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보훈의달… 군법당을 찾아서① 철원 6사단 호국 청원사

호국 청원사 전경. 대웅전 법당 지붕위에 모셔진 불상이 인상적이다. 법당 양 옆에는 제등행렬에 쓰인 6사단 마크의 연등과 탑이 서있다.
한국전쟁 발발 당시 북한군은 파죽지세로 대한민국의 수도인 서울로 진격해왔다. 국군 대부분의 부대가 모든 전선에서 패배하는 와중에도 꿋꿋이 전선을 유지한 부대가 있었다. 바로 춘천지역을 방어한 6사단 청성부대였다. 이 3일간의 춘천 방어 성공으로 인해 북한군의 서울에서의 결집이 늦어지게 되고 이는 UN군을 비롯한 국군의 반격이 시작될 수 있었다. 6사단은 이후 압록강물을 떠 이승만 대통령에게 헌수한 일화까지 남길 정도로 용맹한 부대로 널리 알려졌다.

이러한 청성부대에서 부대원들의 정신적인 보금자리가 되고, 또 국토 안보관광의 중심지가 되고 있는 군법당이 있다. 철원 6사단 호국 청원사다.

서울 외곽을 벗어나 동두천과 포천을 거쳐 2시간 가량 차를 운전하면 동송읍이 나온다. 동송읍은 약 1만 5천여 명의 읍민이 거주하는 철원군 최대 읍이다. 동송읍의 한가운데는 호국 청원사가 있다.

호국 청원사는 1985년 문을 열었다. 당시 영외 군법당으로는 대형에 속하는 규모였다. 처음 호국 청원사를 보면 ‘넓다’라는 느낌을 받는다. 부지 규모만도 800평에 달한다.

호국 청원사에는 군법당 중 이례적으로 법당 지붕에 불상이 자리하고 있다. 이 같은 양식은 논산 육군훈련소의 호국 연무사 구법당과 함께 유일하다. 1986년 세워진 이 옥외불상의 존재 이유는 야단법석을 위한 것이었다. 푸른 지붕 위의 하얀 옥불 보살의 모습은 호국 청원사 뒤의 금악산을 배경으로 동송읍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호국 청원사 주지 효찬 박영민 법사는 “지금도 사단법당으로 150명에 달하는 장병들이 찾고 있으며 동송읍의 읍민들이 신행활동을 위해 찾는 곳”이라며 “그렇기에 날씨가 맑을 때면 야외에 돗자리를 깔고 법회를 보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청원사 법당내에 모셔진 삼존불 모습
호국 연무사와 호국 청원사 모두 법당 시설이 부족할 때면 야외에서 법당을 보기 위해 불상이 지붕 위에 위치했던 것이다.

호국 청원사 우측에는 대형 종각이 자리잡고 있다. 1994년 낙성된 것으로 종 한쪽 면에는 그동안 불사에 동참한 이들의 이름이 빽빽이 써 있었다. 사실 군법당은 일반사찰과 달리 이러한 후원이 절실한 곳이다. 호국 청원사는 지역민들의 쉼터 역할을 하기 위해 2013년부터 정원화 작업을 진행해오고 있다. 청원사 일주문을 기준으로 법당 우측의 종각 측면에는 각종 조경수가 심어져 있으며 좌측에는 연못과 함께 정원의자 등이 구성돼있다.

호국 청원사가 없던 시절, 6사단 장병들은 민통선 안쪽의 고찰인 도피안사에서 법회를 볼 수 밖에 없었다. 당시 강원도 철원지역에는 사단 법당이 따로 있지 않았다. 민통선 내의 법회는 아무래도 불편한 점이 많았다. 이에 사단 측에서는 영외법당을 모색하게 됐고 부지를 마련했다. 문제는 법당 불사금이었다. 이 문제는 의외로 쉽게 해결됐다. 당시 군포교에 관심이 깊었던 도선사 주지 현성 스님(現조실 스님)이 마음을 낸 것이었다. 현성 스님과 도선사 신도들의 십시일반 동참으로 도선사 측에서 법당을 기부 체납하는 것으로 불과 1년만에 불사를 이뤄냈다. 1985년 11월 보광 이욱태 법사의 재임 시절이었다.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현성 스님은 호국 청원사 불사를 시작으로 인근 5사단의 호국 금강사 불사를 바로 진행하는 등 군포교 대부로의 길을 걸었다. 호국 청원사는 역대 군법사들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1991년 요사채를 건립하고 1993년 법당 내부동사 등을 거쳐 현재 하나의 가람으로 발전했다.

종각과 주변 정원
삼사순례, 안보관광의 중심지로 거듭나

청성부대가 있는 지역은 한국전쟁 당시 가장 치열했던 ‘철의 삼각지대’ 전투현장, 비무장지대 GOP, 북한이 파놓은 남침용 지하통로로 1975년 발견된 제2땅굴, 북한의 옛 노동당사, 현존하는 최북단 기차역인 월정리역 등이 있는 최대의 안보지역이다.

이에 호국 청원사는 인근 고찰인 도피안사, 심원사와 함께 청원사와 휴전선 부근의 군사시설 등 한국전쟁의 흔적을 둘러보는 안보관광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상시 프로그램은 아니지만 사찰의 신도들이 찾을 시 주지법사가 안내를 맡고 있다. 지난해에도 특전사 법당 호국사자사 신도회 등을 비롯한 신도들이 호국 청원사에서 시작하는 안보관광 프로그램을 체험했다.

청원사 안보관광의 순서는 청원사에서 법회 후 제2땅굴과 철원 평화전망대를 거쳐, 월정리역, 노동당사, 백마고지역 등을 둘러보는 과정이다. 안보관광은 분단현실을 느끼지 못하는 일반 시민들에게 교육의 장이 되고 있다.

직접 일대 전쟁의 흔적을 보며 전쟁으로 인한 참상을 느끼는 시간이다. 2008년 문을 연 최북단 군법당인 용화사와 함께 647년 영원(靈源) 조사가 창건한 이후 생(生)지장보살의 진설이 깃든 신라고찰 심원사, 865년 도선(道詵)국사가 세운 도피안사도 함께 참배한다.

효찬 박영민 법사는 “안보관광의 경우 계절 등에 구애 받지 않는 것이 장점”이라며 “국가 안보관을 바로 세우고 호국불교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사찰 단위로 신청을 하면 언제든 환영”이라고 말했다.

 

 


“지역 신행의 중심지로도 발돋움”

효찬 박영민 주지 법사

2014년 12월 호국 청원사에 부임한 효찬 박영민 법사는 호국 청원사를 군법당 뿐만 아니라 불교교양교육 등이 함께 이뤄지는 지역신행의 거점으로 키워가고 싶은 바람을 밝혔다. 박 법사는 현재 인근 도피안사와 심원사와의 연계를 강화하고 있다. 심원사 주지 정현 스님은 신병교육에 간식을 지원하고 있으며 도피안사 측도 법당 행사 후원을 하고 있다. 지난 5월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군불자들과 도피안사, 심원사 신도들이 함께 힘을 모아 등을 제작해 동송읍에서 제등행렬을 진행하기도 했다.

박 법사는 “시내에 있는 군법당의 경우 일반 포교당의 역할도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법사는 끝으로 “지어진지 20년이 넘어 노후화된 요사채와 함께 아직까지 교육관이 없는 부분이 문제”라며 “지역민들이 불교 교양교육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이달의장병’ 등을 통해 군장병 포교에 나서고 있는 박 법사는 군장병을 대상으로 한 인성교육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박 법사는 “최근 심리상담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이들이 법당에서 자유롭게 쉬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안보관광 볼거리

▲철의삼각전적지
고석정 국민광광지내 있는 국내 최대 안보교육장으로 1989년 개관했다. 전적관내 통일관에는 북한의 다양한 물품들이 전시돼있다.
▲제2땅굴
북한이 판 남침용 땅굴로 북한에서 총 3500m를 남북대화 시점에 파 내려왔다. 1975년 3월 25일간에 걸쳐 시추작업에 의해 북한 남침용 땅굴임이 확인됐다.
▲철원 평화전망대
동송읍 중강리에 위치한 철원평화전망대는 지상 3층, 지하 1층 규모로 2007년 11월 개관했다. DMZ내 자연상태, 궁예도성 성곽, 북한 선전마을을 전망할 수 있다.
▲노동당사
한국전쟁 전까지 사용한 북한 노동당 철원군 당사로, 공산치하 5년간 북한은 이곳에서 평강, 철원, 포천일대를 관장하며 애국인사들의 체포와 고문을 자행했다. 근대문화유산으로 최근 지정돼 관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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