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화 스님

 

▲ 빔, 122×73cm, 종이에 수묵, 2015.스님의 삶은 본질 그 자체다. 비워서 얻은 상충과 양극의 통일이다.

쉼 없이 공부에만 정진했다.
시간을 황금이라 말하며
헛된 인생 살지 말라고 했다

예술은 주어진 현실의 재생이 아니라 현실의 발견이다. 그림은 형상을 그리는데 있는 게 아니라 형상 너머의 뜻까지 그리는데 의미가 있다. 미는 사물의 직접적 속성이 아니라 인간 정신에 대한 관계를 내포한다.
그래서 작가는 대상에 대한 해석이 중요하다. 이때의 해석은 개념과 사고에 의한 해석이 아니라 직관과 감각에 의한 해석이다. 예술 작품은 정신적인 성격을 강조하는 정신의 철학이다. 한 인물을 알기 위해 그 인물은 물론 그림자의 배후까지 볼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과정에서 또 하나의 새로운 현실이 발견 된다. 이럴 때 작가는 표현 대상 인물에 대한 영혼의 움직임과 전체로서의 삶, 위대함과 연약함, 숭고함과 우열 등 그 모든 깊이와 다양성을 발현 할 수 있다.
스님은 하루 한 번 쌀가루 한 컵을 물에 타 마시는 것으로 식사를 해결했다. 쌀가루 2~3 스푼과 둥굴레 뿌리 가루를 섞어 드셨을 뿐이다. 선정에 들었을 때에는 3일에 한 번만 드신 경우도 허다했다.
배가 곯으니 자연 어깨가 움츠려 들었다. 스님은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 좌복을 배에 대고 묶은 채 참선에 몰입 했다. 목숨을 건 수행이었다. 그만큼 수행에 철저했고 잠시도 공부에서 눈을 뗀 적이 없었다. 대신 스님의 치아는 69년에 대부분 잃었고 74년에 마지막으로 남은 어금니마저 버려야 했다.
스님은 쉼 없이 공부에만 정진했다. 자신의 시간에는 누구와도 대화하지 않았다. 그래서 늘 혼자였다. 주변 사람들에게 조차 여유를 주지 않았다. 시간을 황금이라 말하며 누구든 헛된 인생 살지 말라고 했다. 스님의 일상적인 언어 중 하나가 “나는 자네처럼 행망스럽게 놀아 본적이 없네.”였다. 이처럼 최선을 다했다. 인간적인 미가 부족하다고 말하는 주변 사람의 평가도 있다. 스님의 정신세계를 진실 된 눈으로 바라 본 자들이 그만큼 적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스님은 사람을 키우지 못했다. 스님의 철학과 가치관을 이해하는 제자가 많지 않았다. 그것이 가장 아쉽다.
스님의 수행 자세는 장좌불와로 일관했다. 확인 가능한 시점으로만 치도라도 최소한 40년 동안 단 한 번도 누워 있지 않았고 앉아서 생활 했다. 역설적이게도 속을 비우는 삶을 살았던 스님에게 생명을 유지하게 한 것은 장좌불와였다. “눕지 않았기에 살았지 누웠으면 장기가 들어붙어 돌아 가셨을 것이다”는 광주 한의사의 말이 사실로 받아들여진다. 스님에게는 속을 비우는 것이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하루에 세끼를 먹으면 소화시키기 위해 몸은 요동을 치고 시끄러워 정신을 집중하기 어렵다 했다. 오히려 속을 비우니 정신의 집중력이 높아진다는 것이 스님의 지론이다. 이는 수행자의 무서운 집념이다. 노력과 끈기 그리고 투철한 정신력은 스님의 인생관에서 뺄 수 없는 대표적 요소이다.
스님은 은일했다. 그리고 묵언했다. 오욕칠정에서 벗어나 탈속의 경지에서 삶을 일관하려 했다. 무사했다. 최고의 미에 도달하려면 자연을 재현하는 것 못지않게 자연을 떠나는 것이 절대 필요하다. 스님은 버려서 얻었다. 스님은 정직한 모범생으로 원리 원칙주의자이다.
스님의 몸 자체가 교과서이다. 스님의 모습은 초발심의 표본이고 겸허함 그 자체다. 처음이면서 끝이었다. 스님의 살림살이는 단순했다. 모든 물건은 질서 정연했고 정리 정돈이 잘 되어 있다. 사물을 대하는 자세가 깐깐했고 빈틈을 허용치 않았다. 성본 스님은 “스님을 모시는 내내 스님 앞에서 숨 한번 제대로 쉰 적이 없다”고 회상했다.
실례로 스님은 글씨를 반듯하게 잘 쓰는 사람을 좋아했다. 잘 쓴 글씨를 보고 사람을 평가했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정신이 반듯하다고 보았던 것이다.
스님은 고개를 숙이는 삶을 사셨다. 고개 한번 들어 본적이 없고 수행하고 오나가나 책이나 보며 살았던 분이다. 누구에게도 눈빛을 보이려 하지 않았다. 사람을 만날 때 두 손을 모으고 정성스레 대했다. 그만큼 인자하고 겸손했다. 세상을 들었다 놓았다 할 정도로 기백이 있었지만 빛만은 감추었다. 자신감이다.
스님은 현실적인 것을 중시 했다. 그리고 허세를 싫어했다. 단순했고 담박했다. 겉모습으로 비칠 수 있는 것은 싫어했고 금했다. 스님의 몸은 야윈 편이다. 신체 선은 가늘고 고우며 섬세하다. 그러나 곁은 야위었지만 뼈는 통뼈로 대인 기질이 있다. 스님은 검도 유단자로 운동 기질이 뛰어난 분이다. 동작이 민첩했고 발걸음이 빨랐다. 온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모습에서 엄청난 유연성이 발휘된다.
손과 발은 길고 컸고 따뜻했다. 얼굴에 나타나는 전체적인 느낌은 깊고 맑은 빛이 가득하다. 머리 위 정수리는 법랍이 높아 질수록 봉긋 솟아올랐다. 눈은 크기가 달랐다. 왼쪽 눈은 부릅 떠있고 왼쪽 눈은 곱다. 눈빛이 형형했고 살아있다. 눈썹의 색깔도 다르다. 왼쪽 눈썹도 짙고 숱이 많다. 눈은 자주 깜빡인다. 코는 조금 낮은 편이고 얇다.
스님은 치아가 좋지 않아 고생이 많았다. 위·아래 모두 틀니이다. 때문에 입은 합죽하다.
인중 선은 뚜렷하다. 특히 스님에게 인중은 감정 선이었다. 누가 슬프거나 언짢은 소리를 할 때 더 뚜렷했다. 입에는 항상 힘이 들어 가 있다. 나이가 들면서 이런 현상은 더 분명하게 두드러졌다. 입은 꽉 다물어 있고 거기엔 자신을 향상시키기 위한 강한 의지가 숨어있다.
스님은 성질이 급했다. 성질이 펄펄 끓는 분이셨다. 기분이 좋지 않을 때에는 누구도 접근하지 못했다.
스님은 말이 빨랐다. 그러면서도 말을 더듬었다. 스님의 목소리는 우렁우렁하다. 그만큼 힘찼고 까랑까랑했다. 자신감의 또 다른 모습이다. 스님은 귀가 얇았다.
성본 스님은 은사스님에 대해 “말로 공부해서 되로도 사용하지 못하고 돌아 가셨다”고 하면서 “스님의 진면목이 그저 세상에 묻히는 것이 안타깝다. 스님의 진영이 살아있도록 잘 그린 그림이면 좋겠다. 그러면 스님의 말씀이 다시 살아나 제도가 되는 계기가 되지 않겠는가. 나는 그런 염원으로 진영을 모시겠다”고 했다.
예술 작품의 본질은 근본적인 양극성에 있다. 모든 시대의 위대한 예술은 대립하는 두 힘의 상호 관련지음에 의해 일어난다. 대조인 것이다. 미는 그 본성과 본질에 있어 대립하고 있는 두 요소를 통일한다. 나는 청화 스님을 공부하면서 결핍의 자유와 상생의 쾌락을 보았다.

▲ 聖母, 218×187cm, 종이에 수묵 채색, 2010.청화스님은 부모님에 대한 효심이 지극했다. 부모님의 제삿날에 가지 못하면 물을 떠 놓고 예를 표했다. 스님의 몸가짐은 어머니의 마음으로 세상을 보고 대하듯 애틋하고 겸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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