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덕 스님 하

스님의 눈은 선과 형태
그리고 명암이 뚜렷하다.
‘눈부처’와 같다.
눈빛은 맑고 파랗고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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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님의 자태는 순일하다. 특히 앉아 계실 때 모습을 보면 얼굴은 왼쪽으로 기울어지고 어께는 오른쪽이 내려가 있어 수줍은 듯 단아하다. 여기에 손과 발까지 가지런하여 자기 근신의 생활화가 읽혀진다.‘금하당 광덕 대선사 진영, 170X124cm, 종이에 수묵 채색, 2003년, 불광사 소장’
광덕 스님은 “깨닫기 전에는 너 자신도 의심하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철저히 준수하셨다.
깨달은 자의 모든 말씀은 그 자체가 경이라며 평생 동안 부처님처럼 되기 위해 항상 공부하고 실천하신 분이셨다.
스님의 정신적 깊이는 화가의 눈으로 감히 알 도리가 없지만 광덕 스님을 떠올리면 우선 머리 속에 그려지는 이미지가 있다. 어질고 친근했으며 항상 글을 읽고 쓰는 것이 생활이었다. 도심 대중 포교에 전력하였고 유머와 배려심이 몸에 가득 했다.
스님의 자태는 순일하다. 특히 앉아 계실 때 모습을 보면 얼굴은 왼쪽으로 기울어지고 어께는 오른쪽이 내려가 있어 수줍은 듯 단아하다. 여기에 손과 발까지 가지런하여 자기 근신의 생활화가 읽혀진다.
스님의 얼굴빛은 투명하고 맑다. 얼굴에는 작은 점이나 검버섯이 거의 없다. 심지어 주름조차 없다. 피할 수 없는 인생의 흔한 고비조차 기록되어 있지 않아 귀티가 느껴진다. 치열한 자기성찰의 힘일 것이다.
우선 스님의 얼굴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불쑥 솟아 오른 정수리이다. 이마와 정수리 색은 밝고 광채가 났다. 동양에서 지혜로운 모습을 상징하거나 높은 경지에 오른 인물 그리고 신선 등을 표현하는데 머리 위를 길게 하거나 강조하는 오랜 전통이 있었다. 동양회화사에서 작품을 통해서나 볼 수 있는 이상미를 현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게는 색다른 경험이었다.


스님의 눈썹은 짙고 굵다. 따라서 평소 느낄 수 있는 스님의 다소곳한 자세와 달리 골기와 기백이 느껴진다. 뿐만 아니라 눈썹 속엔 야취가 숨어 있다. 스님의 어린 시절에 어떤 부잡스러움이나 장난기가 있었는지 아니면 호기심 많고 집중력 없는 시절이 있었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유일하게 스님의 고운 자태와 다른 반대의 야성이 눈썹에 숨어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눈썹에 있는 다수의 상처는 좌우 눈썹의 방향과 형태에 변화를 준다. 눈썹의 구성은 조밀함과 여백이 혼재되어 있어 깔끔함이 덜하다. 그러나 힘 있게 자란 긴 눈썹에 가려 겉으로 드러나 있지 않다. 이런 점은 스님의 구도 행위가 결코 순탄하지만 않았을 것이라는 짐작이 가능하다. 우리가 보는 스님의 모습은 오랜 수행의 결과로 형성된 후천적인 모습으로 생각되어지는 이유다.


스님의 눈은 선과 형태 그리고 명암이 뚜렷하다. 눈부처와 같다. 눈빛은 맑고 파랗고 깊다. 자기 긍정과 향상의 정도가 얼마나 철저했는지 알게 해 준다. 그러나 스님의 눈 형태는 좌우가 다르다. 왼쪽 눈이 더 크고 홍채도 뚜렷하며 외부를 향하고 있지만 오른쪽 눈은 작고 깊어 내부로 스며들어 있다. 이런 형태는 내면과 외면 그리고 자기와 타자의 이중적인 가시거리를 제공한다. 때문에 보는 자에게는 신비감과 동시에 경외심마저 느끼게 하는 존재감이 분명한 인상이다.
스님의 코는 우뚝 솟아 있다. 해부학적으로 보면 코와 턱 선이 살아있는 것은 남성미의 특징적 요소이다. 이런 점은 스님을 잘 생긴 분으로 기억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스님의 자세는 항상 낮은 곳에 위치하여 대중의 곁에 계셨다.
나는 이렇듯 스님에 대한 인상과 느낌을 정리한 뒤 밑그림을 그려 나갔다.
어느 정도 작품을 위한 이미지가 구체화 되어 가는 즈음 불광사 주지스님으로부터 모델을 할 스님을 구해 놓았다는 전갈이 왔다.


다시 불광사를 찾았다. 광덕 스님의 상좌스님이셨다. 그 스님은 광덕 스님과 체형이 유사함은 물론 입는 옷 크기까지 같은 분이셨다. 그러면서 맑고 선한 인상도 비슷하였다. 스님께 자초지종을 말씀 드리고 모델을 서 줄 것을 요청 드렸더니 단호히 거절 하셨다. “자신은 은사 스님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이기에 어떤 자세든 스님께 누가 된다”는 것이었다. 거절의 표정에 진심이 묻어 나왔다. 나는 되려 광덕 스님의 인성까지 닮은 제자스님의 모습에서 큰스님의 그림자를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더 욕심이 생겼다. 나는 제자스님께 제작 과정에 대한 엄밀성을 말씀 드리며 장삼과 가사의 모양을 참고하는 선에서 겨우 허락을 얻었다. 모델을 세우면서 주지스님과 나는 그림 속 진영이 취할 자세에 대해 면밀히 토론하며 상의했다.


스님의 전체적인 이미지 구현은 설법을 듣기 위해 많은 이들이 구름처럼 모여 들었지만 모든 이들의 마음을 자신의 품으로 받아들이는 포용력 있는 모습을 담기로 정리가 되었다. 그래서 가부좌를 하며 앉아 계신 모습으로 그리기로 했다. 스님의 시선은 사람을 다정하게 맞이하며 눈을 맞추는 순간의 자세를 담기로 했다. 다음으로 얼굴방향에 대한 검토가 있었다. 보통의 경우와 달리 스님의 표정은 오른쪽 뺨이 보이며 좌측을 바라보는 모습이 더 스님 같게 보였다. 이런 형상은 콧날과 턱 선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장점이 있었다. 스님의 모습은 가장 낮은 자세까지 내려 와 사람을 귀히 여긴 인간적인 풍모를 표현하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았다.


진영 작업을 진행하면서 월간 〈불광〉의 남동화 편집장은 주지스님의 뜻을 전하는가 하면 나의 요구에도 충실히 응해주었다. 스님에 대한 사진 자료는 물론 평소 스님의 이미지를 구체화 하는데 의미 있는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관조 스님의 말씀도 큰 힘이 되었다.
나는 스님의 진영 작업을 하면서 스님께서 발간한 책을 읽으며 정신세계를 공유하고자 노력했다. 이때 가까이 했던 책은 여러 권이 있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죽창수필〉과 〈선관책진〉이다.
초본이 완성될 즈음 지정 주지스님께 보여 드렸다. 초본을 본 스님께서는 입술을 반듯하게 바로 잡으면 더 좋겠다는 말씀을 하시며 정성을 다해 잘 그려줄 것을 재차 부탁하셨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쪽지를 건네주었다.
‘광덕 큰스님 영정, 가로 82cm 세로 110cm, 2003년 8월 30일 완성요, 3월10일 불광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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