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자 세상보기 - 방영준 성신여대 명예교수

 

한 취준생의 “살려달라” 비명

한국사회 현 세태 보여줘 ‘씁쓸’

청년 개인 문제 치부해선 안돼

돈·경쟁 벗어난 사회 만들어야

지난 9월 24일 부산에서 황당하면서도 서글픈 사건이 있었다. 새벽 2시경 부산 황령산 봉수대에서 여성의 “살려달라”는 절규를 들었다는 신고를 받고 인근 3개 경찰서에서 70여 명이 3시간 가까이 수색을 했다. 뒤늦게 네 명의 여자 등산객을 탐문하여 확인한 바, 이들 중 한 여자가 “하느님, 취업 좀 되게 해 주세요. 살려 주세요”라고 외친 것이었다.

이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몇 년간 취업을 준비하는 ‘취준생’이었다. 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사람이 “살려 주세요”라는 외침을 듣고 신고를 한 것이었다. 사건을 종결하면서 한 경찰은 “기도가 좀 지나쳤다”고 하면서도 매우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고 한다.

‘황령산의 살려 주세요’는 우리 사회의 청년 문제가 극적으로 표상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지금 한국 사회의 청년들은 스스로를 3포 세대, 5포 세대, 다 포기한다는 다포 세대 등 자신을 자조적으로 표현하는 용어를 즐겨 사용하고 있다.

사실 취업 못한 청년들은 추석 때 고향가기를 포기하고 연휴기간에 개설된 취업 특강을 듣거나 노량진 주변 카페에서 서성대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다.

또한 추석 연휴 중 취업 잔소리를 한다고 아버지를 칼로 상해한 사건도 보도된다. 오호라. 이를 어찌 할 터인가?

이들 청년들은 자신이 사는 대한민국을 ‘헬 조선’이라 표현하고 있다. 지옥을 의미하는 ‘hell’에다 봉건사회 ‘조선’을 합성한 것이다. 또한 ‘개한민국’라는 용어도 사용되고 있다. 이 용어 속에는 젊은이의 분노와 좌절이 짙게 배어 있다.

금수저 은수저를 물고 나온 부유층은 단군 이래 최대의 태평성대를 보내지만 흙수저를 물고 나온 계층은 희망 없는 유민이 되어 표류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를 보는 나 같은 기성세대는 한결 불편해진다.

해방과 6.25 전쟁 통에 태어난 세대들 중에는 한 끼의 배고픔을 어떻게 채울까, 오늘의 잠자리는 어딜까를 걱정하면서 고학을 하여 자기 성취를 한 사람들이 매우 많다.

그야말로 개천에서 용이 되었고 한국을 경제 선진국(?)에 올려놓은 머슴의 역할을 하였다.

나 같은 층이 옛 경험을 예로 들면서 젊은이에게 충고를 한다면 곧 ‘노력충’의 부류에 속할 위험이 많다. ‘노력충’은 벌레의 일종인데 노력하라는 충고를 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젊은이를 위한다는 책도 유행처럼 출판되었는데, 이제는 ‘아프니까 청춘’ 식의 이야기에 식상해 버렸다.

우리 청년들의 현실에 가슴앓이 하면서 나는 벙어리가 되어 가고 있다. 이 모두가 나 같은 기성세대들이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닌가? 그동안 경쟁적 생존적 삶의 가치에 매몰되어 살아 왔고 우리의 교육제도도 이를 뒷받침해 온 교육이 아니었던가.

정신적 가치의 물화현상에 빠져 우리는 물질만능주의, 배금주의에 늪에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제 우리 사회는 계층 양극화시대로 접어들었다. 내가 살았던 시대는 지진의 시대였고 지금의 젊은이는 견고한 화폐의 콘크리트 시대에서 살고 있다. 그래서 흙수저를 물고 태어난 청춘들은 꿈을 잃고 비전을 상실했다. 한 마디로 기(氣)가 빠진 것이다. 기가 빠지면 사는데 맥이 없고 신명이 나지 않는다. 이러한 사회는 찰나적 쾌락주의를 만연시킬 위험도 매우 많다.

이제 우리 청년들의 문제를 개인의 가치관 문제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의 구조와 제도, 즉 사회정의적 관점에서 진지한 고민을 해야한다고 본다.

신명나고 삶의 질을 높이는 삶은 어떤 삶이고 이러한 삶의 양식을 창출하는 사회는 어떤 사회인가? 돈과 경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삶의 양식을 구현할 수 있는 사회체제는 과연 무엇인가? 붓다의 자비정신이 잘 구현될 수 있는 사회체제는 무엇일까?

내가 지금 제일 관심 있게 독서하고 있는 분야도 여기에 있는데 머리가 어지럽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