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 철마사 봉사자들

떡볶이 법회로 인연을 맺고 있는 불자들이 확짝 웃고 있다. 사단에 적을 둔 불자들부터, 지역 사찰 스님, 떡볶이 보시를 위해 먼길을 찾아온 불자들까지 모두 군장병들을 위하는 한 마음이었다.
봉선사·화계사 봉사 인연이 철마사로
군장병 떡볶이 보시 15년 이어와
이웃종교 종교활동 비해 장병 10배 넘어

법회·음식장만 등 분업화해 상부상조
인천에서 전날 출발, 밤새서 봉사하기도
군장병 편지글 “덕분에 불교 알게 돼”

“군인 아저씨! 이 쪽에서 떡볶이를 퍼가도록 해야지…. 아이구, 저 아저씨 저렇게 많이 고추장을 넣으면 어떡해?”

9월 6일 법회가 한창이던 경기도 남양주시 75사단 철마부대 군법당. 모락 모락 김이 올라오는 떡볶이를 만드는 군종병들을 부르는 보현경 보살(이청자·73)의 목소리가 법당 밖에 까지 울려 퍼졌다.

호국 철마사 식당의 한쪽에서는 떡볶이 떡과 어묵 등을 조리하는 봉사자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이날은 철마부대 군장병들이 한달에 한번 손꼽아 기다리는 ‘떡볶이 법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보현경 보살을 비롯한 자원봉사자 5~7명이 불자장병들을 위해 떡볶이를 보시한 지 15년이 흘렀다. 이른바 ‘떡볶이 법회’다. 떡볶이 법회는 특정 주관단체가 없이 인연법이 닿는 불자들이 십시일반 참여하고 있었다. 떡볶이 법회가 만들어지기에는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노력이 함께 있었다. 이른 아침이었지만 서울 강남과 수유, 인천, 분당 등에서 떡볶이 보시 하나로 남양주까지 먼 길을 봉사자들은 마다 않고 달려왔다. 이들은 손발을 맞춰 순식간에 떡볶이를 만들어 냈다.

일손을 거드는 군장병과 철마사 보살님이 함께 떡볶이를 만들고 있다.
보현경 보살은 “일선 법당에서 단순한 법회를 진행하면 군장병들이 찾지 않는 곳이 많았다. 조금이라도 부처님 법을 접하게 하고자 간식거리를 제공했고, 그러나 보니 이렇게 떡볶이를 만들게 됐다”고 했다.
아직 불심이 영글지 않은 군장병들의 입장에서는 조금이라도 혜택이 있는 곳으로 몰리는 것이 인지상정. 떡볶이 법회를 시작하고서 효과는 놀라웠다. 보통 법회 때 100여 명의 장병이 몰리던 것이 250여 명까지 늘어난 것이었다. 예비부대 인원 감축으로 75사단 장병들의 수가 줄어 최근에는 50명에서 100명 가량이 법당을 찾고 있다. 하지만 가톨릭 성당과 개신교 교회의 10여명에 불과한 현실에서 이 정도 장병들이 법회에 참여하는 것은 놀라울 따름이다.

이제는 명물이 된 호국 철마사의 떡볶이 법회는 보현경 보살의 남편 지수 강노식 포교사(77)와의 인연으로부터 시작됐다. 강 포교사는 군에서 드물게 신심이 넘치던 불자였다. 강 포교사는 중령 예편 후 1997년 조계종 포교사가 됐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군포교에 뛰어 들었다. 남양주 봉선사 사무장을 맡게 되며 인근 철마부대, 연천 28사단 신병교육대, 청학 호국사 등에서 군법회를 지도하게 되며 보현경 보살도 함께 군장병들을 위한 봉사활동에 뛰어들게 됐다.

법회에는 60여 장병이 참여했다. 인근 이웃종교 활동의 10배가 넘는 수치다.
처음에는 과자며 음료수를 주는데 그쳤다. 그러던 것이 역시 자원봉사자였던 도성인 보살의 어머니가 떡볶이를 만들어 보시하며 본격적인 떡볶이 법회로 진행됐다. 지금은 어머니의 원력을 이어받아 도성인 보살이 떡볶이를 만들고 있었다. 먹을 것을 준다기에 모인 장병들이지만 지금은 장병들을 모이게 하는 것은 그 것 뿐만이 아니었다. 바로 호국 철마사 자원봉사자들의 열정 때문이었다.

“군불교의 신행활동은 이웃종교에 비해 매우 열악해요. 숫자도 적을뿐더러 비교적 혜택도 적기 때문이지요. 민간인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초코파이 하나, 볼펜 한 자루가 군인들에게는 종교활동의 선택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물질로 유혹한다고 비판할 수도 있지만 이들이 불교를 접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어요. 어려운 시절 들은 부처님 말씀 한구절이 평생을 가는 법이니까요.” 떡볶이를 만들며 봉사자들은 즐거운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처음 떡볶이 법회를 시작할 때는 어려움도 많았다고 한다. 그중 가장 큰 것이 재정적인 문제였다. 보현경 보살은 그동안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국립의료원 봉사활동도 나서고 있는 보 보살은 군포교가 상대적으로 관심이 부족한 점이 가장 어려운 점이라고 털어놨다.

“아시다시피 이런 곳에 까지 종단에서 지원을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잖아요. 군법사님들이 많지만 아직 없는 법당도 많아요. 결국 부대와 인연이 닿는 지역불자들이 십시일반 꾸려나가는 것이죠. 이런 상황에서 일선사찰의 관심이 더욱 필요합니다.”

병사들이 많을 때는 한끼를 보시하는데도 약 50여만원이 들었다고 한다. 다행히 백령도 주지 부명 스님이 떡과 초코파이 등을 재료를 후원해주었다. 국립의료원 봉사도 함께 나서고 있는 보현경 보살은 자녀들도 봉사에 동참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 보살의 세 자녀들은 매달 조금씩 돈을 모아 떡볶이 봉사를 후원하고 있었다.

법회 후 철마사 군장병들이 떡볶이를 받아가고 있다.
이런 힘을 모아 군포교 활동에 매진하고 있지만 여전히 주변의 지원은 턱 없이 부족하다. 돈보다도 떡볶이를 만들 쌀이나 사찰에서 49재를 지내고 남은 사탕, 약과 등 군인들이 좋아하는 간식거리 하나가 더 절실하다.

특히 떡볶이를 직접 만드는 도성인 보살은 그 어려움을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재가자들이 쌀 등을 얻기 위해 다니기가 힘들었어요. 다행히 스님 등 불자들이 조금씩이나마 도와주셔서 정말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재료준비, 차량지원 등 여력을 아끼지 않는 동료 자원봉사자들도 너무 고마울 따름입니다.”

도성인 보살은 처음 어머니를 따라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상계동 사천왕사에서의 민들레 결식아동 급식봉사 등을 거쳐 현재 철마사까지 흘러왔다. 서울 상계동에서 거주할 무렵 시작한 봉사활동은 인천으로 이주해서도 이어져 오고 있었다. 철마사 떡볶이 법회가 열리는 날이면 도 보살은 전날 인근으로 이동해 사우나에서 자고 아침에 봉사활동을 하고 귀가한다.

도 보살은 “법당에 올 때마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며 “따로 볶아 만드는 떡볶이 방식을 어머니가 군장병을 위해 개발하셨다. 어머니가 남긴 방법대로 떡볶이를 만들며 어머니 생각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떡볶이 법회는 분업화가 잘 되어 있었다. 떡볶이 법회에서 군장병들을 대상으로 한 법문은 강기천 법사가 담당하고 있었다. 강 법사는 화계사 회주 성광 스님의 유발상좌였다. 화계사 성광 스님은 육군 중령 출신으로 군법사 제도 안착 등에 크게 기여했다.

강 법사는 “은사 스님께서는 항상 군포교를 강조하셨다. 화계사 봉사단에서 인연을 맺은 불자들이 호국 철마사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는 말에 처음 찾게 됐고 그 인연으로 이 곳에서 10여년 째 민간인 법사로 활동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강 법사는 “최근 아들이 군대에 간 상태”라며 “모인 군장병들에게 아버지의 입장에서 법문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법회에서 강 법사는 ‘잘먹고 잘사는법 식사하셨어요’에서 트로트 가수 홍진영 씨가 네티즌들의 악플에 시달리며 털어 논 사연을 장병들에게 소개하며 불교에서 마음다스리는 법을 설명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성격이 밝은 것으로 유명한 홍진영 씨도 많이 힘들었다고 합니다. 불교에서는 연기법을 강조합니다. 연기법은 쉽게 말해 자신이 무심코 내뱉은 말에 다른 이들이 상처를 받을 수도 있고, 또 그 영향으로 다시 자신이 상처 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의 군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선후임간에 무심코 내뱉은 거친 말 한마디에 서로가 힘들어 질 수 있어요. 항상 다른 사람 입장에서 배려하는 모습이 필요한 것입니다.”

강 법사가 최근 연예계 이슈로 법문을 하는 동안 군장병들은 귀를 쫑긋 세우고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군 법회에서는 장병들과 함께 소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아무리 교리를 말하더라도 듣는 이들이 듣지 않는다면 말그대로 ‘소 귀에 경읽기’겠죠. 처음에는 불교교리 위주로 법회를 하다가 최근에는 사회 이슈를 통해 불교 가르침을 전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어요. 되도록 자식을 키우는 입장에서 편안하게 대화하려고 노력합니다.”

강 법사는 장병들이 불교라는 종교를 왜 가져야 하는지를 직접 느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병사들은 2년 주기로 바뀝니다. 처음 오자마자 발심을 하여도 불교를 알기에는 부족한 시간이죠. 차라리 인생에서 힘들 때 어떤 방식으로 불교적 사고를 한다면 극복할 수 있는지를 인생선배로서 전하는게 낫겠다고 생각했어요. 하루는 한 장병이 법회 후 찾아와서 ‘불교에서 출가는 무엇입니까’라고 묻더군요. 그때 이 장병을 데리고 세세하게 알려주었습니다. 이처럼 불자들이 청년들에게 가깝게 다가가다 보면 언젠가 열매를 맺지 않을까요.”

이날 법회에는 봉선사 법등 스님과 75사단 불자들도 함께 봉사에 나섰다. 이들은 매주 철마사 법회의 맥이 끊키지 않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법등 스님은 “어린이·청소년, 군포교 분야는 불교의 미래라고 볼 수 있음에도 아직 노력이 부족한 것 같다. 이웃종교와 비교해 종단의 여력도 부족하고 많은 도움을 주어야 하지만 본사 차원에서도 힘이 되지 못해 미안하게 생각한다. 이런 의식있는 분들의 노력으로 불교가 이어져 오는 것”이라고 격려했다.
현재 남편이 75사단에 원사로 근무 중인 세연화 보살은 “평소 주말 법회에도 많은 일손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떡볶이 법회를 계기로 전역한 장병들이 후원하는 등 힘이 되고 있다. 많은 불자들이 이런 현장 포교에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세연화 보살은 “군장병들을 위하는 일이 군 생활하는 남편에게도 힘이 되는 것 같다.법회 때마다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보살님부터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고 있다”고 감사를 표했다. 대화를 나누는 동안 법회가 끝나고 장병들은 떡볶이를 맛있게 먹고 부대로 내려갔다. 법회에 오지 못한 근무장병들을 위해 한보따리씩 떡볶이를 싸가는 모습에서 바깥 사회에서는 쉽게 보지 못하는 인정이 넘쳐 흘렀다.

보현경 보살은 끝으로 지난해 한 병사로부터 받은 편지 한구절을 소개했다. ‘처음에 먹을 것을 위해 법당에 나가던 자신이 부처님 법을 접하고 무사히 군생활을 마치게 됐다’는 내용이었다. 밖에서도 열심히 절에 나가겠다는 이 장병의 편지글에 보현경 보살은 건강상의 이유로 봉사활동을 그만두려고도 했던 마음이 저만치 달아났다고 털어놨다. “저희들이 모여서 만드는 떡볶이 한 그릇 한 그릇을 먹은 군장병들이 나중에는 전역 후 사찰에서 불자로 활발히 활동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떡볶이 속에 부처님의 따뜻한 자비심이 전해지는 하루였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