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생각의 도리는 너무나 깊고 깊고 또 깊어서
그렇게 광대무변하고 말로는 행할 수 없는
그러한 법 도리입니다.

▲ 그림 최주현
여러분과 또 이렇게 만났군요. 우리 이 머리가 하나의 해골로 구성이 됐지만 너 나가 있듯이 대뇌 속에 반쪽씩 나누어져서 들어 있다고 봅니다. 우측은 잠재의식 자체로서 아주 광대무변한 법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그런 대뇌의 우측이라고 봅니다. 또 좌측에는 현재 50% 현상 생활에서 판단할 수 있는 그러한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옛날에도 내가 말씀드렸듯이 “아비 묘지와 자식 묘지가 있는데 양면이 구멍이 뚫렸느니라. 그런데 자식이 아비한테 가면 아비로 하나가 되고, 아비가 자식한테로 오면 자식으로 하나가 되니 그 연고는 무슨 연고냐.” 하고 묻더라고 그렇게 말씀드렸죠. 이건 제가 젊었을 때 그저 무조건 길을 걸을 때에 있었던 얘깁니다. 그런 거와 같이 여러분도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다 부처 될 수 있는 가능성이 99% 있다고 항상 말씀드렸죠.


왜냐하면 그대로 여여하다고 그러는 거는, 예를 들어서 표현을 하자면 대뇌의 안에 있는 우측 좌측이 한데 계합이 돼야만이 여여함을 느낍니다. 이것이 계합이 되지 않는다면은 여여함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한테 말씀드리는 것은 오관을 통해서 마음으로 드는 것은 바로 좌측으로 들어서, 우측으로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니 그것이 거기 통과됩니다. 그러나 그건 무시하고 여러분이 이 대뇌에서 지금 사용하는 50%만 가지고 항상 들이고 내고 하니까 아주 보이지 않는 세계의 문제는 해결을 할 수가 없는 겁니다. 거기까지 미처 능력이 가질 않습니다.


예를 들어서 회사를 경영하려고 기계 하나를 사서 들여놓는다면 그 속이 어떻게 조립이 됐고 어떻게 구성이 됐는가를 알아야, 겉은 아무렇게나 생겼어도 ‘아, 이건 겉만 손을 본다면 능히 쓰고도 남고 이 기계는 참 좋구나!’ 하고 싼 값에도 살 수가 있는 겁니다. 그러나 거죽을 말끔히 해 놓고 속은 망가진 거를 고쳐서 갖다 놓고 팔려고 그런다면 거죽만 보고 속은 못 보니까 그건 여러분이 손해인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마음이 여러분과 더불어 같이 이익을 볼 수 있는 그러한 공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우리가 흡수해서 들이는 것이 이 대뇌의 우측에 잠재해 있는 그 모든 광대무변한 뜻과 법이 거기에서 송두리째 계합이 되면은 나온다는 얘깁니다. 그러면 지금 안 나오느냐? 그게 아닙니다. 시계추와 같이 항상 왔다 갔다 왔다 갔다 하지마는 여러분이 그것을 감지할 수가 없고 생각하지도 못하기 때문에 그러한 중용의 능력은 발휘할 수가 없는 겁니다. 그러면 대뇌에 똑같이 이렇게 있는데 (오른쪽 머리와 왼쪽 머리를 차례로 짚어 보이시며) “이게 먼저냐, 이게 먼저냐?” 해도, 이건 먼저 될 게 없습니다. 어떤 거든지 다 똑같습니다. 똑같이 순환되고 똑같이 대뇌에서부터 소뇌로 이렇게 해서 사대(四大)로 다 통신이 된다고 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여러분이 생각을 안 하면 그것조차도 알 수가 없습니다. 항상 여러분한테 말씀드렸죠? 이 세상에서 음식 먹어 보지 못한 건 생각조차도 못하고 먹고 싶은 마음도 없다고요. 그러니까 이렇게 여러분한테 제가 말 한마디 한마디 이렇게 뚱겨 가면은, 여러분은 그때서 생각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얻을 수가 있는 거죠. 말만 듣고 하는 게 아닙니다.


대뇌의 좌측에서는 오관을 통해서 들이는 거를 우측에 항상 맡겨 놓는다. 내는 것도 맡긴다. 그럼 대뇌의 반쪽씩 있는 데다가 다 맡긴다면은 자(子)가, 즉 말하자면 아들이 아버지를 믿고 모든 걸 달랠 때도 “아버지!” 또 들일 때도 “아버지!” 하고 말을 할 때도 “아버지!” 다 자라기 이전에는 아들은 아버지한테 반드시 기댑니다. 아버지한테 기대지, 부모한테 기대지 않으면 어디다 기댑니까? 자기가 장성할 때까지는, 학교를 졸업하고 또 취직을 해서 나가고 장가들 때까지는, 시집갈 때까지는 부모를 믿고 따라야죠. 자기가 혼자 하는 것도 있겠죠, 이게 옳다고 생각했을 때에는. 그러나 이것이 생각해 봐서 잘 안될 때는 아버지한테 상의를 해야죠? 그런 일이 여러분 가정에도 허다하지 않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평상시에 어떠한 것은 ‘이것이 남과 내가 다 뭐 그렇게 구차하게, 악하게 되는 일이 아니니까.’ 하고 그냥 합니다. 그러나 정히 안될 때는 고심을 하면서 부모하고 이렇게 상의를 하죠. 이러한 거와 같이 이 대뇌에서 좌측 뇌는 우측 뇌로 다 맡깁니다.
그러면 어디에서 마음이 나와서 그러느냐? 마음은 마음대로 나와서, 나오게 되면 벌써 뇌로 가죠? 뇌로 가서 이쪽으로 다 맡겨 놓으면, 맡겨 놓으면 거기서 돌아서 다시 좌측으로 돌아 나옵니다. 그래서 불리한 거를 맡겼는데 불리하지 않게끔 바깥으로 나왔다 이겁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은 지난번에도 용광로 얘기를 했지만, 우리가 한번 굴려서, 속이 상하더라도 한번 거기 맡겨서 굴려서 내놓으면은 좋은 말로 나갈 수가 있다. 그냥 곧이곧대로, 속상한 대로 여기 대뇌에 들어갈 사이도 없이 여기서 곧바로 그냥 쏴 대면 지혜로운 그 능력이 거기까지 밝게 못 비춰 준다는 얘기죠.


그러니 여러분을 이끌어 이렇게 같이 항상 도반으로서 가다 보니까 여러분이 고맙게 생각 못하고 있는 일이 한두 건이 아니에요. 우리는 꼭 돈을 받고 사는 거라야만 하고, 사는 거를 주면 참 고맙다고 그럽니다. 만약에 물건을, 먹을 거를 줬다면은 고맙다고 하고 또 거기 더 좀 붙여 돈을 얼마를 보너스라도 줬다 하면 참 고마워합니다. 그러나 내 생명을 연장할 수 있게끔 이끌어 가는 공기나 물이나 불이나 흙이나 이런 거 보고는, 바람 같은 거 보고는 고맙다는 말 한마디도 안 합니다. 생각조차도 안 합니다.


여러분이 만약에 살기 위해서 돈을 주고 공기를 사서 먹는다고 한다면 얼마나 비싸겠습니까? 병원에서도 어디 고장만 나면은 가서 집을 팔아다가라도 갖다가 디밀곤 수술을 하고 야단들이죠? 그런데 우리는 무주상 보시(無住相布施)로 그대로 지금 공기를 마시고 살고 있습니다. 그럼 감사하는 거는 어디다 감사해야 하느냐. 내 주인공입니다. 나도 지수화풍이 근본입니다. 일체 만물이 다 지수화풍이 근본 아닌 게 없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지수화풍 아니면 지금 어떻게 사시렵니까? 지금 지수화풍을 고맙게 생각하는 거보다도 여러분이 지수화풍이기 때문에 여러분이 자칫 잘못하면 자기가 자기를 고마워해야 하는 거를 모르고, 저 사람한테 절을 하고 저 사람한테 고맙다고 하고 이렇게만 생각할 수 있는 그런 마음이 들겠지만, 여러분이 나한테 절을 한다고는 생각지 마세요.

여러분하고 나하고 시계추와 같은 겁니다. 아시겠어요? 이리로 가도 아니고, 저리로 가도 아닙니다. 이리로 갔는가 하면 저리로 가고, 저리로 갔는가 하면 벌써 이리로 가고, 어떻게 그것을 너 나라고 하겠습니까? 그러나 모습은 각각이니까 너도 있고 나도 있고, 둘이 아니게 돌아가지마는 네가 있고 내가 있다. 네가 있고 내가 있지만 둘 아니게 돌아가는 그 소식을 안다면 여러분은 작아도 받아들일 수 있고 커도 받아들일 수 있고, 벌레도 받아들일 수 있고, 전체를 받아들일 수 있는 영향력이 생기기 때문에 그때는 벽도 터지고 봇장도 터지고 사방이 다 터집니다. 우리 태극기에도 있습니다. 천지가 있는가 하면 천·지·인이 있어요. 그래서 삼, 사, 오, 육까지 이렇게 점을 찍어놨죠. 이게 세상을 말한 겁니다.


심장이 뛰지 않는다면은 사람이 살 수가 없죠. 그런데 병원에서 “심장만 뛰지 목석처럼 이 정신이 깨어나질 않고 있습니다.” 이런 소리를 가끔 듣습니다. 그런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인간이라 할지라도 인간 노릇을 못하고 산다면 차라리 없는 것만 못하죠. 주변의 여러 사람들도 괴롭고 말입니다.
여러분이 다시 또 한번 생각해 볼까요? 우리 심장이 뛰는 것도 광력이나 전력이나 자력이 충만히 돌아가기 때문에 삼계(三界)를 돌고 있습니다. 심장으로부터, 뇌로부터, 저 발끝으로. 지금 여러분이 딛고 다니는 것도 이 모든 것에 의해서 이루어집니다. 땅 이 자체도 세포가 있는가 하면 자력도 있고 전력도 있죠. 광력도 있고 통신력도 있습니다. 다 있기 때문에, 우리가 한 발 디디는 것도 자력이 있기 때문에 끕니다. 땅도 자기네 힘대로 끕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땅을 디딜 수가 있다는 얘깁니다. 그래서 우리가 땅을 딛고 다니는 그 문제 하나를 보더라도 우리가 모든 거, 모든 일체 천문학이나 지리학이나 또 천체물리학이나 의학이나 다 우리 한마음 안에 다 들어 있다는 겁니다.


옛날에 이런 점이 있었죠. 어떤 스님에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통지가 왔더랍니다. 그래서 승려 노릇을 하면서도 집에 갔습니다. 가니까 벌써 관에다 넣어서 다 해 놨더랍니다. 그래서 이제 들고 나가서, 예전에는 산소를 썼는데, 한 걸음 한 걸음 발자국을 딛고 가는데, 벌써 요 한 마디, 발가락 요 첫 마디에서 벌써 지하로 통신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통신이 되는 것만 도가 아니라 통신이 됐으면 볼 줄 알고…,’ 하는 것이 이게 심안의 눈이에요. 이 속에 있다고 해서 여기 있는 줄 아시지 말고, 시계추가 여기 갔다고 해서 여기 간 줄 알지 마시고, 저기 갔다고 해서 저기 간 줄 아시지 말라 이거예요. 온 누리의 눈이니까. 여기인들 눈이 없겠습니까마는 이 구조가 그렇게 됐다는 얘깁니다. 그래서 여기서 벌써 통신이 가면 통신이 오기 때문에 심안의 눈으로 보게 되고, 또는 우측 대뇌에서는 모든 거를 합리적으로 꾸려 나가면서 대의적으로 광대한 법을 탁 가르쳐 주죠. 말을 해서가 아닙니다. 여기 딱 섰으면 여기가 그대로 그 자리라는 겁니다. 사람의 혈액이나 산 혈맥이나 마찬가지예요. 그러니 아무리 좋은 데를 찾아서 한다고 해도 그것하고는 다릅니다.


그래서 가다가 여기서 통신이 돼서 딱 서면 그 자리가 그냥 법이야. 그 자리가 좋은 자리야. 나쁜 데도 좋은 데라고 딱 지적하면 좋아지고, 자리가 좋은 데도 사람이 아주 괘씸스러워서 수십만 명의 생명들을 해하는 사람이라면, 남의 산소 좋다면은 자기가 그걸 뺏어서 자기 산소로 묻고 이렇게 하는 사람이라면, 저건 참 안되겠다 한다면은 그거는 아무리 좋은 데다 썼어도 그 집안은 아주 안됩니다.
그러니 그 한생각의 도리는 너무나 깊고 깊고 또 깊어서 그렇게 광대무변하고 말로는 행할 수 없는 그러한 법 도리입니다. 그걸 법 도리라고 하기 이전에 우리가 그냥 부처님 법이라고 이렇게 말은 하지만 그 말조차도 붙일 수 없는 자립니다, 사실은. 그러니까 여러분이 생각을 하되 함이 없다 하는 거, 지난번에도 얘기해 드렸죠? 여러분한테 내가 말을 하면 여러분이 집어먹어서 그만 없다고. 그리고 여러분이 말씀을 하면은 내가 집어먹어서 또 없다고요. 그러니 누가 말을 했으며, 누가 들었느냐고 말할 수밖에요. 그거 이해하십니까?


그러니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도 찰나니까, 이렇게 항상 하나에 머물러져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일체가 머물러져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찰나 생활이면서 공(空)했다. 그러니 여러분이 걱정할 게 하나도 없는 게 뭐냐 하면, 나쁜 꿈을 꿨다 하더라도 ‘나쁜 꿈을 꾸게 한 것도 거기서 한 거니까 좋은 꿈을 꾸고 살게 할 수 있는 것도 거기지.’ 한다면 그게 그대로 빨리 돌아가기 때문에, 머물러져 있지 않기 때문에 빨리 돌아오죠? 그게 운전과 같은 것도 되죠. 그러면은 또 이렇게 이루어져서 좋다고 생각을 했을 때 ‘좋게 한 것도 거기지. 감사하구나.’ 이렇게 일임해 놓을 수 있는 그런 살림살이라면 여러분이 살림살이하는 그대로가 참선이요 행선이요 길입니다.


그렇게만 지낼 수 있다면 여여함입니다. 아무리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솟아오르고, 내 집안이 다 망한다 뭐, 송두리째 바가지 들고 얻어먹으러 나간다 하더라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그런 마음의 태도가 바로 원력입니다. 그게 능력입니다. 그렇게 되는 능력은 뭐냐? 허! 그것도 코웃음 나는 거죠. 왜냐? 그렇게 없는 걸로 사는 것이 능력이 아니라, 그렇게 된다면 보이지 않는 신장, 호법신, 수호신 뭐 모두 보이지 않는 데서부터 보이는 데로 나와 가지고 다 살게끔 되는 겁니다. 그러니깐 뭐 먹고살기 위해서 애쓸 필요는 없죠, 나같이. 여러분이 안 주면 안 먹을 각오가 되어 있으니까. 허허. 또 안 오시면 안 오시는 대로 그냥 다 같이 하고 있으니까. 그런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예전에도 내가 얘기했듯이 “부처님, 부처님!” 하고 하도 밖으로 형상만 찾길래 그냥 내다가 도끼로 부숴 버리고 나니까 죄들 안 온대요. “안 오면 그만둬라. 아니, 그렇게 하기 위해서 부처님 뼈다귀 끓여 먹고, 또 부처님 이름 팔아서 내가 여러분한테 거짓말해서 먹고 산다면 혓바닥을 깨물고 죽어 버리지.” 하고선 그냥 말았습니다. 그랬더니 그다음에 보니까 그냥 그냥 나오셨대요. “왜 나왔느냐?” 그랬죠. 그랬듯이 내가 ‘신도들이 많이 와야겠다.’ 또 ‘많이 걷어야겠다.’ 그런 걸, 부처님을 팔아서 그런 걸 많이 해서 뭘 합니까? 따지고 보면, 죽을 때가 되면 여러분이 그렇게 아끼고 아끼던 부모 자식도 다 버리고 가고, 그렇게 아끼고 소중하게 생각하던 돈도 가져가지 못하고, 집도 가져가지 못하고 내 몸도 가져가지 못하는데 그게 뭐 그렇게, 그렇게 근중합니까?


그런데 우리가 이 몸을 가지고 있을 때에 남도 소중하게 생각하고, 나도 소중하게 생각해서 더불어 같이 돌아갈 수 있는, 또 더불어 같이 돌아가면서 너 나를 해롭게 하지 않을 수 있는 마음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난번에도 거짓말하지 마라. 시간 약속 지켜라. 또는 의리를 지켜라. 도의 또 질서도 지켜라. 우리가 인간 된 도리를 다 지킨다면, 그것도 거기에 모든 걸 맡겨 놓고 지킨다면, 팔정도니 육바라밀이니 뭐 이런 거, 사제법이니 십이인연법(十二因然法)이니 이런 거 따지지 않아도 계율(戒律)을 다 지킬 수 있고, 또 우리가 더불어 같이 이익 하게 살 수 있는 그런 계기가 되면서, 원심력이 충만하면 원통력을 굴릴 수가 있다는 얘기죠. 이걸 일일이 따지자면은, “올바르게 보아야 한다. 올바르게 들어야 한다. 올바르게 정진해야 한다.” 이 소리를 다 하려면, 이 소리를 다 듣고 복잡하게 하려면 언제 공부해 나가십니까? 자기를 자기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지난번에도 얘기했지만 오신통(五神通)의 재료가 충만히 여러분에게 있으니 우리가 그거를 쓸 때는 감각이나 청각이나 시각이나 지각이나 이런 모든 것이 다 포함돼서 주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거죠. 그러니 이 공부가 여간 대단한 공부가 아닙니다. 참 광대무변한 법이죠. 그러니 어떠한 문제로 우리가 이익 하지 못하게 된다거나 수만 명에 피해가 생긴다면, 내가 여러분을 이익 하게 하고 해롭게 안 하려는 마음으로 끌고 가면 그게 딴 데로 갈 거 아닙니까? 그러니 여러분이 다 할 일이란 말입니다.


누가 갖다 줍니까? 누가 뺏어 갑니까? 그러니 여러분은 뺏어 가거나 뺏기지 않고 또 갖다 주는 게 없으니 자작! 이리로 가도 이리로 간 것이고, 저리로 가도 저리로 간 것입니다, 이 머리의 두뇌가. 그러니 이것을 (머리를 만지시며) 통틀어 여기다가 놓다 보면 이것도 저것도 다 그냥 놓게 됩니다. 지난번에 얘기했죠. 다 놓게 됨으로써 스스로 무심(無心), 그대로 무심도(無心道)가 돼서, 그대로 그 한 소식을 알고 있느냐 해서 “할!” 이러기도 하고, 주장자를 들어서 치기도 하고, 주먹으로 치기도 하고, 주먹을 내밀기도 하고, 벽력같이 소리를 지르기도 했더란 얘깁니다.


옛날에 서산 대사(西山大師)가 공부하실 당시의 얘기입니다. 서산 대사님이 공부하러 가실 때에 쌀을 한 짐 마차에 싣고 가다가 보니깐 아, 소가 꼬꾸라지더랍니다. 가는 도중에. 그래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봤답니다. ‘내가 지고 가서 사시마지 때에 공양을 올리려고 했던 쌀인데 어째서 내가 지고 가지 않고 소에게다가 밀어 던졌던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 쌀을 짊어지고 다시 20리 밖을 나와서 20리를 다시 쌀을 지고 갔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그것도 마음입니다. 생각할 수 있는 얘기죠. 남한테다 떠넘기지 않으려고 말입니다.
그랬는데 공양을 천 일을 올리다가 보니까 천 일째 공양을 다 올리고 마지막에 관(觀)하고 있는데 별안간, 일곱 사람이 총을 겨누면서 그냥 쏘더랍니다. 쏘는 그것을 이렇게 돌아다보니깐, 너무 우스워서 그냥 하늘을 쳐다보고 얼마나 크게 웃었던지 말입니다, 중국 대륙에 전부 들렸답니다, 그 소리가. 허허허. 그래서 임금이 말입니다, 국사를 두고 쓰는데 “저 소린 무슨 소리인가?” 하니까 “조선의 스님이 깨치는 순간입니다.” 그러더라는 거야. 응? 그랬다는 얘기도 있어요.


그랬는데 그 서산 대사가 그렇게 깨쳐서, 돌아다보니 아무 간 곳이 없더라는 거야. 그 생각 한 생각을 어떻게 했길래 그렇게 깨쳤고, 어떻게 했길래 일곱 명이 총을 쏘고선 그냥 없어졌는지. 그 일곱 명은 누굴까요? (잠시 말씀을 멈추시고) 또 각각 보시겠지. 허허허. 저 칠성(七星) 별도 각각 보시겠죠? 그렇게 각각 보니까, 그것도 각각 보시겠죠. 우리 마음속에서 태양도 나왔다는 걸 아셔야 돼요. 서산 대사께서는 그렇게 공부를 잘하셔서 아무리 그 어떠한 게 와도 눈도 깜짝 안 했답니다. 그건 왜냐? 나 하나를 버렸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나 하나 버린다면 구태여 그거 뭘 그렇게 두려워할 게 있겠습니까?


언젠가 이 집 새로 짓고선 도둑이 들었죠. 그래 저녁에 그랬습니다. “얘야!” 그때 요만한 처녀 아이가 밥을 했었어요. 여기 집도 하나도 없고요. 그래서 “도 선생님이 오늘은 오실 것 같다. 그러니 문을 꼭꼭 잘 잠가라.” 그러니까 “아니, 어떤 선생님이 오십니까?” 그래. 허허허. 그래서 그랬죠. “도 선생님 말이야.” 그러니까, “도 선생님이 누구세요?” 그래. 그래서 “아, 와서 가져가면 도 선생이지.” 그러니까 그때서야 깔깔대고 웃어요.


그래서 그날 딱 잠그고 있었는데 그러다가 내가 말해 놓고 내가 문을 열어 놨어요. 왜냐하면은 그때는 지하실에 보일러를 땔 때에 내가 땠으니까. 내가 보일러쟁이니까 새벽에 추우니깐 내려가서 그 보일러를 올리고 그러고는 변소에 갔다가 그 변소 문을 잠그지 않고는 그냥 나왔단 말이야. 그러니까 자기 꼬임에 자기가 빠지는 거지. 그러게 문을 아무리 막아 놔도 안 돼요. 아주 차라리 열어 놓는 게 낫지. 그래 인제 열어 놨더니 단지 문만 떼어 내놓고 그냥 들어오신 거지. 그런데 내가 보일러에 불을 넣고선 떠억 방에 들어와서 팔장을 끼고 이러고 앉아 있었어요. 그랬더니 문을 사르르르 열고 들어와요, 4시쯤 됐는데. 들어오는데 보니깐 아주 계란색 잠바에다 계란색 내리닫이로 해 입었어요. 허허. 그리고 발소리도 안 나요, 농구화인데. 착착 딛는데 소리가 나질 않아요. 그래 들어오길래 “어서 오세요.” 그러니까 의아해하더라고. 너무 난감해, 아주!


그런데 그때 내 옆에다 풀어 놓고 있었던 시계, 그것밖에는 없는 거야, 인제. 뭐 가져갈 게 있어야지, 그때만 하더라도. 그래서 그 시계를 얼른 집어 주면서 하는 소리가 “에이, 사람 놀라게 뭐 하러 이렇게 드릴 것도 없는데 오셨습니까? 드릴 게 있을 때에, 오시라고 할 때에 오세요.” 내 말이. 그러면서 그 시계를 집어 줬겠다. 그랬더니 그 시계를 얼른 받아 가지고 하는 소리가 “나도 어쩔 수 없어서 이거 가지고 갑니다.” 그러면서 싱긋이 웃는단 말이야. 그래서 나도 웃었지, 뭐. 그랬더니 영 그런 일이 없었어요. 문을 열어 놔도요.
(다음 호에 계속)

※위 법문은 89년 8월 20일 정기법회에서
설법하신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한마음선원 홈페이지(www.hanmaum.org)에서도 같은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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