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불가, 합창단 창단·공연 활성화로
70·80년대 전성기 지나 침체기
재정적 지원 등 대중의 관심 절실
불미전, 동대 불교미술학과 개설
불교미술 현대화 이루며 발전해

문화 포교는 예술을 통해 대중들에게 불법을 전한다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갖는다. 찬불가의 태동과 전성기, 불교미술의 대중화와 현대화, 불법의 인연을 감동으로 전하는 영화와 연극, 그리고 최근 붐을 이루고 있는 사찰 음식과 산사의 풍경을 감동으로 전하는 사진까지 문화는 대중들의 오감을 자극해 불법을 전하는 매개체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또한 대중들의 감성을 자극해 불교의 이미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할 포교의 방편 중 하나다. 이에 한국 문화 포교의 70년을 정리하고 향후 문화포교의 방향을 제시해 본다.
 

▲ 1970년대부터 찬불가 보급이 확대되었고 이후 교성곡도 활발히 창작되었다. 사진은 교성곡 ‘보현행원송’ 공연 장면.
음악 마음의 소리로 불법 전해
전통불교음악인 범패는 영산재가 유네스코에 등록되면서 세계적인 음악으로 거듭났다. 이와 대비되는 현대적 의미의 불교음악인 찬불가의 개념이 생겨난 것은 1920년대부터다. 찬불가의 창작 보급은 용성 스님을 비롯해 학명 스님, 경허 스님 등 여러 스님들이 가사를 써서 발표하면서 시작되었다. 당시의 불교노래는 대부분 창가풍 이거나 군가풍으로 더러는 우리의 정서가 담긴 타령조 혹은 학도가풍의 노래였다.


이처럼 어렵게 시작된 불교노래가 그나마 일본의 탄압과 우리 문화의 말살정책에 눌려서 기를 펴지 못하고 쇠퇴했다가 광복을 맞게 되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광복 후의 우리 사회현실이 너무나 어수선했다. 국토의 분단, 좌우익의 갈등, 게다가 불교권은 더 불행하게도 비구 대처간의 분쟁으로 1960년대에 들어서야 겨우 안정을 되찾고 질서가 잡히기 시작했다. 이런 가운데에서도 김정묵 중앙포교사가 광복 직후인 1948년에 총 132곡의 노래가 수록된 <찬불가>라는 노래책을 강원도의 정선포교당에서 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1960년대 중반부터 산발적으로 생겨난 몇몇 어린이법회를 중심으로 1966년 처음으로 소년교화연합회가 발족되고 1969년에는 ‘불교청소년교화연합회’로 확대 개편된다. 이를 바탕으로 1970년대 불교음악이 싹 트기 시작한다. 1970년대에는 <자비의 소리>로 문서 포교를 하던 반영규 거사가 찬불가 보급의 필요성을 느끼고 서울대 작곡가 출신의 서창업 선생에게 협조를 구해 곡을 만들고 이를 잡지에 싣게 된다. 또한 운문 스님이 어린이 법회에서 찬불동요와 의식곡 등을 지어서 부르기 시작했고 조계종 총무원은 최영철 씨가 작곡한 ‘삼귀의’ ‘사홍서원’ 등을 보급하게 된다.
합창단도 연이어 창단된다. 삼보법회 합창단을 시작으로 서울불교청년회가, 또한 조계사·도선사 합창단이 창단하고 이어 정옥녀 씨가 광명시에 청룡사 합창단을 창단하면서 찬불가에 대한 관심도 고조되기 시작한다.


특히 불광법회를 연 광덕 스님은 찬불가 보급의 절실함을 깨닫고 1978년에는 바라밀다합창단을 창단한다. 또한 광덕 스님은 찬불가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초파일 송가 파랑새 울고’(정부기 작곡)를 비롯해 교성곡 ‘보현행원송’·‘부모은중송’(박범훈 작곡) 등 불교음악사에 길이 남을 주옥같은 작품을 남겼다. 또한 스님은 크고 작은 공연을 많이 열었는데 특히, 2001년 12월 28일에는 송년음악회 ‘교성곡 혜초’를 한전아츠풀센터에서 공연했다.
1982년에는 도안 스님의 LA사찰 건립 기금 마련을 위해 불교 역사상 최초로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동방의 빛’이 공연된다. 이듬해 1983년에 불광법회 마하보디합창단(서창업 지휘)이 세종문화회관 소강당에서 발표회를 열었고 이어 효동선원(지금의 일선사)의 중앙가릉빈가합창단(김용호 지휘)이 한국일보사 대강당에서 불교음악 발표회를 가졌다.


1984년에 서울 시내 여러 합창단이 모여 부처님 오신 날 봉축음악회를 연 것을 시작으로 80년대부터는 봉축음악회가 정착된다. 또한 서창업 선생이 작곡한 교성곡 ‘반야심경’을 불광법회 마하보디합창단이 공연했고, 또한, 한마음선원 합창단이 호암아트홀에서 불교계 최초로 불교국악연주회(1987년)를 가졌다. 1990년대에는 교성곡의 등장이 눈길을 끈다. 붓다의 노래(효경 작사·정부기 곡), 천수천안 관음송, 사바의 바다(반영규 작사·김동환 곡), 용성(도문 작사·박범훈 곡), 혜초(장지현 작사·김회경 곡) 등이 있다. 특히 ‘혜초’는 진각종이 주관하고 현대불교신문사가 참여해 국립극장 대극장에서 막을 올린 바 있다.
또한 1991년부터 불교방송이 5개년 계획으로 해마다 신작 찬불가 20곡을 만들어 발표했고 1996년 3월과 9월에는 불교방송에서 방송한 찬불가를 묶어 합창곡집을 냈으며, 조계종 총무원 문화부 주관으로 <찬불가>라는 합창곡집이 나오기도 한다. 1997년에 조계종 총무원 문화부는 ‘창작찬불가 공모’를 하고 이듬해에 ‘제1회 창작찬불가 공모 결과’를 발표했고 격년제로 진행되다가 2008년부터 불교합창페스티벌로 행사 명칭이 변경되어 합창경연대회로 진행되고 있다. 또한 2010년부터는 신작찬불가 20곡을 개발해 전국의 합창단들이 참여하는 신작찬불가 경연대회도 진행하고 있다.


좋은벗 풍경소리의 활동도 주목할 만하다. 1996년부터 매년 두 장씩 여름 겨울 불교학교를 맞는 어린이들을 위해 음반을 발표하는데 창립 20주년을 맞는 올해 마흔번째 앨범을 냈다.
2000년대는 니르바나오케스트라, 불교음악공동체 모임 ‘무소의 뿔’, 찬불가 보급모임 ‘육화림’ 등이 활약하며 수준 있는 불교음악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한 조계종은 올해 불교음악원을 개원해 국악으로 찬불가를 보급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찬불가를 보급하기 위해 공연 무대에 오르는 스님도 주목할 만한데 도신 스님, 정율 스님 등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재정 부족, 관심 부족 등으로 2000년대 불교음악은 여전히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작사, 공연 기획 등으로 불교음악 발전에 큰 기여를 해온 반영규 거사는 “지금 불교음악은 재도약을 해야할 때다. 새로운 곡의 출현도 주춤하고 의욕적인 도전도 없는듯하다. 불교신도를 위한 음악회도 보이지 않는다. 뜻있는 사람들이 결사단체를 만들어 불교음악을 정리하고 한 단계 도약을 해야 할 때다. 특히 불교의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처럼 부처님 일대기를 교성곡으로 만드는 일은 시급하다”며 의견을 전했다.

▲ 1970년 제 1회로 시작한 대한민국미술대전은 불교미술 인재양성에 기여해 왔다.
미술 현대화 대중화로 거듭나
불교미술은 지난 1700년 동안 세계가 주목할만한 문화유산을 남기며 한국미술사에 중요한 장르를 형성해왔다. 광복 이후 불교미술은 현대화 대중화를 위한 끊임없는 노력들이 이어져왔다.
조계종이 주최하는 대한민국불교미술대전은 역량 있는 작가들을 발굴·육성하고, 불교미술의 미래지향적인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마련됐다. 1970년 당시 조계종 총무원 문화부 종무원으로 근무하던 홍윤식 동국대 명예교수의 노력으로 시작되었으며 올해로 28회를 맞게 되었다. 그동안 2100명의 수상자를 배출했으며 인간문화재, 대학교수 등 수많은 인재들이 불교미술대전을 거쳐갔다. 2012년 이후 격년제로 실시되고 있는 불미전은 한 해는 공모전 한 해는 기획전으로 구성되어 작가들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현대 불교미술의 발전은 불교미술가 양성에도 큰 몫을 차지한다. 일찍이 금어로서 이름을 떨쳤던 만봉 스님(중요무형문화재 단청장)은 이세환, 이인섭, 홍창원, 양선희 등 수많은 제자들을 배출해냈다. 또한 금어 일섭 스님 역시 많은 제자들을 배출했는데 올해는 그 제자들이 예술의 전당에서 대규모의 전시를 여는 등 맥을 이어가고 있다. 석정 스님 역시 수안 스님, 손연칠 교수 등의 걸출한 제자를 길러내면서 불교미술을 알려갔다.


이렇게 스님들 문하에서 도제 시스템으로 길러지던 후학 양성이 제도권 교육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1971년 동국대 불교미술학과의 탄생이 그것이다. 동국대 홍윤식 교수의 불교신문 연재에 의하면 “불미전을 성공적으로 유치한 이후 불교미술의 체계적인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불교미술학과를 개설하게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1964년 통도사로 들어가 본격적인 서화 수련에 들어간 석정 스님 은 이후 1969년 불교계 최초로 선서화전을 열어 불교계는 물론 화단의 주목을 받는다. 이후 선서화전은 붐을 이루게 되는데 그 대표적 작가로는 경봉 스님, 구산 스님, 탄허 스님 등이 있다. 이때부터 사찰 불사가 있을 때마다 선서화전을 통해 기금 마련을 하는 등 선서화전은 급속도로 유행하기 시작한다. 이후 불자들은 가정에 스님들의 글씨나 그림 하나를 집에 걸어두는 것을 큰 열망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현재까지 선화가로 활동하고 있는 스님은 동성 스님, 성륜 스님, 범주 스님 등이 있다.
1993년 국내 최초의 고려불화전도 주목할만하다. 1980년도 초반 일본 야마모토미술관에서 초유의 고려 불화전이 열린 이후 70여 점의 고려불화가 일본에 보존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되면서 국내외적으로 고려불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이후 홍윤식 교수 등의 노력으로 1993년 동국대 박물관 개관 30주년 기념으로 고려불화전을 기획하게 되었고 호암미술관과 함께 전시를 열면서 세간의 큰 관심을 모았다.


금동반가사유상은 2013년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전시되면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등 불교미술 조각 역시 그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다. 현대조각은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조각가들이 불교미술 영역에 뛰어들면서 새로운 작품 세계를 열고 있다. 구도의 세계를 돌에 새겨 따뜻한 감성을 전하는 오채현 작가, 서양 조각의 비례법을 불상에 적용한 서칠교 작가 등이 그 대표적 예라고 할 수 있다. 또한 ‘TV 속의 부처’ 등에 불교 정신을 녹여 넣은 비디오 아트의 거장 백남준의 작품도 주목할만하다. 새로운 기법으로 관세음보살상을 비롯해 석탑 불상 산사의 풍경 등을 작업해온 판화가 조향숙 작가의 작품도 기억할 만하다.
동국대 손연칠 명예교수는 앞으로 불교미술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시대를 반영하는 작품이 많이 탄생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현재 대부분의 불화가들은 전통을 지킨다는 미명하에 조선시대 작품을 계속 모사하고 있는 실정이다. 시대정신이 반영된 작품만이 진정한 전통이 될 수 있다”며 당부의 말을 전했다.

▲ 모스크바영화제 여우주연상에 빛나는 '아제아제바라아제'
영화 대중성과 예술성의 결합
최초의 불교영화는 1949년 윤용규 감독이 제작한 ‘마음의 고향’이다. 함세덕의 희곡 ‘동승’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지난해 2002년 주경중 감독이 현대적 감각으로 리메이크해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2014년 박영철 감독이 다시 ‘내 마음의 고향’이라는 이름으로 제작해 기술 시사회를 갖기도 했지만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1952년 윤봉춘 감독의 ‘성불사’는 징병을 기피한 주인공이 주지 스님의 설법을 들으며 뉘우치고 자진입대한다는 내용의 계몽영화로 당시의 시대상을 담으며 국방부 우수영화상을 받았다. 이어 신상옥 감독이 1955년 이광수의 원작을 영화로 옮긴 ‘꿈’과 현진건의 원작을 영화화한 ‘무영탑’(1957년) 등을 발표했고 양주남 감독이 ‘종각’(1958년)을 선보이는데 이들은 당시 베니스 영화제에 출품 될만큼 좋은 평가를 받았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는 군사정권의 영향을 받아 국난극복의 상황에서 활약한 고승들의 행적을 작품으로 선보이는데 이는 애국심을 고취 시키는 작품이다. 홍성기 감독의 ‘에밀레종’(1961년)을 시작으로 장일호 감독의 ‘원효대사’와 ‘석가모니’, 이용민 감독의 ‘지옥문’, 김승옥 감독의 ‘이차돈’ 등이 동시에 선보인다. 1970년대에는 김화랑 감독의 ‘성불사의 밤’을 시작으로 1974년 김기영 감독이 제작한 ‘파계’, 1979년 이영우 감독의 ‘사문의 승객’ 등이 대표적인 작품이다.
1980년대에는 불교영화 수가 줄어들기는 했지만 작품성과 예술성을 모두 인정받는 수작들이 탄생한다. 임권택 감독의 ‘만다라’(김성동 원작)는 구도자의 진정한 고민을 잘 포착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임권택 감독은 이 영화로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으로 성장하게 된다.
1989년 임권택 감독은 ‘아제 아제 바라아제’를 내놓게 되는데 당시 배우 강수연의 삭발 투혼은 큰 화제가 되었고 모스크바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는 쾌거를 이룬다. 그리고 배용균 감독의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은 불교적 사유의 이미지화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는 극찬을 받으며 제42회 로카르노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한다.
1990년대에는 ‘오세암’,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화엄경’, ‘유리’ 등의 불교영화가 만들어졌고, 윤회를 소재로 한 ‘은행나무침대’가 흥행하며 강제규 감독의 이름 알리는 계기가 된다. 2000년대 들어와서는 불교 소재를 직접적으로 다룬 영화는 줄어들기 시작하는데 그 중에서도 2001년 박철관 감독의 ‘달마야 놀자’는 기존의 불교영화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꾸는 계기가 된다. 당시 유행하던 조폭 코드를 스님들의 이야기에 적용해 흥행에 성공하게 되지만 조폭 영화로 스님들을 희화화 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2010년 개봉한 영화 ‘할’은 우천의 깨달음의 과정을 담아냈지만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2013년 비구니 선방 백흥암 스님의 일상을 담은 독립 다큐영화 ‘길 위에서’(이창재 감독)는 독립영화로서는 5만 이상의 관객을 모으며 호평을 받았다.

▲ 이만희 작가의 ‘그것은 목탁 구멍 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는 현재까지도 매년 공연되면서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연극 극적 장치로 불교 이미지 전달
최초의 불교 연극은 1928년 홍사용의 ‘출가’를 꼽을 수 있으며 1929년 경기도 양주군 보광사에서 ‘목련극’ 공연이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1930년대 들어 불교의 대중포교 원력과 불교개혁운동이 펼쳐지던 시대상황과 맞물리면서 불교 연극은 빠르게 확산되는데, 각황사의 성도절 기념법회에서 김소하의 다양한 희곡작품이 무대에 올려진다. 당시 1300~400명의 대중들이 모이면서 혼잡을 이루는 등 각황사의 연극공연은 큰 호응을 얻는다.
1948년 극단 극협에서 무대에 올린 유치진 작·이화삼 연출의 ‘마의태자’가 성황리에 공연됐고, 1955년에는 극단 대중극회가 ‘지옥과 인생’을 공연했다. 그리고 1967년 ‘이차돈의 사’가 국립극장에서 한달 동안 공연되는데 2만여 명 관객이 몰리는 등 큰 관심을 모았다. 1968년에는 불교 최초의 프로극단 탑이 창단되기도 한다.
1970년대는 극단 자유극장이 무대에 올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 국립극단의 ‘에밀레종’, 극단 신협의 대한민국연극제 출품작 ‘탑’, 박제천 시인의 연작시를 극화한 ‘판각사의 노래’ 등의 작품이 있다.
1980년대에는 뮤지컬이 등장하는 등 불교연극의 영역이 확대된다. 1982년 진관 스님이 극을 쓴 ‘선객’이 무대에 올려졌고 ‘구름 가고 푸른 하늘’, ‘조신의 꿈’ 등이 선보였다. 그리고 1984년 만해의 일대기를 뮤지컬로 엮어 발표한 ‘님의 침묵’이 발표돼 큰 반향을 일으키는데, 이는 불교 뮤지컬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불교 연극중 가장 주목할만한 작품은 1990년 4월 초연된 이만희 작가의 ‘그것은 목탁 구멍 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이다. 현재까지도 매년 공연되면서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이 작품은 한 인간의 세속적 번뇌를 통해 구도에 이르는 과정을 극으로 표현했다. 이 작품은 당시 서울연극제와 백상예술대상 등에서 각종 상을 휩쓸면서 화제를 모았다.
1996년에는 뉴욕 라마다 극장에서 상연돼 관객과 평단의 극찬을 받았던 강만홍 연출의 불교신체연극 ‘두타’, 1998년에는 ‘느낌, 극락 같은’이 무대에 올려져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1999년에는 국립극단이 전년도 창작희곡공모당선작인 ‘아노마’를 청소년을 위한 특별공연 시리즈로 무대에 올렸다.
2000년대에는 ‘붓다를 훔친 도둑’, ‘한바탕 꿈인 것을’, ‘붓다마이바디’, ‘피고지고 피고지고’, ‘아름다운 남자’, ‘선’, ‘지대방’, ‘환화여 환화여’, ‘매혹-회암사 그 천년의 눈물’, ‘아버지의 가수’ 등이 무대에 올랐다. 특히 ‘지대방’은 원담 스님이 극을 직접 쓰고 불교연극 전문연출가 강영걸 씨가 연출을 맡아 화제가 되었다. 이밖에도 2011년에는 MBC 창사 50주년 기념으로 뮤지컬 ‘원효’가 국립극장에서 올려지기도 했다.

사찰음식 수행식에서 건강식으로
사찰음식은 스님들의 수행식이라는 측면에서 대중들에게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웰빙’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유기농 음식, 채식 등의 음식이 각광받기 시작했고 사찰음식이 건강식으로 대두되면서 세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또한 진관사, 비구니회관, 봉은사 등에서 사찰음식 강좌는 큰 인기를 모으며 사찰음식의 대중화에 기여하고 있다. 또한 적문 스님, 선재 스님, 대안 스님 등 사찰음식을 전문가도 주목을 받는다.
이에 조계종 역시 사찰음식의 대중화를 위해 2009년 사찰음식 전문점 발우공양을 여는 등 사찰음식 홍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고 봉녕사, 봉은사 등도 사찰음식 관련 축제를 열고 있다. 또한 조계종은 2011년 9월 파리 한국문화원에서 ‘한국불교와의 만남’을 주제로 한 한국불교문화체험 리셉션에서 대안 스님의 특강을 열어 한국 사찰음식의 특징과 우수성을 현지인들에게 알린 바 있다.

사진 산사의 이미지 렌즈에 담아
사진은 사찰의 풍경이나 스님의 일상을 카메라 렌즈에 담아내 대중들에게 알린다는 점에서 문화포교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사찰 달력에 산사의 풍경을 담으면서 대중들에게 신심을 고취시킨다는 점에서도 불교사진은 주목된다. 불교계를 대표하는 사진작가로는 관조 스님을 들 수 있다. 1975년부터 2006년까지 관조 스님은 사찰 건축물과 불교문화유물 해외사찰문화 등을 렌즈에 담아냈는데 20만컷에 이른다. 이에 2012년에는 조계종 총무원과 관조 스님 문도회가 MOU를 체결하고 스님의 유작 사진 디지털화에 나섰다. 또한 재가신도들로 구성되어 꾸준히 활동을 펼치고 있는 불교사진협회는 올해로 20주년을 맞았으며 현재 120여 명의 회원이 활동하면서 매년 사진집 발간과 전시를 이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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