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으로 내가 나를 발견하는 데 역점을 두십시오!
진심으로 내가 나를 발견하는 데 역점을 두십시오!
  • 대행 스님
  • 승인 2015.06.05 13: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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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몸이 집이요, 법당이요,
그 안에 언제나 부처가 계신 것을 알아야 됩니다.

 

▲ 그림 최주현
(지난 호에 이어서)
그럼으로써 여러분이 병고에 휘달리는 것도 다 해결할 수 있고, 또 ‘자빠져도 코가 깨져. 왜 이렇게 안돼?’ 그러는 것도 해결할 수 있고요. 껄껄 웃으면서 ‘참 즐겁구나. 사람이 이렇게, 이렇게 즐거울 줄이야. 허무함이 없이 이렇게 즐거울 줄이야.’ 이렇게 생각하고 갈 수 있는 그 느긋함, 원력, 그것이 한데 합쳐서 에너지로 화해서 누구든지 길을 가다가도 소가 죽어 갈 때 아프지 않고 죽어서 그 모습을 화하게 만드는 그런 여건이 주어집니다, 무명만 벗겨 주는. 이러한 능력을 여러분이 다 가질 수 있을 때 여러분이 보살이며 부처며 법신입니다. 그것을 여러분이 다 충만히 가지고 계시리라고 믿으면서, 앞으로 복수비자인가 뭔가 그것도 모릅니다만 그거를 내게 되면 수차 자주 올 겁니다. 알래스카에도 지원이 생겼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자주 만날 것을 기약하면서 한마음으로 다지고 다져서 이 공부를 해 보십시오.


내가 어떤 때는 이러한 생각을 합니다. ‘야, 그 사람을 꼭 만나야만 내가 뭘 일러 줄 텐데 이걸 어떡하면 좋은가?’ 하고선 생각을 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천 리 밖에 나갔다가도, 그 사람은 그래도 이 안테나가 좀 움죽거리는 사람이니까 ‘아이고, 이거 스님이 부르시는구나!’ 하고 빨리 옵니다. 얼마나 편리합니까? 우리가 전화가 있어도 전화번호를 모르면 못해. 그런데 하물며 이 사방을 다 통하는데 얼마나 좋습니까.
그래서 여러분에게 공부도 할 겸, 또 한 가지 부탁할 것은 여러분 가정에 화목을 가져 오는 데는 속이 상하는 일이 있고 여자가 잘못하든 남자가 잘못하든 어떠한 거를 무릅쓰고 ‘아! 주인공 당신밖에는 해결을 못할 거야.’ 남편이 술을 아주 과하게 먹는다거나 또 안 들어온다거나 또는 성질이 이상하다거나, 또 병이 들었다거나 그래도 ‘당신밖에는 해결 못해. 당신이 해결할 수밖엔 없어.’ 하고선 그냥 거기다 맡겨 놓고 말로는 좋게 해 드려요. 언제나 따뜻한 데 사람이 고이게 돼 있지 냉랭하고 추운 데 고이는 건 하나도 없어요. 여러분, 그 뜻을 아주 잘 짐작하세요. 언제나 사랑하면서 이 말로 좋게 얘길 해 주면, 아무리 속 썩이는 말을 하고 속 썩이는 일을 하고 들어왔다 할지라도 “여보, 당신 참 피로하지요.” 하고서 좋게 얘기해 주고 (가슴을 짚으시며) 여기다가 하소를 하란 말이야. 그러면 가만히 생각하니까 자기가 무척 잘못하고 들어왔는데도, 번연히 알면서도 좋게 말해 주거든. ‘이거, 이거 내가 자중할 수밖에 없어.’ 한 번, 두 번, 세 번 이럭하다 보면 ‘아! 이거 안 되겠구나.’ 그때는 사랑이 하고 싶어져. 그래서 가정으로, 따뜻한 데로, 피로하면 자꾸 따뜻한 데로 들어오게 돼 있어.


모두 여러분의 탓이지 누구의 탓도 아니에요. 나는 어떤 때는 그럽니다. 야, 네가 때에 따라서는 여자도 됐다가, 또 동생도 됐다가 누이동생도 되고 딸도 되고, 어떤 땐 할머니도 되고 어머니도 돼 드려라. 그렇게 안 하면 따뜻하질 못해서 때에 따라서 속상하면 나가게 돼 있어. 그런데 나갔다가도 들어오게 돼 있다 이거야. 속상하면 들어오게 돼 있어. 그러니 얼마나 가정이 화목해지고 좋을 수 있겠느냐. 사람이 화목하게 질서 있게 또는 능력 있게 자유스럽게 아주 사랑하면서, 진짜 이 도리를 알아야 사랑할 줄 아는 겁니다. 사랑을 하고 이렇게 살다 보면 거 참, 시간 가는 줄 몰라. 그런데 그렇질 못하면 만날 만나면 싸우고 눈 노리고 좋은 말 안 하고 이렇게 되니 가정이 뭐가 따뜻해. ‘아, 들어가면 또 그럴걸.’ 하고 나가. 나가서 술 한 잔 먹고 이리저리 풀다가 들어오거든. 바깥에서 속상하는 일이 있으면 안에 와서 풀어야 할 텐데 그렇질 못하다 이거야. 여러분이, 남편은 아버지가 돼 줄 때가 있고 할아버지가 돼 줄 때가 있고 또 친구가 돼 줄 수 있고 때로는 남편이 되고 때로는 동생도 돼 봐라 이거야. 그러면 화목한 회전이 돼서 우리가 참 단란한 가정을 이룰 수가 있지 않겠는가.


그러니 불법은, 불이라는 것은 생명을 말하고, 일체 모든 생명을 말하고 법이라는 것은 말씀을 말하는 겁니다. 불교나 불법이나. 그건 말씀을 말하는 겁니다, 좋은 말씀을. 그냥 말해서 떨어지는 거는 한데 떨어지는 말입니다. 그러니 불교라고 하면 가톨릭교나 기독교나 전부 그 안에 들어 있는 겁니다. 그건 진리니까. 불교 아닌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생명 없고 마음 낼 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예? 그게 불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대로 생활이에요. 여러분 몸뚱이가 화두요, 생활이 참선이요, 우리가 그대로 행하는 것이 전부 참선이자 진리이자 생활입니다. 그러니 둘로 보지 마세요. 법당에 들어오면 벌써 저 부처님하고 내 형성된 이 몸뚱이하고 둘이 아니요, 그 부처님 마음하고 내 마음하고 둘이 아니요, 그 도리를 알게 되면, 둘이 아닌 도리를 알게 되면 저런 이파리하고도 말을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뿐입니까? 나라에 어떠한 문제가 생겼다 할지라도 저런 이파리 하나가 군사가 되는 것입니다. 헤아릴 수 없는 저 이파리 생명체, 저 이파리 하나하나가 다 군사가 돼서 나라를 보존할 수 있는 그러한 일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칼과 창과 활을 가지고 싸움터에 나가서 싸우고 호국 불교를 한다고 몸뚱이가 나가서 했지만 지금 시대는 그렇질 않습니다. 앉아서 할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조절해야 싸움을 이기든지 말든지 하지 않습니까? 또 장사를 해도 그래요. 직원들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아야, 그리고 조절할 줄 알아야 그 회사를 잘 운영해 나가지. 나라뿐만 아니에요. 가정도 그렇습니다. 그럼 사회도 다 그렇죠. 상업을 해도 그렇고 공업을 해도 그렇고 모든 게 다 그렇죠. 무역을 해도 그렇고 말입니다. 그것도 상업이니까. 정치를 해도 그렇습니다. 그럼 국방부에서 군인들을, 육해공을 다 그냥 해결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가 실천이 없는 것을 거짓으로 그냥 말만 해 드리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아주, 그 뭐라고 말할까요? 진심으로 내가 나를 발견하는 데 역점을 두십시오. 그럼 내가 말한 이 외의 것도 다 알게 되는 것입니다. ‘야, 이렇게 광대무변한 거 난 처음 봤어. 이 허공에도 생명들이 이렇게 우글거리는구나. 아하, 그렇기 때문에 비행기가 이렇게 그냥 못 뜨는구나.’ 이런 것도 알게 되고 지리 혈맥도 알게 되고, 우리가 지리학이라고 하는 것도 진짜 지리학을 써 놓질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공부를 하면 지리학이라기보다도 이 지리 혈맥, 모든 청룡 황룡 백호, 이 전체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 도리를, 나를 발견하십시오. ‘나’라 그런다고 또 ‘나’를 이러지 말고요. 여러분이 나입니다. 예수가 ‘나를 믿어라’ 이러니까 전부 자기 하나, 이걸 믿으라는 줄 알고 말입니다. ‘나’ 하면 벌써 일체 한마음입니다. 그러니 이 벽을 치면 봇장이 울려야지. 나를 따르라 그랬지 ‘나’ 한다고 나를 믿으라고 그런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같이 한 나지, 어째서 개별적인 나입니까? 그러니 기독교든 가톨릭교든 불교든 둘이 아닙니다. 지금 지구라는 것이 항아리라면 항아리 속에 같이 살면서 웬 말이 그렇게 많고 그렇습니까? 항아리 속에 같이 우글우글하면서 아니, 내 집 네 집 찾을 게 뭐 있습니까, 한 항아리 속에서.


난 그게 딱하다 이겁니다, 모두가. 세상에 이럴 수가 있어요? 이렇게 도리를 몰라 가지고야 어찌 지구 바깥을 나가서 우주의 섭리를 다 터득하겠습니까? 아무리 권력자고 아무리 이 나라의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나는 눈 하나 깜짝 안 합니다. 왜? 어차피 사람이 한 번 죽지 두 번 죽지 않아요.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그러니 죽는 것도 사는 것도 다 주인공한테 맡겨 놔. 뭐가 그렇게 억울합니까? 그렇게 죽는 것도 사는 것도 다 맡겨 놓는 반면에 나를 발견할 수 있는 그 계기가 와요. 저승길에 들어가야 저승 이치를 알지 어떻게 압니까? 안 그렇습니까? 허허허. 그렇기 때문에 너는 저승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너를 버려라 이랬거든요. 그랬는데 저승에 들어가기는커녕 살았다고 바둥바둥하는 겁니다. 그렇게 바둥바둥 이것 따지고 저것 따지고 이것 따지고 저것 따지니까 저승에 들어갈 수가 없죠.


예전에 어느 길을 걸었습니다. 그런 길을 걷다 보면 그게 낮이 되면은 뜨끈뜨끈합니다. 그래서 밤에도 뜨끈뜨끈합니다. 거기 드러누워서 밤에 보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세상에, 세금을 달랍니까, 누가 자리를 달랍니까? 가랍니까, 오랍니까? 말이 없단 말이야. 얼마나 편안합니까, 조용하고. 하늘을 쳐다보니 별이 총총하고. 근데 그 총총한 별이 나란 말입니다. 나와 둘이 아니요, 이 세상이 다 나와 둘이 아니요, 내가 발 없는 발이 수없이 두루 할 수 있는 법이 있는 거고 또 손 없는 손이 두루 내 손이니 얼마나 거룩하고 좋습니까? 그러니 아주 몸뚱이가 없어지는지 있어지는지 그것조차도 모르는 거야, 얼마나 좋았던지.
그랬는데 아, 그러고 가니까 길 없는 길을 내 자성이 나를 가르치는데 아, 가다 보니까, “야! 이 길은 길이 아니야.” “어떤 것이 길인데요?” “저기 저게 길이지.” 하고 저기를 가리키는데 거기는 천야만야한 산이라. 거길 가리키는 거야. ‘좋아! 내가 일단 나를 버린 이상에야.’ 미련퉁이지, 얼마나 미련스럽습니까? 그 산을 그냥, 그냥 드어 잡아 선 거야. 밤이나 낮이나 허, 발도 옮기지를 못해요, 그믐밤에는. 나무가 그냥 찹찹 쌓이고 그러니까. 그때는 누가 나를 인도하느냐 하면 산비둘기, 낭떠러지가 있으면 벌써 그냥 모두가 울어 주는 거야. 햐, 여기 낭떠러지라고 말이야. 그러면은 낭떠러진 줄 알고 주춤하고 섰으면 틀림없어. 뱀이나 비둘기나 새나 전부 친구들이야, 모두가. 그거를 실천적으로 내가 알았을 때 야 참, 이 무르팍을 쳤다니까. ‘이렇게 공감이 될 수가 없구나. 내가 말로만, 이 뜻으로만 안 거하고 실천을 이렇게 해 놓은 거하고 이렇게 차이가 나다니. 세상에 이럴 수가 있나.’ 그때서부터 뭐든, 지나가는 소의 눈만 봐도 눈물이 글썽글썽해져요. 왜? 그것이 내가 아닌 게 없기 때문이야. 죽으러 가면서 그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하단 말이야. “응, 너 아프지 말고 그 몸을 벗어.” 그러면 벌써 그 영혼은 나하고 체인지가 되는 거야. 그러니까 때리니 아나, 죽이니 아나. 우리 마취한 거나 마찬가지지. 그러면 그냥 좋게 벗는 거지, 뭐.


콩깍지도 익은 거는 건드리기만 해도 싹 벗겨지고 익지 않은 거는 벗기면 그 살이 그냥 콩에 짝짝 붙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아픕니까? 그와 같은 겁니다. 여러분이 이 도리를 알면 아프지 않고 내가 삶의 보람을 가지고 살다가 왜, 옷이 그렇게 헤지지 않았어도 부자는 좀 벗어서 놓지요, 가난한 사람은 그냥 다 헤지도록 입어야 되고. 그런 것처럼 여러분은 좀 더 부유하게, 마음을 넓게, 물리가 터지게, 지혜가 있게 이렇게 이 마음의 공부를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요다음에 또 만나면 실천에 좀 옮겨서 ‘아, 내가 이렇게 해 보니까 이렇더라.’ 하는 얘기 좀 들려주십시오. 꼭 그러기를 믿습니다.
내가 그래도 한국에서는 덜 힘이 듭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지금 많기 때문에, 남편이 일을 하다가도 집에서 뭐 급한 일이 있으면 벌써 무슨 일이 있나 하고선 전화를 하면 영락없죠. 그런 것도 그렇고 집에 무슨 일이 있어서 ‘여보, 빨리 들어와.’ 하면 그냥 거기서 벌써 ‘아, 집에 무슨 일이 있는 거 같은데.’ 이럭하곤 빨리 들어오고 그러니 그것이 바로 통신이라, 무전통신. 자력의 무전통신기. 그렇기 때문에 그 엄마도 불러들일 수 있는 그런 게 있어요.


여러분은 어떠한 일이 닥쳐도 눈 하나 깜짝거리지 마세요. 다 거기다 맡기고 ‘네가, 모든 것을 당신이 하시는 건데….’ 그러고 딱 맡기고선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아도 다 그렇게 되는 거예요. 자기가 생각하는 거 자기가 몰라요? 예? 얼마나 좋은 법인데 이 부처님이 가르쳐 준 팔만 사천 법문을 책에서만, 금강경을 달달달달 외우면 우리 집안이 좋아질 텐데, 아픈 것도 나을 텐데 이러고 외우지 마시고 전체 이걸 보세요. 세상 돌아가는 걸 보시면 끼리끼리들 모여 있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병원엔 아픈 사람만 모이고, 허허허. 아니 아, 생각해 보세요. 한번 휘이 둘러보세요, 안 그런가. 사는 것도 그렇고 모든 게 끼리끼리…. (녹음 안됨)
 

집을 하나 지으려고 생각을 했는데 금방 설계가 나왔어. 이게 과학이 아닙니까? 그래 설계가 나오니까 또 집이 턱 섰어. 이게 과학이 아니에요? 내가 먹고 싶다 그러니까 밥을 턱 갖다 놨는데 아니, 이게 과학이 아니에요? 이게 얼마나 신비합니까? 여러분은 신비한 걸 모르고 살아요, 진짜 신비한 거를. 그리고 공기가 있어서 내가 사는 거를, 그 신비한 걸 몰라요. 우리가 물이 없어도 못 살고 하여튼 지수화풍이 없으면 못 살아요. 내 몸도 지수화풍이기 때문에 지수화풍 없이는 못 살아요. 전부가 다 그래요. 그렇다면 우리가 공기를 사서 쓴다 이렇게 생각해 보세요. 물을 사서 쓴다, 바람을 사서 쓴다, 또는 불을 우리가 사서 쓴다, 일일이 이렇게 사서 쓴다면, 다른 것은 다 사서 써도 좋지만 이 공기만은 사서 쓴다면 정말 난리 납니다. 허허허.
그러니 여러분이 요가를 한다 뭐를 한다 하는 그것도 도(道) 안에 즉, 내 자동적인 심성을 깨달으면 도라고 합니다. 그 안에 다 들어 있는 겁니다. 춤출 줄 몰라도 저절로 손이 돌아가면서 몸이 흔들어지면서 춤을 추게 되니 그것도 운동이요, 춤을 추니 남이 볼 때도 좋은 거요, 잘 추면 보기 좋으니 좋은 거요, 웃으니 좋은 거요, 서로 화목해지니 좋은 거요, 전부 좋지 않습니까? 춤뿐이 아니에요. 모든 게 다 그래요. 일상생활이 전부 그렇단 말입니다. 손을 하나 이렇게 드는데도 내가 이거 운동하려고 강제로 막 그러면 이게 참 부자연스럽지 않아요? 좀 하다 보면 아프기도 하고요. 그러나 그렇지를 않습니다. 이것은 그냥 몸이 자기 멋대로 움직이기 때문에 내가 힘이 안 들어요, 각자 여러분이. 그러니까 춤출 때도 춤도 스스로서 추어지게끔 할 수 있는 그 능력이 모두 여러분 주인공에 다 있습니다. 그러니 오늘은 여러분의 질문이 있으면 합니다. 또 지루하시면 그만두시고요. 지루하시면 그냥 우리….


대중 가운데서 스님이 지루하시지요.
큰스님 아니, 나는 지루한 것도 없고 지루하지 않은 것도 없고 이렇게 사는 사람입니다. 그냥 물 흐르듯이 말입니다. 이 도라는 것은 너무나 위대하고 당당하고 참 신비하고 도도한 겁니다. 이 도리들을 모르시고 항상 ‘하나님이시여, 주여, 부처님이여’ 이러고 이름만 가지고 뭐가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그런 것을 벗어나서 자기 이 몸이 집이요, 법당이요, 그 안에 언제나 부처가 계신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것을 발견한다면 ‘왔다’죠, 뭐 지금 말로. 허허허.


그러니 우리 한번 진행해 봅시다. 얼마큼 진전이 있나. 우리 저 선원에서는 진전이 많습니다, 남녀를 막론해 놓고. 지금 대학원 나온 학생은, 지금 대학원 다니는 학생하고 둘이 좀 통했거든요. 그래서 남들도, 폐병 앓는 친구들이나 뭐 이런 사람들도 말없이, 그 사람더러 얘기도 안 하고, 그 사람은 모르니까 자기가 건져 주는 거죠. 그래서 낫게 해 가지고 같이 다니고 그럽니다. 그런 것을, 하나를 해도 자신으로서는 얼마나 보람 있는 얘깁니까? 우리가 물질을 주는 것도 보시지마는 뜻으로써 무주상 보시 하는 것도 보시입니다. 말해 주는 것도 보시요. 그러니 세 가지가 다 보시니까 이 보시를 그냥 물질로 주는 한 가지만 보시로 알지 마세요. 고아원에 찾아가서 물건을 갖다 준다 그래요. 그거 먹어치우면 고만이지, 뭐. 뿌리를 도와줄 수 있는, 에너지를 넣어 줄 수 있는 그런 거를 가져야 앞으로 걔들이 생존해 나갈 때  기를 펴고 나가고 빛을 보는 거지. 그게 진짜 무주상 보시예요.

질문자1(남) 제가 다른 사람들 질문을 유도하기 위해서 먼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큰스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에 대해서는 하나 의심이 없고 그런데 도를 얻는다, 도를 깨닫는다 뭐 그럴 때, 사람들이 만약에 자기가 도를 얻었다 그럴 때 어떤 기준이 되는 그런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으면 더 좋겠습니다. 잘못하면 혹세무민하는 그런 경우가 될 여지가 많기 때문에 과연 도를 얻었다는 것이 어떤 상태인지 그런 걸 저희들이 말로라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큰스님 그전에도 선원에서 그런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도를 이뤘다고 그냥 뭐 날뛰고 한 소식을 얻었다고 좋다고들 그랬다는데 천만의 말씀이라고요. 나를 발견했을 때는 바로 그때가 공부할 때라고 봅니다. 그게 한 소식이 아니라 내 스승을 내가 발견했다 이 소립니다. 그래서 내 스승을 내가 발견했을 때는 한 소식 얻었단 말도 하지 마라. 그래서 한 번 죽기 어려워라 했더니 두 번 죽기 어렵더라. 두 번 죽기 어려워라 했더니 세 번 죽기 어렵더라 이런 게 있습니다. 그건 왜냐하면 한 번 나를 발견했으면 바로 그것을 스승으로 삼고 자기가 공부를 그때서부터 해야 할 그 단계입니다. 그럴 때에 이것이 스승이 자기를 다지고 공부시키기 위해서 때로는 귀신으로도 나오고 또 좋은 곳도 이렇게 환상으로 나옵니다. (녹음 안됨)
놔서 그때 다시 보임을 해서 숙달을 해야 합니다. 그때에 둘이 아닌 걸 알게끔 다 숙달을 하게 되면 그 다음에 뭐가 나오느냐 하면 둘이 아닌 까닭에 너와 나와 나툰다 이거야. 내가 네가 되고 네가 내가 될 수 있는, 일체 만물이 그냥 내 한생각으로 한꺼번에 군사를 수만 명 만들 수 있는 그러한, 또 한 명도 없앨 수 있는 그러한 그 나툼이 있어야만이 그때에 열반경지에 이른다고 봅니다, 이름해서 그것도. 그러니 그 세 단계, 단계 없는 단계를 다 넘어서 우리가 그대로 손가락 하나를 들어도 이 우주가 전체, 아까 이 안테나 말했죠. 이 손가락 하나가 안테나라면 이 손가락 하나를 들어도 우주가 전체 들려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한 소식이라고 이름해서 그것도 그러는 것이니 나를 내가 참, 깨달았다 하더라도 그것은 깨달은 게 아니라 발견한 거다 이겁니다. 그러니 깨달았다는 말은 하지 말라 이거야. 허허허. 한 소식 얻었단 말도 하지 말고. 단, 내가 나를 발견했다 하면 ‘발견은 했으나 지금부터 공부지, 뭐.’ 이렇게 나가야죠. 자기가 겸손하지 않는다면 이 우주의 섭리와 더불어 같이 한마음으로서 회전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건 자기가 높기 때문입니다.
개구리 속에 개구리를 건지러 들어가려면 내가 개구리가 돼야 개구리를 건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높아서 개구리에게 사람의 모습으로 간다면 개구리가 모두 달아나가. 그렇지 않겠습니까? 뱀 소굴에 들어가려면 뱀이 돼야만이 뱀을 건질 수가 있고 또 짐승들 속에 들어가려면 내가 짐승이 돼야 돼. 사자 굴에 들어가려면 내가 사자가 돼야 하고 호랑이 굴에 들어가려면 내가 호랑이가 돼야 하고. 그렇기 때문에 모든 건 둘이 아닌 까닭에 내가 네가 될 수 있고 호랑이가 될 수 있고 호랑이가 내가 될 수 있다면 무명만 쳐도 그것은 나로다가 바로 화해서 그냥 요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 남전 스님인가? 이름도 잊어버렸네. 그 스님이 고양이를 들고 “동당 서당의 공부하는 사람들 중에 대답 한마디 해 봐라. 너희가 대답 한마디 한다면 이것을 죽이지 않고 너희가 대답을 못한다면 내가 목을 칠 것이니라.” 이랬는데 그것을 그렇게 남전 스님이 칠 때에 그건 고양일 죽인 게 아니라 그 도반들로서는 공부를 시키기 위해서 방편으로 보였고 또 진실로서는 그 고양이의 허물을 즉, 무명을 쳐 줬고 그 고양이는 바로 그 당시에 자기가 된 겁니다. 그래도 두드러지지 않았으니 얼마나 묘합니까? 참 이렇게 좋은 법을 우리가 앞으로 증득해서 우리가 갖는다면 늙고 젊고가 어디 있습니까? 우리 몸이 있어 가지고 저승에 들락날락할 줄 알아야 됩니다. 허허허.
그러니까 오늘은 이걸로써 설법을 끝내고 우리 앞으로 한마음으로 다지고 다져서 참 이 마음 도리에 감응이 돼 가지고 요다음에 “아이, 생활에서 실천을 이렇게 이렇게 하니까 그대로 됩디다.” 하고 한번 말해 볼 수 있는 그런 여건을 가지십시오. 우린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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