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하 감독의 거리 3부작 완결판 ‘강남 1970’

강남은 지닌 자들의 아성
이전투구(泥田鬪狗) 진흙탕 액션
욕망의 인간군상 참혹함 그려
“태생에는 남과 북이 있어도
불성에는 차별이 있으랴”


▲ 영화 ‘강남 1970’은 유하 감독의 거리 3부작의 완결편으로이전투구(泥田鬪狗)의 모습을 통해 욕망을 향해 달리는 인간군상의 참혹함을 잘 고발하고 있다.
영화 ‘강남 1970’은 유하 감독의 거리 3부작의 완결편이다. 유하 감독은 거리 3부작을 만든 배경을 이렇게 설명한다.
“군사문화의 폭력성이 지배했던 사춘기, 수컷 되기와 남성성을 강요 받았던 고등학교 이래 ‘말죽거리 잔혹사’를 통해 제도 교육이 어떻게 폭력성을 키워내는가를 다뤘고, ‘비열한 거리’에서 돈이 형님이 되는 사회, 돈이 폭력성을 어떻게 소비하는가를 다뤘다면 ‘강남 1970’은 권력이 폭력을 소비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하지만 ‘거리 3부작’을 관통하는 주제는 여전히 폭력성과 청춘이라는 두 가지 테마의 공존과 충돌, 중심에 편입되지 못하고 거리에서 배회할 수밖에 없는 뒤틀린 청춘의 초상이다.”


‘강남 1970’의 줄거리는 단선적이다. 
호적도 없는 고아인 종대(이민호)와 용기(김래원)가 전당대회 훼방 작전에 투입되면서 인생의 길이 갈리게 된다. 종대는 조직폭력배 출신인 길수의 가족이 되고, 용기는 명동파의 중간 보스가 된다. 두 사람은 정치권까지 개입된 강남개발의 이권다툼의 한 복판에 서게 된다는 내용이다.
이 영화의 백미는 ‘진흙탕 액션’라고 할 수 있다. 이전투구(泥田鬪狗)의 모습을 통해 욕망을 향해 달리는 인간군상의 참혹함을 잘 고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강남 1970’의 마지막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강남을 형성하는 데 궂은일을 다 했던 깡패들은 이용만 당할 뿐 정작 강남의 주민으로 뿌리 내리지 못한다. 강남은 지닌 자들의 아성인 것이다.
2012년 발매된 싸이의 여섯 번째 정규 앨범 ‘싸이6甲 Part 1’의 타이틀곡인 ‘강남스타일’은 빌보드 차트 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강남스타일’이 이처럼 성공할 수 있었던 데는 코믹한 뮤직비디오의 영향이 크다.


기실  ‘강남스타일’의 제목은 역설이다. 어느 곳에서나 아무 때고 한물 간 ‘말 춤’을 추고, 목욕탕에서 수영장처럼 수영을 해대고, 놀이터 모래사장에서 해수욕장처럼 해수욕을 즐기는 싸이의 모습은 굳이 분류하자면 강남이 아니라 강북스타일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강북스타일과 강남스타일의 차이는 무엇인가?
여러 선거 결과에서 알 수 있듯 소위 ‘강남좌파(486세대와 일부 50대로 구성된 중산층 계급에 속하면서도 정치사회 의식이 전보적인 이를 일컫는 말)’를 제외하고 나면 강남의 정치 지형은 보수 일색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강남의 보수 성향은 지역주의(영남 대 호남), 세대주의(20~40대 대 50~70대)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계급적 특성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에도 ‘희망의 사다리’가 걷히지 않은 지역이 바로 강남이다.
흔히 강남을 떠올리면 떠오르는 것은 넓은 도로를 메운 외제차, 서민들의 한 달 봉급으로는 감히 엄두도 못 낼 상품들을 전시한 명품관, 타워팰리스로 상징되는 펜트하우스, 즐비한 학원가와 성형외과와 룸살롱 등이다.
‘강남 1970’은 돈이 지상 최고의 가치가 된 한국의 천민자본주의를 대표하는 강남이 어떻게 형성됐는지를 그리고 있다. 영화에서 알 수 있듯 군부독재 시절 권력가와 재벌과 조직폭력배들이 만들어낸 욕망의 역사가 바로 강남의 형성사인 것이다. 그리고 월남 베이비 붐 세대(1970~74년생) 중 중산층 이상의 계급 2세대들(90년대에 오렌지족이라고 명명되었던)이 만들어낸 소비문화가 강남의 발전사인 것이다.
강준만 교수는 〈강남 좌파〉에서 “한국에서 가장 치열한 계급투쟁은 대학 입시 전쟁”이라고 정의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이후 사교육비는 확대되었고, 그 결과 강남의 학원은 2007년부터 2009년 사이 374개에서 826개로 2배나 증가했다.


이미 한국사회에서 고교와 대학은 A급(과학고, 외고→ SKY 서울, 고려, 연세대) 1만 명, B급(과학고, 외고, 자사고→ 서울 지역 11개 대학) 3만 명, C급(일반 고등학교 → 서울 지역 외 대학교)으로 계급화되었다. 한국사회의 현실을 고려한다면 A급 대학인 SKY에 입학하는 행운을 갖는 이는 결국 대부분 강남의 자녀들일 수밖에 없다. ‘부익부빈익빈’의 대물림이라는 서글픈 현실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느껴야 하는 것일까?
육조 혜능이 오조 홍인을 찾아왔을 때 둘은 아래와 같은 말을 주고받는다.


“너는 어디서 온 누구냐?”
“저는 영남에서 온 혜능입니다. 부처가 되고자 스님을 찾아왔습니다.”
“태생이 하찮은 영남 오랑캐가 감히 부처가 되려 하느냐?”
“사람의 태생에는 남과 북의 차별이 있어도 부처님 성품에 무슨 차별이 있습니까?”
실로 옳은 말이다. 사회적 계급성에는 강남과 강북이라는 차별이 있을지 몰라도 불성에는 그 어떤 차별도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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