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기도 하고 때로는 누워 자유자재로 노니네
앉기도 하고 때로는 누워 자유자재로 노니네
  • 김호석 화백
  • 승인 2015.08.26 16: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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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광 스님

스님의 눈에 고인 눈물과
어지러운 눈썹을 그렸다
말 못할 번뇌를 안고 가시는
눈물 머금은 스님의 눈빛은
잊을 수 없다

▲ 통광 스님. 스님께서는 가사 장삼을 갖추시더니 의자에 앉은 동작과 좌복에 앉은 자세 등을 취해 주셨다. 동작을 취해 준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매 순간 정성을 다해 응해 주셨다. 스님의 자태는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표정은 없었다.
송광사 강주이신 덕조 스님의 전화가 있었다. 통광 스님의 건강이 나날이 좋지 않으니 인사를 드렸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나는 스님의 말씀에 시간의 절박함이 묻어 있다고 판단해 즉시 구례 행 버스를 탔다. 구례 터미널에서 스님을 만나 통광 스님이 계시는 곳에 도착했다.
암자 입구에는 오디가 진흙위에 떨어져 달디 단 향을 내뿜고 있었다. 그 떨어진 흔적 주위에는 벌이며 나비가 단물을 탐하느라 바삐 날개를 움직여서인지 시원한 바람이 일렁였다. 통광 스님을 만나기 전 스님께서 사시는 절 입구 공간이 주는 느낌은 이랬다.
스님의 첫 인상은 깨끗하고 단정한 모습이었다. 스님께서는 자신을 그릴 화가가 온다는 소리를 듣고 준비하신 게 분명했다. 수발정제 했지만 머리부위에는 얇게 베인 상처가 여러 개 나 있었다. 이런 삭발의 모습에서 배려와 욕망이 같이 느껴졌다.


나는 직업적으로 스님의 용모를 먼저 살펴보았다.
이마 위 머리 부위가 불쑥 솟아 살아있다. 얼굴은 검었고 이목구비의 선이 뚜렷했다. 눈썹은 숱이 많았다. 긴 흰 눈썹이 어지럽게 휘날려 파상형의 움직임을 만들고 있다. 눈은 작았지만 희고 검은 대비가 분명했고 깊었다. 눈 꼬리 좌우로 많은 주름이 형성 되어 있고 그 주름은 광대뼈는 물론 턱 아래로까지 연결돼 있다.
코는 오뚝했고 코 망울이 크다. 아울러 코 구멍도 형태가 뚜렷했다. 코 아래 인중은 길다. 입은 돌출되어 있다. 입술은 얇지만 힘이 주어져 있다. 그래서 입 좌우 주름선이 깊고 턱 근육이 발달해 있다. 귀는 길고 얼굴 위쪽에 위치해 있다.
이런 제 요소들로 인해 굵고 강인한 인상을 만들어 낸다. 스님은 말씀을 잘 했고 유머가 있었다. 말씀하시는 내내 자세는 꼿꼿했다. 스님의 모습 어디에서도 병세를 느낄 수 없었다.
스님께서는 시를 읊으며 자신의 삶을 드러내었다.
첫 번째 시는 포항 무학사에 계실 때 지은 것이라 했다. 스님께서 한문으로 지은 시를 종이에 적더니 해설해 주셨다.(이 한시는 동아시아 차문화 연구소 박동춘 소장의 도움을 받아 현대의 어법에 맞게 윤문하였다)


산마루에 흰 구름 날고
암자 아래 맑은 시냇물 흐르네
얼글 얼글한 눈썹 늙은 스님이
일 없어 고개를 떨구고 졸고 있네.

다음으로 화개동천 자혜정사에서 지은 시를 암송하셨다.

푸른 산 맑은 물 흰 구름 날고
맑은 바람 밝은 달 아래
시냇물 고요히 흐르네
병든 늙은 승려 주야로 포행하니
혹은 앉아 있기도 하고 때로는
누워서 자유자재로 노니네.

스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더니 잠깐 나가셨다. 스님께서 자리를 비운 사이 제자스님이 통광 스님의 투병생활에 대해 설명했다.
“최근 병세가 더욱 악화 되고 있다. 암의 고통이 너무 심해 한숨도 주무시지 못할 정도이고 화장실을 달고 다니신다. 스님께서는 자신을 그릴 화가분이 온다하니 기다렸고, 좋은 모습을 보여 주고자 많은 노력을 하신다”고 했다. 그러면서 최근 며칠 동안 이전과는 다르게 고통도 없고 편안해지셨다고 했다.
스님의 병환과 투병 생활, 길어진 진료에 대한 어려움, 병환 중에도 경전을 손에서 놓지 않고 있는 스승의 모습을 보면서 존경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느낀다 했다. 통원 진료비 걱정도 했다.


이런 저런 세상사의 편린들을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스님께서 조용히 들어오셨다. 나가시기전 보았던 스님의 모습과 사뭇 달랐다. 말씀하시는 목소리의 톤은 더욱 낮고 정확했지만 어딘가 미세한 불안이 섞여 있었다. 그러면서 오른쪽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입술이 떨리는 것을 감추려는 듯 양 어금니를 지그시 깨물고 계셨다. 이런 참을성이 오히려 뺨 곡선의 음영을 짙게 강조했다. 상좌스님이 말한 진료비 등의 걱정을 스님께서 들으셔서 얼굴빛이 달라진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되었다.
잠시 동안 침묵이 흐른 뒤 스님과 눈이 마주치자 옅은 미소를 보이셨다. 나는 그 순간 양명한 곳에서 세상사를 뛰어 넘는 바람 소리와 함께 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어 “지금처럼 모습이 좋을 때 사진 몇 장 찍어 놓는 게 좋겠다.”며 밖에 나가 모델을 서 줄 것을 부탁 드렸다.
스님께서는 이내 가사 장삼을 갖추시더니 의자에 앉은 동작과 좌복에 앉은 자세 등을 취해 주셨다. 동작을 취해 준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매 순간 정성을 다해 응해 주셨다. 스님의 자태는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표정은 없었다.


몇 달 뒤 스님께서 입적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스님의 다비식에 가지 못했다. 대신 스님의 눈에 고인 눈물과 어지러운 눈썹을 그렸다. 말 못할 번뇌를 가슴에 안고 가시는 눈물 머금은 스님의 눈빛은 잊을 수 없다.

▲ 생성. 인간은 누구나 생로병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그 과정은 숭고하다. 심고 자르는 것은 자연의 섭리이다. 생성과 소멸은 우주의 원리이다. 우리는 누구나 그 과정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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