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은사 일요법회 조계종 호계원장 자광 스님

사문유관 후 근본이치 깨달아
현재 모습은 전생에서 비롯
금생으로 후생도 예견 가능
오계 통해 육도윤회 벗어나야

 

▲ 자광 스님은… 경산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1957년 사미계를, 1960년 구족계를 수지했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군종특별교구장을 역임했다. 현재 반야선원 주지 소임을 맡고 있다.

부처님의 종교적 ‘천재성’
저는 요즘 기본계율실천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기본적인 마음가짐을 바로하고 계를 실천 한다면 성불(成佛)에 이르는 길도 빨라지고 수행의 속도도 빨라질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격완성을 위해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가 계율실천운동이라 생각합니다.

여러분에게 한 가지 반드시 일러주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 세상에 태어나 불법(佛法)을 만난 것은 정말 잘 된 일이라는 것입니다. 흔히 부처님은 성인 중의 성인 이라고 합니다. 부처님은 2천 6백여 년 전에 왕족의 신분으로서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고 훗날 왕이 될 수 있는 지위까지 다 갖추어진 환경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런데 그런 분이 무엇이 아쉬워 히말라야 산에 들어가 고행을 시작하셨을까요? 만약 여러분이었다면 그 모든 지위를 내려놓고 쉽게 발걸음이 떨어졌을까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부처님께선 모든 것을 버리고 수행에 들어가셨습니다. 왜 그런가 하니 ‘사문유관(四門遊觀)’을 겪으시고 인간세계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셨습니다. 그 문제는 약육강식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지금 편안하게 법당에 앉아 법문을 듣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늘 이곳에 올 때 비를 맞으며 도로공사를 하는 분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가만 생각해보니 그 분들이 있었기에 저와 여러분이 이곳까지 편하게 와서 법문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느끼신 불평등이라 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좋은 환경에서 법문을 듣고 있고 또 누군가는 비를 맞으며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다 전생의 업보이지만 한편으로 약육강식은 상당히 심각한 불평등의 문제입니다. 그리하여 부처님께서는 모든 중생들이 화목하게 그 어떤 살생도 없이 잘 살 수 있는 것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은 부처님께서 성문 밖으로 나가 늙고 병든 사람을 보게 되는데 부처님께는 그 모습에 큰 충격을 받으셨습니다. 부처님께서 걸치고 계시던 아름다운 옷과 부귀, 젊음이 영원할 줄 알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셨습니다. 이에 부처님과 대동한 신하가 ‘누구나 늙고 병이 들며, 이것은 부처님에게도 해당되는 일’이라고 말해줍니다. 이후 또 다른 성문에서는 장례행렬을 보고 누구도 죽음을 피해갈 수 없음을 알게 되셨습니다.

다음 날 부처님은 또 다른 성문에서 고요하게 수행하고 있는 수행자를 보게 됩니다. 신하에게 저 사람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물으니 신하는 ‘약육강식과 생로병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구하는 수행자’라고 설명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그때 ‘모든 것이 늙고 병들고 죽어가고 있는데 왕의 지위와 재물이 다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하며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왕궁에 다시 돌아오니 수행자의 모습이 자꾸 아른거려 부처님은 출가를 결심하게 됩니다. 이에 부왕을 찾아가 출가를 하겠다고 말합니다. 부처님은 출가 전부터 일반적인 범인(凡人)과 다른 종교적인 천재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종교적 지도자가 되기 위해 전생부터 선업을 닦아 오신 것입니다. 하지만 부왕은 부처님의 출가를 쉽사리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한밤중에 몰래 성문을 빠져나와 히말라야 산으로 들어가 엄청난 고행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부처님께서 성불을 이루시고 생로병사를 비롯한 우주 근본의 이치를 다 알게 되신 경위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부처님은 성인 중의 성인이십니다. 부처님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가장 고등한 종교 중에서도 6백년이나 앞서 불교를 창시했습니다. 또한 ‘팔만사천대장경’이라는 부처님 말씀을 한글로 번역 하면 그 양이 기독교의 구약과 신약 성서를 합친 것에 7백배에서 1천배 정도의 양이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고등 종교를 믿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셔야 합니다.

세계의 석학들이 불교에 대한 연구를 수없이 해왔지만 조금의 허점도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최근 캠브리지 대학에 세계적인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가 <위대한 설계>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 책에 ‘이 우주는 신이 창조하지 않았다’는 말이 나옵니다. 이것은 대단한 이야기입니다. 2600년 전 부처님이 말씀하신 것을 세계적인 과학자가 입증한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이 우주는 신이 창조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도 신이 창조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삶에는 신이 개입할 틈새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누가 창조했을까요? 부처님도 아니고 하느님도 아닌 여러분 부모님께서 창조하셨습니다. 이것만 알아도 큰 깨달음입니다.

 

현재를 통해 전생을 본다

사람들은 자신이 전생에 어떤 모습이었을지 궁금해 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현재 자신의 성격, 환경, 취미 등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저는 17살에 스님이 되어 32살에 군포교를 시작했습니다. 당시엔 군대 가는 것을 전혀 상상하지 못했었는데 무려 25년 동안 군대에 있었습니다. 당시 군포교에 대한 열의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저의 전생을 한번 생각해니 ‘군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스님이 되어서도 그 긴 시간 동안 군생활을 했는데 이것은 전생의 군대에 대한 업이 없으면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여러분이 후생에 어떤 모습으로 태어날지 궁금하다면 금생에 하는 행동을 잘 살펴보면 알 수도 있습니다. 내가 어떤 모습을 살아가고 있는지 지켜봄으로써 내생에는 과연 어떤 환경에서 태어날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금생에 술과 도박에 빠져 산다면 다음 생에는 축생으로 떨어질 것입니다. 축생 중에서도 아주 나쁜 축생으로 떨어질 것입니다. 하지만 금생에 부처님 법을 만나서 열심히 마음을 닦고 수행정진 하면 지금 태어난 이 모습보다 더 수승한 모습으로 태어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닦아야 합니다. 인간은 모두 이렇게 살다가 늙고 병이 들면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이 죽음을 여러분은 잊고 사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죽음이 찾아온다고 자포자기 하듯 아무렇게나 살면 큰일 납니다. 인간의 몸을 받았을 때 좋은 일을 많이 해야 합니다. 다음 생도 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을 열심히 따라서 수행하고 또 닦아서 못된 버릇, 나쁜 습관, 전생의 지은 나쁜 업들을 다 송두리째 벗어버려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모두 다음 생에는 수승한 모습으로 태어나야 합니다.

불교에서는 육도윤회 한다고 하여 지옥도ㆍ아귀도ㆍ축생도ㆍ삼악도ㆍ아수라도ㆍ인간도ㆍ천상도를 돌고 돈다고 합니다. 악행을 많이 하면 지옥에 떨어지고, 혼자 호의호식하며 남에게 베풀지 않고 또 헐벗고 굶주린 사람을 전혀 돌보지 않는 사람은 아귀도에 떨어지게 됩니다. 축생세계는 인간세계에서 말초신경의 향락적이고 쾌락적인 삶만 추구하는 사람들이 가게 됩니다. 아수라 세계는 다투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가게 되고, 천당세계는 선업을 많이 쌓은 사람들이 갈 수 있습니다. 불교를 믿든 안 믿든 관계없이 선행을 하면 갈 수 있습니다.

천상계는 신들이 다스리는 세계입니다. 그런데 천상계에서는 신들도 싸우기도 하기 때문에 천상계에서도 잘못하면 지옥으로 떨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이 천상의 세계도 완벽한 세계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가야할 최고의 목표가 아니라고 합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천상계를 쫓으며 살 것이 아니라 그저 부처님을 따르며 살면 됩니다.

부처님은 이렇게 육도의 세계를 설명하시며 깨달음의 세계 또한 4단계로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문, 연각, 보살, 불의 4단계입니다. 육도윤회를 완전히 벗어나 초월하게 되면 다시는 육도윤회로 떨어지지 않는 완전한 깨우침의 세계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금생에 육도윤회를 헤매는 공부는 그만하고 성문, 연각, 보살, 불 깨달음의 세계로 갈 수 있도록 정진해야 합니다.

 

계의 실천은 곧 부처님의 길

육도윤회를 벗어나기 위한 수행방법으로 육바라밀을 등 여러 가지 방편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아주 기본적이면서도 우리 실생활에 실천해서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이 기본 오계(五戒)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계는 부처님의 행동입니다. 설사 여러분들 깨닫지 못한다 하더라도 계율을 열심히 실천해 부처님 행동을 따르게 되면 그것이 바로 부처님입니다.

교(敎)는 부처님의 말씀입니다. 선(禪)은 부처님의 마음입니다. 보통 선을 우선으로 여기는데 마음도 좋고 말씀도 좋으나 행동이 없는 마음, 행동이 없는 말씀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래서 거두절미하고 모두가 부처님 행동을 따라야 합니다.

오계는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습니다. 첫째, 불살생(不殺生)살생을 하지 말라. 이것은 생명을 죽이지 말아야 함과 더불어 생명을 괴롭히지 말고 나아가 보살피고 거둬드리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방생이라고 합니다. 간접 살생도 피해야 합니다. 이것은 직접 손에 피를 묻히는 직접살생의 방법이 아니라 마음에 피를 묻히는 행동을 의미합니다.

둘째, 불투도(不偸盜)는 남의 물건 욕심내지 말고 훔치지 말라는 말입니다. 사회의 경제 질서를 파괴하는 무리들이 있습니다. 남의 것을 빼앗고 훔치는 것뿐만 아니라 이것도 큰 도둑질이며, 공공시설을 파괴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국민의 세금으로 공공시설을 만들었는데 그것을 파괴하는 것도 간접도둑질로 볼 수 있고, 자연훼손도 포함 됩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을 아끼며 보존하고 잘 가꿔서 모든 사람들이 오래오래 편하게 쓸 수 있도록 수행하는 것이 불투도의 계율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즉 불투도는 보시를 행하라는 것으로 베풀며 살아야 한다는 의미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세 번째, 불사음(不邪淫)은 삿된 음행을 하지 말 것을 당부합니다. 자기 남편, 자기 부인 외에 음행을 하지 말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이혼율이 상당히 높은 편입니다. 이것은 성질서가 문란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문란한 행동을 하게 되면 본인 스스로도 근심걱정이 떠날 날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성질서가 문란하면 내생에 사람 몸을 받더라도 상당히 추한 몸을 받게 됩니다.

네 번째, 불망어(不妄語)는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가르침입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상호의존관계 협력관계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인연법칙이라 합니다. 세계의 모든 존재는 절대 신이 만든 것이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 불음주(不飮酒)는 술과 마약을 멀리할 것을 말합니다. 소주 한잔을 마시면 뇌세포 108개가 죽는다고 합니다. 마약과 술을 멀리해 청정하고 건강한 몸을 유지해야합니다. 이상 다섯 가지 오계를 잘 지켜 올곧은 정신 수행에 임하면 여러분들 모두가 성불할 수 있습니다. 살면서 혹여나 계를 어기거나 파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럴 때는 개인을 위해서가 아닌 타인을 위해서, 또는 남을 살리거나 다수를 위하는 일이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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