음력으로 팔월 보름날을 일컫는다. 한 해 동안 지은 농산물로 정성껏 음식을 장만하고 조상의 음덕을 기리는 차례를 지내면서 가족 간의 화목을 되새기는 뜻 깊은 날이다. 알다시피 추석은 설날과 더불어 가장 큰 명절로 여겨진다. 그래서인지 이맘때쯤이면 고향집을 찾는 귀성차량들로 전국 방방곡곡의 도로가 주차장이 되었다는 뉴스가 줄을 잇는다. 그러나 명절을 전후하여 가정폭력과 이혼신청이 급증하고 있다는 소식은 명절나기의 사회적 의미를 의심케 하는 씁쓸한 단면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뉴스를 접할 때마다 ‘도대체 명절이 뭐 길래’, ‘제사가 뭐 길래’, ‘땅이 뭐 길래’라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가 많다. 명절날에 대한 어릴 적 기억을 더듬어 보면 제사음식이나 재산문제를 둘러싸고 서로 삿대질을 하며 다투던 집안 어른들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어린 나이에도 어른들의 행동이 참으로 못마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마다 부엌에서 상심하고 한숨짓던 종부 어머니의 축 늘어진 뒷모습이 지금도 가슴 먹먹하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요즘 젊은이들에게 명절날의 고향나들이는 또 다른 정신적 스트레스라고 한다. 모처럼 만난 친인척들은 인사가 끝나기 무섭게 취업이나 결혼 여부를 묻는 질문을 반복함으로써 그들의 가슴에 큰 구멍을 뚫는다. 이는 도회지에서 학업을 마친 자식들이 점점 더 고향집 찾기를 기피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와 비슷한 종류의 불편한 기억들을 가지고 있을 것으로 본다. 명절과 고향의 의미가 뭔가. 취직이나 결혼을 하지 못한 젊은이들에게도 고향은 언제나 지친 마음을 내려놓고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절에 내려간 고향집이 다른 가족 구성원들로부터 성가시고 짜증나는 말이나 들어야 하는, 감옥 아닌 감옥이 되고 만다면 젊은이들에게 고향과 명절 그리고 더 나아가 부모자식 간의 관계는 점점 더 소외되고 말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명절과 고향의 의미를 절대적인 관점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관점에서도 볼 줄 아는 인간적 여유를 가져야 할 시점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얼마 전 국회에서 발의된 이른바 ‘불효자 방지법’은 우리사회의 가족관계가 얼마나 피폐해져 있는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입법사례가 아닐 수 없다. 평생 동안 모은 재산을 자식들에게 물려준 늙은 부모가 자식으로부터 밥도 얻어먹지 못하고 학대까지 당하는 일을 사전에 방지하자는 취지의 법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를 지켜보는 많은 국민들의 마음은 실로 착잡하리라고 본다. 그러나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로 통칭되는 전통적인 가족관계는 이미 붕괴되고 있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이와 같은 현실을 부정할 수 없다면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명절 혹은 효 이데올로기에 대한 맹목적인 복종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오랫동안 이어져 온 아름다운 명절전통의 의미를 현대적으로 되새기는 균형감 있는 삶의 지혜를 발휘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럴 때 비로소 부모와 자식은 어느 한 쪽이 다른 한 쪽에게 일방적으로 주는 불평등한 관계가 아니라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평등한 인간관계로 거듭나게 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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